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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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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Ⅱ

[한윤수의 '오랑캐꽃']<95>

그날 저녁 밥상에서 G주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비봉 사는 K가 전화했던데."
"불법체류자를 고용해서 일 시키고 퇴직금 안 주는 회사가 있는데요. 그 회사 편을 들러 왔더라구요."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아버지, 그럼 제 소신대로 해도 되죠?"
"되고말고. 네 마음대로 해!
그날 밤 삼촌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K가 봐달라고 하던데, 뭐냐?"
G주임은 잘라 말했다.
"봐줄 것 없어요. 공과 사를 못 가리는 사람이에요."

일주일 후 2차 출석을 가기 전 나는 G주임을 불렀다.
"입장 곤란하면 다른 사람 보낼까?"
그러나 G주임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제가 가겠습니다."

회사쪽에서는 통역과 후견인이 빠지고 상무와 해결사만이 나왔는데 우리 쪽은 그대로여서 2대 2로 균형이 맞았다. 그날은 주로 금액을 확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퇴직금 액수를 줄이려는 회사 측의 논리가 대부분 깨졌다. 회사에서는 근무기간이 2년밖에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노동자들의 통장에는 5년 전부터 월급을 받은 기록이 남아 있어서 5년 근무기간이 확정되었다. 아웃소싱업체에 근로자를 파견한 기간 넉 달은 우리쪽에서 양보했다. 그래서 받을 금액을 확정해보니 프라싯은 680만원, 차이안은 620만원.

그러나 닷새 안에 태국으로 떠날 사람들이 이 금액을 다 받고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놓고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회사쪽에서는 두 사람에게 각각 2백만 원을 주겠다고 나왔다. 그러나 G주임은 각각 5백만 원 이하로는 안 된다고 버텼다.

그러자 근로감독관이
"쌍용에도 납품하는 회사라 사정이 어려운가 본데 2백 받고 합의하지 그래요?'
하고 회사측 입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 G주임이 항의했다.
"감독관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왜 회사측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세요?"
"사장님이 안 준다는 걸 어떡합니까? 한 푼이라도 받고 가는 게 낫지 않아요?"
"그 돈이 어떤 돈인데요! 그 돈 받으려고 근로자들은 출입국에 잡혀갈 각오를 하고 나왔습니다. 짐까지 바리바리 싣고 온 것 좀 보세요."

이때 감독관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화성 센터에선 커미션 얼마나 받아요?"
"저희 센터는 비영리단체입니다. 돈 같은 거 일절 안 받고 무료로 도와줍니다."

그러나 감독관은 돈을 안 받는다는 말을 묘하게 잡고 늘어지며 이상한 논리를 폈다.
"화성 센터에서 돈을 안 받는다면, *금액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무슨 소리예요? 화성 센터가 돈을 안 받는 거하고 근로자가 받을 금액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근로자들에겐 금액이 제일 중요한데."

감독관이 멋쩍은 듯이 말했다.
"그 돈 이백만 원 받으면 사장님도 처벌 안 받고 좋잖아요."
"근로자들은 사장님이 처벌 받건 안 받건 그건 전혀 상관 안해요.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
또박또박 대꾸를 하자 감독관은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G주임이 제출했던 자료를 돌려달라고 하자 제 감정에 못이겨 *서류를 던져 주었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G주임의 태도가 확고한 것을 보고 감독관이 물었다.
"더 이상 타협할 생각 없어요?"
아무 대답이 없자 감독관이 결론을 내렸다.
"할 수 없군요. 회사에선 정해진 기일까지 프라싯에게 680만원, 차이안에게 620만원을 지급하세요. 안 주시면 형사 처벌할 수밖에 없어요. 벌금이 나갈 겁니다."

해결사가 감독관에게 울분을 토했다.
"우린 벌금 낼 돈은 있어도. 퇴직금 줄 돈은 없어요. 마음대로 해보세요."
그리고 G주임을 짜려보았다.
"나쁜 놈들! 외국인 근로자 살리고 한국사람 죽이겠다 이거지?"

태국으로 떠나는 날 G주임이 두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느긋하게 가다려야 해. 재판까지 가야 하니까."
"알았어요. 기다릴 게요."
두 사람은 퇴직금 한 푼 못 건진 채 떠났지만 걱정하는 빛은 없었다. 우리 센터를 신뢰하니까.

*금액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논리 : 만일 수수료를 받는다면, 금액이 많아야 수수료를 많이 받을 테니까 금액이 중요하겠지만(변호사처럼!), 수수료를 안 받는다면, 근로자가 많이 받든 적게 받든 당신들은 아무 상관이 없지 않으냐는 논리.

*서류를 던져 주다 : "왜 서류를 던지십니까?" G주임이 항의하자 감독관은 내가 언제 던졌냐고 변명했다. 그러나 G주임이 "뭐 저런 감독관이 다 있어?"하며 퇴장하자 복도까지 따라 나와서 커피를 뽑아주며 "일이 많아서 그랬습니다."하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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