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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와 샤넬백, 이렇게 닮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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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와 샤넬백, 이렇게 닮을 수가!

[프레시안 books] 잭 터너의 <스파이스>

성서에 보면 예수가 태어날 때 동방 박사 세 사람이 별빛을 따라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온다. 어릴 적 이 대목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생뚱맞은 동방 박사 세 사람이 멀리 서쪽으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오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오는 예물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다. 황금이야 어디에서나 귀한 것이니 이상할 것이 없지만 유향과 몰약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오랜 동안 가시지 않았다.

잭 터너의 <스파이스>(정서진 옮김, 따비 펴냄)를 읽으면서 첫 번째로 떠올린 이미지는 바로 그 동방 박사 세 사람이었다. 신비함을 간직한 세 현인들이 들고 나타난 물건은 에덴의 동쪽에 이상향이 있다고 믿은 지중해 유역 사람들이 무척 귀하게 여긴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서쪽에는 없고 동쪽에는 흔한.

사실 서양에서 그 신비한 향료가 주는 경제적인 이득 때문에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서양의 관점에서 신대륙이 발견되고 세상의 대변혁이 이루어진 것은 세계사에서 익히 들어온 주제이다. 하지만 그 향료와 향신료가 대체 무엇이었기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오랜 항해로 괴혈병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먼 길을 나섰는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지울 수가 없다.

▲ <스파이스>(잭 터너 지음, 정서진 옮김, 따비 펴냄). ⓒ따비
후추와 같은 향신료가 없다고 해서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며, 향신료의 맛에 중독성이 강하다고 해서 그 중독이 목숨과 바꿀 그 무엇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다. 중세의 비위생적인 고기 때문에 비싼 후추를 쳐서 고기를 먹어야 했다면, 차라리 신선한 고기를 얻는 일에 더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그 향신료는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어떤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향신료의 다른 가치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주된 관심사이다.

사실 향기와 맛을 내는 향신료라는 식물은 세계 어디에도 자란다. 풀과 나무와 열매들은 번식을 위해 유혹하거나, 아니면 곤충과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화학적 무기들을 장착했으며, 그것이 외부로 표출된 것이 바로 향기나 맛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후와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향기나 맛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디에서나 주변 식물들로부터도 쉽게 고기의 비린 맛을 완화해줄 식물들을 찾을 수 있었으며, 이를 요리에 응용할 수 있었다.

물론 열대에서 거센 곤충의 습격에 대비해야 하는 후추, 육두구, 정향처럼 맛과 향이 강하지는 않았어도 사실 고기 요리에 응용할 수 있는 충분한 맛과 향을 가진 식물들은 그다지 구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가 요즘 고깃국을 끓일 때에 마늘이나 파 정도만으로도 쉽게 고기의 누린내 정도는 제거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기에 맛과 향만을 가지고 향신료에 대한 중독성을 논하는 것은 그다지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일부 귀족층에 국한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유럽의 향신료 중독증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책은 유럽의 향신료 중독증이 단순한 맛과 향에 대한 탐닉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역사와 문헌으로부터 면밀하게 재검토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이 책은 유럽의 향신료에 대한 중독은 단순히 중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향신료의 사용은 비록 상류층들에게 국한된 것일지라도 이미 아주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었으며, 홍해를 통해 인도양을 따라 인도로 가는 무역선들이 고대에도 이미 존재했으며, 많은 양의 향신료를 수입하고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이때부터 벌써 동양의 신비함을 간직한 향신료가 그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의 싹을 배태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향신료는 단순히 음식의 맛을 내는 데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식품의 부패 방지, 신성한 종교 의식, 시체의 부패 방지와 악취 제거, 의약품의 용도, 부유층의 자기 과시의 용도로 그 쓰임새를 무한하게 넓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바탕이 있었기에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향신료의 수입 경로와 가격은 변했을지 몰라도 서구에서의 주된 향신료 용도는 이미 정해졌던 것이다.

유럽의 향신료에 대한 탐닉은 단순한 맛이니 향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특별한 용도에 기대고 있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종교의 의식이나 부패의 방지, 약으로의 효과, 최음제로서의 향신료와 같은 용도는 그 특별한 향과 맛으로부터 유추해낸 것들일 것이다. 물론 일정 정도의 부패 방지 외에는 실증된 효과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이는 현재도 로열젤리와 같은 신비한 것을 대하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굳세게 남아 있는 미망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가 있다고 믿었어도 이 용도만으로의 향신료 사용은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향신료의 가장 큰 소비처는 인간의 과시욕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화폐의 대용으로 쓰일 만큼의 귀중한 향신료를 마구 소비할 수 있을 정도의 부자라면 지극히 일부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왕이거나 고위 성직자이거나, 아니면 돈 많은 귀족층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벌린 부의 과시를 위한 향연에 그 놀라운 재료 물목에는 엄청난 양의 향신료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 향신료들은 재료의 맛을 돋우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향연 주최자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사실 그 향연에서 실제 음식의 맛은 지독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맛도 없는 자랑을 위한 눈요기의 잔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아도 그것이 향신료가 아닐 따름이지 부의 과시를 위해 표현되는 사치에는 끝이 없다. 비싼 가격과 호화로운 분위기를 자랑하지 맛은 한참을 미치지 못하는 음식점이 지금 서울에도 어디 한두 곳이랴.

그래도 비싼 맛에 찾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는 그 때보다 부의 과시를 위한 도구들이 더욱 늘어서 옷과 장신구와 차와 같은 신분의 표시 물목이 더 늘었다고 볼 수 있다. 거리에 범람하는 명품들은 과시가 아니라면 또 다른 무슨 용도가 있겠는가. 그러니 중세의 왕과 귀족 성직자들의 미망을 우리가 탓할 일도 아니다.

결국은 이 과시라는 미망들 때문에, 또한 그 향신료 운송의 길목을 차지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 때문에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 세상의 역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대항해 시대가 열린 다음에도 이 미망의 역사는 계속 이어진다. 제국주의의 화살이 동방과 신대륙을 유린하고, 아프리카인을 잡아 머나 먼 신대륙에서 노예로 부리는 더 큰 미망의 시대로 지속되고, 몰루카 제도를 점령한 네덜란드는 향신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재배한 향신료를 불태우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향신료의 역사에 있어서 상식적으로 흔히 범하는 오류인 단순한 맛과 향기에 대한 이국적인 이끌림뿐만이 아닌 인간의 미망과 탐욕과 갈망이 역사에 있어서 어떻게 작용하였는가를 풍부한 자료를 제시하며 조근 조근 설득하는 데에 있다. 역사학자들의 향신료가 역사에서 행한 역할과 그 과정과 경로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연구했지만 사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근본적인 인간 욕망의 많은 문제를 역사가 간과했음을 느낄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향신료의 역사에서 흔히 간과했던 과시라는 탐욕은 지금 이 자본의 시대를 대입해도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은 왜 그리 이상향에 가까운 곳이었을까 하는 문제는 아마도 동쪽에서 전해오는 향신료의 신비로운 향기를 흠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와 인도의 향료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상향이 그곳에 있으리라고 짐작하게 한 지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수많은 동방에 대한 환상이 생겨났을 것이다. 성서의 동방 박사의 이야기나 에덴의 동쪽도 그 환상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반대로 동쪽에는 서양에 대한 환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구가 이루어놓은 자본과 문명의 휘황찬란함에 거꾸로 동양인의 눈에는 서양이 새로운 환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동방이 거의 서구를 따라잡은 지금에서 동방인들은 그 서양인의 미망의 역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반추할 필요가 있다. 다시금 그러한 미망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의 하나는 왜 우리 귀에 익숙하고 이미 일반화된 육두구, 정향 또는 계피와 같은 이름을 버리고 넛메그, 클로버, 시나몬이란 이름으로 번역했는가 하는 것이다. 계피의 경우 유럽이 수입했던 열대의 계피와 온대에서 자라는 계수나무의 껍질하고는 학명조차 다른 나무여서 그런 구분을 확실히 하고자 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실론 계피'와 '중국 계피'라는 간단한 말로 환치할 수 있다. 지금 이들 향신료가 우리 생활과 친숙한 향신료가 아니었다 해도 육두구와 정향은 우리도 예전부터 사용한 향신료이다. 또 몇 군데의 인명의 영어식 음독 표기가 귀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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