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협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같은 밥상, 즉 같은 물질적 조건에서도 '협동' 여부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각자 생수 사서 마실 돈으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는 게 낫다"
북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안, 이 동화를 떠올리게 한 사례는 많았다. 핀란드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 스웨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들은 수자원 관리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툰다. '숲과 호수의 나라'라고 불리는 자연환경도 한 이유다. 하지만 '깨끗한 물'을 시민에게 공급하기 위한 공적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이 더 큰 이유로 꼽힌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수돗물의 질을 믿을 수 없어서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경우, 그리고 수돗물을 믿고 마시는 경우. 이 둘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사회적 비용이 더 클까. 물론,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경우다. 생수를 사서 마실 돈을 모아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면 결국 모두가 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이게 협동 모델이다.
북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런 협동이 가능한 이유를 물었다. 부러움 섞인 질문이었다. 대부분 답변이 신통치 않았다. 누구나 뻔히 짐작할 수 있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더 착해서?…경쟁보다 협동이 더 실용적이니까!"
귀에 쏙 들어오는 대답을 한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한국인 유학생 신경아 씨였다. 신 씨는 캐나다에서 작곡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핀란드 헬싱키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전공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이라고해서 특별히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대답을 시작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흔한 답변처럼 들렸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제도적 차이 외에,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에서도 다른 대목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보다 자세하게 이어진 대답은 이랬다. "핀란드 문화는 아주 실용적이다. 협동과 연대에 바탕을 둔 사회 모델 역시 실용적인 판단의 결과처럼 보인다. 복지가 강한 사회니까, 유난히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면 틀렸다.
햇볕이 적은 핀란드는 사람이 살기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 게다가 오랜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직후에는 격렬한 내전도 겪었다. 독일, 스웨덴의 지원을 받는 백위군과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는 적위군 사이의 유혈 충돌이다. 당시, 백위군이 승리하면서, 좌익은 대부분 러시아로 쫓겨났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일 측에 가담했던 탓에 소련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전쟁 뒤에는 소련과의 무역량이 많았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경제가 파탄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내부적으로 무한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자원 적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 사람이 귀하다…낙오자 없는 교육"
이런 대답은 주 핀란드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전한 이야기와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대사관 관계자는 "북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유럽의 변방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핀란드는 자원이 적고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사람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인권과 연대 의식이 유난히 강해서라기보다, 경쟁을 자제하고 협동을 강조하는 모델이 더 '실용'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각자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것보다, 세금으로 수돗물 관리에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설명과 닮았다. 북유럽에서 만난 한국인들 중에는 '믿을 수 있는 수돗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점수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순간, 교육이 망가진다"
'수돗물 모델'과 닮은 사례는 많다. 그 중 하나가 교육이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세금으로 거둬서 공교육에 투자하면 모든 아이들이 훨씬 질이 높은 교육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돗물과 교육은 다른 측면이 있다. "내가 꼭 남보다 더 좋은 물을 마셔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자신이 마시는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가 문제일 뿐이다. 굳이 남과 차별화해야 할 필요는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꼭 남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많다.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앞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교육의 질보다 '남과 차별화'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다. "모두가 나쁜 교육을 받더라도, 우리 아이가 전체에서 1등을 하면 만족스럽다"라는 생각이 번지는 경우다. 수돗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나쁜 물을 먹더라도, 내가 그중에서 가장 좋은 물을 먹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리는 없으니까.
'차별화'하려는 욕망이 질을 높이려는 노력보다 두드러지면, 당연히 전체적인 질은 떨어진다. 교육이 사회적 차별화의 통로가 될 때, 이런 일이 생긴다.
"학교에 서열이 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북유럽 사회가 결정적으로 돋보이는 대목이 이 부분이다. 직업, 학력, 학벌 등에 따른 차별이 매우 적다. 학교에서 받은 점수가 사회에서 받는 대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적다는 뜻이다. 대학 교수, 법조인 등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직업으로 쏠리는 현상도 약하다. 오히려 생산직과 육체노동자가 높은 소득을 거둔다. 장인(匠人)을 존중하는 문화 때문에, 한 가지 기술을 꾸준히 익힌 사람에 대한 대우가 좋다.
또 출신 학교를 따지는 문화가 거의 없다. 북유럽에서 만난 교사, 교육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전한 이야기다. 한국에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북유럽 교육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하는 '입에 발린 말'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헬싱키 시내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통계청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라울라 씨는 "학교 간에 서열이 있다고? 글쎄, 핀란드에서 그런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 했다. 혹시 그가 '좌파'인 걸까. 그렇지 않다. 그의 정치 성향을 물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중도 우파 지지자' 라고 일러줬다.
녹색당 지지자이며, 오케스트라 연주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앙띠 씨는 같은 질문에 "시벨리우스 음악대학이나 헬싱키 종합대학, 오울루 공과대학 등은 외국에도 좀 알려진 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무리를 하면서까지 이들 학교에 들어가야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또 관련 분야 종사자들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면, 학교의 명성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완벽한 평준화는 아니지만, 학교 간 순위 매기기에 열을 올리는 문화와 거리가 멀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우열반 없앤 이유…다양한 아이들이 팀 단위로 공부할 때 성취도가 높다"
핀란드에는 명문고, 명문대가 없을 뿐 아니라 우열반도 없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져 온 교육개혁이 핀란드 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꿨다. 우열반은 1985년에 사라졌다. 대신, 학력이 높은 아이와 낮은 아이가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경쟁보다 협동을 중시하는 쪽으로 교육정책의 기조가 바뀌면서부터다.
교실 안에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이 있고 이들이 팀(Team)을 이뤄 공부할 때,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게 정부 차원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한다. 또 개인 간 점수 경쟁에만 열을 올리느라, 서로 협동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고려됐다. 사회 생활은 대부분 남과 협동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더 실용적"이라는 한국 vs "경쟁은 경쟁력을 망친다"는 핀란드
경쟁에서 협동으로 교육 정책의 기조를 옮기는 변화 속에서 반발은 없었을까. 헬싱키에서 만난 한 대학원생과의 짧은 대화 속에 힌트가 있다.
"평등 교육이 이뤄지는 셈이네요." "그런 셈인가요. 아무래도 교육에서 차별을 없애는 게 더 실용적이죠."
똑같이 '실용'을 내세웠지만, 한국 정부가 택한 방향과는 다른 길을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그 길의 끝은 어떻게 다를까.
(북유럽 사회를 읽는 첫 번째 키워드 '협동'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는 오는 3일 게재됩니다. 아이들 사이의 협동을 중시하는 핀란드 식 교육에 대해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