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지난번 등록금 인하 요구 기자회견 때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이 마무리될 즈음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회장을 그렇게 낚아채더니 오늘(3일)도 그랬다. 기자회견이 막바지에 이르러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순서에서 경찰은 군중을 기자회견 대오와 분리시켰다.
곧 경찰은 지휘관이 '얘, 잡아, 쟤, 잡아' 하고 손가락질하는 방향에 따라 시민단체 활동가를 연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10명이 연행되었다. 광화문광장 개방 이후 첫 번째 기자회견이고 첫 번째 연행이었다.
'용도'가 지정돼 있는 광장은 없다
지난 8월 1일 개방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늘 오전 기자회견이 있었다. 오늘 기자회견은 문화연대, 참여연대, 야4당등이 공동 주최했고 20명이 참가했다. 기자회견의 요지는 광장 사용 허가를 서울시와 경찰청 등에 이중 삼중으로 받게끔 조례를 만들어놓아 기자회견이나 집회등을 아예 원천 봉쇄한 광화문광장 조례안을 폐지하라는 것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광장은 광장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광장을 볼 때, 광장의 의미는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지 광화문광장처럼 전시·홍보로 그 용도를 특별히 지정하지는 않는다.
기자회견 도중 '미신고 불법 집회'라며 수차례 종로경찰서 관계자 경고 방송이 이어졌고 사방에서 기자회견 대오의 포위망이 점차 좁혀왔지만 솔직히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 그 누구도 경찰 연행을 염려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관행이 경찰 경고 방송 후에도 대부분 기자회견을 무사히 마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 도중 경찰 연행으로부터 기자회견 대오를 보호하려던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과 기자회견문을 읽던 참여연대 박원석 사무처장이 제대로 낭독을 끝을 맺지 못하고 강제 연행되었다.
최근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 연행이나 정진후 위원장 연행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것처럼 오늘도 같은 상황이었다. 역부족이었고 폭력적이었다. 이미 민주당 관계자와 진보넷 활동가, 뒷자리에 있던 참여연대 5~6명의 활동가들이 잇따라 연행된 후였다. 다행히 횡단보도 너머에 경찰버스가 있어 완전 봉쇄가 불가능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거기 모인 전원이 연행될 뻔했다.여성 활동가들은 뭔 사정인지 제외되었고 오락가락하는 판단 때문인지 위협은 순간순간 느낌을 달리했다.
서울 도로의 심장부인 세종로는 시청 앞과 청와대를 연결하는 권위주의적인 거리였다. 그동안 세종로를 지나는 시민은 단지 버스나 택시의 승객이 되어 지나갈 뿐이었다. 이제 군데군데 신호등을 설치하고 보행자를 우선시하며 사람이 거닐 수 있는 도심의 광장으로 변화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이다. 기존 세종로 길은 시청 앞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집회의 발걸음이 차단되는 곳이다. 지난해 어느 날인가는 명박산성이 쌓인 곳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시민들은 소통을 원했던 상징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 기자회견 도중 경찰 연행으로 부터 기자회견 대오를 보호하려던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과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던 참여연대 박원석 사무처장도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고 강제 연행되었다. ⓒ뉴시스 |
광장 조성, 시민의 참여는 없었다
세종로가 명박산성으로 불통의 상징이 돼 이름을 알린 후 광화문광장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지난 1년간 지속된 광장 조성 공사에 우리 주변의 어떤 누구도 광화문광장이 그렇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아는 시민은 없었다. 지난 1년 3개월 동안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가 없었다는 말이다. 태생이 광장의 의미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 기자회견을 위해 막상 도착해보니 여름 휴가철이어서 많은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바닥은 아스팔트와 시멘트에서 좀더 '럭셔리'한 화강암으로 바뀌었을 뿐 예전 여의도광장처럼 삭막했다. 광장을 짓는 데 시민 세금 400억 원 이상이 들었지만 막상 꾸며진 내용을 보니 쌩뚱한 느낌이 없지 않았고 세종로 중앙의 은행나무가 그리울 지경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세종로가 권위적이고 일방통행적인 규제의 이미지였다면 앞으로 광화문광장은 잠재력을 바탕으로 다양함과 소통이 주를 이루어야 한다. 지난 1년여 공사 가림막 사이를 궁금해하고 교통 불편을 겪으면서도 내심 다양하고 나무가 우거진 포근한 도심 공간을 원했던것이 사실이다. 녹지는 시민 삶에 그만큼 소중했던 것인데 생뚱맞게 화단의 꽃이 서울이 수도로 지정된 224만537일에 맞춰져 있다는 것, 좌우 양측면의 365미터짜리 역사물길에는 주요한 역사적 사실이 나열돼 있다는 것, 저기 이순신장군 상 주변에 있는 136개 분수가 12척의 배와 23전승을 상징한다는 어지럽고 복잡한 서사만 남발될뿐 광장에서 시민이 어떻게 민주적으로 소통할지 그 용도는 실종된 것이다. 일황 생일날과 같다는 1223개 분수가 만발해 물을 뿜어냈지만 청계광장보다 빈약하다는 혹평도 뒤따랐다.
햇빛을 피해 앉아 쉴 벤치도 없었다. 그래도 수십만 명이 이 광장을 보겠다며 시내 나들이를 나온 것을 보면 광장의 의미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소통이 의도적으로 실종된 광장에서는 앞으로 전시등 홍보성 행사가 주를 이룰 터였다. 서울시는 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개별 광장조례의 내용에 대해 어떤 심의 권한도 없이 그저 서울시의 결정 사항을 사후 승인해주고 서울시를 대신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도록 만들어진 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아직 위원의 면면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쁘게 보면 여론 호도용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 전 세계의 광장을 볼 때, 광장의 의미는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지 광화문광장처럼 전시, 홍보로 그 용도를 특별히 지정하지는 않는다. ⓒ프레시안 |
시민이 늘 '구경꾼'일 수는 없다
오늘 광화문광장에서 본 많은 시민들이 늘 구경꾼일 수는 없다. 오늘 기자회견을 위해 광화문광장 가는 사이, 5호선 전철에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향하는 엄마들을 만났다. 경기 불황 시대에 오죽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이 없으면 삼복더위에 뙤악볕 내리 쬐는 광장으로 가는지 동병상련의 심정도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그들 모두를 구경꾼으로 이해한다면 시민의 잠재력을 불신하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 모든 권력은 경찰력, 청와대가 가지고 있지만 시민에게는 다양한 잠재력과 비판정신, 창조성과 표현 욕구가 있다. 창조력은 물론 서러운 마음,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할 곳도 있어야 하고 4대강 개발 운하 사업으로 물에 잠길 내 고향에 대한 고민과 그리움, 1년 학비 1000만 원으로 명문대 패스를 사고 파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학비 걱정, 실직 가장에 대한 불안과 비정규직의 불안으로 인한 삶의 모습을 구구절절 변화시키려면 너나없이 소통의 광장이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언론법이 논란을 빚는 요즘은 더욱 그런 광장이 절실하다. 3일 광화문광장에서 단지 기자회견을 했는데 20명 중 10명이 연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광화문광장의 활용 방안과 향후 비판은 그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부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과 전시와 홍보와 소통이 다른 것이 아니다. 소통의 광장을 통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민주주의가 꽃피우고 확산되며 개인과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광화문광장 조례는 개정 대상이 아닌 폐지 대상이다.
혹자는 시민단체들이 또 오버했다고, 이념적이라 비판할지 모르나 구경꾼과 시위대는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렇게 비록 오늘은 광화문에 널린 꽃밭에 환성을 질렀더라도 내일엔 내 고민을 발설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오늘 비록 서로 다른 의견을 가졌을지라도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귀함을 깨달아 일상과 운동, 삶과 이념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광화문광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기자회견 중 활동가 연행으로 광화문광장은 얼룩졌지만 관련 단체들은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광장으로 되찾는 데 필요한 모든 행동에 들어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날 광화문광장 기자회견에서 어린 학생들은 늘 9시 뉴스로만 보던 기자회견을 생생히 보며 민주시민 교육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렇게 시민단체와 시민은 즐겁게 광장에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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