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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용산 참사를 봤다면…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공자가 본 한국 : <춘추>가 칭송한 반역 행위

<춘추>가 칭송한 반역 행위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자기 입장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내게 맞서면서까지 자기 입장을 지켜야 한다고. 후세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한 마디였다.

"인간성의 기본 원리에 관련된 문제를 놓고는 너희 스승에게라도 굽혀서는 안 된다." (논어 권15 子曰 當仁 不讓於師)

임금의 명령을 명백히 어기고 이적 행위를 저지른 한 장군을 <춘추>의 필자가 왜 칭송했는지 동중서가 질문 받은 일이 있다. <춘추>는 유가 전통에서 확고한 도덕적 권위를 가진 경전이었다. 이런 책에서 어떻게 임금의 권위를 참월한 행위를 칭송할 수 있는가?

문제의 사건은 춘추시대 역사 속에 잘 알려진 것이다. 초나라 왕이 포위하고 있는 지역의 정보를 수집해 오라고 장군 자반을 송나라 도성에 보냈다. 자기 쪽에도 군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송나라 쪽에 얼마나 버틸 힘이 남아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반이 송나라에 가 보니 참혹한 상황이었다. 극도의 기아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끼리 자식을 서로 바꿔서 잡아먹는 지경이었다. 충격을 받은 자반은 그들을 구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왕에게 돌아온 자반은 자기가 적군에게 초나라 군량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줬다고 보고했다. 왕은 포위를 풀고 군대를 철수시킬 수밖에 없었다.

초나라 왕이 자반을 처벌하지 않은 것은 자반이 쓸모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적을 도와준 인물을 역사가가 칭송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질문에 동중서는 대답했다.

"극도의 참상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어진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을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성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예법이 정한 바를 얼마간 제쳐놔도 된다고 동중서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인(仁)을 숭상하는 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어질게 대하려 한다. 어진 사람은 자연스러운 감정에 따른다. 자반이 송나라 사람들을 어질게 대한 것은 자기 마음의 끌림에 따른 것일 뿐이며, 따라서 남들이 자기 행동을 일종의 반역으로 여길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자반에 대한 옹호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중서는 공자를 인용했다.

"인간성의 기본 원리에 관련된 문제를 놓고는 누구에게도 굽혀서는 안 된다."

공자의 이 한 마디가 어떤 위험을 품고 있는 것이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특히 맥락에서 벗어나 단편적으로 인용될 때, 사람의 마음이 최고의 도덕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공자의 뜻도 아니고 동중서의 뜻도 아니다.

동중서의 마음에는 체제를 부정하는 뜻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자반처럼 송나라 사람들의 참상을 분명히 알면서 임금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불쌍한 사람들을 더 괴로운 지경으로 몰아넣도록 군대를 움직여서야 되겠는가? 그런 사람은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공자는 마음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도덕적 문제에 감정이 개재되는 것을 그가 조심스러워 한 것은 감정이 판단력과 성찰력에 맞서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제자 자장에게 이렇게 말한 것도 그 까닭이었다.

"살을 파고드는 비방과 마음을 찌르는 저주에 곧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면 가히 밝은 분별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논어 권12 子曰 浸潤之讒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제자들이 감정의 충격 앞에서 지킬 수 있기를 공자가 바란 것이 분별력이었다. 훌륭한 제자라면 스승이 자신과 다른 관점을 내놓을 때 스스로의 명징한 판단에 의거해서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스승이라면 제자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인정하고 제자가 자기 길 가기를 바라야 할 것이었다. 이 모순을 공자는 수긍했다.

- 안핑 친(Annping Chin)의 <공자 평전(The Authentic Confucius)>(돌베개 근간) 중에서.

인간은 사회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어느 사회에나 나름대로의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의 사회는 다른 동물들의 사회보다 훨씬 복잡하다. 문명 때문이다.

개미와 벌처럼 사회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을 보면 그 질서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개체들의 본능 차원에서 대충 운용되는 이 질서를 '자연적 질서'라 할 수 있다. 질서를 구성하는 가치들 사이에 심한 갈등이나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가치 선택의 압박 속에 살아간다. 포유류 동물의 경우 곤충류보다는 깊은 갈등을 많이 보이지만, 인간의 갈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문명이 발달하고 인구가 조밀해지면서 생긴 문제다. 문명 발전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간은 본능대로만 살 수 없게 되었다. 다들 본능대로 살다가는 사회가 견뎌낼 수 없게 되었으니까. 본능을 억제하는 '인위적 질서'가 계속 개발되었고, 그것이 윤리와 도덕, 종교와 제도 등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인간 사회의 질서 구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파악이 되는 구조였다. 중국 문명권의 경우 내부의 화하(華夏)와 외부의 오랑캐를 갈라 질서의 옹호자와 도전자를 구분하고, 사회 상층부의 군자와 하층부의 소인을 갈라 질서의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세계관이 공자 이전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6세기 후반, 공자의 시대에는 이런 단순한 세계관으로는 사회의 유지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그 500년 전에 만들어진 봉건체제가 힘을 잃고 있었다. 난신적자(亂臣賊子)라 불린 부도덕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은 어찌 보면 하나의 표면적 현상일 뿐이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는 기존 질서의 옹호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2500년간 그를 추앙해 온 사람들 중에는 (비판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단순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질서 옹호는 맹목적인 집착이 아니라 질서의 발전과 진화를 위한 노력이었고, 위대한 사상가로서 그 면모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위에 인용된 내용이 이 면모의 일단을 보여준다.

스승한테도 대들라고 했다!

"군사부 일체" 사상의 상징인 공자의 말씀이다. 물론 아무 때나 멋대로 대들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성의 기본 원리"(仁)가 걸려 있을 때의 얘기다.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첫째, 이 원리가 워낙 중요한 것이니, 이 원리를 받들기 위해서는 군사부고 뭐고 어떤 다른 질서의 원리도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 원리에 대해서는 내가 아무리 성심껏 설명해 줘도 완벽한 설명이 될 수 없으니 이 원리에 대한 더 좋은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 설명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초나라 자반의 군기 누설은 전투 중의 명령 불복종을 넘어서는 이적 행위였다. 아마 오늘의 어느 문명국이라 해도 이런 행위는 즉결 처분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 왕이 용서했을 뿐 아니라 "엄정한 기록"의 대명사인 <춘추>의 필자들까지 그 행위를 칭송했다.

전쟁 규모가 커지고 양상이 참혹해진 것은 춘추시대 질서 붕괴의 한 중요한 양상이었다. 질서의 뼈대가 튼튼할 때는 전쟁의 목적이 상대방으로부터 특정한 양보를 받아내는 것뿐이었다. 계절존망(繼絶存亡)의 원칙을 어기고 어느 나라라도 통째로 망하게 하는 것은 천하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죄악이었다. 공자의 시대에는 이 원칙이 무너져 전쟁이 싹쓸이 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공자보다 약 100년 전의 사람 자반은 인민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방식의 전쟁 수행을 거부했다. 인간이 인간을 아껴야 한다는 자연적 질서를 위해 장군이 임금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인위적 질서를 버린 것이다. 그의 갈등과 결단은 <춘추>의 필자와 동중서의 이해를 얻었다.

공자는 천하에 질서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질서라면 사람들은 대개 단순하고 명쾌한 상태를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를 깊이 공부한 공자는 인간 세상이 단순명쾌하게 조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그는 현상을 명쾌하게 재단하기보다 원리를 뚜렷이 세움으로써 최대한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조건을 만들려고 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중시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공자의 가르침은 3강5륜(三綱五倫)으로 대표된다. 사회 질서의 핵심 요소를 명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리를 3강5륜의 위에 놓았다. 아니, 그 밑에 깔아놓았다. '인'(仁)이다. 이것을 논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이것을 위하여 임금의 명령을 등진 초나라 장군을 칭송했다. (공자 자신이 자반을 언급한 기록은 없지만 동중서의 발언을 공자의 입장이 연장된 것으로 본다.)

이 글에서는 '인'을 "인간성의 기본 원리"라고 옮겨 놓았지만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 공자 자신도 이것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인'을 논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구애받지 말라고 했다. 공자는 손가락을 내밀었지만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의 모습은 명확하지 못하다.

그러나 가리키는 그쪽에 뭔가가 있음을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인위적 질서 이전부터 존재하던 인간의 존재 원리. 인간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질서 밑바닥에서 이 원리가 작동할 때, 사람들이 그 원리의 존재를 의식할 때, 모든 사회 질서가 더 잘 운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연적 원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일체의 인위적 질서를 묵살하기에는 인간 사회가 너무 복잡해져 있다. 공자가 제창한 윤리 체계는 인위적 질서의 상부 구조와 자연적 질서의 하부 구조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상부와 하부, 어느 쪽에 휩쓸리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지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질서 운용의 길이다. 하부 구조를 지켜주는 것이 '어진 마음'(仁)이고 상부 구조를 지켜주는 것이 '분별력'(明)이다.

공자의 가르침이 통용된 사회들이 근세에 이르기까지 다른 지역보다 조밀한 인구를 가지고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질서를 지켜 온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하드웨어 차원보다 소프트웨어 차원의 도덕관이 더 응용 범위가 넓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 "용산 사태를 비롯한 근년 공권력의 남용을 보며 이 사회에 어진 마음이 모자라고 인간성의 기본 원리가 무시되는 사실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검찰이라 하더라도, 인간성에 대한 조그만 개념이라도 있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는지." ⓒ프레시안

서양 문명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뒤에야 '인간성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개념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체계의 일부로 편입된 이 개념은 문명의 비인간화 문제의 존재를 겨우 표시만 한 것일 뿐, 현실적 효용성이 미미한 수준이다. 인간성의 원리가 어렴풋하게라도 하나의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던 유교 사회에 비해 서양의 인도주의는 아직도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준다.

용산 사태를 비롯한 근년 공권력의 남용을 보며 이 사회에 어진 마음이 모자라고 인간성의 기본 원리가 무시되는 사실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검찰이라 하더라도, 인간성에 대한 조그만 개념이라도 있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는지. '인'의 전통도 흐려지고 서양의 인도주의도 들어오지 못한 인간성의 사각지대가 되어가는 것일까.

입만 떼면 거짓말을 일삼으며 사람들을 사사로운 이익으로만 몰고 가는 '난신적자'들이 있기는 있다.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난신적자들을 척결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겠지만, 더 큰 과제는 사회 전반의 도덕성 회복이다. 사회의 도덕성이 허약하기 때문에 난신적자들이 판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사회의 도덕성 회복이 "정의 사회 구현"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것을 쫓아다니며 바로잡기보다 좋은 것이 잘 자라나고 잘못된 것이 저절로 시드는 풍토를 이루기 위해 소프트웨어 차원의 도덕관이 필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하던 "사람 사는 세상", 우활한 것 같으면서도 이 사회의 절실한 필요를 짚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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