27일의 6자회담 기조연설로 각국이 갖고 있던 '대부분'의 카드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이제부터는 제4차 6자회담의 기본적인 목표, 다시 말해 '말 대 말' 합의에 기초한 공동 문건을 도출하기 위해 그 '말'에 담을 내용을 합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여전히 북-미의 주장 사이에는 좁혀지기 힘든 간격이 있지만 양측의 협상 의지는 비교적 강하다. 기조연설 이후 일정 시간의 의견수렴을 거친 뒤 28일 다시 열리는 수석대표회의와 각종 양자접촉이 주목되는 이유다.
***남북 협의 재차 가져 "한 줄 한 줄 집어가며 논의"**
기조연설에서 드러난 북-미간 차이점은 과거에 비해 좁혀진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커다란 간극이 남아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기조연설 이후 한국 대표단의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27일 일정을 소화한 뒤 한국 프레스센터에 들러 간략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회담에서 공동문건 도출이라는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차이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는 분위기다. 아울러 기조연설에는 각국이 가지고 있는 '최대' 주장을 담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제는 이를 통해 이견을 좁혀가는 일이 남았다는 취지였다.
송 차관보도 "각국 입장 가운데 어떤 부분은 같은 것도 있고 어떤 부분은 상당한 거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면서 "그러나 각측의 입장 가운데 차이 나는 것은 어느 부분이며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그리고 공통분모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조연설 이후에는 연설에서 드러난 기본 입장에 근거해 각국간 입장을 좁히는 과정이 이어졌다. 우리측 대표단도 27일 하루 동안 1시간여 한미 접촉을 가진 뒤 1시간 15분여 동안 남북 접촉을 연달아 갖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송 차관보는 남북 회동에 대해 "우리 발표 내용과 취지, 배경에서 불분명한 부분을 북측에 설명하고 북측으로부터 북한이 제시한 안들의 구체적인 내용과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었다"면서 "한 줄 한 줄 집어가면서 얘기했다"고 말해 매우 상세하게 의견을 주고받았음을 시사했다.
***6자회담 '바구니'에 담을 '말' 합의가 문제…이견은 여전히 커**
하지만 과연 공동선언, 공동문건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각국이 공동선언, 즉 '말 대 말' 단계의 '말'에 담을 내용에는 커다란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모두 기조연설을 통해 6자회담 공동문건이라는 '바구니'에 담을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그 차이점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북-미가 기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관계 정상화 부분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 위해선 '미국의 핵 위협 제거와 북미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고 이것이 '말'에 분명히 들어가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힐 차관보는 관계 정상화를 거론하면서도 '여타 참가국들의 안전보장과 교역 및 투자를 포함한 경제협력'만 적시하고 '북미 관계의 정상화'는 거론하지 않았다. 관계 정상화와 핵 포기 사이의 우선 순위도 분명히 달랐다.
물론 폐기 대상의 범위에서 미국의 '핵 프로그램' 주장과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주장도 엇갈리고 있다. 평화적 핵 이용에 대한 의견 차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미-일 대 북-러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일본도 '모든 핵 계획'이라고 표현했고 우리도 '모든 핵무기, 핵계획'이라고 적시해 각각 미국과 같은 입장을 보인 반면 러시아는 '군사 목적의 모든 핵 프로그램, 핵실험, 핵무기 제조, 비축활동'이라고 말해 북한과 같은 자세를 보였다. 중국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아울러 북한이 제기한 '한반도 비핵지대화'도 과거의 '한반도 비핵화'와는 다소 다른 새로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이견이 불가피하다. 북한이 해상과 항공 등 모든 지대를 포함하는 내용의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에 강조점을 둘 경우 논란이 강하게 일 것으로 보인다.
<표> 남-북-미 '바구니'에 담을 내용
***28일 수석대표회동 주목…문서 채택 여부와 무슨 내용 담을지 논의**
이에 따라 28일 오전 열리는 수석대표회동이 주목되고 있다. 기조연설에 입각해 어떻게 의견을 조율할지, 이번 회담에서 결과 문서를 어떻게 채택할 것인지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회동에서 과연 공동문건 채택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가 어느 정도 판가름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누누이 강조하듯이 이번 회담이 '결과 지향적'이라면 본격적인 회담은 바로 이제부터인 셈이다. 표에 드러난 대로 각국 주장 하나 하나를 대비시켜 '바구니'에서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는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회담에 임하는 각국 대표단의 '의지'가 과거와는 다르고 서로를 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점은 긍정적인 전망을 낳고 있기도 하다. 각국 모두 서로의 '말'을 들으려는 자세는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힐 차관보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chairman'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한 데 대해 북한측이 흡족해 했다는 전언도 들려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미국이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 '효과적 검증 수반' 등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고농축우라늄(HEU)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점도 주목된다.
이에 따라 어느 수준일지 가늠하긴 힘들지만 합의문은 도출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고 있다. 아울러 과거 1차 회담에서는 '의장 요약문', 2,3차 회담은 '의장 성명' 등 낮은 수준의 공동문서가 채택됐을 뿐이나 이번 회담은 보다 구속력이 있는 문서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28일 회의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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