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서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먹을거리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 이른바 '먹을거리 전쟁(food war)'이 진행 중이다. 산업화된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둘러싼 갈등이 국가와 국가 간, 국가와 기업 간, 기업과 시민 간에 그치지 않고 있다. 유전자 조작 작물(GMO)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갈등, 상반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을 둘러싼 갈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먹을거리 안전성을 둘러싼 갈등에 더해서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위기가 나타났다. 2008년 초 주요 곡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식량 공급을 놓고 전 세계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빈곤 국가의 문제라고 여겼던 먹을거리 공급을 둘러싼 갈등이 전 세계 국가의 문제로 부각된 것. 이런 상황에 대응하고자 세계 각국은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식량 주권은 "한 나라의 국민은 그들의 농업과 식량 정책을 관장할 권리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구체적으로 "국내 농업 생산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식량 자급률 제고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식량 주권 개념은 부국과 빈국을 막론하고 세계 각국에서 중요한 정책 의제로 조명돼 정부, 민간 차원에서 활발한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식량 자급률 25%에 불과한 한국에서 식량 주권은 정부, 국회 어디서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2007년 국내 언론 최초로 '지역 먹을거리(로컬푸드·local food)'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인 식량 주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소개한다. 이 기획을 통해 '식량 안보(food security)' 수준의 논의에만 머물러 있는 정부 정책은 물론이고, 불안한 먹을거리를 놓고 대안을 찾지 못하는 시민에게 출구를 보여줄 것이다. 이번 기획은 한국언론재단의 '2008 기획 취재 지원'을 통해 진행됐다. <편집자> ① "한국 정부는 국민을 굶겨 죽일 작정인가?" ② "무슈 리(Lee) 모르세요? 소농이 죽으면 끝입니다, 끝" |
▲ '초록 제등'을 건 일본의 식당 모습. 지역 먹을거리를 얼마나 사용했느냐에 따라 등에 그려진 까만 별의 숫자가 달라진다. ⓒ일본초록제등홈페이지 |
"외식을 하신다고요? 음식점 앞에서 초록 제등을 찾으세요."
전통적으로 가게 앞에 내걸어 영업 개시를 알리는 일본의 '빨간 제등'. 최근 일본의 음식점들이 이 제등 색을 속속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꾸고 있다. 벌써 일본 전역에서 1600여 곳의 음식점이 초록 제등을 내걸었다. 시민 8000여 명으로 구성된 '초록 제등 응원 군단'은 "음식점에 붉은색과 초록색 제등이 나란히 걸려 있다면 주저 없이 초록색을 택하라"고 곳곳에서 외치고 다닌다.
초록 제등을 가장 먼저 내건 곳은 홋카이도 오타루의 작은 음식점이었다. 2005년, "요리에 들어가는 식재료의 절반 이상을 지역 먹을거리로 쓰는 가게는 초록 제등을 내걸어 알리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초록 제등은 이제 일본 농림수산성이 후원하는 전국적인 캠페인이 됐다.
초록 제등이라고 모두 같은 건 아니다. 칼로리를 기준으로 식재료의 50% 이상이 음식점 인근에서 생산된 지역 먹을거리(불가피한 경우 일본 국내산)일 때, 음식점 주인은 별 하나가 그려진 초록 제등을 내걸 수 있으며, 지역 먹을거리 함량에 따라 별의 숫자가 두 개(60%), 세 개(70%), 네 개(80%), 다섯 개(90% 이상)까지 올라간다.
이처럼 '지역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먹자'는 의미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은 최근 일본 전역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이제 농수산물 매장, 학교 급식, 음식점 등 먹을거리가 유통되는 모든 곳에 '지산지소'라는 단어가 덧붙여진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우리 지역'의 먹을거리가 어떤 게 있고, 또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배우고 고민한다.
▲ 일본 민주당의 시노하라 타카시 의원. ⓒ프레시안 |
일본 정부는 지산지소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농림수산성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학교 급식 식단 경연 대회, 도시락 경연 대회를 벌이는가 하면, '지산지소 코디네이터'를 육성하고, 지산지소 홈페이지(www.jimototaberu.net )를 만들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식량 자급률 제고를 목표로 내건 '21세기 신농정 2008' 기본계획에는 "2006년 지산지소 운동의 경제적 효과는 총 2838억 엔(약 4조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며 지산지소 운동을 더욱 장려하도록 주문했다.
이 열풍을 주도한 주인공이 있다. 민주당의 시노하라 타카시(篠原孝·61) 의원. 그는 지산지소 운동을 정책적으로 활성화하고, 일본에서 처음으로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먹을거리가 이동한 거리)를 계산해 발표한 인물이다. 일본에서 식량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 중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시노하라 의원은 평생 농업 정책의 한길을 걸었다. 1973년 농림수산성에 들어 간 그는 30년간 농림수산성, 농업종합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다 2000년 이후 농림수산성 산하 농림수산정책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다. 2003년 민주당 비례 대표로 정계에 들어간 그는 현재 다가오는 총선에서 삼선에 도전하고 있다.
광우병(BSE) 문제를 놓고 고이즈미 전 총리와 직접 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시노하라 의원은 일본 유권자에게도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일본 중의원 정보를 모아놓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본 누리꾼은 "재선에 관심이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 "국민의 생존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모두 저렇게 진지하면 일본의 분위기 자체가 심각해졌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5500만 건이 넘는 연금 납부 기록이 누락되는 희대의 사건이 터지면서 다음 총선에서 수십 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만약 민주당이 정권을 잡게 될 경우 시노하라 의원은 차기 농림수산성 장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2006년 9월부터 민주당 내에서 '넥스트 농림수산부 장관'을 맡아 민주당의 농업 부문 정책을 주도해왔다.
▲ 시노하라 의원은 한미 FTA, 해외 식량기지 등 한국의 농업정책에 대해 "무모하다"는 평가를 반복했다. ⓒ프레시안 |
시노하라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해외 식량 기지 등 우리나라 농업 정책이 언급될 때마다 "한국 정부가 참 무모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 한국이 일본보다 유리하게 협상을 이끄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부러웠다"며 "그런데 지금은 겁이 없다는 생각만 들 뿐"이라고 말했다.
시노하라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놓고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통과시킨 사실은 일본과 미국에서 모두 알고 있다"며 "정부의 잘못이 심각하니까 국민들이 거부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미국은 '한국은 이렇게까지 개방하는데 일본은 왜 그러느냐'면서, 일본은 (연령 제한이) 20개월, 한국은 30개월이라고 들먹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이 함께 미국에 요구해야 하는데 한쪽에서 규제를 대폭 풀어버리니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시노하라 의원은 한국 정부의 '해외 식량 기지' 정책에 대해서도 일본 기업들이 해외 농지를 개발하려다 실패한 사례를 예로 들며 "지금 그런 정책을 펴는 한국이 정말 무모한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현재 식량 자급률이 20%대에 머무르는 일본과 한국은 완전한 자급은 할 수 없다며 어느 정도 단념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러나 품종 개량을 통해 자급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업은 토지가 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일본과 한국 모두 강우량은 충분하다"며 "농업에 충분한 투자를 한다면 얼마든지 높은 자급률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푸드 마일리지뿐만 아니라, 우드(wood·나무) 마일리지, 굿(good·물건) 마일리지 역시 줄여야 한다"며 "완전히 국제 분업과 자유 무역에 반하는 논리이지만, 21세기 기후 변화의 상황에서 어느 쪽의 논리가 맞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노하라 의원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농업에 충분한 투자를 한다면 얼마든지 높은 자급률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신토불이' 운동을 발견했다"
프레시안 : 올해 들어 한국에서 식량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유전자조작(GM) 옥수수 수입, 그리고 멜라민 파동에 이르기까지.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면서 일본의 지산지소 운동에 대한 관심도 굉장히 높아졌다. 지산지소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시노하라 : 식량과 농업에 관해 한국은 일본과 쌍둥이처럼 똑같다. 일본이 예전에 겪었던 것을 한국이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나는 사실 한국의 신토불이 운동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신토불이라는 말을 접하게 된 계기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한국 선수들에게 보급하는 김치 상자를 봤을 때였다. 그 김치 상자에 '신토불이'라고 써 있었다.
사실 신토불이는 일본에도 있었지만 일본어로는 입에 붙는 발음이 아니라서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같은 취지의 운동에 지산지소로 이름만 바꿨다. 그 외에도 농도불이(農都不二· 도시와 농촌은 떨어질 수 없다), 순산순소(旬産旬消·제철음식을 먹자), '푸드 마일리지' 등의 말도 만들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인식 면에서 한국이 더 나아 보인다. '우리 밀 운동'을 보더라도 한국 사람들이 자기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안전성을 놓고도 높이 인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노하라 의원은 "지산지소는 생산자가 시작한 게 아니라 소비자가 요구해서 생산자에게 영향을 준 운동이다"라고 했다. ⓒ프레시안 |
시노하라 : 지산지소라는 말은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때는 1987년이었다. 당시의 지산지소 정책은 생활 개선 운동의 일환으로 영양 부족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농림수산성이 지역의 생산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정책은 일회성으로 그쳤다.
결국 2000년에 들어와서야 지산지소가 국내에 널리 퍼졌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유 오염 문제였다. 한 식품회사의 우유에 포도구균이 들어간 사건이 있었는데, 사태의 진원지를 파악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 광우병(BSE)이 일본에서 발병한 뒤, 사람들은 식품의 출처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모르는 곳 보다는 가깝고, 신용도가 높은 곳에서 생산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요구가 커진 것이다.
따라서 지산지소는 생산자가 시작한 게 아니라 소비자가 요구해서 생산자에게 영향을 줬다고 봐야 한다. 1987년 당시에는 식품의 안전성과 유기농을 부르짖는 사람이 소수였지만 이제 인식이 확산됐다.
최근 한국에서도 광우병 문제가 대두되면서 원산지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들었다. 결국 신용도 문제다. 일본에서도 역시 중국산 만두, 멜라민 파동처럼 식품 안전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산 채소 수입은 잔류 농약 문제가 계속 불거지면서 신용도가 정말 낮아졌다. 지금 시장에 유일하게 남은 중국산 품목은 마늘뿐이다.
앞으로 새로 시행하고 싶은 제도 중 하나가 가공식품에 대한 원산지 표시이다. 가공하는 회사는 생산자에게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말하지만, 일본 생산자로서 보면 싸구려 수입 식품을 못 써서 이윤이 적게 남을 수도 있으니까 싫다고 해서 문제가 크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한국 정부 참 겁이 없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 신토불이 운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정부는 한미 FTA,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발맞추기 위해 갈수록 농산물 시장을 내주고 있다. 공산품 수출을 늘리기 위해 농민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시노하라 : 한미 FTA를 보면, 한국 정부가 왜 저걸 굳이 나서서 하려 하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는 사안이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보면 한국 정부가 정말 간이 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상황이 내겐 참 낯설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참여한 나는 당시 한국이 굉장히 부러웠다. 일본에서는 실정도 잘 모르는 농무수산성 장관이 나와서 협상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유명한 농업 전문가가 나와서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한국이 일본보다 농정을 더 많이 생각하고 교섭에서 자신감 있게 나간다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참 무모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 시노하라 의원은 "미국이 한국의 경우를 들어 미국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조치를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 광우병에 대처하고자 모든 도축 소를 놓고 전수검사를 실시하는 등 그간 일본 정부가 보였던 대응은 세계적으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반면 한국 정부는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 집회를 열면서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했는데도, 전면 수입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광우병(BSE) 문제의 대표적인 논객으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시노하라 : 한국 국민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을 잘 알고 있다. 한국 국민은 참 똑똑하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기로 한 사실 역시 일본, 미국에서 모두 알고 있다. 한국의 정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엉터리다. 정부의 잘못이 심각하니까 국민이 거부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나는 일본도 국민의 반응이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강력하게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그래서 미국의 학자들도 일본에 와서는 쇠고기를 먹어도 미국에서는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며, 쇠고기를 먹고 싶으면 일본에 와서 먹는다고 농담을 한다. 미국산 쇠고기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05년 1월에 미국에 현지 조사를 하러 갔다. 그때 미국의 고위 공무원이 일본 측에서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것이 맞다며 소비자의 입장에서 정당하게 요구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얘기가 바뀌었다. 한국은 이렇게까지 개방하는데 일본은 왜 그러냐면서, 일본은 (연령 제한이) 20개월, 한국은 30개월이라고 들먹인다.
사실 지금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문제가 많다. 우리는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니까 도축 장소도 달라야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일본 측에서 계속 요구하는 상태다. 이렇게 일본과 한국이 함께 미국에 요구해야 하는데 한쪽이 대폭 규제를 풀어버리니 효과가 없다.
지금 한국, 일본 뿐 아니라 대만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압력을 많이 받고 있다. 2001년 농림수산성 장관을 맡았던 타케베 자민당 간사장에게 언젠가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만약 세계 모든 국가에 광우병이 만연해 있어도 일본은 안 걸리게 되면 민주당에 감사해야 한다고. 우리가 전수검사를 하라고 해서 광우병을 막아낸 것이니까.
덧붙이자면, 식품 안전성 위험을 나타내는 요인 중 농약, 화학비료, 광우병, 대장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 중 나라별로 유독 거부감이 높은 요인이 있다. 영국은 광우병, 프랑스는 유전자 조작 식품, 미국은 대장균 등등. 일본은 특히 유전자 조작 식품이나 광우병에 대한 거부감이 큰데, 일본과 한국 국민들은 자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 크게 반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자민당 정부도 이제 식량 자급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 시노하라 의원이 민주당에서 만화 형태로 발행한 정책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매니페스토'가 아니라 '망가페스토'"라고 말하며 웃었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 최근 일본 정부는 식량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이들의 회의 결과를 대국민 호소로 발표하는가 하면, '신농정2008' 정책으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데 힘을 쏟고 있다. 야당 의원으로서, 현 일본의 정책을 평가한다면.
시노하라 : 사실 신농정 2008은 우리 민주당이 제시한 정책이다. 이전까지 식량 정책의 중요성을 아무리 얘기해도 농림수산성 장관은 어림없다는 식으로 대했다. 그러나 아소 다로 총리로 바뀐 뒤 식량 자급률을 높이자는 제안에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식량 정책은 어느 한 당의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이건 유권자인 소비자의 요구이자 희망이다. 오죽하면 이제 '소비자청'을 만들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생산자보다는 소비자 측에서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신토불이, 이탈리아의 슬로푸드 운동 등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에서 식량 운동이 일어났다. 이건 세계적 추세다.
프레시안 : 오랫동안 농림수산성에서 근무하며 농업 정책을 담당했다. 기존에 자민당이 펼쳤던 농업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시노하라 : 일본 정부는 오랜 세월 농업의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 오로지 이것만 했다.
예를 들면 미국은 농민 한 사람의 농경지가 최소 200헥타르(㏊)가 아니면 농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가능할 리가 없다. 규모 확대를 부정하진 않지만 일본 정부는 소농의 중요성을 잊고 이들에게 농업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정책은 결국 농촌의 지역사회를 붕괴시킨다. 농림수산성에서 일하면 이런 정책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늘 소수파였다. 좌절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민주당에 들어와 농정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다. 중의원 출마를 결심한 계기다.
"일본의 해외 농지 개발 사업 평가? 다 망했는데…"
프레시안 : 세계적으로 곡물 값이 오르면서 한국과 일본에서도 식량 위기가 논의되고 있다. 두 나라가 겪는 식량 위기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시노하라 : 현재 식량 자급률이 20%대에 머무르는 일본과 한국은 완전한 자급은 할 수 없다며 어느 정도 단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품종 개량을 통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농업은 토지가 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 모두 강우량은 충분하다. 물을 잘 운용한다면 꽤 자급률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투자해야 하는 돈이다.
외국에서부터 수입하게 되면 푸드 마일리지가 높아지고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피할 수 없다. 나는 푸드 마일리지 뿐 만 아니라, 우드(wood·나무) 마일리지, 굿(good·물건) 마일리지 역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건 완전히 국제 분업과 자유 무역에 반하는 논리이지만, 21세기 기후 변화의 상황에서 어느 쪽의 논리가 맞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일본과 한국 간 자유무역은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후쿠오카의 경우를 보면 홋카이도에서 물건을 들여오는 것보다 부산에서 들여오는 게 더 빠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일본과 미국 간 교류는 전체 식량 사정을 놓고 봐도 해선 안 된다.
프레시안 : 한국은 최근 정부가 나서서 식량 위기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해외 식량 기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일본 역시 남미 국가에서 농지 개발을 했던 경험이 있다.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시노하라 : 1980년대 공업의 성장이 계속될 때, 소니 사장이 "농업은 필요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노무라증권과 같은 유명한 일본의 재벌들이 일본의 종자와 농업기술을 가지고 브라질 등지에 나가서 해외 농지 개발을 시도했지만 결국 다 망했다. 기후와 풍토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평가를 할 것도 없다.
이제 와서 '해외 식량 기지'를 만든다는 한국이 정말 대담한 것 같다. 그렇지만 중앙아시아라면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땅을 많이 사서 비슷한 정책을 하려 한다. 두고 봐야 할 것이다.
▲ "예전엔 '물건이 싸다'고 홍보하는 가게가 많았지만 지금은 '지산지소 코너'가 생겼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 한국에서 지산지소 운동이 펼치려는 사람들에게 일본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달라.
시노하라 : 지산지소 운동은 열대과일처럼 일본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까지 자급하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 마을 농산물, 그게 아니면 현(우리나라의 도)의 생산품, 또는 국산품처럼 가능한 가까운 곳의 농산물일수록 좋다는 것이다.
이제 일본 소비자들은 안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한 식품을 먹겠다는 것이다. 채소 같은 경우 그 값이 1.3배 정도까지 오르더라도 안전한 식품을 먹겠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심지어 가격이 2배까지 되어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매장에서 달걀, 두부, 육류가 싸다고 홍보하며 손님을 끌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지산지소 코너'가 생겼다. 그 고장 채소를 가장 앞에 내놓고 손님을 끄는 것이다.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국은 정치부터 지역색이 강하지 않나. 정당도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고, 사람들도 애향심이 강하다. 일본처럼 지산지소 운동을 한국에서 펼친다면 지역색은 훨씬 강하게 드러날 것 같다. 나아가 한국에서 나온 물건을 한국 사람이 산다는 인식은 일본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 본다.
일본에서는 배추를 하나 사더라도 생산 지역과 수입한 원산지를 표시하게 돼 있다. 만약 나가노 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면 나가노 사람들이 더 많이 산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지역이 표기되면 그 지역 주민들이 더 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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