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이엠 [컬랩스 인투 나우]
추앙받는 모든 뮤지션이 그러하듯, R.E.M.의 신보 [컬랩스 인투 나우(Collapse Into Now)]는 과거 이들이 만들어온 음악, 즉 쟁글거리는 기타와 쾌감을 안겨주는 코러스, 아메리칸 록의 소박함을 간직한 팝송이 어우러져 있다.
▲R.E.M. [Collapse Into Now] ⓒ워너뮤직 제공 |
그런데, 모든 나이든 음악인이 만든 앨범이 환영받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안정적 레코딩은 기껏해야 '(돈을 벌기 위한) 투어용 음반'으로 취급당하거나 '안이함'의 테두리에 갇히기 마련이다.
R.E.M.의 신보가 이런 의혹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는 역설적으로 전작들이 제공해줬다. 이들은 [New Adventures In Hi-Fi] 이후 지속적으로 흔들렸고, 그 와중에도 대형 록스타의 모습과는 맞지 않는 초기 사운드의 정갈함을 유지해 갔다. 그리고 [Collapse Into Now]에 이르러 이들은 침울했던 [어라운드 더 선(Around The Sun)], 지나치게 의욕이 넘쳤던 [Accelerate]에서 보였던 부족함을 말끔히 극복하고, 지나온 30여년을 곧바로 응시한다.
소박했던 I.R.S. 시절은 아니지만, [그린(Green)]의 자신감을 소환하는 첫 곡 <디스커버(Discover)>는 이들이 제 자리로 돌아왔음을 상징한다. 마이클 스타이프는 "도전은 아니"지만 "내가 한 것이라고 언제나 말했듯" 이 앨범은 R.E.M.의 것이라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선언한다.
[오토매틱 포 더 피플(Automatic For The People)]의 <드라이브(Drive)>를 곧바로 떠올리게 만드는 [유버린(Uberlin)]은 앨범에서 가장 먼저 귀를 잡아채는 곡으로, 어두움과 밝음 사이에서 기막히게 줄타기한다. 곧바로 이어지는 [오 마이 하트(Oh My Heart)] 역시 'R.E.M.식' 발라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곡으로, 진이 빠지는(심심한) 곡 전개를 피터 벅 특유의 기타가 살려낸다.
전작에 비해 가장 개선된 부분은 마이클 스타이프의 보컬이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던 그의 목소리는 다시금 자유로이 고저를 오가며, 특유의 공명을 일으킨다. 밴드 초기 팬들이 이들의 소박한 사운드 안에서도 감정의 요동을 느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이들의 정치적 행동이나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만이 아니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며, 이는 이번 앨범에서 개선된 가장 큰 미덕이다.
에디 베더, 패티 스미스, 피치스 등 화려한 손님들이 앨범에 함께 참여했으나, '당연하게도' 이 앨범은 온전히 R.E.M.이 주도하고 있다. 에디 베더는 <잇 해픈드 투데이(It Happened Today)>에서 절제된 코러스로 곡 말미의 감동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 했고, 패티 스미스 역시 '[New Adventures In Hi-Fi]를 되새기게 하는' <블루(Blue)>에서 놀라운 존재감을 보여준다.
앞서 거론된 모든 이야기는 결국, 되짚어보면 이들의 신보는 과거를 파먹는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팬들이 이들에게 원한 건 바로 과거의 소환해주는 것이었고, [Collapse Into Now]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딱 예상했던 수준에서'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앨범이다.
▲ ⓒ워너뮤직 제공 |
라디오헤드 [더 킹 어브 림스]
라디오헤드는 97년의 환상적인 디스토피아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에서 (적잖은 팬들이 절정의 끝이라 생각했던) 음악적 도약을 시작해, 2007년작 [인 레인보우즈(In Rainbows)]에서 끝에 이르렀다.
이 기간 밴드는 전자음악의 다양한 하위장르를 적극 받아들여 '록밴드의 편성 안에서' 기막히게 통제했고, 이는 평론가들을 완벽히 무릎꿇렸다.
4년 만에 나온 [더 킹 어브 림스(The King Of Limbs)]는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황금비율을 이뤘던 [In Rainbows]의 뒤를 잇는다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던 앨범이다.
▲라디오헤드 [The King Of Limbs] ⓒ라디오헤드 |
앨범을 관통하는 분위기를 한 단어로 꼽자면 몽롱함이다. 대부분 곡들이 미니멀한 드러밍과 신시사이저에 기대고 있고, 톰 요크의 목소리는 그저 의미 없이 부유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보컬이 들어간 앰비언트로 설명가능한 앨범이며,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가 데뷔앨범에서 전자음을 통제하며 보여준 기막힌 소울과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다.
퍽퍽하고 신경질적인 드럼 루프와 반복되는 효과음-비록 곡 중간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풀어지는 순간도 있지만-이 신경을 거스르는 <블룸(Bloom)>은 톰 요크의 느슨한 보컬과 뚜렷이 대조되는 몽환적인 코러스가 인상적인 곡이다.
한걸음 더 나아간 <모닝 미스터 맥파이(Morning Mr. Magpie)>에서 필 셀웨이의 드러밍은 마치 베리얼(Burial)을 연상케 할 정도의 덥스텝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리듬의 단절을 이어가는 <리틀 바이 리틀(Little By Little)>은 퍼커션 소리가 리듬의 근원을 이룸에도, 황폐함 이상을 보여주지 않을 정도다. 조니 그린우드와 에드 오브라이언의 기타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이들의 멜로디는 곡을 주도하는 리듬을 넘어서는 잔향을 남기지 못한다.
아마도 이들의 소박했던 초기작은 물론이고, [In Rainbows]에서 두드러진 전자음을 타고 이어지는 감정전이를 사랑했던 팬들은 이 앨범에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한편으로 줄곧 과잉됐던 이들의 '5분짜리 드라마의 향연'이 이제서야 전자음악과 확실히 조우한 결과물이다. 앞서 거론된 모든 곡들은 역시 함께 거론된 전자음악인들의 시도에 한발 더 다가간 음악인의 작품이다. 과잉된 자의식을 전자음의 착취로 표출하던 록스타의 세계를 넘는, 몽롱한 꿈과 현실의 경계가 이들이 낸 어느 음반보다 더 추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페럴(Feral)>에서 꿈틀대는 힙합비트는 마디마다 찌르는 (보컬을 포함한) 효과음으로 인해 절정으로 치달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답답하게 끝나며, 이는 때로 단조로움을 주기도 하는 기존의 전자음악을 넘어서는 결과다. 앨범에서 가장 포크에 가까운 <기브 업 더 고스트(Give Up The Ghost)>는 포 텟(Four Tet)의 영향력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곡이다(라디오헤드는 [In Rainbows]에서 이미 포 텟의 도움을 받은 적 있다).
[키드 에이(Kid A)]와 근거리에 위치한 <코덱스(Codex)>는 톰 요크의 피아노가 빛을 발하며, 치밀하게 조율된 리듬에 톰 요크의 미니멀한 보컬을 얹어놓은 첫 싱글 <로터스 플라워(Lotus Flower)>는 앨범의 한가운데서 리듬이 강조되는 전반부의 곡과 상대적으로 과거에 가까운 후반부 곡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The King Of Limbs]에 비판이 쏟아지는 원인은 이 앨범이 '록밴드로 인식되던' 라디오헤드의 것이기 때문이지, 앨범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다. 뷔욕이 그러했듯, 이들은 이제 장르의 희미하던 경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정서의 변화를 자유로운 2진법의 세계에 풀어놓았다. (마치 비틀스가 스튜디오에 틀어박혔던 때처럼) 앞으로 밴드로서 라디오헤드의 미래를 걱정할 수 있겠지만, 기존과 다른 출발선에서 한 걸음을 내딛은 이 밴드의 새로운 시작에 벌써부터 그런 우려를 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들은 내키기만 한다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헤비메탈을 연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