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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녀의 아버님이 찾아왔습니다"

[삼성반도체와 백혈병]〈2〉"삼성이라 할지라도, 진실은 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이라는 같은 병으로 죽거나,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어린 딸을 잃었던 황유미 씨의 아버지가 작은 몸뚱이로 거대한 삼성과 세상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이후 하나 둘씩 피해자는 늘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삼성은 여전히 '직업상 재해가 아니다'는 입장만 되풀이합니다. 고 황유미 씨의 유족이 신청한 산업재해 인정 요구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조만간 나올 예정입니다.

과연 백혈병과 삼성반도체 공정 사이의 인과관계가 드러날까요? 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프레시안>은 다섯 번에 걸쳐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도 여전히 삼성반도체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가진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 19살의 어린 나이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취직하고 2년 만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의 기막힌 사연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프레시안
"내 딸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기계1대에 2명이 1조가 되어 하는 일을 하루 8시간동안 했다. 내 딸 유미와 한 조로 일했던 최 아무개 씨는 유산한 이후 회사를 나갔고, 그 자리에 이숙영 씨가 들어왔다. 우리 유미가 먼저 백혈병이 걸렸고 이숙영 씨도 백혈병이 걸려 둘 다 죽었다. 그런데 삼성은 그것이 직업병이 아니라 개인 질병이라고 한다. 삼성을 상대로 싸울 수 있으면 한 번 해보라고 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개인이 혼자 삼성을 상대로 싸우나? 만약 삼성에 노조만 있었더라도 우리 유미가 그렇게 위험하지 일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상규명도 중요하고, 또 삼성에 반드시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취직하고 2년 만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지난해 11월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 반올림이 만들어진 이후 이 아버지의 기막힌 사연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더 기막힌 것은 이 기막힌 사연이 황유미 씨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책위 활동이 시작된 이후 1년 동안 현재까지 20여 명에 달하는 조혈기계암(백혈병, 악성 림프종, 재생불량성 빈혈) 피해자가 확인되고 있고 다른 암들과 희귀 질병 피해자도 참 많다. 비록 반올림이 파악하는 숫자는 제보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어서 진실을 얘기하는 데는 아직까지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야 했던 아픈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 많다.

3라인 'stepper 공정(자외선 등을 이용한 공정)'에서 일하다가 쌍둥이를 둘 다 유산하고 결국 자신도 암으로 사망을 한 노동자 사연, 고3의 나이로 기흥공장에 입사해서 'thin film 공정'에서 일하다가 말초신경계 질환인 '다발성 신경염증'(몇년 전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노말헥산이라는 유기용제에 중독되어 걸린 병과 같음)에 걸려 갖은 고생을 한 노동자 이야기, 일종의 혈관염이라고 하는 희귀병인 육아종에 걸린 남성분의 이야기, 이름도 생소한 흑색종이라는 희귀암 판정을 받고 결국은 골수로까지 암이 전이 되어 저 세상으로 가게 된 분의 이야기, 20대의 나이에 직장암에 걸린 여성분의 이야기, 친구가 삼성반도체 다니다가 뇌종양에 걸렸다는 이야기, 사구체신염으로 고생하는 사람, 함께 일한 내 동료의 아이가 팔다리가 모두 기형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 함께 일한 누구네가 발가락이 없는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 아이가 없는 부부 이야기, 입사 전에는 안 그랬는데 입사 이후 1년에 생리를 한 두 번 밖에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유산된 젊은 여성 이야기는 비일비재하다.

이쯤 되면 백혈병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질병 현황에 대한 조사를 할 법한데 노동부는 현재 어떤가?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삼성 눈치 보기에 바쁘다. 아니, 오히려 삼성 그 자체 같다.

대책위가 그동안 여러 차례 노동부 면담과 항의를 통해 확인해 온 것은 이들의 기초조사가 100% 엉터리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회사가 협조해 주지 않으면 조사를 할 수가 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회사의 협조를 얻어서 하는 조사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내 귀에는 '회사 측이 주는 자료로만 조사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당연히 피해자 숫자도 회사가 알려주는 대로 노동부는 자기 조사 결과인 것처럼 발표했다. 화학 물질 사용 실태에 대해서는 기업의 영업 비밀이라는 좋은 보호막을 들이밀었다.

영업 비밀? 무슨 물질을 사용했는지 모르면 산재 인정을 받기 힘들다는 것은 바로 노동부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다. 더욱이 삼성은 현장 내에서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다루는 물질의 실체에 대해 교육 시킨 바도 없다. 이를 잘 아는 노동부가 피해 노동자에게 현장에서 사용되는 물질의 종류를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은 노동부 스스로 산재 입증을 방해하는 행위다.

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에는 반도체산업의 직업병 문제에 대한 연구 논문도 한 편 없다. 피해자 가족의 요청과 대책위의 활동으로 처음으로 역학조사라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조사만 어느덧 1년, 12월에 평가위원회를 앞두고 있지만 대체 피해자들은 그동안 산업안전공단이 무슨 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유가족은 역학조사 근거와 과정, 결과에 대해 사전에 알 권리가 있는 것 아닐까?

역학조사 평가위원회가 열리기 이전에 먼저 사전공청회와 평가위원회 참석 등의 방법으로 피해 당사자와 유족에게 어떤 근거로 조사했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자칫 놓친 것은 없는지에 대해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굳이 삼성과 연관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삼성이란 기업이 어떠한 기업인지 알 수 있다.

권세를 가진 집단은 몽땅 다 삼성이 뿌린 돈으로 타락했다며 시국미사를 지낸 정의구현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을 통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보여 온 삼성의 숱한 인권유린 사건을 통해, 죽은 이의 명의를 도용한 휴대폰 불법 복제와 불법 위치 추적 사건을 통해, 태안 기름 유출 사건 이후 사과 한 마디 없는 그 뻔뻔함을 통해, 모든 이들은 삼성을 안다. 삼성이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고 죽음을 방치하면서 만든 이윤으로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부패를 조장해 왔는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삼성을 더 이상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골병드는 곳이라면, 그 곳이 지옥이든 삼성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더 이상 죽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싸우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반올림 활동이 1년이 됐지만, 이제 고작 한 돌이 되어 첫 걸음마를 뗀 것에 불과한 것은 그래서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무기 중 하나는 현장에서의 경험과 그로부터 나온 진실, 그리고 가난한 이들 간의 연대다. 진실과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사람이 간직한 힘으로, 그리고 피해를 겪은 더 많은 이들의 연대의 힘에 희망이 있다. 진실은 통할 것이다. (☞ 제보 메일은 sharps@hanmail.net으로)

단지 삼성반도체에서 더 이상 아픈 이들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인과관계에 대한 철저한 조사 뿐 아니라 반드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현장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노동기본권을 얻을 수 있는 힘이 거기에 있다. 작업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권리, 위험하면 작업을 중지할 권리, 위험 물질을 사용하지 않을 권리, 이 모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그 현장이 삼성이라 할지라도.

▲ 이 모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그 현장이 삼성이라 할지라도.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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