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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억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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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억하시죠?"

[조선 질경이 이소선] <3> "한울타리에서 살자"

살아 있는 전태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붙는 칭호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뜻을 평생 온 몸으로 이어 온 이소선 여사가 올해 팔순을 맞았다.

사단법인 전태일기념사업회는 그의 팔순을 기념해 헌정 문집 <조선 질경이 이소선>을 발간한다. 여러 사람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이소선 여사의 치열한 삶은 깊은 감동과 함께 노동운동 또 우리의 삶에 큰 자극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과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이 책에 실린 글 가운데 9편을 골라 연재한다.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오는 12월 5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팔순 잔치 겸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우리는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의 길에 생명을 바쳤던 혈육들의 가족들로 그들의 뜻을 이루도록 노력하기 위해 지난 1986년 8월 12일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를 조직했다.

우리는 혈육의 조국에 대한 불타는 사랑, 민중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이어 7천만 민중의 염원인 조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때까지 헌신하며 우리 혈육들의 뜻을 왜곡하고 외세에 빌붙어 조국을 팔아먹고 민중을 억압하는 그 모든 세력과 제도에 반대하며 가열차게 투쟁해 나갈 것이며 우리는 조국의 역사속에 자랑스런 이정표를 남을 혈육과 함께 애국에 한길에서 굳세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 유가협 규약 전문 가운데


제가 처음 이소선 어머니를 뵈었을 때는 1987년 8월 12일 유가협 창립 1주기 행사가 열리던 마리스타 수녀원에서입니다.

위 규약 전문을 저세상으로 먼저 간 혈육들의 유언으로 가슴에 간직하면서 한세상 한눈팔지 않고 살아왔지요.

이소선 어머니는 우리 유가협 산증인이시고 유가협의 어른이십니다.

군사독재 시절 우리 유가협 아버지, 어머니들은 '독재타도, 호헌철폐'부터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 투쟁'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날마다 투쟁하는 민중들과 어깨 걸고 함께 싸웠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머니는 남다르게 유가협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 지나치다 싶다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유가협이 발족하고 2년 뒤인 1988년 어느 날, 이소선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지요. "우리 이러다가 저 사진들(세상을 떠난 혈육들의 사진) 들고 길가로 나앉게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요?"하고 물으니 "수를 내야지. 서화전을 해야 해! 서화전을 해서 집을 사는 거야. 그래야 저 벽에 걸린 사진들이 서럽지 않지.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집을 사는 거야!"

어머니 말씀이 옳았습니다.

그때는 독재에 맞서 싸우다가 저세상으로 먼저 간 혈육들의 사진들을 안고 유가협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데 전세를 얻으려 해도 죽은 자들의 사진을 잔뜩 들고 온 우리들에게 방을 내주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사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유가협 식구들은 대찬성하였고 어머니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림을 모으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1989년 4월 어느 날 서화전을 성황리에 마치고 그 수익금과 가족들의 모금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 2동 651-30번지에 저세상으로 먼저 간 영혼들의 보금자리이자 유가족들의 시랑방인 한울삶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한울삶에서 죽어간 자식들의 사진을 걸어 놓고 20년을 서로 믿고 의지하고 웃고 울며 동고동락하고 있습니다.

▲ "어머니! 우리가 지금이라도 저세상에 있는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왜 이런 생각만 하면 또 속절없이 눈물만 쏟아질까요."ⓒ뉴시스
어머니!

우리가 지금이라도 저세상에 있는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왜 이런 생각만 하면 또 속절없이 눈물만 쏟아질까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지. 한 많은 세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 검은 머리 하얗게 백발이 되어버렸네요.

어머니! 기억하시죠.

그 엄동설한에 여의도 한복판에 천막치고 우리들에 상징 빛바랜 한울삶 깃발 펄럭이고 '명예회복법과 의문사진상법을 제정하라'고 외치면서 422일 동안 단 한 번도 게으름 부리지 않고 천막에서 지낼 때를 말입니다. 잠이 안오면 밤새 내일 무엇을 어떻게 해아 할지 의논하고, 타협하고, 새우잠을 자면서 그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는 꽃 같은 자식들의 얼굴을 보면서 때로는 그리움을 달래면서 그렇게 지냈지요.

어머니! 저는 속이 상해요.

한울삶, 한울삶 벽에 걸린 사진속의 그리운 아들, 딸들 우리가 이리 가면 이리 보고 저리 가면 저리 봅니다. 이 자식들이 있는 보금자리 '한울타리에서 살자'는 한울삶에서 밤이면 당신아들기념관 전태일기념관으로 발길 더듬어 올라 가시는 것을 보면 너무 속이 상한답니다.

어머니!

사는 동안 몸 건강히 살다가 예쁜 얼굴, 그리운 얼굴 만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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