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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불법, 정부는 면죄부…사람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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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불법, 정부는 면죄부…사람이 죽어간다"

[인터뷰] 200일 넘게 철탑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천의봉·최병승 씨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송전 철탑 위 한 평 남짓한 공간. 대법원에서 정규직이라고 판결받은 사내 하청 해고 노동자 최병승 씨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이 200일 넘게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달 28일 전화로 두 노동자의 안부를 물었다. '모든 사내 하청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두 노동자가 농성에 돌입한 지 227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들은 내려가고 싶지만, 내려갈 수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현대차와 현대차의 불법을 방관하는 정부 때문이다.

그 사이 현대차 촉탁직 노동자가 해고된 지 석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가 "자식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며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한 달 넘게 비를 맞으며 밤을 새우고 있다.

농성하는 두 노동자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공 농성밖에 없다"면서 정규직 노조의 관심,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한 현대차의 명확한 입장 발표, 정부의 엄격한 법 집행을 촉구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현대차 노동자의 오늘
[양재동 본사]
"'대법 무시' 정몽구 회장 때문에 개고생 중입니다"
[정규직의 외침 ①] 엄마 옆에서 자다 나가는 그림자, '현대차 아빠'
[정규직의 외침 ②] "현대차 노동자는 돈의 노예, 이렇게 만든 건…"

프레시안 : 요즘 어떻게 지내나. 불편한 점은 없나.

천의봉 : 달라질 게 있겠나. 한정된 공간이고 할 수 있는 것도 한정돼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철탑 아래 농성장에서 물을 올려줘서 간단하게 씻는다. 여름이 다가오니 땀이 나는데 자주 씻지는 못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8개월 정도 좁은 공간에서 크게 움직이지도 못하다 보니 근육통은 좀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크게 아픈 기억은 없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새벽에도 기차가 많이 지나간다. 기차가 지나가면 철탑이 흔들흔들한다. 바람이 세게 불 때처럼. 그래서 처음에는 기차가 지나갈 때 잠결에 전투기가 철탑을 들이박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서 깨고 그랬다. 요즘은 기차가 지나가도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이 생활도 몸에 배고 있다.

최병승 :
문제가 있다면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문제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또 특별히 불편함은 없다. 자유롭지 못한 것 등등. 예상했던 불편함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어떤 때면 좁은 공간에 있으니까 답답하고, 어떤 때는 몸도 결리기도 하고. 기분도 좋았다가 나빠지기도 한다.

프레시안 : 내려가고 싶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위)과 최병승 씨(아래) ⓒ프레시안(최형락)
최병승 :
예전에 내가 구속돼 있을 때 우리 변호사가 "나가고 싶어요?"라고 물어보더라. 내가 변호사한테 "형,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나가고 싶어요. 왜 다 아는 걸 물어보세요?"라고 했다. 겨울에 면회 온 동지들이 "춥죠?"라고 물어본다. 겨울인데 당연히 춥다. 올라간 사람들은 당연히 내려가고 싶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내려가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최소한 10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싸운 사람들이 사회적인 기준에 비춰봤을 때 합당한 조치를 받아야 내려갈 수 있다. 노동법은 '노동자들이 최소한 이 정도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법이다. 사회적으로 합의한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라고 요구하기 위해 몇 백일씩 농성해야 하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인지 의구심이 든다. 예전에는 더 나은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서도 이렇게 험악한 꼴을 당하진 않았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합의했던 것을 지키라고 요구하는데도 험한 꼴을 당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후퇴했거나, 노동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자동차 산업 전체 사내 하청이 불법 파견…정규직 전환해야"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모든 사내 하청 노동자를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불법 파견을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가를 두고도 설왕설래한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합의'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최병승 : 현대차 아산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이 아니라서 패소한 게 아니다. 불법 파견이 맞는데 일한 지 2년이 안 돼서 패소했다. 이후에 GM대우 불법 파견 판결문이 나왔다. 그 판결문을 보면 "자동차 산업 공정의 특성상 합법 도급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해 놨다. 불법 파견 문제는 자동차 산업 시스템의 문제다. 현행법상 자동차 생산 공정 전체에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2004년 현대차 공장 내 사내 하도급 업체 전체가 불법 파견을 했다고 판정했다. 그 결정을 2010년 대법원이 다시 내렸다. 대법원도 '자동차 산업 전체의 불법 파견'에 대해 지적한다. 대법원 판결이 판례라면 당연히 동종 유사 업종에도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관련 기사 : '불법 파견' 첫 형사 책임 확정…"자동차 사내 하청 불법")

프레시안 : 현대자동차가 최근 언론을 통해 '불법 파견 특별 교섭'을 다시 열어 불법 파견 문제를 매듭짓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내 하청 노동자 8000여 명 가운데 3500명을 선별해 신규 채용하겠다는 안 외에는 더 진전된 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교섭에 대한 우려도 많겠다.

천의봉 : 현대차는 불법 파견을 인정하기는커녕, 여전히 신규 채용으로 모든 걸 무마하려고 한다. 교섭을 재개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에 대한 안은 한 개도 없을 것이고, 오로지 신규 채용으로만 밀어붙일 것 같은데 암울하다.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현대차는 어떻게든 꼼수를 부려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신규 채용이 마치 정규직 전환인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다. 현대차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개정 파견법이 시행된 지난해 8월 이후부터는 단 하루라도 불법 파견된 사내 하청 노동자는 원청사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편집자>)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의 90% 정도가 '고용 의제자', 다시 말해 '이미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차는 꼼수를 부리기 위해서 신규 채용을 고집하고 있다.

프레시안 : 현대차는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난해 7월부터 직접 고용 단기 계약직 노동자인 촉탁직 노동자를 사용해왔다. 4월 14일 현대자동차 촉탁직 노동자가 해고 석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월 16일에는 기아자동차 하청 노동자가 "자식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면서 분신을 시도했다. 비정규직의 잇따른 자살 시도를 보며 어떤 기분이 들었나.

천의봉 : 현대차가 촉탁직을 투입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현대차지부(정규직 노조)가 합의했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조가 합의했고, 비정규직인 우리는 이 사람들을 구제해줄 여력이 없었다. 촉탁직은 정규직 노조 조합원도 아니고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도 아니다. 우리가 이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해서 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었다.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정규직 장기 근속자 자녀에게 채용 시 가산점을 더 준다는 내용의 노사 합의 때문에 사내 하청 노동자가 분신을 시도했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가고 있다. 같이 싸워야 하는데….

프레시안 : 농성하면서 제일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천의봉 :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할 조합원들이 싸움이 길어지다 보니 노동조합을 불신하고, 신규 채용에 지원하러 떠나가는 걸 보고 (힘들었다). 원인을 제공한 쪽은 현대차다. 현대차가 정규직 전환만 했으면, 우리끼리 이런 불신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냥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차는 최소한의 제안(신규 채용)으로 정리하려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것(고공 농성)밖에 없는 것 같다.


"불법 파견 외면하는 두 당사자, 정부와 현대차"

프레시안 : 정부, 회사, 정규직 노조에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린다.

천의봉 :
'경제 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탄생했고, 불법 파견은 법대로 하겠다고 얘기했던 정부가 오히려 재벌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정부가 법대로 하겠다고 얘기했으면, 스스로 했던 말에 책임을 져줬으면 한다. 정규직 노조도 "이 싸움이 가능하겠느냐"고 우려하는데 안타깝다. 같이 싸워주면 좋겠다. 같이 싸우면 분명히 해답이 나오는 문제다.

최병승 : 많은 사람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를 이제 모르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철탑 농성에 돌입한 지 200일이 지나기도 했고,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가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쟁점이 되고 있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얘기하는데, 명확하게 자기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곳이 딱 두 군데 있다. 바로 정부와 현대차다. 주변에서 변죽만 울리고, 정작 당사자는 공식 입장을 얘기하지 않는다.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 현대차가 가부를 얘기해야 하지 않나. 불법 파견 문제가 있다고 보면 해결한다든지, 없다고 보면 '없으니 책임을 안 진다'고 공표하든지 해야 하는데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어중간하게 "존중한다느니, 취지에 따르겠다느니" 한다. 현대차가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가부를 얘기해야 한다.

정부도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판정 기한이 정해진 곳이니 불법 파견이라고 판정은 하는데, 정부가 집행하지 않는다. 이 또한 정부가 불법을 방치하는 것이다. 중노위는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이고, 중노위의 책임자가 바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최소한 자신이 운영하는 주무 부서에서 불법 파견을 판정했으면 집행을 해야 한다. (불법을 시정할) 후속 대책을 내야 한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답변서를 보면, 중노위 결정이라서 고용부가 불법 파견에 대한 사실 관계를 따로 확인한 다음에야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럴 바에야 중노위는 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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