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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서울광장에 논을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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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서울광장에 논을 만듭시다!"

[프레시안 books] 이태근·천호균의 <농부로부터>

아랫동네 사는 한 젊은 농부는 사과 농사를 해서 5000만 원의 판매고를 올렸다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농약 값에 기계 값을 빼면 자기 인건비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농약 값이 얼마나 들고 일손이 얼마나 들었기에 5000만 원이 모자랄까?

농사를 지으면서 들어가는 비용은 농사 지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요즘 농사는 특히 그렇다. 사과 농사의 경우 2월부터 일이 시작된다.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전지 작업을 시작한다. 사과 가지 하나하나를 쓰다듬듯이 하며 가지치기를 하는데 전문 인력 하루 일당이 20만 원을 웃돈다. 사과나무를 파먹는 벌레를 잡기위해 살충제를 쳐야하고 가지 하나하나를 끈으로 묶는 작업을 한다. 가지가 햇볕을 잘 받아야 하므로 지주에 끈으로 일일이 매서 골고루 벌려준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카바릴수화제'라는 적과제를 쳐 줘서 적당한 개수의 열매만 남기고 다 솎는다. 그래야 사과가 굵다. 반사 필름 깔아서 사과가 고루 붉어지게 만들어야 하고 올처럼 추석이 이른 때는 불가피하게 지베렐린이라는 생장 촉진제를 뿌려줘야 추석 대목 출하가 가능하다. 거름을 주고 살균제, 착색제, 유화제를 뿌리는 것은 기본이다.

공사(工事)가 된 농사(農事), 공장이 된 농장

요즘 농사는 사람이 짓지 않는다. 기계가 짓는다. 과수뿐 아니고 채소 농사나 쌀농사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휴대폰 농법'이라는 게 등장했을까?

70대 할머니가 휴대폰 하나로 열 마지기 쌀농사를 짓는다. 못자리는 농협에 주문해서 묘판을 사 오고, 로터리는 물론 모심기는 기계를 부른다. 농약 치는 것도 대행 업자에게 맡긴다. 요즘 콤바인은 아스팔트에 깔개를 깔고 탈곡한 나락을 좍 널어준다. 아니면 건조기를 거쳐 알피시(RPC·미곡 종합 처리장)에 차떼기로 나락을 넘기면 농사 끝이다.

기계가 농사를 짓는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석유가 짓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농약이건 농기계건 기타의 농자재가 모두 석유다. 비닐로 대표되는 석유화학 제품이 농장과 농토를 뒤덮고 있다. 도시로 다 빠져나가버리고 주인 없이 텅 빈 집들이 을씨년스러운 농촌에 농약과 농기계와 석유화학 농자재가 농촌 노동력을 대체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

농약 회사, 농기계 회사, 기름 장사, 기계 회사, 전자 회사가 불황 없이 돈을 번다. 종자 회사, 사료 회사, 묘목 회사가 돈을 번다. 흉년이어도 그들은 돈을 번다. 올해의 배추나 무처럼 과잉 생산이 되면 다음 작물을 넣기 위해 농민은 시커먼 가슴으로 논밭을 갈아 엎어버려야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그들은 돈을 번다. 농업의 공업화가 심각한 수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1억 원 소득 농가가 5000가구니 1만 가구니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농가 부채는 줄지 않는다. 지난 7월부터 5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이 5일제 근무가 확대 실시되었다. 일요일은커녕 국정공휴일도 없이 일하는 농민은 비닐하우스와 시설 재배 덕분에 농한기도 없다. 가히 전 농민의 머슴화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업들에게 속박된 농업, 농민의 현실이다.

공장이 되어버린 농토는 끔찍한 후과를 치르고 있다. 농지의 사막화다. 농약과 비료를 넣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땅심'을 잃었다. 종자 회사는 이른바 다비성(비료를 많이 요구하는) 종자를 개발한다. 다 수확의 미명 아래 개발된 개량 종자들은 내성과 생명력이 취약하여 더 많은 농약에 의존한다. 그래서 종자 회사가 농약도 만든다.

새로 개발된 종자는 그 종자에 맞는 농약도 함께 개발한다. 우리나라 농약 수는 800종이 넘는다. 제초제만도 250종이다. 땅도 죽지만 농심도 매 마른다. 농약 잔류 검사나 토양 검사에서 검출 가능한 농약은 300종이 채 안 된다. 500여 종의 농약은 시료를 채취해도 검출되지 않는다. 고스란히 밥상을 오염시킨다. '생물 농축'에 의해 농사짓는 사람은 물론 모든 사람의 몸속으로 스민다.

"비싼 유기농은 부자 음식?"

▲ <농부로부터>(이태근·천호균 지음, 궁리 펴냄). ⓒ궁리

이태근 '흙살림' 소장은 말한다. <농부로부터>(궁리 펴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값 싼 관행 농법으로 지은 농산물은 물, 공기, 토양, 지구 온난화 등 사회 공공재를 파괴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부담지우고 있다고. 결코 싼 게 아니라고.

사실 그렇다. 아토피니 기관지 질환이니 발암률 증가나 성인병 등의 직간접 인과 관계가 공업화된 농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라에서는 물론 기업에서 이런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으니까 전문가들이 연구를 하지 못해서 그렇지 관행 농법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비용을 산출하면 유기 농산물 가격보다 비싸면 비싸지 절대 싸지 않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농업의 공업화는 농정 관료와 의료 자본의 협잡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염된 음식과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지출되는 의료비는 엄청난 수준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 종사자는 농기계 회사, 농약 회사, 종자 회사의 외판 사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비등하고 있는 식물 공장, 빌딩 농업은 그 선두에 있다. 우리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지만 농업 관련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정부 기관에서 하는 모든 농업 교육은 농약과 농기계와 종자 소비를 촉진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최근 상업화된 유기농 역시 마찬가지다.

이태근 소장의 주장에 토를 다는 사람이 있다. '쌈지농부'의 대표 천호균이다. '관행 농업'이 아니라 '화학 농업', '농약 농업'이라고.

이 두 사람의 대담을 기록한 <농부로부터>는 우리 농업의 현주소를 실감 나게 드러내 준다. 사회주의 문학에서 집단 창작을 통해 개개 작가의 역량을 사회화, 집단화하는 매력이 있듯이 관심 분야가 같은 두 색다른 전문가가 주제를 넘나들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전문가가 쓴 책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지니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판에 끼어들게 한다.

두 사람 다 핵심 주제들을 대화로 풀면서 저절로 고양되는 분위기에 힘입어 기발한 착상과 촌철살인의 현실 진단을 주고받는다.

특히 서울 인사동에 '쌈지길'을 만들었고 사회적 기업 '쌈지농부', 생태 문화 공간 '논밭예술학교'를 운영하는 천호균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논을 만들자고 한다. 이제 우리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으로 가야 한다면서 도시에 텃밭을 만들어 소외 계층에게 무상 분양하고 텃밭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한다.

문화라는 영어말의 '컬처(Culture)'도 원래는 경작하다는 뜻인 컬티베이트(Cultivate)에서 유래한 것이라면서 농부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여야 하고 그 본래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를 경작하자

몇 년 전부터 내가 일하고 있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는 '도시를 경작하자'는 표제를 걸고 도시 농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태근은 도시 농업의 의미를 더 심도 있게 풀어 놓는다.

도시 농업은 자기 밥상을 자기 손으로 차리는 차원을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의 텃밭 하나, 마음의 텃밭 하나씩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손길로 생명체를 가꾸면서 생명의 존귀함을 재인식 하고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를 도모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독일의 의사 다니엘 고트롭 모리츠 슈레버는 환자를 진찰하면서 처방을 이렇게 한다고 소개한다.

"밝은 햇볕을 더 쬐시고 맑은 공기를 마시세요. 푸른 채소 농사를 지으세요."

진정한 농부는 작물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것이라면서 기다림의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재앙을 불러 올 것이라고도 말한다.

내가 짧지 않은 기간 친분을 유지해 온 이태근의 말에 신뢰가 가는 것은 그가 평생을 흙을 살리는 농사에 전력해 온 것을 알기 때문이다. 흙이 살아야 농사가 살고 농민이 산다는 것을 그는 일찌감치 터득하여 20여 년을 홀로 난관을 헤쳐 온 시대의 사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가 어떻게 살아 왔느냐가 그 말의 무게를 더해주는 법이다.

밥 한 공기 쌀값이 자판기 커피 값보다 싼 현실을 개탄하기에 앞서 도시를 농촌이 먹여 살리고 있다는 사실부터 잊지 말아야 한다는 <농부로부터>라는 책 이름은 천호균이 만든 매장 이름이다. '흙살림'의 유기 농산물 전문 매장이다. 이처럼 농민의 친구를 자처하는 도시인들이 많이 나오기를 염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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