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에 들어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로 구체화된 경제원리이다. 이는 자유방임을 모토로 경제에 대한 국가규제의 완화, 민영화, 감세, 노조의 힘 약화, 사회보장의 축소 등을 통해 분배를 줄이고 투자를 늘려 침체된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다.
이것은 세계자본주의가 1970년대 이후 맞은 위기상황 때문이다. 50, 60년대의 호황을 맞은 후 70년대부터 점차 자본주의의 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과도하게 축적된 자본들로 인해 과잉설비가 이루어지고, 생산능력이 크게 늘어난 반면 수요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이익율이 점차 떨어졌다. 이것은 70년대에 두 차례나 온 석유위기로 인해 더 심각해졌다.
이렇게 경제성장이 어렵게 되자 분배도 쉽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사회적 요구 대신 시장의 자유경쟁 원리가 중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전후에 특히 서유럽에서 발전했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건 복지국가 체제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형태로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이해하는데 영국과 미국의 상황은 중요하다. 영국은 70년대에 들어와 침체된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과도하게 파업을 벌이는 영국병에 시달렸다. 그리하여 1979년에 집권한 보수당의 대처 수상은 이익을 내지도 못하는 탄광들의 폐광을 거부하는 석탄노조의 파업에 군대를 동원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며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 쪽으로 전환시켰다.
▲ 영국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수상은 1984.3-1985.3 사이에 벌어진 강력한 석탄노조의 파업을 강경대응으로 분쇄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http://www.guardian.co.uk |
그러나 미국의 상황은 더 중요하다. 그것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 변화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의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큰 파급 효과를 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변화는 70년대 이후 일본, 서독, 아시아 신흥 공업국들이 미국산업에 도전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80년대에 들어와 일본이 지구적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문제는 더 커졌다. 미국 대기업들의 생산성이 일본 기업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이 과거의 성공에 안주함으로써 자동차, 철강, 복사기 등 많은 중요산업에서 상품의 혁신과 새 생산기술을 채용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기술과 생산체제가 시대에 뒤떨어졌으므로 낮은 품질의 상품을 높은 가격에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기업들은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고임금과 안정된 직장을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열등한 생산기술을 보상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라도 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많은 미국 기업이 출구를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여 초국적기업으로 변신했으나 미국의 산업노동계급은 버림받은 채 뒤에 남겨졌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이지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게는 세계시장을 다시 지배할 새로운 전략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자유무역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1989년에 부시와 고르바초프의 몰타선언으로 냉전이 끝나고 그 후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이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들은 90년대에 들어와 자유무역을 이끌어갈 새로운 국제기구 창설을 밀어 붙였다.
그 결과 1995년에 세계무역기구(WTO)가 만들어졌는데 이 기구는 관세를 인하하고 비관세장벽의 제거를 통한 무역의 자유화와, 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노골적으로 요구함으로써 선진국들의 대리인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 어떤 나라든지 많든 적든 신자유주의 원리를 채용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논리를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인 나라들 안에서 사회적 평등을 약화시키고 빈부차이를 늘인다는 것은 큰 문제거리이다.
90년대 이후 정밀전자산업의 발전에 따른 공장 자동화로 인해 고임금의 안정된 노동자가 불필요하게 되었다. 인간의 노동을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장자동화가 이루어진 많은 공장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 로봇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자동차 공장의 내부 모습.오늘날의 많은 대형 공장에서는 높은 비율의 공장자동화로 노동자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실업자 증가의 한 구조적 요인인 것은 틀림없다. ⓒhttp://geometrixar.com/ |
또 기업의 국제화로 인한 치열한 국제경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고용 대신 유연 노동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급증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자본의 국제화로 자본과 노동의 힘 관계도 변화했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떨어지며 노동의 교섭력도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노동이 이런 국제화 추세에 저항하기도 어렵게 되었으므로 전체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이런 현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영국이나 미국 같이 자기네 나라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용하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자기네 국내정책에 한정되는 한에서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신자유주의적 원리가 국제적 규범으로 국제사회에 강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계경제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 그 독점자본들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서 자유방임적 시장 원리의 요구는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노골적인 침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유경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에 대한 일방적인 예속만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국제적으로 강요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80년대 초부터이다. 1982년에 외채위기에 빠진 멕시코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자금을 빌려주는 대가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것은 80년대를 통해 과도한 외국자본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외채위기를 맞은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이들 나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입관세의 인하, 기업에 대한 정부보조금 인하나 철폐, 식량가 제한 철폐, 공기업 민영화, 은행·철도·전기 등 기간산업의 민영화, 시장에 대한 여러 규제의 철폐, 정부 재정적자 축소, 화폐공급 축소 같은 정책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 자본이 그 나라에서 마음대로 경제활동을 하기 용이한 환경을 만들려는 정책들이다. 그리고 이는 해당국가의 경제적 자주성을 현격하게 약화시킬 수 있는 무리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는 이에 저항할 힘이 전혀 없었으므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중남미국가들의 경제는 거의 완전히 미국자본에게 넘어갔다. 현재 중남미 20대기업 가운데 10개가 미국자본 소유일 정도이다. 또 90년대에는 아프리카 국가들도 거의 모두가 IMF로부터 약간씩 얻어 쓴 차관의 대가로 강제로 구조조정 당해 빗장을 풀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빌미로 미국정부와 IMF가 한국에 대해 요구한 구조조정도 똑 같은 원리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구제자금을 주는 대가로 상품시장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개방, 공기업의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 등을 요구했는데 그것은 외환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일시적으로 돕는다는 IMF의 설립취지를 넘어서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조처였다.
▲ 치욕의 날 1997년 12월 3일 : 미국과 국제자본에게 한국경제의 주권을 모조리 내준 국치일이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당시 임창렬 부총리가 구제금융협상 결과를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연합 |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몰랐다. 국제경제에 대해 너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목조목 그 부당성을 따지고 저항해야 했는데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알고 받아들였다.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와 사회의 많은 문제가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강요로 말미암아 한국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제 3세계 경제는 오늘날 거의 초토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과 후진국의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저항도 커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미국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베네수엘라 경제에 가한 가혹한 착취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선진국 기업들은 직접투자를 하거나 아웃소싱을 통해 현지인들의 고용 증가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네 상품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에서만 이루어진다. 그 지역의 임금이 오르면 다시 임금이 더 싼 지역을 찾아 공장을 이전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아웃소싱을 한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제3세계에 떨어지는 임금액수는 선진국 기업이 파는 상품가격에 비하면 미미한 비율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신자유주의적 착취도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으므로 세계자본주의를 계속 발전시킬 동력으로서는 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 사이에, 한 나라 안에서도 계층 사이에 빈부 차이가 더 늘어나는 상황에서 수요를 확대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 자본가들이 그 마지막 돌파구로 삼은 것이 바로 금융투기이다. 엄청난 금융버블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2008년 9월의 미국금융위기로 인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대안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세계경제는 이제 경제공황이나, 아니면 장기적인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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