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네 차례에 걸쳐서 '일본국 시민 여러분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자 합니다. 애초에는 일본의 한 지인에게만 이 편지를 보낼까 하다가 어느 특정인에게만 이 편지를 보내는 것보다는, 보다 많은 일본의 양식 있는 지성인들에 제 견해를 제안하며, 같이 토론하고, 또 일본에 시민 여러분들과 '더불어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일본국 시민 여러분에게'라는 제목의 이 편지를 씁니다. 필자
먼저, 제가 이런 형식을 택한 바는 그간 여러 가지 인연으로 일본을 수다하게 방문하였고, 저 혼자 일본으로 건너 가 2001년 오사카에서, 그리고 2003년 도쿄에서, 제가 쓰고 연출한 연극 <섬.isle.島>을 일본어, 일본인 배우, 일본인 스태프들과 같이 준비하고 공연하게 되면서 만나게 된, 소중한 일본과의 인연이 결코 저의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으로만 그치지 않았듯이, 이 편지의 내용 또한 보다 많은 일본의 시민 분들과 만나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한국의 폭염(暴炎)은 참 대단했습니다. 서울의 더위는 가히 찜통이었습니다. 일본의 미디어를 통한 보도로 이미 아시겠지만, 한국의 시민들은 된더위에서도 시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촛불'을 켜들고 밤마다 경찰의 폭력에 맞서야만 했습니다. 지열에 아스팔트가 푹푹 패이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한 가운데서도 경찰의 물대포와 몽둥이에 맞서 연일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일대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이미 파악하셨겠지만 한국 시민들이 지난 몇달 동안 '촛불'을 켠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서, 그로부터 촉발된 민주주의 절차와 본질에 대한 물음을 한국 현 집권 권력 집단에 제기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한국 시민들의 '촛불', 그 정신과 내용은 시민인 우리는 일방의 권력에 통제당하거나 이용 당하는 잡민(雜民)이 절대 아니며, 함부로 취급당할 수 없는 '생명'이고 '인간'이란 사실을 스스로 환기하면서, 각기 자기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게 아니고, 자신과 관계하는 사회, 자신과 관계하는 국가, 자신과 관계하는 세계, 자신의 다음 세대까지 관계하는 미래를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한 '촛불'로 저는 해석합니다.
그래서 이 '촛불'은, 한국에 시민들이 이제 단순히 살아남는 것으로만, 생을 유지하는 것으로만, 떼 지어 삶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으로만, 삶을 방치할 수는 없다는 자각에 기초합니다. 더 나은 삶으로, 더 나은 인간의 사회로, 생명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다짐하는, 보다 진정한 인간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계획을 세우기 위한 민주주의 단서로 '촛불'입니다.
이 '촛불'은 경제를 살려 국민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나온 이명박을 한국의 국민들이 새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정작 대통령으로 뽑힌 이명박에 기대했던 경제적 희망이란 얼마나 신기루에 가득 찬 허구인가를 자각하기 시작한 한국 시민의 행동입니다. 이 '촛불'은 잘못 뽑은 대통령에 대하여 한국 국민들의 자책과 반성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며 한국의 국민들이 잠시 접었던 도덕적 분별력을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한 것에 '촛불'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곧 자유롭고 존엄하게 인간으로 삶을 산다는 게 무엇인가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확인하자는 국민의 시민운동으로 한국의 '촛불'인 겁니다.
불행하게도 한국 시민들의 '촛불'은 오늘 현재 순탄하게 불을 지피고 있지 못합니다. 경찰과 검찰을 동원한 공권력의 무차별적인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 담화를 통해 이명박은 시민들의 '촛불'에 사과와 송구(悚懼)를 두 번이나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생방송으로 말하면서 '촛불'의 민심을 수용하겠다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시민을 연행하고 수색하고 체포하고 징역살이를 시키고 있습니다. 촛불' 집회 참여 시민 중 약 1000명이 기소를 당하고 수백만 원씩의 벌금을 물리면서 '촛불'을 끄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너무나 익히 잘 아시겠지만, 지난 20여 년 전, 한국의 사회상황은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한국이란 나라를 지옥으로 끌고 간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시대를 한국 국민들은 고통스럽게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끈질긴 시민들의 연대와 행동으로 독재정권을 물리쳤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목숨을 바쳐 한국은 민주주의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이 연약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이명박 정권의 집권으로 큰 위기에 빠져든 겁니다. 과거 독재시대 때 폭력으로 군사정권을 호위하던 특수경찰 집단인 '백골단(白骨団)'이 다시 부활했고, 방송을 정권 선전용으로 되돌리려는 끈질긴 시도가 이명박 정권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NHK에 해당하는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 사장을 졸렬한 법조문을 억지 동원해 강제로 내쫒은 게 그 증거입니다.
그럼 과연 한국 대통령인 이명박의 뜻대로 한국 시민의 '촛불'은 꺼질까요? '촛불' 시민을 폭력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여론을 조작하고 일반국민과 시민들을 이간질시키고 괴리(乖離)시키면 '촛불'이 꺼질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국의 '촛불'시민들은 한숨 쉬며 민주주의를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갖가지 저열한 방법으로 '촛불' 시민을 강제한다하여도 한국에 시민들은 억지로 권력에 굴종하거나 복종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한국 '촛불'시민은 정당하지 못한 권력의 폭력은 반드시 권력 스스로를 오작동 시키고 권력 스스로가 자기 명(命)줄을 재촉하는 것 뿐임을 박정희 피살과 전두환 몰락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역사적 경험도 있습니다. 폭력정권은 반드시 폭력으로 망한다는 진리를 알고 있으며, 폭력적 권력의 관성과 정확한 말로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고 어리석은 사실은 권력을 잡은 이들은 권력이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이런 자명한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시민들은 시대를 거꾸로 20년 이전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이명박 정권과 힘겨운 대결 국면에 있는 중입니다.
오늘 저는 장황하고 길게 한국의 작금의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해 연말에 있었던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의 국민들이 직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지만, 잘못 선택한 결과가 지금 한국 사회 전체를 곤경에 빠트리고 있으며, 한국의 국가 공동체가 위난에 처했으며, 국민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고, 시민들 일상의 삶 자체까지 위협하고 있는, 고통의 반면교사를 이웃나라 일본국 시민들은 제대로 읽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정권의 파행은 국가의 헌법을 정권이 먼저 유린하면서, 국민을 알기를 '어중이 떠중이'로, 그저 떼 지어 살면서 돈만 밝히는 '잡민'으로 알면서, 집권자 자기네들이 살아온 그 천박한 방식으로 국민 일반을 인식하는 위험성을 말하고자 합니다. 적당히 경제를 살리겠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유권자를 구슬리고 시종일관 국민을 속이면서 투표가 끝나면, 무차별 '법치'를 동원해 얼마든지 시민을 옭아맬 수 있다고 여기는, 천박한 정치세력에 대해서 경계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저는 아주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인터넷으로 일본 신문의 기사를 보다가 너무나 놀랐습니다. 미루어 짐작은 했고 걱정은 했지만, 일본의 차기 총리로 자민당 간사장인 아소 다로(麻生太郞)씨가 유력하다는 기사에 놀란 것이 아닙니다. 5명의 후보가 자민당 총재 자리를 놓고 유세를 벌이고 있지만 문제의 인물인 아소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무차별 망언으로 한국과 중국, 대만 및 주변국은 물론이요 심지어 일본국의 위신까지 추락시킬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 대중적 인기가 높다는 사실에 저는 놀란 것입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경향으로 인해 그의 잦은 망언이 오히려 일본의 국민들에게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저는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 크게 걱정스럽기까지 한겁니다.
일본 시민 여러분들이 저보다 훨씬 잘 아시겠지만 아소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인가요?
그는 한국인의 기억에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으로 인식되는 인물입니다. 아소 간사장은 한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마구 깔아뭉개는 망언을 뱉으면서도 진심어린 사과는 단 한 번도 한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2003년 5월에 도쿄대학교 강연에서 창씨개명에 대해 "조선인들이 일본의 성씨를 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더하여 "한글은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가르친 것이며 의무교육 제도도 일본이 시작했다. 옳은 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2004년 1월에는 한국의 독도 우표 발행에 대해 "일본도 독도를 주제로 한 우표 발행을 검토해야 한다. 외국에 나가있는 가와구치 요리코 일본 외상이 귀국한 후 외무성과 재차 협의하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 2005년 5월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강연에서 "전쟁 후 일본은 경제 재건이 최우선 목표였는데 운 좋게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경제 재건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군인을 위해 수많은 군수물자와 병참업무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일본이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고 이웃국의 참담한 전쟁의 고통을 간단하고 서슴없이 노골적으로 말하는 저질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날 강연회에서 그는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에게 미국의 국립묘지인 알링턴 묘지와 같은 곳으로 300만 명이 넘는 군인이 일본을 위해 희생했다. 정부는 최대한 예우를 갖춰 이들을 대해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옳고 앞으로도 계속하겠다"고 말하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군인들을 A급 전범이라고 결정한 것은 일본이 아니다. 점령군이 외부법에 의해 결정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2005년 11월 가나자와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지적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뿐이다"라며 오히려 한국과 중국을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2006년 1월 28일에는 "야스쿠니 신사의 영령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지 '총리 만세'를 외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신사 참배는 총리보다 천황이 하는 것이 최고다"라며 천황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주장했고 이는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아소의 계속되는 발언은 한국과 중국에만 망언을 일삼는 게 아니고 2006년 2월에는 중국을 향해서 대만을 얘기했는데, "대만은 일본이 실시한 강제교육 때문에 교육수준과 읽고 쓰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 덕분에 대만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일본은 좋은 일을 한 것이다" 라는 극언도 합니다. 이 발언은 오늘 한국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한국에 뉴라이트 집단의 지식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주장인 식민지근대화론을 바로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시대를 거꾸로 돌리려 획책하는 세력이 사회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일본 시민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소 다로 자민당 간사장이 정말 일본 차기 총리가 되는 겁니까?
그래서? 일본 우익세력의 총결집의 효과를 기대하여 일본국 전 외무장관이자 자민당 간사장인 아소가 이제 당당히 일본국 총리로 그간에 해왔던 망언을 제도로 정책으로 펼치게 되는 겁니까? 이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진정 일본 국민들을 위해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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