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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이 또 다른 변명을 낳다

박근형의 새만금 리포트 <23>

***변명이 또 다른 변명을 낳다**

농업기반공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통일을 대비해서라도 우량농지의 확보는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 국민 1백50만명이 1년 동안 먹을 쌀을 공급할 수 있는 농지를 확보하기 위한 새만금사업은 당초 계획대로 계속 추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농림부장관과 민간전문가 15인으로 구성한 중앙농정심의회는 2000년 10월 이런 논의를 했다.

2001년 10월 쌀 재고(在庫)가 1천만석이 될 전망이다. 식생활 변화로 우리나라 쌀 소비량은 1980년 1백32.4㎏에서 2000년 93.6㎏으로 줄었다. 단립종 쌀 먹는 나라마다 쌀이 남아돌고 있다. 2004년이 되면 WTO재협상에서 쌀 수입 전면 개방이 불가피하다. 쌀 과잉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쌀이 남아돌고 있다. 쌀 수입 전면 개방을 앞두고 쌀 증산정책을 포기하고 휴경지 보상제도를 실시하겠다는 판국이다. 남아도는 쌀을 돼지 사료로 주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1993년 말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때 쌀 시장 개방을 10년간 미루는 조건으로 쌀 생산 감산(減産)에 합의해 놓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채 8년간 허송세월을 보냈다. 지금 한국에서 쌀이 남아도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농지조성을 위해 새만금간척사업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고 변명한다.

동아건설은 1980년 농지확보를 명분으로 김포 앞바다 갯벌 1천1백14만평을 매립, 1991년 1월 완료했다. 이 중 6백27만평을 수도권쓰레기매립지로 정부에 양도했다.

정부가 1994년 매립지에서 5㎞ 떨어진 영종도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계획을 확정하자 동아 측은 농업용수 확보가 어렵다며 5년간 7차례 용도변경 개발계획서를 건교부에 제출했다.

동아건설과 농림부의 갈등은 1998년 극에 달했다. 4월 16일 당시 김성훈 농림부장관이 업무보고 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식량안보에 직결된 우량농지 보존을 위해 적극 힘 쓰겠다”고 밝혔으며, 국무조정실은 4월 20일 용도변경 불가를 밝혔다.

그러나 동아건설은 같은 달 27일 40억$ 규모의 외자를 유치해 김포매립지를 산업 및 관광단지로 개발하기 위해 외국 투자자문 용역회사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사와 외자유치 중개계약을 체결했다.

그러자 같은 날 농림부 김동태 차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이 17일 김성훈 장관을 방문해 용도변경을 사실상 포기하기로 약속했었다”며 “정부에 대한 기만이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태씨는 새만금사업 강행발표(2001. 5. 25) 시 농림부장관이었다. 그리고 김포매립지를 도시용지로 전환하기로 공식 결정(2001. 11. 24)할 때도 농림부장관이었다.

결국 서울은행 대출금 6천억원을 갚을 길이 없었던 동아건설은 99년 8월 공시지가의 66%인 6천3백55억원을 받고 김포매립지를 농어촌진흥공사(농업기반공사의 전신)에 팔았다.

1998년 당시 농림부장관이었던 김성훈씨는 2002년 1월 2일 시민의신문 시무식 초청강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김포매립지를 용도변경하라는 압력은 엄청났습니다. 저만 빼고 다른 장관들이 농사도 못 짓는 농지이니 용도변경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언론들도 용도변경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용도변경 하라고 압력을 넣은 것은 말도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끝까지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2001년 11월 24일 경제장관회의에서 김포매립지를 농업도시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농지로 사용하기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농지확보를 외치며 새만금사업 강행을 결정한지 6개월 뒤 일이었다.

농촌진흥청 손정수 차장은 “1999년 이미 농림부 안에서 6355억원 매입가(買入價)를 국민혈세로 보충하기보다 용도변경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며 “당시 농림부는 동아매립지를 사고 싶어서 산 것이 아니라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빚어진 고육지책이었다”고 변명했다.
그는 아울러 “동아매립지는 특수한 상황이고, 이제 대규모 영농만이 경쟁력 있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새만금사업은 계속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림부 농촌용수과 전경구 사무관은 “1998년 농림부가 동아건설의 용도변경 요구를 반대한 것은 기업에 특혜를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며 “1999년 3월 25일 매입 발표 당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농림부 입장을 밝혔었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부가 1997년 IMF금융위기 이후 매립원가가 아닌 고가(高價)로 김포매립지를 사들인 것 자체가 동아건설에 대한 특혜적 구조조정 지원이었다. 그런데 이제 농사짓지 말고 도시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002년 7월 15일, 김대중 정부는 김포매립지를 ‘동북아 비즈니스 경제특구’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농림부는 2002년 4월 18일 다시 한 번 어이없는 결정을 내렸다. 쌀 공급 과잉을 해소하고 수급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벼 재배면적을 2001년 1백8만3천㏊에서 2005년까지 95만3천㏊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2012년 새만금간척으로 만드는 농지가 2만8천3백㏊인데, 4년간 13만㏊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식량안보는 어디로 갔는가!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전라북도 사람들이 대부분 새만금사업을 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만금갯벌 관련 사진자료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허철희씨는 2002년 2월 5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부안군민 95%는 새만금사업을 잘 해야 부안이 잘 산다고 말해요. 한 마디로 들떠있는 거죠. 부안군민들은 자기 군이 전국에서 가장 낙후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 노태우가 1987년 엄청난 프로젝트를 제시했어요. 부안군민 대부분이 포항이나 울산 같은 대단위 공단이 생길 것으로 여겼고, 당시 언론들은 부산항만한 국제항구가 생긴다고 선전했었어요. 새만금사업이 어느 면으로 봐도 현실성 없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지역여론은 강행해야 한다는 쪽이니 참 안타까워요. 나는 2년간 부안 형님댁에 갈 때마다 새만금사업 부당성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지난달 형이 하는 이야기도 변함없었어요. ‘쓸데없는 짓 그만해라. 간척하면 항구ㆍ공단 들어선다더라. 똑똑한 사람들인데 무작정 공사하겠느냐.’ 심지어 저 보고 ‘영남권 사주를 받았느냐’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새만금의 처절한 모습을 사진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제 소임이에요. 산이 사라지고 갯벌도 사라지면서 주민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속 기록할 겁니다.”

산업단지라는 말도 안 되는 허상만 잔뜩 선전하는 전라북도는 이렇게 주장한다.

“대형사업을 시작할 때는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작한지 이미 10년이나 지난 사업을 왜 지금에 와서야 중단하라고 합니까? 중단에 따른 문제들은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중국 고사에 기호난하(騎虎難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 도중에 내리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새만금사업을 현 상태에서 중단한다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더 못합니다.”

건설업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었다. 살기 편한 집을 지어주고,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도 지어주고, 도로도 닦아주었다. 그러나 처음의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자기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끝없이 건설을 한다. 공무원들도 구조조정 당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한다. 한 번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는 쉽다. 그러나 도중에 내리기가 정말 어렵다. 국가권력과 정부의 지배와 보호를 받는 공사(公社)와 건설회사와 이에 아부하는 학자들은 ‘건설마피아’를 형성해 끝없이 국민들을 속이며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이 중에서 새만금간척사업은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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