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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체국, 입원 환자에게도 일 시킬 땐 언제고…"

['신분 사회' 우체국 ①] 재택 집배원 밀어내는 우정사업본부

기상 관측 이래 104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2011년 7월, 한 집배원이 폭우 속에 떠내려가면서 동료에게 우편물을 건네주다 순직했다. 동료들은 그가 우편물을 버리고 두 손으로 버텼다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의 죽음은 '우체국 미담'이 됐다.

집배원들이 순직할 때마다 언론에는 '고마운 집배원'의 기사가 소개된다. 죽지 않더라도 미담은 많다. 화재를 진압한 집배원, 남몰래 선행한 집배원, 위급한 환자를 구한 집배원들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우체국 집배원들은 고질적인 열악한 처우와 인력 부족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현실은 좀 더 암울하다. 우편물 분류, 택배, 우편물 배달 등 거의 모든 우체국 업무에는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이 있다.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지 않은 규모다. 이들 노동자들은 우체국을 '철저한 신분 사회'라고 말한다. 신분제 아래로 내려갈수록 책임과 위험만 떠안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정규직부터 비정규직까지 다양한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 우체국의 현실에 대해 물어봤다. <편집자>

우체국 집배원인 김경자(가명) 씨.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그는 우편물이 가득 든 손수레를 끌고 비탈길을 올라갔다. 어느 아파트에 들어서자 김 씨는 벨을 눌렀다. "우체국이에요."

등기 우편을 배달한 뒤 김 씨는 능숙하게 우편물을 편지함에 꽂았다. 1층에 사는 한 주민이 친근하게 인사했다. "아줌마, 오늘은 뭐 없어요? 고마워요."

김 씨는 10년째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 오토바이만 타지 않았을 뿐, 우체국 제비 마크가 찍힌 모자를 쓰고, 정규직 집배원과 같은 우편물을 배달하고, 우체국에서 정해준 임금도 받는다. 지역 주민들은 모두 그가 우체국 직원인 줄 안다. 하지만 그는 '위탁 집배원'이다.

10년차 숙련 노동, 월급은 80만 원

재택 위탁 집배원은 주로 대도시 아파트를 돌며 일반 우편과 등기 우편을 나르는 집배원이다. 정규직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넓은 구역을 관할한다면, 위탁 집배원은 손수레를 끌고 아파트 2-3동을 맡는다. 대부분 40대 여성으로 평균 근속 연수가 8-10년인 이들은 하루에 4-7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70만-80만 원가량을 받는다.

김 씨의 하루는 오전 8시에 시작한다. 전날이나 오전에 우체국에서 전달받은 우편물을 분류한 뒤 본격적으로 우편물 배달에 나선다. 아파트마다 우편함 호수 위치가 다 달랐지만, 편지를 꽂는 그의 손은 거침없었다. 그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위치를 다 외워서 보지 않고 손 감각으로 일한다"며 "처음 시작한 사람은 더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기자도 편지 하나를 들고 시도해 봤지만, 주소를 확인하고 편지함을 찾는 데 한참 걸렸다.

▲ 4. 24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가 발송한 투표 안내문을 우편함에 넣고 있는 정규직 집배원. 대부분 여성 노동자인 위탁 집배원도 정규직 집배원과 비슷하게 일반 우편과 등기 우편을 나른다. ⓒ연합뉴스

등기 우편 배달은 더 까다롭다. 고객에게 직접 전해줘야 한다. 고객이 없으면 부재중 안내문을 붙여 놓고 세 번까지 재방문한다. 김 씨는 하루 종일 아파트 단지를 빙글빙글 돌았다. 배달이 끝나도 일은 남았다. 반송되거나 주소가 바뀐 우편물을 처리해야 한다. 10년차 숙련 노동자인 그가 주어진 일을 6시간 안에 못 끝내는 이유다.

우편물이 많든 적든 그의 보수는 하루 6시간치 시급(5300원씩 총 3만1800원)으로 정해져 있다. 일찍 끝나는 날보다는 늦게 끝나는 날이 더 많다. 물량이 밀리는 날에는 저녁 9시까지도 일한다고 했다. 초과 수당은 없다.

"우체국에 바친 청춘, 10년 만에 빈손으로 끝나"

유치원생,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던 그는 10년 전 "아이들이 어려서 먼 데 갈 수도 없고,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하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이 일을 선택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정직원은 아니지만 우체국 소속인 줄 알았다.

그런 김 씨에게 얼마 전 우체국은 "재택 위탁 집배원은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사업소득세 3.3%를 내야 한다"고 통보했다.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비용도 덩달아 10만-20만 원씩 오른다는 소문에 재택 위탁 집배원들이 술렁였다.

김 씨는 "3.3% 사업소득세보다 더 서러운 것은 '너희는 우체국 소속이 아니'라는 말"이라며 "우리는 청춘을 우체국에 바쳤는데, 우체국은 그 말 하나로 모든 관계를 다 정리한다"고 씁쓸해 했다.

"10년 넘게 일하고 관둔 언니가 있었어요. 윗사람도 그 언니를 다 알 정도로 동고동락하고 고생한 언니였어요. 단지 위치가 재택 집배원일 뿐이었는데, 그 언니 나갈 때 우체국에서 송별회 한 번 안 했어요. 원래 퇴직금, 위로금 없는 줄은 알았지만, 10년 넘게 근무해도 그만두면 그날로 그냥 남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 언니가 나가면서 그랬어요. '10년 이상 일하면서 힘들었지만, 여기 (아파트 단지에서) 기르는 풀 한 포기, 주민이 기르는 강아지한테도 정들었다'고요. 만약 우체국장이 판공비로 10만 원짜리 상품권 하나라도 쥐어주면서 '퇴직금 못 줘서 미안하다. 그동안 고마웠다. 애썼다.' 그 말 한마디만 해줬다면 그렇게까지 서럽진 않았을 것 같아요. 30대 한창때 들어와서 우체국에 청춘을 다 바치고 이제 나이 마흔이 넘어가는데 빈손으로 나가니 좀 그렇죠."

박근혜, 우체국 노동자에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말했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재택 위탁 집배원의 시급은 850원 올랐다. 이들은 상여금, 연장 근로 수당, 퇴직금, 연차 휴가 등도 못 받았다. 그 사이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자라서 어느덧 대학생이 됐고, 자장면 한 그릇 값이 2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랐다. 또 다른 재택 위탁 집배원인 이금숙(가명) 씨는 "아파도 휴가 한 번 못 가고, 아이들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화장실에 기어갈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어요. 병원에 입원해서 링거를 맞고 있는데, 우체국 관리자가 병원까지 찾아와서 등기 우편물을 툭 갖다 놓고 갔어요. 다 배달하라고요. 병실에 누워서 그 우편물 덩어리를 받긴 받았는데, 우체국 관리자가 돌아서서 가고 나니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한 우체국 집배원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을 때, 위탁 집배원들은 처우가 개선되기를 내심 기대했다. 김 씨는 "한꺼번에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우리에게도 빛이 오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우체국 하급 관리자들이 내가 '우체국 소속'이라고 말해주면 빈말이라도 좋았는데, 이번에 우체국이 우리가 '개인 사업자'라면서 확인 사살을 했다"고 허탈해 했다.

다른 지역 위탁 집배원인 주영순(가명) 씨는 "예전에는 위탁 집배원도 우체국에서 교육 받고, 회식도 같이했는데,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니까 달라졌다"며 "위탁 집배원이 우체국 직원처럼 비칠까봐 전염병 환자처럼 우리를 우체국 안에 발도 못 들이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금숙(가명) 씨는 "우체국은 사고가 나거나 우편물을 분실하면 우리한테 다 떠안으라고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일을 잘해도 돌려주는 것은 없다"며 "이런 게 바로 '갑의 횡포'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우체국 지시대로 일 마쳐야 하는데 어떻게 개인 사업자인가"

우체국의 '사업소득세' 징수 방침을 계기로 재택 위탁 집배원들은 지난 6일 산발적으로 파업에 돌입했다가 1-3일 만에 복귀했다. 이들은 실질 임금이 삭감되는 만큼의 소득을 보전하고, 재택 위탁 집배원들을 '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씨는 "개인 사업자는 매출이 들쭉날쭉하고 사업의 독립성도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우체국이 지시하는 대로 일을 마쳐야 하는데 어떻게 개인 사업자인가"라고 반문했다.

"노동자 인정이면 족해요. 그냥 퇴직금이 있고, 수당이 나오고, 남들 다 쓰는 휴가 같은 것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하다못해 이마트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데, 우리는 정규직은커녕 비정규직도 아무것도 아니래요. 우리는 근로소득세, 4대 보험료도 다 낼 테니 그 비정규직(무기계약직)이라도 시켜 달라는 거예요."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우체국 지시에 따라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정해진 일당을 받는다면, 재택 집배원도 근로자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일당 형식으로 임금을 받는 식이라면 근로자성을 인정하기 더 쉽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근무 시간 구성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데 불리하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 "정규직 하던 일 아웃소싱…재택 집배원은 사업자"


우정사업본부 집배운송과 관계자는 "집배원의 업무량은 늘어나는데 집배원은 충원이 안 돼서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재택 위탁 집배' 제도를 도입했다"면서도 "정규직은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수집하고 오토바이로 배달도 하지만, 위탁 집배원은 배달만 하기 때문에 둘은 다르다"고 말했다.

재택 위탁 집배원을 고용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외부 위탁, 아웃소싱이기 때문에 우체국과 재택 집배원 간에 고용 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재택 집배원들을) 고용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재택 위탁 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지 11년 만에 '사업소득세'를 부과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우체국에 정규직도 있고, 비정규직도 있다"며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중에 소득세법상 (개인 사업자에게 소득세를) 떼라고 돼 있어서 이번 기회에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늘어난 세금만큼 수익을 보전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세금은 우리(우정사업본부)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소득자가 부담하는 것이라서 곤란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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