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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공격한 가습기…당신 폐가 위험하다!

[안종주의 '위험사회'] 올해의 환경 재앙

이제 한 해도 저물어간다. 올해는 유난히도 생명을 빼앗고 건강을 위협한 위해 사건이 많았다. 아마 앞으로 올해처럼 재앙 수준의 위해성 사건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해를 생전에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위험 사회의 한복판에서 조마조마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 한해가 아닐까 싶다.

환경 보건 시민 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12월 20일 연 '2011 환경 피해 시민 대회'에서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 올해의 5대 환경 사건'으로 (1)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2)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구제역 가축 살처분 사건 (4)학교 운동장·프로야구장 석면 사건 (5)시멘트 공장 주민 집단 진폐증 발병 사건을 꼽았다. 주한 미군 기지 환경오염 사건, 서울 시내 도로 방사능 오염 사건, 휴대폰 발암 가능 물질 선정 등은 5대 사건에는 들지 않았지만 역시 눈길을 끈 사건들이었다.

지난 3월 발생해 아직도 진행 중인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1986년 옛 소련에서 발생했던 최악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능가하는, 인류 최악의 핵발전소 방사능 물질 누출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구제역 사건은 전국을 소·돼지 등 동물의 무덤으로 만들었고 1000만 마리에 달하는 동물 대학살(살처분) 과정에서 그들이 울부짖었던 그 비명소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이들 재앙은 이웃나라에서 일어났거나 동물들한테서 벌어져 대한민국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 않았지만(물론 구제역 파동 때 축산 농민이 자살하거나 방역 작업에 투입된 인력이 과로로 여럿 숨진 간접적 피해는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많은 인명을 직접 앗아가고 그 피해자 수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가 '위험 사회' 연재 칼럼을 통해 이미 두 차례 살펴보았음에도 최근 밝혀진 사실을 통해 재조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임산부와 갓난아이들의 집단 사망을 가져온 가습기 살균제 환경 재앙은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biocide, 살균제) 재앙 사건으로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다. 이는 단언컨대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화학 물질에 의한 위해성 사건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먼저 언급될 것이며 환경 독성학 교과서에 실리게 될 사건임에 분명하다.

일본에서는 1950~60년대 유기 수은 중독에 의한 미나마타병과 카드뮴 중금속 중독에 의한 이타이이타이병이 발생해 수많은 일본인들이 공해병의 제물이 됐다. 1950년대 말 유럽에서는 입덧방지제로 사용된 탈리도마이드 약물로 인해 1만 명에 가까운 중증 기형아가 태어나는 비극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2011년 가습기에 살균제를 사용한 일로 현재까지 43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심각한 손상을 입은 바이오사이드 재앙이 덮쳤다.

한국의 바이오사이드 재앙은 사망자의 수나 중증 질환자의 수의 면에서는 미나마타병과 이타이이타이병 그리고 탈리도마이드 약화 사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은 편이지만 아직 이들 사건과 달리 끝난 것이 아니라 그 피해 규모 파악이 진행 중이며 지난 13년 동안 874만 명(전체 인구의 18.2퍼센트)가량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왔다는 점에서 실제 위험 노출 인구는 그 어느 사건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

다시 말해 경미한 피해, 예를 들자면 폐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 기능, 즉 호흡 기능을 담당하는 허파꽈리(폐포)가 약간이라도 손상을 입은 사람의 수는 최대 874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정말 놀라운 사실이 이번 사건에 숨겨져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들 살균제 노출자 가운데 대다수는 확연한 증상이나 질병으로까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폐 기능에 크고 작은 손상을 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 시민 단체 등에 접수된 가습기 피해 사례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유형의 사건들은 모두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사망자가 100이라면 중증 질환자를 비롯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은 그것의 몇 배, 몇 십 배에 이를 것이고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 수는 다시 그것의 몇 십 배 수준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란 정상적인 폐 기능을 100으로 보았을 때 살균제 노출로 예를 들자면 이것이 90~99 수준 등으로 떨어진 것을 말한다. 우리 몸은 이런 정도의 폐 기능 저하를 일상생활을 하면서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단지 노화나 몸이 약해져 폐기능이 약간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폐의 말단 부분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그린 입체 그림. ⓒKBS

가습기 살균제 집단 사망이라는, 생활 화학 물질에 의한 환경 재앙은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탓에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그 '살인범'과 '살인 수법'을 밝혀낼 수 있었다. '희대의 살인마'를 잡아 추궁한 결과 그 원인은 구아니딘(Guanidine)과 이소티아졸리논(Isothiazolinone) 계통의 화학 물질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PHMG(옥시 레킨벤키저의 '옥시싹싹', 롯데마트의 '와이즐렉', 홈플러스의 '홈플러스', 코스트코의 '가습기클린업' 등), PHG(Butterfly effect Inc의 '세퓨'), CMIT(애경산업의 '애경가습기메이트', 이마트의 '이플러스' 등)등이다.

이들은 고분자 물질이다. 용액(물) 속에 녹아 있는 형태라면 이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포스페이트)와 같은 것이 흡입 가능한 미세 입자 형태가 된다면 흡입 독성은 문제가 될 수 있고 눈에 대해서도 심한 자극성을 보인다. 선진국에서도 이런 성분들을 물건을 소독하기 위한 세정제로 사용하거나 수영장이나 화장품류에 살균제 또는 방부제로 미량 첨가해 사용해왔다. 이런 용도로 사용할 경우 인체는 구강 섭취 또는 피부 접촉에 의해 이들 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데 이런 노출로 인한 위해성은 사실상 무시할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흡입의 경우는 그 독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를 청소하거나 닦는데 사용하는 세정제로서가 아니라 이번에 문제가 된 것처럼 아예 가습기 물에 일정량 타서 이를 미세입자(에어로졸)로 만들어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형태로 사용됐기 때문에 인체에 치명적이 되었다. 정부와 전문가 등 어느 누구도 이런 점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의 수사(역학 조사) 중간 발표를 보면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들은 환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조건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장시간 고농도로 3~4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변을 당했다. 역학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때 가습기에서 발생하는 에어로졸은 20~100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정도의 호흡성 에어로졸로 확인됐다. 결국 살균제 성분이 가습기를 통해 폐 깊숙이 이동해 폐 조직이 직접 고농도의 살균제 성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던 것이다.

독성 전문가들은 유해 화학 물질의 경우 노출 경로에 따라 그 독성이 천양지차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서는 지난 10여 년간 아무도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 물질인 석면의 경우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들의 공기 중 규제 농도는 1리터 당 10개이지만 먹는 물(음용수) 중 규제 농도는 리터당 700만 개이다. 흡입과 섭취(구강) 규제 농도가 이처럼 70만 배나 차이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흡입 독성이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갓난아이 호흡기로 들어가는 모습을 입체 영상으로 표현했다. ⓒKBS

이번 가습기 살균제 재앙의 주범이 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한 기업이라면 종범은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허용해주고 관리하지 못한 정부이다. 전문가들 또한 범죄 현장을 그냥 지나쳐버린 무심한 방관자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이런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터져 나온 것은 제품으로 인한 국민 위해에 대해 기업들이 불감증에 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우리처럼 살균제를 가습기에 넣어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들 물질에 의한 흡입 독성 자료가 부족했고 최근 이들 물질의 흡입독성이 일부 보고됐기 때문이다. 충북대학교 김용화 교수는 "이들 물질을 개발할 때 살균제 주 성분 용도 변경에 따른 안전성·위해성·독성학적 의미를 인지하고 검토하지 못해 한국에서 가습기 살균제 집단 사망 사건이 터졌으며 사전에 위해성 평가 단계를 거쳤더라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수사가 끝나고 판결이 내려진 상태가 아니다. '살인'에 가담한 다른 '범인'(다른 살균제)이 있을 수 있으며 이들에 의한 '범행'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살균제 성분이 가습기가 아닌 다른 곳에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환경독성보건학회 학술위원장인 이종현 박사는 지난 12월 12일 가습기 살균제를 주제로 한 환경독성포럼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세정제, 방향제, 탈취제, 물티슈 등 다른 부문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어 이들을 포함해 생활 화학 가정 용품에 사용된 다양한 화학 물질 성분을 조사해 위해성 여부를 정밀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지식경제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이른 시일 안에 '생활 화학 용품 안전 관리 종합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2012년 1월부터 방향제, 탈취제, 물티슈 등의 위해성 조사를 벌인 뒤 합성 세제, 표백제, 섬유 유연제 등에 대한 조사를 순차적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다.

'임금 행차 뒤 나발 부는 격'이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발은 불어야 하고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이왕 부는 나발 제대로 불어 국민들에게 확실히 알려야 한다. 외양간도 튼튼하게 고쳐 더는 국민의 고귀한 생명을 도둑맞는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이와 유사한 피해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기는 하지만 이런 미래의 문제가 아닌 가습기 살균제로 숨졌거나 그 후유증과 투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 몰라'하고 있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분노하고 있다.

현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집단 분쟁 조정 신청 등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는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소송을 벌일 경우 대법원 판결까지 3~5년이 걸리는데다 판매사의 경우 대기업이 많지만 제조·수입사의 경우 대부분 영세 기업이어서 승소한다 하더라도 보상받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정부는 "개별 소송을 하라"고만 말한다.

이번 사건이 법정 소송까지 갈 경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길고 긴 소송 기간 내내 억울하게 죽은 사람과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아픈 기억이 계속 되살아나 또 다른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한다. 또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정부도 피고 대상으로 삼을 경우 2009년 베이비파우더 석면 탈크 사건처럼 정부가 민간 기업과 2인3각이 되어 환자(사망자)와 그 가족(유족)에게 대응하는, 정말 꼴사나운 광경이 벌어질 가능성이 짙다.

아직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장관 또는 총리, 대통령 그 어느 누구의 공식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함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이런 식으로 이번 사건의 피해 보상 문제가 진행된다면 2012년은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해가 아니라 그야말로 분노를 증폭시키는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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