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소신이기도 하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한 직후 이건희 회장은 "부정은 암이고 부정이 있으면 반드시 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3년 신(新) 경영을 선언하면서 "도덕성이 결여된 기업에서는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없고 나와도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도덕불감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직, 도덕성, 예의범절, 에티켓이라는 이른바 '삼성 헌법'을 만들어 임직원에게 지킬 것을 요구했다. 이때 나온 말이 그 유명한 "자식과 마누라만 남기고 모두 다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성은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원칙으로 한다"?
이른바 '무노조 경영' 철학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조의 필요성"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말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을까? 삼성의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삼성에도 노동조합은 존재한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중공업, 삼성정밀화학, 호텔신라, 에스원에 모두 노조가 있다. 하지만 이들 노조는 이른바 '복수 노조 금지 조항'을 악용해 삼성재벌이 행정관청과 결탁해 설립한 유령노조, 즉 서류노조일 뿐이다. 삼성중공업, 에스원, 호텔신라 등의 노조가 그렇다.
또 한 부류는 삼성이 기업을 인수하면서 고용 승계된 노동조합이다. 삼성정밀화학,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이 그렇다. 특히 삼성생명노조는 1998년 1700여 명이 구조 조정되던 때 노조가 오히려 노동자 탄압에 앞장서기도 했다.
노조를 막기 위한 각종 불법은 삼성에 있다
이들 노조가 만들어진 데는 삼성의 옛 구조조정본부 산하에 있는 노사 담당 인사팀의 역할이 있었다. 각 계열사의 노사문제를 모두 총괄하는 이 팀은 에스원의 무술 요원이나 카드사 직원, 삼성SDS 직원 등 관계사 직원을 총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힘까지 가지고 있다. 또 인사팀 산하의 경찰팀의 지원도 받는다.
이 팀이 하는 일은 이렇다. 서류를 위조하거나 위치를 추적하고 은행 계좌를 열어 보고 카드 내역을 조회하는 일들이다. 20년 간 이 인사팀의 노무 담당 일을 맡았던 '이모 덕에 그룹이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이 인사팀이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소위 '지역대책위(지대위)'다. 사고처리반이라고도 불리는 지대위는 사원의 복리후생비에서 그 활동 비용을 충당한다. 노조 건설 움직임을 감시하고 실제로 노조 설립을 막는 것이 이 지대위의 막중한 역할이다.
수원지대위에서 일하는 수원삼성SDI 소속의 신모 차장은 과거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된 류모 씨의 집을 고성능 도청기로 도청하다 발각돼 <한겨레>에 기사가 나고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 일은 지대위의 임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불법적인 일은 지대위가 하는 당연한 관례일 뿐이다
지대위에 소속된 인사과 직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아는 바가 없다. 모두 소속이 따로 있긴 하지만 회사에는 거의 출근하지 않고 지역마다 있는 비밀 사무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언론사나 경찰 정보과, 시청 민원실, 노동 관련 기관, 사법부 등을 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이들을 대접해 관계 기관의 직원을 '준 삼성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이들의 또 다른 업무다.
지난 수십 년 간 자행해 온 모든 노동자 탄압을 삼성 족벌의 사병 조직인 지대위에서 자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성은 이 지대위를 내세워 삼성 노동자와 1년 365일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사정이 바로 이건희 회장의 진정성을 쉽게 믿어줄 수 없는 까닭이다. 삼성은 'X-파일' 사건이 터지자 바로 8000억 사회 기부를 선언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이 특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사회 문제가 되자 이건희 회장은 총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삼성 계열사의 지배 순환고리를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반성인 것이다.
다시, 삼성을 얘기해야만 한다
요즘 다시 반국가 단체가 유행이라 한다.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7명이 활동하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이 반국가 단체, 즉 이적 단체로 찍혀 체포됐다. 비록 법원이 구속 영장을 모두 기각하는 '기특함'을 보였지만 이 사태를 지켜보며 과연 진짜 반국가 단체는 무엇인지 되새겨보게 된다.
이 씨 일가의 족벌 세습 경영을 위해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성장마저 가로막고 있는 곳, 이 사회를 돈과 권력으로 지배하면서 도덕적 타락과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하는 곳, 그 삼성이 바로 반국가 단체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씨 일가가 삼성을 지배하는 한 이 사회에는 희망이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삼성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자들이 현 정권에서 중용돼 검찰 총장, 국정원장 등 각종 요직에 앉아 있는 지금의 현실은 절망 그 자체다.
몇 번을 반복하고서도 다시, 삼성을 얘기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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