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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지금 독일에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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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지금 독일에선 <상>

[김상수 칼럼] 행사총책임자 모리츠 반 뒬멘과의 대화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네 가지 단상

첫 번째로 최근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국회 '진보개혁입법연대' 초청연사로 가서 한 말들은 나를 몹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더하여 나는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이 국무총리로 내정되면서 기자들 앞에서 한 말과 그가 국무총리로 내정되기 이전에 한 말이 완연하게 달라진 사실에도 너무 놀랐다.

먼저 국무총리로 내정된 정 후보자는 기자 간담회에서 "경제학자로서 그동안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던 것이 사실이나, 최근 직접 만나서 말씀을 나눠보니 그 분과 나의 경제 시각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말이 무슨 얘기인지,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경제정책이란 현실에서 펼쳐지는 것이고 그 현실을 '비판'했는데, 그 현실이 있게 된 '경제 시각'은 서로 다르지 않고 차이가 없었다고? 이게 무슨 말인가?

결국 정 후보자가 이명박 정권의 총리로 내정된 사실에는 이명박 정권의 본질에서 과연 어떤 변화를 정 후보자가 이끌어낼 수가 있을까가 관건일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이명박이 용산 강제철거사태 유족들에게 다가가 진실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수 있을까? 그간의 자신의 실정을 크게 뉘우치는 개과천선(改過遷善)같은, 말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불가능이다. 이명박이 대표하는 집단의 속성도 그렇지만 인간의 태생이나 사람의 본질이란 후천적으로 잘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대는 인간이란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말이 어디서 어디까지가 참말이고 아닌지도 스스로 분간이 어렵다. 그런데 그런 인간과 같이 상종(相從)할 수 있다? 무슨 두둑한 배짱이라도 있나? 아니면 뭔가에 단단히 씌워진 것인가?

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 내정 이후 기자들 앞에서 한 얘기가 도대체 뭔 얘긴지, 내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강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두 전직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지지세가 회복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또 최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권위주의정부나 파쇼정부로 보지 않는다"고 했으며 "지금 체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 등 기본적인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본다"고 말했다.

나는 묻는다. 최 교수는 이명박을 '일반시민'들이 지지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가? '일반 시민'이란? 그 시민은 어떤 시민들인가? 학자로 최 교수가 말하는 시민은 어떤 범주-카테고리-에 속하는 시민들인가? 그것도 '일반시민'이라 함은?

최 교수의 말처럼 민주당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를 성찰"하지 못하고 있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의 이명박을 불러낸 건, 전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 시절, 보다 확연하게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못했던 실정에 대한 반동과 조,중,동의 여론 왜곡, 병든 국민들의 의식 등, 복합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견 최 교수의 의견은 맞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어떤 정부냐는 그 성격 규정에 대한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최 교수는 "인상적 비평"임을 전제로 "한나라당만 해도 많이 변했다"며,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와는 다른 정당이 됐다"고 답변했다.

나는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다.

최 교수는 학자로 '민주주의'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걸까? 예의 "인상적 비평"으로 학자는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는가?

국군 기무사령부가 민간인들을 불법 사찰한 사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가능한 것인가? 국회에서 미디어 법을 날치기 통과시켜 최 교수가 평소에 주창하는 의회주의를 만신창이로 만든 한나라당의 행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말 가능한 것일까?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재벌과 조,중,동에 넘기겠다는 저 끈질긴 정치공작도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적인 정치행위인가? 기본 생존권이 위태로운 철거시민들을 전문테러진압경찰을 동원하여 무참하게 살상할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가능한 것인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을 깡그리 파괴하는 그런 '민주주의' 국가도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그런 '민주주의' 국가란 옛 동독의 호네커 정권하의 비밀경찰 '슈타지'(Stasi)가 암약했던 곳이 아니던가?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나 일상의 일로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긴 동독이나 북한정권도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했고, 하니까.

그렇다면? 자국의 국민들을 불법 감시, 도청하며 탄압하는 것도 역시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해서인가? 나는 최 교수가 말하는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 정권이란 현실 인식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두 번째. 독일통일에 대한 한국지식인들의 심각한 사실 왜곡

독일통일에 대해서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 중에는 독일통일 후유증을 말하고 통일 비용을 말하면서, 한국도 섣부른 통일은 금물이라고 주장했고, 한다. 이런 주장은 독일통일 단서가 된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이 된 2009년 오늘에도 과연 유효한 주장일까? 혹시 국민들로 하여금 통일에 대한 준비를 내실 있게 하자는 주문의 측면보다는, 통일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할 의도로 문제를 크게 부풀려 반통일을 의식한 주장은 아닌가? 20년 전부터 이런 주장이 줄기찼는데 그 주장이 타당했다면 통일이후 독일은 벌써 국가 파산을 당했어야 맞다. 하지만 독일경제는 세계경제의 어려움에서도 제대로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편에 속한다.

세 번째, 한국사회 지식인들의 지행(知行)은?

지식인의 회의(懷疑)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낭설이나 풍문, 불편부당한 자기 입장의 고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의 문제란 줄곧 자기정직성을 결핍(缺乏)한 채로 자기 발언을 시도 때도 없이 뒤집는 것이다. 아울러 전체나 종합적인 시야도 없이 특정 부분만으로 사실을 파악했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에 더하여, 지행에서 행실이 어긋난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작년 8월 1일 <프레시안>에 "환경호르몬보다 더 해로운 지식인 사회"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바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지식인 사회 전반이 병들고 썩었다. 지식인 사회가 일으키는 '공해'는 이제 위험 수위를 넘었다. 이들은 흔히 환경 호르몬이라 불리는 '내분비 교란 물질'과 비교할 수 있다. 지식 사회는 내분비 장애와 교란으로 비틀거리고 쪼그라들어 지리멸렬 무너졌다. 지식의 정의(定義)는 없고, 지식의 오염만 있다. 이 오염은 공동체의 삶에 도움이 안 되는 '플라스틱 지식'이다. 이것에 근거한 '플라스틱 지식사회'는 우리 사회를 근간(根幹)부터 멍들게 한다. 플라스틱은 잘 썩지도 않을뿐더러 녹아서 각종 유해물질을 배출하고, 태울 때 인류가 만든 최악의 독극물로 알려진 다이옥신 등을 내뿜는다."고 칼럼에서 쓴바 있다.

네 번째, 20년 전 동독시민들은 왜, 분노했을까?

최근 독일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은 "과거 동독정권은 주민들 간에 감시와 밀고가 일상화였고 언론의 자유나 사법부의 독립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체제였기 때문에 마땅히 무너져야 옳았다"고 말했다. 또 "오늘 통일독일의 현실이 아무리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동독정권의 과거체제와 비교하는 인식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 총리의 이런 주장은 사실 특정 정파를 뛰어넘어 대다수 독일인들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들이다. 그는 이어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으로의 위엄조차 보장하지 않았던 동독정권을, 도대체 그 무엇으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고 말했다.

정보기관원 약 10만 명과 비밀 첩보원 2만 명을 거느린 동독 시대의 방대한 비밀경찰 조직 '슈타지'가 자국민을 사찰한 대상은 자그마치 6백만 명이 넘었다. 국가라고 하기에는 거대한 정신병동과 다름이 없었다. 당연히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저항하여 동독주민들은 1989년에 일제히 들고 일어날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기 이전부터 동독인들의 '평화적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고 89년 5월 7일 베를린 알렉산더광장에서 시작된 동독체제 반대집회는 직접행동의 절정이었다. 인간의 기본권을 되찾고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쟁취하며 보다 나은 삶의 가치를 확보하겠다는 동독시민들의 저항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후 오늘, 한국인들에게 시사(示唆)하는 바는

한국은 1950년 전쟁 이후 분단 59년이다. 그간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나. 숱한 죽음들, 가족의 생이별, 경쟁적인 군비경쟁으로 인한 엄청난 낭비와 소모, 적대와 증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고통과 질곡의 세월이다. 인간사회 공동체의 저 일반적 조건인 자유와 평등,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는 남북 공히 얼마나 요원하기만 한가. 또 남과 북간의 진정한 국가 공동체를 실현시키려는 통일에 대한 노력은 얼마나 진실하게 바쳐지고 있나.

독일통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동독 시민의 평화적 혁명을 통해서 성취되었고 그런 성취가 가능하도록 당시의 서독 정치인들은 지혜를 모았다. 독일통일을 우려하는 유럽 인근 국가들을 설득했고 동독경제를 일으키는데 독일 스스로의 경제력으로 감당했으며 심지어 유럽통합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한국인들이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진정 배워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독일인들은 어떻게 정치적 체제를 통합시키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들은 어떻게 사회적 경제적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리고 정신적 문화적 통합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는지 한국인들은 끈질기게 살펴봐야만 하지 않을까.

독일 통일 20주년이 되었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독일통일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고 그 이해가 너무나 불충분하다. 심지어 독일 통일 20년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독일통일과 같은 남북통일의 성공을 거두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너무나 부족하다. 과연 중국의 동북아 영향력을 간과하고 미국에만 일방으로 기울어진 외교안보 정책은 현실적이고 타당한 것일까. 그리고 동북아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우리의 외교력은 얼마나 일관되고 현실적이며 주도적인가.

장벽붕괴 20년의 현장, 베를린(Jahre Mauerfall 20 Berlin)

1989년 베를린 장벽붕괴 20년은 독일이란 국가의 단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분단 독일을 극복했고 동시에 분열중인 유럽통합의 단서가 되었고 세계냉전을 종식시켰다.

이런 세계사의 격변을 가져온 베를린 2009년의 현장은 지금 차분하게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응시하는 행사들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문화프로젝트 베를린'(Kulturprojekte Berlin)이란 회사가 있고 행사는 1년 동안 베를린 도시 전역에서 벌어진다.

www.mauerfall09.de www.berlin.de/mauer www.kulturprojekte-berlin.de

행사를 총지휘하는 '문화프로젝트베를린 유한회사'(Kulturprojekte Berlin GmbH)의 사장, 모리츠 반 뒬멘(Moritz van Dülmen 39)을 만나 행사전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내가 준비하고 있는 내년 2010년 독일통일기념 프로젝트 '독일통일 20년, 빛과 소리의 반향(反響)' (20 Jahre Wiedervereinigung, Reflexion von Licht und Sound, 2010 Deutschland Projekt des Künstlers Kim Sang Soo) '미디어 이동설치미술'을 개별사업으로 제안했다.

'프로젝트 베를린' 유한책임 회사(GmbH, Gesellschaft mit beschraenkter Haftung)는 베를린 주정부 산하의 비영리 기업으로 베를린의 예술과 문화발전을 위한 업무를 베를린 주와 시로부터 위임받아 총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회사다.

반 뒬멘과의 대화는 지난 8월 10일 오전 베를린 시내 그의 사무실에서 있었으며 베를린 시 홍보 담당관인 도레트 아우에르스발트(Dorett Auerswald)가 배석했고, 이 날 통역과 인터뷰 사진촬영은 독일 교포 2세로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기획자(Culture Manager) 펠릭스 박(Felix Park)이 도움을 주었으며, 통역녹음 문서번역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음악치료 학사과정에 재학 중인 임혜민씨가, 내 프로젝트 '움직이는 멀티미디어 설치미술, 독일통일 20년 빛과 소리' 그래픽 작업은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김민송씨가 수고해주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행사 총책임자 Moritz van Dülmen 모리츠 반 뒬멘과 대담중인 김상수Felix park

인권, 자유, 민주주의의 평화혁명
김상수 - 먼저, '문화프로젝트 베를린'이란 이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뒬멘 - '문화프로젝트 베를린'은 베를린 주 정부의 기업이다. 베를린 주정부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독립되어 있다. 기본적인 재정이나 지원은 주 정부에서 해주지만 주된 프로젝트는 여러 관계기관들과 협력단체, 그리고 스폰서를 통해 운영한다. 재원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연방정부, 베를린 주와 베를린 시, 기부되는 기업들의 기부금, 때로는 독일의 다른 주에서도 도움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김상수 - 이번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행사 이외에도 주로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뒬멘 - 우리는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를 분류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문화 사업을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또 베를린 주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 극장, 갤러리의 전시, 오케스트라 콘서트..... 우리는 여러 문화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그것들이 두 가지 혹은 더 여러 가지로 복합적으로 파생되고 나타날 수 있으며 발전시킬 수 있는 페스티벌의 성격을 가진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내부 구조적으로는 항상 자유로운 프로젝트를 지향한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끔 하고 시간적으로 제한된 계획들에 대해서 효율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매번 새롭게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한다기보다는 기왕의 경험들과 성과들을 배가시키는 것에 역점을 둔다. 우리 회사의 특징은 지금까지 우리 회사가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회사 내부를 계속 쇄신시키면서 주어진 과제들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에 있다. 문화는 자유를 지향한다. 따라서 우리의 회사 운영방식과 사업주제의 선택도 자유롭다. 우리는 문화의 발전에 지원과 열망을 아끼지 않으며 구조적인 안정성을 가지고 문화예술인들을 돕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다큐멘터리 전시김상수
베를린 알렉산드 플라자 광장 1989년 5월, 다큐멘터리 전시 사진 중에서김상수
김상수 - 나는 2005년에 일제강점시대로부터 한국의 광복 60년 행사에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어려움은 행사조직의 비전문성이었고 정치적인 간섭과 월권이었으며 체계적인 운영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사의 진정성과 투명성을 방해하는 비민주적인 정치꾼들의 개입이 노골적인 것에 나는 저항을 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사퇴를 했었다.

그 당시 행사를 기획했던 정부는 비록 민주정부였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광범위하고 진실한 노력들이 광복60년 행사의 준비처럼 너무나 소홀했다. 나는 당시에 이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반드시 앞날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 경고는 소용이 없었다. 민주주의를 되찾은 시민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권력에 도취한 자들에 의해 헛되게 굴러갔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지금 한국은 비정상적인 정권이 들어섰고 한국은 큰 어려움과 곤경에 빠져있다.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

뒬멘 - 우리 회사는 정치적 간섭이나 특별한 지침, 또는 가이드라인 같은 건 없다. 이번 장벽붕괴 20년도 '장벽 붕괴 20년'이란 타이틀만 주어졌다. 어떤 프로젝트를 제한된 자금으로 계획할 때는 때로는 어떤 한 부분을 중심으로 잡고 그것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경제적인 자금난으로 인한 하나의 업무로만 보진 않는다. 우리는 한 가지 주제를 찾고 그 안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며 또 어떤 부분에서는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2009년 알렉산드 플라자 광장 2009년 8월김상수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 2009년 8월김상수

김상수 -. '장벽 붕괴 20년' 행사 중에 중요한 행사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뒬멘 - 기본적으로 윤곽을 잡는데 세 가지의 테마를 정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은 독일민주공화국(DDR, 동독)에 관련한 것이었다. 우리는 분단의 역사나 베를린 장벽 자체에 대한 건 주제로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큰 전시프로젝트 하나를 야외에서 기획하고 있는데, 지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하고 있다. 1989년으로부터 20년 간, 그러니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후의 20년간의 움직임, 변화 등을 다큐멘터리 전시로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주제는 베를린 지역 안에서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20년 전과 현재의 베를린을 보여주고자 했다. 세 번째 주제는 장벽이 무너진 날인 11월 7일부터 9일까지 열릴 행사인데, 그 테마는 '자유'로 윤곽을 잡았다.

김상수 -. 행사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뒬멘 - 우리에게 행사의 목적과 의미는 정말 명확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단지 베를린이나 독일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든 유럽국가 더 나아서 세계적으로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베를린의 장벽 붕괴는 당시 이 세계의 전쟁을 야기시켰던 갈등이나 분쟁을 끝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장벽이 완전히 무너진 11월 9일은 역사적으로도 정말 중요하지만 정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본다.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었다. 이 주제는 끊임없이 환기되어 다시 전 세계의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우리는 20년 전의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 '도미노프로젝트'를 실현시키려고 한다. 하나의 도미노를 쓰러뜨리면 그것이 끝없이 이어지며 쓰러지게 되면서 새로운 '열린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 해방의 순간을 새롭게 경험하자는 것이다. 전부 1000개에 달하는 도미노 패널은 강화스티로폼 패널로 높이가 2,5M로 되어있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장벽 붕괴를 주제로 한 작품을 패널에 그리게 하고, 이렇게 모은 1000개의 패널이 11월 9일 장벽붕괴의 현장에서 넘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분단국인 한국에도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강제로 틀어막고 있는 벽이 존재하는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 베를린 장벽 전시 사진 중에서김상수
베를린 시내 곳곳에 설치된 이동식 장벽 붕괴 20년 기념 조망대 '파빌리온'김상수
김상수 - 아이디어가 재밌다. 청소년들을 많이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들었다.

뒬멘 - 이 행사에는 벌써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하고 있다. 도미노 패널에 페인트칠을 하고 자신의 감상을 적으면서 청소년들은 서로를 통해 그리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 패널들을 직접 만들게 되면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청소년들은 베를린장벽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주변을 통해 가족, 부모를 통해 그 이야기들을 전해 듣고 알고 있다. 이 도미노프로젝트는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포츠담광장과 국회의사당 사이에서부터 브란덴부르그 문을 향해서 설치가 된다. 1989년11월 9일, 그 날의 재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행사가 끝나고 나면 도미노들 중 어느 것들은 그것을 만들었던 학생들이 갖게 되고, 학교나 박물관에도 전시하게 되며 나머지는 재생해서 집을 짓는 데 사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 행사의 의의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사건과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한 것이며 그리고 화해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시그널로서 작용하게 된다. (<하>편은 11일 게재)

베를린에서

김상수/ 작가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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