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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무시' 정몽구 회장 때문에 개고생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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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법 무시' 정몽구 회장 때문에 개고생 중입니다"

[현장] 현대차 비정규직, 본사 노숙 농성…"경찰이 천막도 못 치게 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노숙 농성을 벌인 지 36일째 되는 날인 27일, 서울에는 새벽 4시께부터 비가 내렸다.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성장에서 만난 김성민 현대자동차지회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의장은 "물침대에서 자고 있다"고 농을 건넸다. 밤새 한숨도 제대로 못 잔 얼굴이었다. 몇몇 해고자들은 질척질척한 돗자리에 누워 우산을 쓰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얼굴을 제외하고 온몸에 비가 내렸다. "먼 타지에서 '개고생'하고 있습니다."

잇따른 비정규직 분신·자살…돌아온 건 문전박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개고생'을 하러 아산, 울산, 전주에서 서울에 있는 현대·기아차 본사로 올라온 때는 지난달 22일이었다.

▲ 27일 오전 현대차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비를 맞으며 잠을 청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김성민 의장은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이 최근 잇따라 자살하거나 분신했고, 울산 공장에서 철탑 농성을 한 지 200일이 넘었다"며 "모두 불법 파견에서 비롯한 문제인데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올라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몽구 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본사 앞에 눌러앉았다. 현대차 촉탁직 노동자가 해고 석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8일,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가 "자식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며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른 지 6일 만이었다. (☞ 관련 기사 :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 석 달 만에 목매고 자살, "비정규직 물려줄 수 없다", 기아차 사내 하청 분신 시도)

한 달 넘게 본사 앞을 지키는 동안 이날 10번째로 비가 왔다고 했다. 김 의장은 "경찰이 천막을 못 치게 해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있다"며 "비닐을 뒤집어쓰는 건 허용하는데, 나무에 비닐을 묶고 그 안에 들어가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비닐을 하나만 더 치면 철거한다고 해서 한 개밖에 못 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두 번 서울로 올라와서 경찰 병력을 뚫고 천막을 쳐주고 돌아갔는데, 바로 그날 다 철거당했다"고 덧붙였다.

본사 앞에는 전경 버스 4대와 경찰 10여 명, 현대차 용역 경비 수십여 명이 배치돼 있었다. 용역 경비들은 "노사 관계 선진화로 기업 경쟁력 강화",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 등의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있었다.

"현대차 본사 앞, 1년 내내 유령 집회 신고"

2010년 7월 대법원이 "현대차에서 불법 파견된 사내 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로, 비정규직지회는 본사에서 4번째로 농성하고 있다. 김 의장은 "이전 3번까지는 집회 신고를 했는데, 현대차가 24시간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유령 집회 신고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저히 집회 신고를 할 수 없어서" 연행될 각오를 하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집회 신고를 하는 서초경찰서에 가보면 경찰서 앞에 천막이 쳐져 있어요. 우리는 현대차 본사 앞에 천막도 못 치게 하면서, 현대차 아르바이트들은 경찰서 앞 천막에서 책 보면서 24시간 상주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현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김현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년 반 동안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는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집회 신고가 돼 있었다. 이 가운데 실제로 집회가 열린 경우는 16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유령 집회 신고'였다는 뜻이다.

'유령 집회 신고' 논란과 관련해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본사 앞에 집회 신고를 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27명은 농성 기간 동안 3차례에 걸쳐 경찰에 연행됐고, 43명은 다쳤다. 15일에는 경찰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발포하기도 했다. 김 의장은 "경찰은 불법 파견한 정몽구 회장이 현행법을 어겼는데도 구속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대법원 판결을 지키라고 요구하러 올라오면 구속한다"고 토로했다.

▲ 김성민 현대자동차지회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의장은 "경찰이 비닐을 뒤집어쓰는 건 허용하는데, 나무에 비닐을 묶고 그 안에 들어가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비닐을 하나만 더 치면 철거한다고 해서 한 개밖에 못 치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제공

"불법 파견 맞다면, 해고도 정몽구 회장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성민 의장은 2002년 8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사내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그는 정규직 노동자가 휴가를 가면 그 자리에서 정규직의 일을 대신하는 일명 '지원반'에서 8년 넘게 일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그는 근무한 지 2년이 되는 2004년 8월부터 이미 현대차 정규직이다. 그러나 그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울산 공장에서 점거 파업을 했다가 2011년 2월 해고됐다.

김 의장은 "지방노동위원회는 불법 파견은 맞는데 해고는 정당하다고 했다"며 "내가 불법 파견됐다면 (나는 이미 정규직이므로) 정몽구 회장이 해고해야 하는데, 사내 하청 업체 사장이 해고했다. 이게 앞뒤가 맞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정규직으로 원직 복직하라는 결정이 나왔는데, 아직 결정문이 안 나왔다"며 "그래봤자 회사가 행정 소송을 걸고 헌법 소원을 걸어놨기에 최종 판결이 나오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해고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면 문제 해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사 앞에서 정몽구 회장 면담을 요구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현대차가 사내 하청 노동자 가운데 일부를 선별하는 '신규 채용'을 공고함으로써 불법 파견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호도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현대차가 신규 채용안과 관련해 합의하도록 비정규직 노조를 압박한다는 점이다. 김성민 의장은 "우리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정몽구 회장이 만들려고 하는 '신규 채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깰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전주 공장에서 7년간 일하다 파업 이후 해고된 양봉규(가명·47) 씨는 회사의 일부 선별 신규 채용안에 대해 "신규 채용 형식을 취하면 불법 파견된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일부는 채용에서 탈락할 수 있다"며 "거의 모두 장기 근속자, 불법 파견 노동자인 만큼 법원 판결대로 그냥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씨는 "비정규직 가운데 일부를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더라도 비정규직이 들어가던 공정을 또 비정규직으로 채워넣으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가 없다"며 "불법 파견으로 판정 난 공정 자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지, 전환 배치를 통해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끼리 정규직은 정규직끼리 모아둔다고 해서 불법 파견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로 10년간 일했다가 해고된 박준한(가명·43) 씨는 "회사는 사내 하청 노동자를 쓰면 '불법 파업'이라니까 사내 하청을 없애고 촉탁직(3개월, 6개월 단위로 현대차에 직접 고용되는 초단기 계약직)을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 씨는 "촉탁직은 고용 안정 측면에서 사내 하청보다 더 열악하다"며 "자존심도 다 버려가면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일했는데 필요 없으면 바로 버린다. 촉탁직으로 채용될 땐 가족이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른다"고 비판했다.

박 씨는 "정몽구 회장이 경찰을 불러서 우리가 농성하는 것을 막는다고 해서 현대·기아차에 비정규직 문제가 없어지느냐"며 "불법 파견을 감추려고만 하고 질질 끈다고 득볼 것 없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랫사람을 시켜서 우리를 막을 게 아니라,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와 책임져야 한다"며 "누가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고 싶겠나. 비정규직이 860만 명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제공

현대차 "정규직 되려면 신규 채용 과정 거쳐야"

불법 파견 문제와 관련해 현대차 관계자는 "회사는 교섭을 원하지만, 노사 합의 틀이 깨져서 협의를 못하고 있다"며 "이미 3500명 신규 채용안을 제안했는데, 비정규직지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법 파견된 노동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하청 직원이었다가 새롭게 회사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입사 원서를 내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신규) 채용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직원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 조합원이라고 해서 (신규 채용에) 차별을 두지는 않겠다"며 "협상의 틀 속에서 (신규 채용에 합격한 사람에 한해) 경력을 6개월, 1년 정도 인정하는 정도로 변경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본사 노숙 농성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장기 농성에 대해 따로 드릴 말씀은 없다"면서 "다만 불편한 건 있다. 용역 경비 직원을 수십 명 정도 투입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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