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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의 비밀…"고객 정보 불법 확보·로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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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의 비밀…"고객 정보 불법 확보·로비 있었다"

[단독] 내부 자료 및 직원 증언으로 살펴본 삼성생명 이익의 비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5월 12일은 잊기 힘든 날일 게다. 삼성생명이 상장된 이날, 이 회장은 경쟁자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을 완전히 따돌렸다.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의 공모가가 11만 원으로 정해지면서, 이 회장이 가진 삼성생명 주식의 가치는 상장 시점 기준으로 약 4조5671억 원이 됐다. 이로써 이 회장이 가진 주식 총액은 8조8000억 원 이상이 됐고, 이는 정몽구 회장이 가진 주식 가치의 두 배를 넘는다.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 경쟁률이 40대 1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주식 대박'에 가리워진 개인 정보 불법 유출, 불법 로비

그러나 이런 '주식 대박'의 뒤에는 비리로 얼룩진 역사가 있다. 삼성 그룹 대졸 공채로 삼성생명에 입사해서 보험심사 업무를 맡다가 1999년 자회사인 삼성생명서비스(현 SIS손해사정) 보험심사과장으로 퇴직한 사람이 보관해 온 자료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가 최근 <프레시안>에 제공한 삼성생명 및 삼성생명서비스 내부 자료를 보면, 삼성생명은 병원 및 의료보험조합(현 건강보험관리공단), 검찰, 경찰 등으로부터 이 회사의 보험 계약자 관련 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돌려 왔다.

이 과정은 이들 기관 실무자의 협조로 이뤄졌으며, 삼성생명은 이들 실무자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해 왔다. 이들 실무자는 삼성생명 내부 문서에서 '협력자'라고 불렸으며, 'A', 'B', 'C', 'D' 등급으로 분류돼 관리됐다.
▲ 삼성생명 내부 문서들. ⓒ프레시안

미리 설정한 보험금 불지급률에 맞춰 직원 독려

▲ 삼성생명 본사 건물. ⓒ프레시안
보험 계약자의 개인 정보를 빼돌린 이유는 삼성생명이 매년 설정한 보험금 불지급률과 불지급액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불지급률과 불지급액이란, 보험 계약자가 사고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이를 지급하지 않은 비율과 금액을 가리킨다.

예컨대, 사고를 당한 보험 계약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 계약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소한 병원 치료 기록 등을 찾아내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것이다. 보험 계약자가 과거 병력(病歷)을 보험회사에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는 보험 약관을 어겼다는 게 이유다. 보험을 계약할 때 약관을 꼼꼼하게 검토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 자신의 병원 치료 기록을 구체적으로 아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물론, 보험금을 부당하게 청구하는 이른바 '역선택 보험계약자'가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들을 가려내기 위해 보험회사가 엄격한 심사 기준을 적용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불지급률과 불지급액 목표치를 정해놓고 이를 초과 달성하도록 독려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당하게 보험금을 받아야 할 사람이 못 받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내부 자료를 보면, 불지급률과 불지급액 목표치 달성 정도는 직원 평가에 반영됐다. 직원들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야 했던 이유다. 병원과 경찰서 등에서 불법적으로 개인 정보를 빼돌린, 이른바 '협력자'들에 대한 관리 정도 역시 직원 평가에 반영됐다. 비리에 가담하지 않고서는 승진하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그리고 전직 삼성생명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의료보험조합 기록을 빼내기 위해 도장을 위조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당사자에게만 공개되는 기록을 얻으려면 '가짜 위임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삼성생명이 불법적으로 빼돌린 경찰서 기록 가운데 하나. ⓒ프레시안

"거의 모든 병원에서 진료 기록 빼냈다"

이런 자료와 증언은 삼성생명이 개인 정보 불법 유출, 불법 로비, 사문서 위조 등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개인 정보 불법 유출과 불법 로비는 사실 한 묶음이다. 전직 삼성생명 직원은 이 회사가 보험 계약자의 병원 진료 기록(차트), 경찰 조사 기록 등을 자유롭게 입수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보관해 온 이런 기록만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다. 이런 기록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됐다는 점만 문제가 아니다. 민감한 개인 정보가 함부로 공개됐다는 점 역시 문제다. 정신 질환 등을 앓았던 정보가 당사자 몰래 유출됐을 때 생길 수 있는 피해는 다양하다.

이런 정보를 빼돌린, 이른바 '협력자'에 대한 관리는 정교하게 이뤄졌다. 부산, 대구 지역을 담당했던 전직 삼성생명 직원이 보관해 온 병원 진료 기록을 보면, 이들 지역 내 거의 모든 의료기관이 망라돼 있다. 심지어 서울대병원 등 다른 지역에 있는 병원 진료 기록도 눈에 띈다. 이는 삼성생명이 전국적으로 '협력자'를 관리해 왔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 삼성생명이 불법적으로 빼돌린 병원 진료 기록 가운데 일부. ⓒ프레시안

김용철 "구조본과 같은 관리 방식"…협력자 등급에 따라 금품 차등지급

또 삼성생명 내부 문서를 보면, "병원, 관청, 경찰서 등 협력자 관리비"가 다양한 항목으로 관리돼 왔다는 점이 드러난다.
▲ 병원, 관청, 경찰서 등 협력자 관리비가 판매촉진비 항목으로 관리된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 ⓒ프레시안

또 직원들이 주요 협력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한 현금을 회사가 경비 처리하며 발급한 지급증 영수증도 있다. '협력자'들에게는 설, 추석 등 명절마다 선물이 제공됐는데, 주로 갈비세트, 와이셔츠, 구두티켓, 지갑벨트 세트 등이다. '협력자' 한 명에게 한 번에 제공된 현금 또는 선물 액수는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 사이였으며, 'A', 'B', 'C', 'D' 등급에 따라 달랐다.

부산, 대구 지역 내 '협력자' 관리 내역이 담긴 삼성생명 내부 문서를 접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구조본에서 사용하던 문서 양식, 유력 인사를 관리하던 방식과 똑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구조본과 계열사, 서울 본사와 지방 지사가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라고 덧붙였다.


▲ "법적 증빙을 청구할 수 없는 곳(경조금, 협력자 관리비 등)에 지급시" 사용하는 지급증이다. ⓒ프레시안


▲ 1990년대 중반, 협력자에게 명절 선물을 돌리기 위한 계획. ⓒ프레시안

▲ 1998년 추석 선물 계획. ⓒ프레시안

▲ 협력자에게 현금을 지급한 내역. ⓒ프레시안

'협력자' 관리, 인사 고과에 반영

'협력자'에게 지급된 금품 액수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당시 화폐가치를 고려하면 거액"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생각보다 적은 금액이다. 그 정도 돈 때문에 민감한 정보를 함부로 넘겼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후자의 의견에 대해 김 변호사는 "삼성이 관청 실무자에게 건네는 돈은 '푼돈'이다. 그런데 중요한 자료를 다루는 실무자들이 푼돈에 매수되곤 했다"고 말했다. 자료를 제공한 전직 삼성생명 직원은 부산, 대구 지역 보험심사과에서 매년 2400만 원 안팎이 협력자 관리비로 쓰였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제공한 자료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그는 이런 비용을 전국 단위로 집계한 금액, 즉 삼성생명 전체가 협력자 관리비로 쓴 돈은 연간 수억 원대라고 추산했다. '협력자' 개인에게 건네지는 금품은 보기에 따라서 '푼돈'일 수 있지만, 협력자 관리비 총액은 결코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협력자' 관리 업무가 인사 고과에 반영된 사실 역시 문서로 확인됐다. 삼성생명서비스의 문서를 보면, '불지급률'과 함께 '협력자' 항목이 있다. 자료를 제공한 전직 삼성생명 직원은 협력자의 관리 실태 및 신규 확보 여부 등이 인사 고과에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 보험금 불지급 금액이 과장업적 평가 항목에 포함돼 있다. ⓒ프레시안
▲ 협력자 관리가 직원 평가 항목에 포함돼 있다. ⓒ프레시안

"갓 입사해서 배운 게 도장 위조하는 법이었다"

삼성생명이 보험 계약자의 개인 정보를 빼내기 위해 동원한 불법 행위로 그가 소개한 것은 이밖에도 많다. 그는 "삼성생명에서 보험 심사 업무에 배치됐을 때, 선배들에게 맨 처음 배운 게 도장 위조하는 기술이었다"라고 말했다. 의료보험조합에 제3자가 개인 정보를 요청하려면 보험 계약자의 위임장이 필요한데 여기에 필요한 도장을 위조하는 것이다. 병원 진료 기록을 입수할 때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그는 기자 앞에서 사고보험금 청구서에 찍힌 보험 계약자의 도장을 베껴 위임장에 옮겨 찍는 기술을 직접 보여줬다.

이어서 그는 "규모가 작은 동네 의원에서는 진료 기록을 빼돌리는 게 쉽지 않다"며 "이런 의원에서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진료 기록을 훔쳤다는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보험심사 담당 직원 사이에서 무용담처럼 회자됐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진료 기록을 훔친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밤중에 몰래 들어간 적은 없지만, 점심시간 등 의사나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틈에 진료 기록을 슬쩍 들고 온 적은 있다"는 고백이다.
▲ 삼성생명이 불법적으로 입수한 의료보험 정보 가운데 일부.ⓒ프레시안

초과달성한 보험금 불지급률 목표치

삼성생명의 높은 보험금 불지급률은 이런 불법 행위가 쌓인 결과다. 실제로 삼성생명서비스 보험심사부가 1997년에 작성한 '연간 사고 조사 현황(97년)'이라는 자료를 보면, 같은 해 불지급률 목표치가 20퍼센트이며, 연말에 이를 6.6퍼센트 포인트 초과 달성했다고 돼 있다. 1998년 7월 작성한 자료를 보면, 연간 불지급률 목표치가 전년도보다 크게 오른 30퍼센트인데, 상반기에는 35.9퍼센트를 달성했다. 같은 해 연간 불지급액 목표치는 550억 원인데, 상반기에는 256억 원을 달성했으며 목표 대비 46.5퍼센트 진행된 것으로 돼 있다.

불지급률과 불지급액 목표치가 높게 설정되고 이를 초과달성해 왔다는 사실은, 정당한 보험금을 받지 못한 계약자가 많이 있을 가능성과 일맥상통한다. 보험은 비록 민간업체가 운용하지만, 사회적 약속에 가깝다는 점을 떠올리면, 답답한 일이다.

1998년도 삼성생명 내부 자료. 불지급액과 불지급건 비율이 체계적으로 관리돼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프레시안

"삼성생명 상장 차익 독식한 주주들, 그들이 한 게 무엇인가?"

삼성생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전직 관리직 사원이 이 회사의 내부 자료를 언론에 공개한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삼성생명 상장 과정을 지켜보며 분노를 느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진 그의 설명이다.

"삼성생명 재직 당시 불지급액 규모가 수백억 원대였다. 삼성생명보험 전체계약의 연간 사차익(死差益, 실제 사망률이 보험료 산출 기준 사망률보다 낮아서 생기는 이익)은 수천억 원대였다. 이런 두 가지 이익은 모두 정당한 게 아니다. 전자는 협력자 매수를 통한 불법적인 보험 심사 활동의 결과로 얻은 것이며, 후자는 위험 보험료를 과다 책정하는 등 불합리한 기준으로 얻은 것이다.

애초 보험회사가 큰 이익을 낸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생명보험회사는 기본적으로 공익적, 사회보장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수지상등의 원칙(들어올 보험료 총액이 나가야 할 보험료 총액과 같아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되는 것, 금융 당국이 까다로운 규제를 하는 것은 그래서다. 보험회사가 큰 이익을 냈다면,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보험회사의 이익은 계약자에게 나눠줘야 옳다. 그런데 막대한 상장 차액을 주주들이 독식한다고 한다. 그들이 삼성생명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 1998년도 삼성생명 내부 자료. 상반기 사차익(死差益)이 1770억 원에 달한다. 높은 사차익은 보험료 산정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방증이다. ⓒ프레시안

한편, 전직 삼성생명 직원이 공개한 내용에 대해 삼성생명 측은 "회의 끝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그게 회사의 공식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보험 계약자가 '봉'인가?"

<프레시안>은 삼성생명이 개인 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돌렸으며, 보험료 불지급률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했다는 증언에 대한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의견을 들었다. 삼성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했을 뿐아니라 보험업 전문가인 김 소장은 "삼성생명에서 이런 사례가 드러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삼성생명이 유사한 잘못을 저지른 사실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현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가 여러 번 공론화했지만, 금융감독원과 검찰 등 관련 당국은 늘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는 게다.

금감원과 검찰이 지난 2002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지난 1999년부터 당시까지 매달 은행연합회로부터 고객신용정보가 담긴 CD(compact disc, 콤팩트 디스크)를 전달받았다. 삼성생명은 이렇게 얻은 다른 금융기관의 정보를 영업에 활용해 왔다. 개인 정보 불법 유출의 한 사례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삼성생명이 보험금 불지급률을 높여서 보험 계약자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 역시 낯선 게 아니다. 삼성생명이 지난 2000년께 확정·고금리 상품 해약을 집중적으로 독려한 일이 비슷한 사례다. 삼성생명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확정·고금리 상품 판매를 늘렸다. 그러나 2000년께 금리가 떨어지자 이런 상품은 삼성생명에 부담이 됐다. 그래서 삼성생명은 이런 상품의 해약을 독려했고, 이 과정에서 해약 실적이 높은 영업소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상품을 해약하면, 손해를 입는 쪽은 보험 계약자다. 대개의 경우, 해약 환급금이 납입원금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소비자보호원(현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2001년 말 보험 소비자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자료를 발표했었다. "보험 모집인으로부터 현재 가입하고 있는 보험을(특히 확정·고금리상품을) 해약하라거나 해약 후 새로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가 있더라도 모집인의 말만 믿고 함부로 해약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생명보험회사가 계약자의 금융에 대한 무지를 악용해서 생겨난 피해 사례를 경계한 것이다.

이런 피해 사례에 대해 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현 경제개혁연대)는 "주주들의 유상증자라는 최소한의 자구노력도 없이 모든 손실을 보험 계약자에게 전가한 것은, 생명보험회사는 주식회사이므로 그 상장차익은 모두 주주 몫이라는 기존의 주장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단체는 "이익은 주주 몫이고 손실은 보험 계약자 몫이라는 왜곡된 논리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우리 나라 보험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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