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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단속 겁내는 국정원?…'국민에 다가가기'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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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단속 겁내는 국정원?…'국민에 다가가기' 안간힘

[르포] 리모델링된 국정원 안보기념관 3월 2일 개관

지난달 27일 아침 서울 양재동 서초구민회관 앞. 국가정보원이 2일로 예정된 안보기념관의 재개장을 앞두고 이 기념관을 기자들에게 먼저 공개한다고 해서 국정원에서 마중나온 버스를 타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약속시간에 정확히 도착했지만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서초구민회관 앞은 원래 시내교통이 편리하고 고속도로가 가까워 각종 전세차량을 타기 위한 만남의 장소로 주로 사용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노선버스 외에는 일반버스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25인승 미니버스가 한 대 도착하더니 문이 열렸다. 국정원 직원 한 사람이 내려 기자들을 버스에 태우자마자 황급히 출발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신분확인을 하는 동안 버스는 국정원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서초구민회관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국정원 직원은 "아, 아직 기자 한 분이 안 오셔서 그 분까지 태우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주정차 단속이 심해서요. 5분 넘게 서 있으면 바로 걸립니다."

매우 당연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지만, 이 얘기를 들은 한 경험 많은 기자는 "허어. 세상 많이 변했구먼"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중정(중앙정보부)',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을 생각하면 주차단속 딱지를 걱정하는 '기관원'이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사진1〉 안보전시관 입구

***국정원 '국민에게 다가가기' 안간힘…산업보안, 사이버범죄 강조**

지난 한해 'X파일 및 휴대전화 도청 사건', '국정원 진실위 발표' 등으로 홍역을 앓았던 국정원이 '탈권위', '탈정치'를 통해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안간힘의 하나로 지난 3개월 간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안보전시관'을 2일 재개장한다. 안보전시관은 지난 1999년 개장한 이래 12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던 곳으로 김승규 국정원장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리모델링을 지시했던 것.

리모델링된 안보전시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제테러', '사이버 범죄', '산업보안' 등을 강조한 대목. 각종 위장폭탄의 모형 및 테러발생 형태를 각종 영상자료 및 전시물로 구성해 놨으며, 사이버 범죄의 발생 경로, 보안시스템 등에 대해서도 한 눈에 보기 쉽게 전시해놨다. 국정원은 특히 '산업보안'에 대해 최근 산업스파이 적발사례 등을 재연 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주며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 관련 전시물도 상당한 변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대간첩 임무에 대한 강조보다는 북한의 각종 생활물품을 전시하고 북한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등 북한을 '소개'하는 데에 큰 비중을 뒀다. 특히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교환한 6.15 남북공동합의문 사본을 전시하고, 이 기사를 다룬 북한 로동신문과 북한 잡지를 함께 보여주는 등 남북화해 시대에 걸맞는 안보전시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을 소개한 코너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국정원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정보기관'을 모토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CIA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을 모토로 삼고 있으며, 프랑스 국토감시국(DST)의 모토는 '음지에서는 엄격하게, 양지에서는 명철하게'다.

국정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목도 흥미롭다. '역사 속의 정보활동' 코너에는 고려시대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붓통에 몰래 숨겨 들여온 문익점에 대해 "위장수단 활용으로 산업기밀 수집에 성공"이라고 기술했고, 조선시대에 청나라를 둘러보고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에 대해 '목표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자신의 의도와 신분을 숨기고 정보 수집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는 부분은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사진2〉 추모비

이름도, 사진도 없는 46개의 별로 이뤄진 순직직원 추모비를 세워, 죽어서도 이름 석자 남길 수 없는 국정원 직원들의 애환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순직한 46명 중 이름과 사진을 남긴 유일한 이는 지난 1996년 귀가도중 아파트 계단에서 괴한에게 저격당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주재 최덕근 영사의 영정뿐이었다.

***역대 기관장 사진 한 눈에‥김종필, 김형욱, 이후락, 김재규, 전두환…**

또한 역대 원장의 사진이 걸린 벽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 군사정권 시대 인물의 역사가 정보기관의 역사였음을 한 눈에 느끼게 된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1대 김종필 씨를 시작으로 4대 김형욱, 5대 김계원, 6대 이후락, 8대 김재규를 거쳐, 신군부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9대 이희성, 10대 전두환, 11대 유학성, 13대 장세동 씨 등의 얼굴이 눈에 띈다. 그야말로 국정원이 '권력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어린이들을 위해 '트로이 목마'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고, 특별전시실에서는 '스파이메일' 보내기, 홀로그램을 통한 인터랙티브 영상게임 코너 등을 마련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렸다. 국정원은 소풍 등 학생 단체관람을 위해 주변 헌인릉(조선 제23대 순조와 그의 비인 순원왕후 김 씨의 능)과 연계해 역사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탈북자 및 산업보안 초청강연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성인의 경우에는 운이 좋으면 권총 실탄사격을 체험할 수도 있다.

〈사진3,4〉산업보안-인터렉티브

관람은 10인 이상의 단체관람이 원칙이며, 가까운 곳은 셔틀버스를 서비스하기도 한다. 안보전시관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오후 6시에 개방하며 문의 및 관람 신청은 02-3461-6613 또는 국정원 홈페이지(www.nis.go.kr)를 참고하면 된다.

요즘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테마파크 수준은 아니지만, 부담 없이 들러 구경하기에는 볼 거리들이 제법 많다.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는 "국정원에 놀러간다"는 말 자체로도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국정원 직원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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