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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 파키스탄, 미국의 맹방이자 탈레반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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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 파키스탄, 미국의 맹방이자 탈레반의 대부

[이웅현 '비극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파키스탄 ISI의 유착

탈레반의 신화

지금은 초라한 전설이 되었지만, 찬란한 '신화'이던 때가 있었다.1994년 5월 칸다하르주 북부 산그히사르에서 시작하여 불과 2년 만에 수도 카불을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전 국토의 90% 이상을 장악한 탈레반('학생들'이라는 뜻)에게는 처음부터 신화가 따라다녔다. 1996년 9월 카불을 장악하기까지 2년 동안 이들은 거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의 남부와 서부를 평정해 나아갔다.

약탈과 강간을 일삼으며 통행세 징수와 마약밀매로 연명하던 비조직적인 지방의 소규모 군벌들은 매우 조직적인 것처럼 보였던 이들의 도전에 놀라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고, 이 손쉬운 평정에 오히려 탈레반이 더 놀랄 지경이었다.

절대적 승자가 없이 지속될 것만 같던 내전과 무정부상태의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이 한 줌도 안 되는 세력이 수 년 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질서와 안정을 단숨에 확보하자 아프간인들은 이들에게 가슴과 마음을 열었고, 탈레반은 '신화'가 되었다.

▲ 한때 아프가니스탄 인들의 '신화'였던 탈레반

그러나 아프간인들이 기쁘게 맞이했던 신화의 배경에는 아프간인들의 열망을 배신하게 될 냉혹한 '현실'이 있었다. 카라치-칸다하르-헤라트-참만을 연결하는 루트를 통해 중앙아시아로의 교역통로를 확보하려는 파키스탄이 칸다하르 등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탈레반이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키스탄 군정보기관(ISI)은 카불을 장악하고 있던 랍바니를 설득하여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서부지역으로 탈레반 세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했고, 랍바니는 자신의 강력한 경쟁자인 헤크마티야르가 더 이상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데 만족하고 이를 묵인했다.

그리고 ISI는 파키스탄의 마드랏사(종교학교)에서 양성된 파슈툰족 주축의 '파키스탄 탈레반'을 투입,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세력을 강화했다. 캐시미르를 놓고 인도와 갈등하던 파키스탄으로서는 아프가니스탄과의 접경지역을 '입 안의 혀'가 장악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지원에 의지하며 대소 항전을 해오던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이나 군벌들은 이러한 파키스탄의 개입에 저항할 처지가 못 되었다. 북부 우즈베크족 군벌 도스툼조차 1995년 12월 이슬라마바드와 마자르-이-샤리프에서 파키스탄의 주선으로 탈레반 대표들과 만나 파키스탄의 탈레반 지원에 동의했고, "북부지역에는 영토적 야심이 없다"는 탈레반과 타협했다.

구체적인 국가경영의 계획도 야심도 갖고 있지 않던 탈레반이 불과 2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을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파키스탄의 지원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득세 뒤에는 파키스탄 특히 ISI라는 '선생'이 있었던 것이다.

'대부(Godfather)'

이미 이때부터 미국은 파키스탄의 ISI가 탈레반의 '대부(Godfather)'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1995년 가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서부의 주요도시 헤라트를 손쉽게 장악하자,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세력항쟁에 관해서 우리는 중립"이라고 주장(USUN N 004283, 이하 괄호 안은 2007년 8월 공개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정책관련 문건 또는 저술, 논문명)했지만,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파키스탄의 영향력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파키스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이 사실상 탈레반의 번창을 방조하고 있다"는 식의 불필요한 의혹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었다(State 291940).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파키스탄에서 대소항전의 전사들이 양성된 사실,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재정적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1996년 가을 마수드-랍바니 세력을 아프가니스탄 북부로 축출한 탈레반이, 확보한 영토 내 특히 호스트주에 오사마 빈 라덴, 유니스 할리스의 이슬람당, 파키스탄의 자미아트-울레마-이-이슬람, 캐시미르의 하라카트-울-안사르(HUA) 등의 훈련캠프를 방조하자 CIA는 탈레반이 테러조직과 연대하고 있다고 우려했고(NID 96-0229CX),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국대사관은 국무부에 "파키스탄이 탈레반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주라"고 촉구했다(Islama 08637).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파키스탄을 움직일 레버리지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내 강력한 탈레반 정권의 수립은 파키스탄으로서도 긴장할 일이었다. 파키스탄 국경 안쪽의 파슈툰족과 연대한 탈레반이 '파슈투니스탄'의 건설을 꿈꿀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ISI는 탈레반에 대한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고, 호스트 지방 내의 테러조직 특히 HUA와 관련해서는 "지속적으로 감시,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미국에 표명했다(Islama 001054).

칸다하르를 근거지로 한 탈레반에 대한 파키스탄 탈레반의 병력충원도 멈추지 않았다. 파키스탄 주재 미국대사관의 정보보고에 의하면, 카불, 헤라트, 칸다하르, 잘랄라바드 등 주요 도시의 파키스탄 대사관과 영사관의 고위급 관리들은 ISI의 장교들로 채워졌고(Islama 004546),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전사들의 20-40%는 파키스탄 국적의 탈레반이었다(Islama 005964).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파키스탄으로서는 당장 마음껏 놀릴 수 있는 '입 안의 혀'를 자를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屈伸(굴신)'

이 '입안의 혀'가 제멋대로 입 밖으로 나오자 파키스탄 정부는 당혹스러워 했다. 탈레반 비호 하의 알카에다가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하자,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성난 곰처럼 날뛸 것"이라며 대미협조정책으로 급선회했다(A. Rashid, Descent into Chaos). 탈레반 소탕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오사마 빈 라덴의 추방을 권고하기 위해 탈레반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와 만난 파키스탄의 ISI 장교들은 "미국에 저항하라"고 충고했다(K. Gannon, I is for Infidel)는 루머가 돌았다. ISI로서는 탈레반이 버티면 버틸수록 미국은 더욱 파키스탄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은 북부동맹과의 연합작전을 통해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주력을 체포하지는 못했지만 국경 밖으로 축출하는 데 성공했고, 파키스탄의 북서국경지방(NWFP)과 와지리스탄은 더 이상 신화가 아닌 탈레반 패주세력의 새로운 근거지가 되었다.

결국 탈레반이 완전한 소멸을 피하고 잔존할 수 있었던 것도 파키스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셈이었다. 더욱이 많은 파키스탄인들은 이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운명을 지닌 자유의 전사 혹은 무슬림 전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2002년 1월 미 국방부 정보보고).

20년 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을 차단하지 않으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의 승리가 무망한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을 이번에는 미국이 맛보게 된 것이었다.

소련은 파키스탄에 대한 레버리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 파키스탄의 전폭적 지지와 협력을 받았고, 인도와 대립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문제와 탈레반에 관한 한 미국이 파키스탄의 진지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빛바랜 사실

미국의 식자들 가운데는 "국경지방을 확실하게 단속하면서 영토가 확실한 주권국가가 될 것"을 파키스탄에게 주문하는 자도 있었고, "파키스탄과 같은 '이런 친구들'이 그래도 미국인을 해치는 탈레반 반군보다는 낫다"면서 차라리 "이런 친구들이 내부적으로 군부를 통제하고 개혁을 단행하도록 압력을 넣으라"고 미 정부에 충고하는 자도 있었다(D. Byman, "Friends Like These").

그러나 충고나 압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파키스탄에게는 인도와의 경쟁관계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도의 침투를 방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국경지역의 파슈툰인들을 포함한 파키스탄 국민들 역시 외국군의 출현이나 외국의 압력을 환영할 리가 없었다.

2003~4년에 걸쳐서 ISI는 퀘타 북쪽에 탈레반 훈련양성캠프를 운영했고, 2006년 미국과 나토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정보기관은 ISI가 탈레반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탈레반에게 (외국군에) 저항하라고 압력을 가하면서 비용과 보수까지 제공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Rashid).

말하자면 파키스탄의 군부 혹은 ISI가 탈레반의 탄생과 성장에 관여해 왔고, 현재의 연명에도 직접,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 정부나 정보기관, 지식인들에게는 거의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익숙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 압둘 가니 바라다르 ⓒ프레시안
2010년 2월, 헬만드주의 마르자 공세가 시작될 무렵, 파키스탄은 탈레반의 2인자라는 바라다르를 체포했다고 발표, 미국에 기쁨(?)을 선사했다.

바라다르는 탈레반의 대서방 '입'이자 탈레반 내 온건파 특히 카불정권과의 협상론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체포에 관해서는, ISI가 "너희들을 항상 통제하고 있고 또 파키스탄의 동의 없이 카불과 협상하는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지 않도록 하라"는 탈레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고 보는 시각이 강했지만, 아무튼 기쁨도 잠시, 바라다르와 함께 체포되었던 탈레반 지도자들은 슬그머니 석방되었다.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탈레반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가 석방된 탈레반 군사지도자 압둘 카윰 자키르와, 파키스탄으로부터 재정 병참 장비 지원 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던 아흐타르 모함마드 만수르를 바라다르의 후임으로 임명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뉴스위크> 등).

최근에는, 파키스탄의 이중적인 '처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던 바로 이 시기에 행해진 탈레반과 하카니 네트워크의 현직 반군지도자들 9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 "하늘의 태양: 파키스탄의 ISI와 아프간 반군의 관계"라는 LSE(런던경제대학)의 페이퍼가 <BBC> 월드와 <선데이타임스> 등 영국 보도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파키스탄 군부뿐만 아니라 민간정부도 탈레반의 저항을 독려하고 있다, ISI는 단순한 은신처 제공과 군사적 지원에 머물지 않고 탈레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퀘타 슈라에도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탈레반은 ISI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살폭탄공격'이나 '급조폭탄장치(IED)' 등의 방법으로 (원하지도 않는) 아프간 민간인의 살해에 참여하고 있다는 등의 다소 구체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 보고서의 골간인 "ISI가 탈레반 그리고 하카니 네트워크를 배후 조종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하늘의 태양'처럼 분명하고도 새로울 것도 없는, 다만 비밀스러워 확인할 수 없었을 뿐인 미 정보관계자들의 상식이었다.

自家撞着(자가당착)

어쨌든 아프가니스탄 주둔 국제안보지원군(ISAF)과 아프가니스탄 군(ANA)의 칸다하르 대공세가 임박한 상황에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한 파키스탄의 역할이 공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즉각 이 페이퍼의 주장을 부인했고, 현재로서는 파키스탄의 '굴신(屈伸)'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그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2001년 이래 미국으로부터 116억 달러에 달하는 안보관련 지원과 60억 달러의 경제지원을 받아왔고, 또 향후 5년 간 최소한 75억 달러의 지원 약속도 받아 놓은 파키스탄으로서는 현상변화를 도모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협곡에 갇혀있는) 탈레반을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카르자이의 노력이나 ISAF의 칸다하르 작전을 포함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성패 여부는 많은 부분 파키스탄의 진지한 협력 여하에 달려있다는 점이고, 이것이 현재로서는 무망(無望)하다는 점이다.

탈레반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패주 후의 연명(延命)은 파키스탄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왔다. 적의 벗은 나의 적이고 적의 원수는 나의 벗이라는 도식이 '전장 아프가니스탄'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미국은 자국 병사를 공격하는 적을 비호하는 세력을 지원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셈이다.

결국,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넘어야 할 험산들은 아프가니스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비극의 아프가니스탄'이 단순히 베트남이나 이라크에서의 경험을 교훈 삼아 새로운 대비정규전(COIN) 전술을 개발, 적용한다고 해서 단기간 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까닭이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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