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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는 말대신 다시 삼성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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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는 말대신 다시 삼성을 바라보자"

[기고] '희망퇴직금' 받고 끝난 삼성SDI 사내기업 해고자들의 투쟁을 보며

울산 삼성SDI 사내기업 해고자들의 복직 투쟁은 지난 12월 23일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여성 노동자까지 15명의 노동자가 길게는 2년, 짧게는 10개월을 거대공룡 삼성 재벌에 맞서 복직 투쟁을 벌여 왔다.

지난 2006년 삼성SDI 브라운관사업부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시작된 투쟁이었다. 회사는 사내기업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고용을 요구했다. (☞관련 기사 : "삼성SDI, 지난 2년간 '조용히' 3000명 해고")

시퍼렇게 젊어 삼성SDI에 정규직으로 들어가 한 차례 구조조정을 겪으며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또 다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어 시작한 기막힌 싸움의 세월이었다. 그 시간 동안 삼성에 대한 분노는 더더욱 쌓여 갔지만 기약 없는 투쟁으로 힘들어하는 가족도 이들에게는 고통이었다. 결국 이들은 회사와 협상으로 투쟁을 접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도 삼성SDI 부산공장 앞에 가면 그들의 지난했던 투쟁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회사가 신청하고 법원이 받아들인 접근금지 가처분 게시판이 상장처럼 줄줄이 도열돼 있고 회사를 둘러싸고 있는 정문 앞 인도 울타리에도 그 치열했던 싸움의 기억이 남아 있다.

비록 오랜 시간 싸움 끝에 처음처럼 '희망퇴직금'을 받고 복직 싸움을 정리한 해고자들이지만, 그들의 마음 역시 편하기만 할까.

더욱이 삼성이 바라면 이뤄지지 않는 일이 없는 이 나라가 아닌가. 삼성에 순응하며 하루하루 사는 일을 벗어나 스스로 인간으로써의 존엄을 주장하는 그 순간부터 당해야 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철저히 외로움 날들이 시작된다.

자신들을 해고한 삼성에 맞서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동료라는 이름표를 달고 회사의 뜻대로 움직이는 이들과도 싸워야 한다. 현장 노동자들의 외면에도 맞서야 하고, 삼성 노동자의 조직화가 전략적 목표라고 주장하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도 맞서야 했다. 삼성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이 땅의 정치인들과 판검사, 행정관료, 공권력, 언론 그리고 학자와도 직간접적인 싸움을 해야만 한다.

그 뿐인가. 노동운동을 한답시고 자신의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잔혹한 현실을 배워야 하고, 내 눈으로 보고도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라는 것도 배우게 된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종합예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것이 끝내 자신의 고용 문제 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이 되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질긴 끈으로 그물 같이 엮여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그 끈은 때로 돈과 명예와 허영심에 한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노동관료가 되고 뒤틀려진 사람들을 보며 정권이나 자본가가 주는 상처보다 더한 아픔을 이겨내야 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더 삼성SDI 사내기업 해고자들의 투쟁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본인과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을 그 누가 쉽사리 얘기할 수 있을까.

▲ 삼성SDI 사내기업 해고자들의 투쟁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본인과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을 그 누가 쉽사리 얘기할 수 있을까.ⓒ프레시안
그러나 이들의 '끝'이 우리의 '끝'은 아니다. 삼성의 온갖 통제와 관리, 탄압에도 삼성 노동자들의 싸움은 곳곳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썩은 고름이 되어 터져나오는 것이다.

지난 가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었던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집단 발병 사건만 해도 그렇다. 초일류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이 젊은 나이게 백혈병을 비롯한 각종 암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은 반도체 공장이 청정지역이 아니라 죽음의 공장임을 드러냈다.

지난 11월 초에 벌어진 삼성중공업 노사협의회 12대 노동자 대표 선거가 부정선거 논란을 일으키고 아직도 정리되지 않고 있다. 무노조 경영을 대신한다는 노사협의회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 뿐인가. 지난 2003년에도 삼성SDI 부산공장 노사협의회 선거에서 회사의 선거 개입에 항의하며 노사협의회 위원 2명과 현직 과장 1명, 현장 노동자 1명이 승용차 두 대에 휘발유를 싣고 관리동 본관을 들이박은 일이 있었고, 2004년에는 그 유명한 '엽기적인' 핸드폰 위치 추적 사건이 터졌다. 2005년 1월에는 국회에서 노조를 만들기 위해 설립 신고를 한 삼성전자 노동자가 "회사 측에 의해 납치, 감금되고 돈으로 회유를 당했다"는 양심선언이 터져 나왔다.

비록 많은 수가 다시 탈퇴하긴 했지만 지난 10월에도 삼성SDI 정규직 노동자 18명이 집단적으로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초유의 사건도 있었다. 결국 이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노동자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보여준 것이었다.

물론 이런 투쟁들이 당장 삼성에 노조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삼성의 비인간적이고 반노동자적인 통제가 계속되고 있고 삼성의 노동자들 역시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을 계속 발전해 벌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삼성SDI 사내기업 해고자들의 투쟁이 '이겼는가, 졌는가'를 얘기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이유다. 특히 삼성 노동자의 싸움은 그들만의 투쟁으로는 승리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삼성SDI 사내기업 해고자들이 왜 싸움을 접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진솔한 우리 모두의 평가가 필요하다. 그들의 이루지 못한 꿈이 안타까운 만큼, "졌다"는 말보다 다시 두 눈 크게 뜨고 삼성을 바라봐야 하는 순간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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