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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폐 질환, 당신의 가습기를 의심하라!

[안종주의 '위험사회'] 여름이라서 다행이다

올 봄부터 임신부와 갓난아기 등이 잇따라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들은 폐 조직이 빠르게 섬유화가 진행되고 폐렴까지 겹쳐 결국 호흡 기능이 정지돼 죽어갔다. 처음에는 바이러스나 병원성 세균에 의한 감염 때문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항바이러스제나 항생제 등이 무용지물이었다. 전염성도 나타나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와 감염학자는 이 괴질은 전염병이 아닌 것으로 지난 5월 결론 내렸다.

미생물에 의한 감염병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이번에는 환자나 사망자들이 처한 공통점을 찾아 나섰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가습기를 오랫동안 사용했으며 가습기에 살균력을 지닌 세정제를 투입해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또 가습기 살균제를 밀폐된 공간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사람일수록 그 피해가 심각했다. 이들 가습기 살균제를 세포실험 즉 생체 외(in vitro) 실험을 통해 독성을 조사한 결과 세포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는 2004~2011년 한 의료 기관에 입원한 환자 중 원인 미상 폐 손상 환자 정의에 부합한 28건 가운데 조사에 동의한 18건을 대상으로 환자-대조군 역학 조사를 지난 3개월간 실시했다. 그 결과, 폐 손상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비(교차비)가 47.3(신뢰구간 6.0~369.7)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8월 31일 즉각 이 역학 조사 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이는 원인 미상 폐 손상 환자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견줘 무려 47.3배나 이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폐암 사망 위험비가 10이고 석면 노출자와 비노출자의 위험비가 5이다. 따라서 47.3이라는 위험비는 그 인과 관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생쥐 등을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 즉, 생체 내(in vivo) 실험, 특히 사람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할 때와 같은 조건에서 흡입 독성 실험을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결과를 얻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질병관리본부는 대략 3개월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질병관리본부는 그 사이 생길지 모를 피해를 막기 위해 사전 예방 차원에서 긴급히 살균제(세정제)를 제조·판매하는 회사와 수입·판매하는 회사에 통보해 판매 중단과 제품 회수 조처를 권고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날 기자 회견 때 세정제의 성분이나 회사 이름은 숨겼다. 범인이 세정제로 확정되지 않은데다 세정제 성분 가운데 독성이 있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없는 것도 있을 수 있어 만약 폐 세포 독성이 없는 데도 있는 것으로 잘못 나갈 경우 특정 회사가 심각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이들 세정제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이를 폐기하거나 사용을 중단하면 더는 세정제 성분에 폐가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오랫동안 사용해온 사람이다. 만약 세정제의 세포 독성 때문에 사망자와 폐 질환자가 나온 것이 확실하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상당 기간 큰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는 말할 것도 없고 폐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죽음 일보 직전에 기사회생한 환자와 상당 기간 폐 질환의 고통을 겪었던 환자의 경우 비정상적인 폐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폐 조직은 간이나 신경 세포와 달리 재생이 되지 않는다. 또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폐 손상을 상당히 입은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대개 이런 유형의 폐 질환의 경우 사망자가 10명이면 심각한 폐 손상을 입은 사람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며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환자는 수백 명 내지 수천 명에 이를 수 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의 사람은 이보다도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성격의 질환자는 피라미드 구조를 하고 있어 사망자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1987년 우리나라 공식 공해병 환자 1호였던 서울 상봉동 연탄 공장 주변 주민 박길래의 진폐증의 경우에도 시작은 한 명이었지만 1988년 상봉동 연탄 공장 주변은 물론이고 서울 시내 연탄 공장과 저탄장 주변 주민을 조사한 결과 10여 명의 진폐증 환자가 곧바로 쏟아져 나왔다. 1988년 터져 나온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환자의 경우도 처음에는 4명에 불과했으나 몇 년 사이에 1000명 가까운 사람의 중독 환자가 나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밖에도 충청남도 홍성군 옛 석면 광산 주변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석면폐증과 석면 암에 걸린 것과 1981년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미국에서 발생하자마자 삽시간에 세계 곳곳에서 환자가 곳곳에서 발견된 것 등 전염병과 질병의 역사에서는 이처럼 피라미드 구조를 한 질환자가 서서히 물위로 떠 오른 경우가 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최초로 알려진 사례의 경우도 실은 최초가 아니라 우리의 부주의 또는 미숙함으로 실제 환자가 많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놓친 역사적 사건이 종종 있었다.

에이즈의 경우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최초의 환자가 보고됐지만 전염병 역사가들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 결과 1960년대 중반부터 환자들이 계속 나왔음을 증명했다. 원진레이온의 경우도 1980년대 초반부터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남 홍성군 석면 광산 주변 주민들의 경우에도 이미 1960년대부터 곳곳에서 석면 질환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숨져간 정황이 드러났다.

가습기 세정제가 범인일 가능성이 큰 이번 사건의 희생자도 실은 올 봄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부터 희생자와 피해자가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이미 올 봄 피해자가 잇따라 발생했을 때 의사들이 증언한 것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다만 정확한 역학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발생 규모와 최초의 발생 시점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가습기는 세정제를 가습기물에 투여하지 않거나 유해 성분이 들어있지 않고 유해 미생물이 없는 순수한 물로 가습을 할 경우에는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세정제의 경우도 미세한 입자 형태로 흡입해 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인체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세정제 성분이 피부에 묻어도 인체에 문제가 될 만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둘의 잘못된 만남이다. 다시 말해 독성이 있는 세정제 성분이 미세한 입자를 만들어내는 가습기 안에 들어갈 경우 미세한 독성 입자가 만들어져 이것이 폐 깊숙이, 즉 허파꽈리(폐포)까지 들어갈 경우 허파꽈리 세포에 손상을 줘 폐의 섬유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이는 심각한 폐 손상으로 이어져 호흡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세정제가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질 일이 사실상 없다. 세정제를 가습기를 닦아내는 데만 사용하거나 분무기로 뿌리기만 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세정제가 원인 미상 폐 손상 질환의 원인으로 확정되면 가습기 물에 세정제를 일정량을 섞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이 사용하게 만듦으로써 물속에 세정제 성분이 녹아들어가고 이것이 가습기에 의해 미세한 입자로 바뀌면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면 된다.

가습기 살균제 국내 시장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7년 처음 국내 시장에 나와 현재 연간 판매량은 약 60만 개이며, 시장규모는 판매액 기준으로 약 2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불똥이 전체 살균제 시장과 가습기 시장으로까지 튈 경우 업계가 받을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이런 점을 염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보다 확실한 인과관계에 대한 역학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회사 이름과 세정제 성분 등에 대해 익명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민 단체나 소비자 단체, 일반 시민들은 이에 대해 불만을 품고 역학 조사 중간 단계에서도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낱낱이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는 동물 흡입 독성 실험과 위해성 평가 등 추가 조사를 진행하는데 최소 3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 일본 과학자가 살균제 성분인 디데실디메틸염화암모늄(DDAC)을 쥐의 폐 세포에 투여한 뒤 7일째(C와 D)와 20일째(G와 F) 모습.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폐 손상 정도가 확대되었음을 볼 수 있다. ⓒelsevier.de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국내 가습기 살균제(세정제)로 쓰인 화학 물질은 4가지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포스페이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린(CMIT), 메틸이소티아졸린,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디움이다. CMIT는 접촉성 피부염에 대한 보고가 있다. 또 세포 독성 실험에서 호흡기 영향이 발견되어 호흡기 독성 확인을 위해 동물실험이 필요하다고 언급되었으나, 추가적인 연구 보고는 없다.

대개 세정제(살균제)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세포막이나 껍질에 영향을 주어 이들을 죽인다. 만약 세정제 성분이 폐 속에 들어오게 되면 폐 세포도 손상을 입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세포막이 손상돼 폐 섬유화가 진행되며 만약 많은 양의 세정제 성분이 폐 속에 들어오게 되면 섬유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폐 섬유화가 일어나는 대표적인 질환은 1950~70년대 우리나라에서 직업병의 대명사처럼 여겼던 진폐증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석탄을 캐는 탄광 광부들이 잘 걸리는 탄폐증이고 이밖에도 방직 공장 노동자들이 걸릴 수 있는 면폐증, 석면을 다루는 사람이 고농도의 석면 섬유에 노출돼 생기는 석면폐증, 용접공들이 효과적인 특수 가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용접을 하면서 금속 증기(흄)를 다량 들이마셔서 걸리는 금속흄폐증, 보석가공 노동자들이 연마 과정에서 규소 가루를 잔뜩 들이마셔 걸리는 규폐증 등이 모두 진폐증의 일종이다.

이들 금속 증기나 석면과 같이 미세한 물질들이 코털이나 기관지 섬모에 걸리지 않고 폐 속에 들어가면 우리 몸의 뛰어난 방어 군대인 면역 세포가 즉각 출동한다. 대표적인 것이 대식세포(마크로파지)인데 이 면역 물질은 석면 등을 붙잡아 녹이거나 무해화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장렬하게 전사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대식세포와 석면, 금속흄 등이 엉겨 붙어 허파꽈리 세포에 상흔을 내게 되어 섬유화가 진행된다. 한번 진행된 섬유화 현상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래서 진폐증은 불치병이다. 유일한 희망은 다른 사람의 깨끗한 폐를 이식 수술 받는 것인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번 원인 미상 폐 손상 환자 가운데 일부만 폐 이식을 받고 겨우 살아남았다.

인간의 폐에는 대식세포와 같은 막강한 능력을 지닌 면역 군대가 있지만 이들이 천하무적은 아니다. 담배 연기나 미세 먼지, 중금속, 병원균과 병원성 바이러스, 그리고 오존, 살균력을 지닌 화학물질 등 유해 물질이 미세한 입자에 들러붙거나 각종 연기로 폐 깊숙이 들어오게 되면 폐 조직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거나 기능 장해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폐에 유해 물질이 들어갈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가습기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가 나오기 전에 우리는 집 안에 빨래를 걸어놓거나 젖은 수건을 걸어두어 습도를 조절하거나 화분 등에 식물을 키우면서 습도를 조절해왔다. 하지만 이는 매우 번거롭다. 가습기처럼 편리한 물건도 없다. 하지만 가습기를 매일 청소하기도 귀찮다.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고 물때가 끼지 않도록 해준다는 살균 세정제가 등장해 이런 수고를 덜어주었다.

하지만 미세한 세정제 입자가 우리의 건강에 치명상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 사용한 살균제가 우리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이는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정부 당국은 아직까지 세정제는 진범이 아니라 유력한 용의자라고 말한다. 진범임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학적인 조사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정부의 발표에 충격을 받은 이들은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습기 사용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앙증맞은 물 물레방아와 같은 다른 습도 조절기가 인기를 끌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세정제가 진범인 것이 드러난다면 대한민국에서는 곧바로 대규모 피해 보상 소송이 휘몰아 칠 것이다. 사망자 가족뿐만 아니라 심각한 질환에 시달리다 살아난 사람, 오랫동안 세정제를 사용해 폐 기능이 약화된 사람 모두 의학적으로 증명만 하면 피해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세정제가 진범이라면 정부도 매우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다. 이들 제품을 가습기에 첨가하도록 허가를 내준 것은 결국 정부 당국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경우 미안함을 약간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세정제 판매 이후 발생한 유사사례를 전국 각 병원 등을 중심으로 철저히 조사해 이들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한 대학 병원에서 2004년 이후 입원한 유사 환자만 28명이라고 하니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세정제가 판매된 1997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경우 그 피해자 수는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미세한 유해 물질 입자가 폐 속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다른 사례가 있을 수 없는지 면밀히 조사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소비자들에게도 알려 더는 유사한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내는데 무려 3개월이 걸렸다. 다행히 그 3개월 동안 소비자들은 가습기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었다. 6월부터 8월까지 유례없이 비가 계속 내려 실내 습도가 높아 가습기와 가습기 세정제를 사용할 필요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3개월이 겨울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희생자가 더 늘었을 수도 있다. 그 나라가 갖춘 역학의 수준에 따라 보호할 수 있는 생명의 숫자가 달라진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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