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사명감에 아이들을 때렸고, 그런 악역을 즐겼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사명감에 아이들을 때렸고, 그런 악역을 즐겼다"

[현장] '경기도학생인권조례' 공청회…어느 학생부 교사의 고백

어느 학생부 교사의 고백

학생부 교사인 나는 행복하지 않다. 다른 학생부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5년차 이전까지 나 역시 학교 통제의 최선봉에 섰다. 옷을 거의 발레복과 무용복 수준으로 줄여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짜증났다. 학교에서 오라고 하는 시간보다 늘 늦게 오는 아이들이 지겨웠다. 고3임에도 야간 자율 학습과 보충 수업을 빼달라는 아이들이 싫었다. 나의 대답은 "너 하나가 우리 반 전체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봐주고 싶지만 안 될 것 같다"

수업 때 '감히' 엎드려 자는 아이들은 나에게 적이었다. 그들에게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매가 가해졌다. 내 수업 시간에 졸거나 엎드려 있는 아이들은 없었다. 떠드는 아이들도 없었다. 단, 수업은 재미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어느 순간 아이들과 멀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고3 담임을 하면서 비교적 학급 통제를 잘 하는 담임이 되었지만, 이후 나를 찾아오는 제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 학교 방침만을 강요하는 내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는 사명감에 불타 아이들을 때렸다. 적어도 학년에서 악역을 맡은 교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학교가 돌아간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그런 악역을 즐겼다. 하지만 점차 그런 역할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를 만나고, 체벌에 마음을 다친 학생들을 만나며 상당히 혼란을 느끼게 됐다. 과연 체벌이 올바른 것인가. 교사 모임에 참여하면서 체벌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아이들의 인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체벌을 내려놓고 학생 인권을 인식한 이후, 나는 교사로서 거듭나게 되었다. 체벌이 없자 아이들이 다소 졸고 떠드는 경향이 있어 목이 빨리 쉬게 됐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생 인권의 관점에서 학교를 다시 바라봤을 때 나는 갈등하기 시작했으며, 학교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고민 없이 살던 5년차 이전 시절이 더 행복했던 것 같다.


▲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가 25일 경기도교육청 제2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프레시안

"체벌 빈번한 이유는 시스템 부족 때문"

경기도 의정부 경기도교육청 제2청사에서 열린 '경기도학생인권조례' 마지막 종합 공청회가 25일 열렸다. 현직 교사들은 이날 직접 패널로 참여, 교사들이 청소년의 인권을 왜 무시하는지, 인권 보호를 위해 왜 조례가 필요한지 등을 설명했다. '어느 학생부 교사의 고백'은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현직 교사가 자신의 사례를 언급한 것 중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현직 교사이자 '좋은교사운동본부' 정책위원인 김성천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체벌이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는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사는 "교사들이 체벌을 포기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데, 체벌까지 가하지 않는다면 학교가 아예 무너지게 될 거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학교에서 체벌 말고 다른 방식의 징계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대학교의 경우, 지각을 했다고 해서 때리거나 벌을 세우진 않지만, 본인의 학점에 손해가 가해진다. 일정한 성취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재수강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선 중·고교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김성천 교사는 "무조건 징계만이 아닌 교육과 상담 지원 절차가 함께 가동되어 최종적으로는 일관되면서도 강력한 징계 절차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을 교사들은 약속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천 교사는 "학교 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 나름 매뉴얼이 제시돼 있듯이, 학교에서도 그런 절차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시스템의 부재는 교사로 하여금 체벌에 집착하게 만들며, 학생들에게는 몇 대 맞고 몸으로 때우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천 교사는 이번에 경기도교육청에서 준비하는 인권조례가 이러한 시스템을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인권조례가 통과된다고 해서 현 학교의 문화가 바뀌거나 당장 시스템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학교에서 인권을 고민하고, 새로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효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심우근 교사도 동의했다. 심 교사는 " 매일 교문을 지나가는 아이들과 마주보며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왜 교육적이지도 않은 잡다한 규정을 가지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눈을 부라리며 이른 아침부터 맞서야 하는가'이다"라고 밝혔다.

"아침에 만나 즐겁게 안부를 묻는 거 대신 교사는 학생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뭘 어겼는지 관찰하느라 바쁘다. 학생은 뭔가 구린데가 있는 듯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게걸음으로 오금을 저리며 피해가느라 정신이 없다. 학교가 왜 쓸데없는 수많은 규정들을 애지중지하며 학생들에게 강요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심우근 교사는 이러한 규칙으로 인해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쓸데없는 소모전과 맞서기가 빚어지고 있다"며 "학생들 마음속으로 전혀 수긍하지 못하는 규정을 대폭 정리하기 위해 조례가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패널로 참여한 송병춘 변호사가 발제문을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

"인권조례는 가둬 놓은 아이들 그냥 풀어주는 일"

조례 제정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김동진 청평공업고 교사는 "인권조례로 인해 자칫 대부분 교사가 학생들에게 차별을 하고, 체벌을 가하는 것처럼 오해를 받을까 걱정된다"며 "이로 인해 앞으로 교사들이 학생을 지도하는데 있어 교사의 권위가 실추되고 교사의 교육 활동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동진 교사는 "학생의 일탈 행동에 법적인 측면에서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 되어야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정당하게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고 밝혔다. 자유를 주장하기 전에 책임부터 먼저 이행하라는 주장이다.

김동진 교사는 "인권조례가 생길 경우 교사들은 앞으로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과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며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조례는 가둬 놓았던 아이들을 그냥 풀어놓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최소한 어디로 가라고 방향이라도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인권조례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청중으로 참여한 박경란 벽제중학교 교사도 "학급수가 40명이 넘어가는 현실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챙기기는 불가능하다"며 "학급당 20명 이하일 때만 인권조례가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경란 교사는 "인권조례가 제정되면 아이들은 이걸 무기로 삼아 교사들을 공격할 것"이라며 "자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학생에게 인권조례를 적용하기는 무리"라고 언급했다. 박경란 교사는 "정 조례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전체 교사의 의견을 수집해야 한다"며 "거기서 과반수의 동의가 이뤄질 때 조례가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경란 교사는 "제도는 법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며 "환경이 제대로 마련된 뒤 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주의는 20살이 됐다고 갑자기 실현되는 게 아니다"

심우근 교사는 "학생은 동등한 인격체"라며 이러한 주장에 반박했다. 그는 "학생을 어떻게 볼 것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의 학교 구조는 학생을 인격체로 대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심우근 교사는 "현실적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억압받는 학생 다수를 방치하고 이대로 가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현재 학생들은 강력한 통제로 인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런 것을 바꿔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20살이 됐다고 갑자기 실현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미리 준비시켜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중으로 참여한 학생들도 거들었다. 의정부에 위치한 효자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광진 군은 "통제하기 보단 자유를 주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의식을 길러 달라"며 "그 과정을 통해 세상과,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원에 위치한 매원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김도연 양은 "학교는 현실 사회를 더 밝은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의 첫 번째가 인권조례"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갖는 자유권을 이렇게 조례로 제정해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하지만 학생이 약자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한편, 3차례 진행된 공청회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내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자문위원회 검토 후, 내부의 소정 절차를 걸쳐, 자문위원 안으로 도의회에 제출 될 예정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