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의 공정한 이용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의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한 토론회가 20일 국회 의원식당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장해 공정이용의 권리에는 관심이 없다'며 천영세 의원의 개정안을 환영하는 입장과 '이 개정안이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반대하는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천영세 의원안은 지난 12월 6일 발의돼 현재 국회 문광위 법안소위 상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의원안의 주요 내용은 △디지털 도서관을 통한 저작물 원격 열람과 관외 전송을 일부 허용하고 △공정이용 보장을 위해 저작권 제한의 포괄 조항을 신설하며 △저작권 적용이 제한되는 저작물 이용을 위해 기술적 보호조치를 해제할 의무를 두고 △온라인서비스 제공자가 권리침해를 방지하거나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 경우에는 책임이 면제되도록 했으며 △저작권 침해를 업으로 삼은 자에 한해서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천영세 의원 개정안은 내용은 △저작물 등을 복제ㆍ전송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온라인서비스 제공자는 해당 저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기술적 보호조치를 취해야 하고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문화관광부 장관이 게재된 해당 저작물을 삭제하거나 게재를 중단하도록 명할 수 있으며 △영리를 위해 반복적으로 저작물을 복제ㆍ전송하는 경우 저작권자의 요청 없이도 해당 복제ㆍ전송 행위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의 개정안과 크게 대비된다.
***"현 저작권법은 '문화발전법'이 아닌 '시장질서법'"**
천영세 의원은 토론회 인사말에서 이번 개정안의 취지를 저작권법의 목적 조항인 제1조를 들어 설명했다. 천의원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 조항을 들어 "저작권자와 그 인접권자의 권리가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서는 공정한 이용 또한 보장되어야 하는 데 공정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정보공유연대 IPLeft' 남희섭 대표는 "이번 천영세 의원의 발의를 지지한다"며 "현 저작권법은 독점에 준하는 수준으로 저작권을 보장해 이용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 이전까지는 주로 외국의 직접적인 압력이나 조약을 통한 간접적인 강제로 인해 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2000년 이후에는 문화 논리가 산업 논리에 압도되면서 권리보호의 최대주의를 달성하려는 일련의 법개정이 이루어졌다"며 "저작권자의 권리는 지속적으로 강화된 반면, 저작물의 공정이용 또는 이용자의 권리에 대한 검토는 제대로 이뤄어지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희섭 대표는 "이는 저작권과 관련된 정책 논의가 권리자를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협상에 의해 주로 해결되어 일반 공중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저작권 제도가 문화의 발전을 위한 법률이라기 보다는 정보재산권을 둘러싼 시장질서법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천영세 의원의 개정안 중 '기술적 보호조치의 해제'를 규정하고 있는 제33조 제3항을 지적하며 "기술적 보호조치는 저작권이 제한되는 경우에도 저작물에 보호장치가 부가되어 모든 저작물이 저작자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어 공익과 사익 사이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며 "이용자가 콘텐츠 제공자에게 기술적 보호조치를 해제하라는 요청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대학도서관 디지털 복제전송 공동대책위원회' 김성중 위원장은 △원문 데이터베이스의 전송 범위를 도서관으로 한정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접근하여 자료를 이용할 있도록 확대하고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는 보상금 제도를 이용하되, 도서관이 아닌 저작권 단체나 국가가 직접 징수하는 방법을 강구하며 △대학에서 생산되는 학위논문은 특수성을 인정하여 대학내에서의 이용은 자유롭게 할 것을 주장했다.
***"저작권과 이용권은 내가 가지고 있는 두가지 권리일 뿐"**
이어진 토론에서는 이들의 발제와 천영세 의원의 개정안에 대한 입장이 각 토론자마다 날카롭게 갈렸다.
토론자로 나선 '함께하는 시민행동'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천영세 의원의 개정안에 대부분 동의하나, 포털업체의 면책 조항을 넓히는 77조에는 반대한다"며 "포털업체의 경우 뉴스 제공이나 다양한 정보서비스 제공 등으로 사실상 권력을 가지고 있는 데 면책조항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은 권한에 맞는 책임을 회피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 국장은 "저작권법의 두 가지 이슈인 저작물의 경제적 가치와 공정이용은 배타적인 타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권리에 대한 이야기"라며 "저작권법을 보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이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이렇게 시장이 커지면서 생겨난 정보 유통망의 문제와 정보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산업 당사자들의 문제가 저작권자와 소비자,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만 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인환 인하대 법학과 교수는 "천의원의 개정안은 적절한 내용이며 지지한다"면서도 "디지털 도서관에서의 이용이 허용된다면 도서관에서 아날로그 복제가 허용되는 범주라는 한계를 둔다해도 저작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존 저작권법에서의 복제 관련 조항이 악법이지는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박 교수는 공정이용 보장을 위해 저작권 제한의 포괄조항을 신설한다는 조항에 대해 "이러한 일반조항은 베른협약 등이 국제협약에 위배될 소지가 있으며, 한편으로는 이 조항으로 인해 이용자 보호와 관련한 법률관계가 오히려 모호해지는 단점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을 블로거로 소개한 김정희원 씨는 "기존의 저작권법에서 이용자의 위치는 '잠재적 범법자' 수준이었다"며 "인터넷 이용자들은 단순히 소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능동적인 생산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측면에서 천영세 의원의 발의안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아무도 '저작'하지 않을 것"**
한편 천영세 의원의 발의안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히 많았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부회장'인 권대우 한양대 법학과 교수는 "천영세 의원은 현 저작권법이 저작권자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고 평가하나 나는 다르게 본다"며 "저작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저작물 산출이나 공개에 소극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정한 이용이란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해 영리를 얻는 사람은 자신이 이용하는 저작물에 대해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뜻한다"며 "쌀을 구매할 때 어느 누구도 공짜로 가져가겠다고 하지 않는 것 과 같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우리나라가 스스로의 저작권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면 다른 나라 역시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제자 남희섭 대표는 권교수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하는 것은 쌀을 구매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며 "저작권은 혼자 소유하는 권리가 아니라 그의 저작권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최경수 연구실장 또한 천영세 의원의 개정안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디지털 도서관의 자료를 모든 국민이 볼 수 있게 한다면 시장에 나와있는 책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출판시장은 모두 문을 닫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 시각장애인 동호회 대표 윤성태 씨가 방청객으로 참석,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저작권법 30조는 시각장애인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녹음이나 점자책의 형식으로 배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요즘은 컴퓨터로 공부하는 사람이 대다수라 이러한 책을 다시 텍스트 파일로 변환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며 "학습을 위한 책은 녹음이나 기록의 방식 외에 텍스트 파일로 바꿀 수 있는 방식에 관한 조항이 추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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