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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 허준영 사장 좀 말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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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 대통령님, 허준영 사장 좀 말려주십시오"

[기고] 허준영 사장에게 철도 노동자의 아내가 드리는 글

사람과 사람, 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와 일은 존중과 신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존중과 신의.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한 사랑, 과연 노사 관계에서는 어려운 일일까? 불가능한 일일까?

미움 부추기고 분노를 조장하고 끌어내리려 하고, 폭력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폭력을 미리 예방하고 갈등을 조절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능력을 지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고 싶다.

"헌법이 보장한 노조 활동을 무슨 법과 원칙으로 막으시렵니까?"

지난 11월 26일, <조선일보>에 실린 한국철도공사 허준영 사장의 인터뷰는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는 한국철도공사 직원의 아내이다. 15년차 주부이다. 가정 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람으로 남편의 월급에 대한 것, 휴일에 대한 것에 참으로 할 말이 많다.

한국의 여느 가정주부가 그러하듯 나 또한 빠듯한 살림살이를 남편의 봉급에 대고 하소연하고 바가지를 긁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남편이 대한민국의 대동맥인 철도인이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 자부심은 생활의 어려움과 불편, 그리고 사람들의 오해들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

한국철도공사 허준영 사장의 대국민 호소문이나 <조선일보> 인터뷰는 철도 가족의 자부심에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주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공화국 국민들을 상대로 대한민국의 공공 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에게 적자 경영의 부실 책임을 덮어씌우고 그릇되게 몰아치는 것은 참으로 무례하다.

▲"철도 노조를 말려달라니, 이 무슨 말인가. 철도 노조에 무슨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 노조 활동인 무슨 잘못인양, 법과 원칙대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어떤 법인가. 어떤 원칙인가. " ⓒ연합뉴스

노사문제를 바르게 바라보려면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한 행동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며 한국의 경제를 이끌고 나가는 청년들에게 '버릇을 반드시 고쳐놓겠다'는 으름장을 놓다니. 버릇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훈육할 때 쓰는 말이다. 나는 감히 내 남편에게 상상할 수 없는 말이다. 가족을 먹이며 입히는 하늘같은 남편에게 손 좀 봐주겠다는 표현을 어느 아내가 참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거칠고 사나운 말의 힘으로 이루겠다는 공기업 선진화는, 그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남편이 열차 검수원으로 일하던 시절, 열차 바퀴를 수리하다 네 손가락이 잘라질 번 한 때에도, 무궁화 열차의 처음과 끝을 이십 분 간격으로 돌다보면 하루 평균 5킬로미터 남짓 되는 길이를 왕복하는 승무원인 지금까지, 남편이 하루 종일 열차 안을 걸어 다녀 일주일이 멀다하고 양말에 구멍을 내오는 지금까지, 나는 남편이 한국철도공사 직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허준영 사장은 우리들의 자부심에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길 바란다. 노사 관계나 노조 활동은 사회를 갈등을 부추기는 위험 요소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위험 요소는 노사 관계를 타협과 평화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막장까지 치닫게 하는 무능력과 무감각이다. 철도 노조를 말려달라니, 이 무슨 말인가. 철도 노조에 무슨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 노조 활동인 무슨 잘못인양, 법과 원칙대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어떤 법인가. 어떤 원칙인가.

"대한민국 서민의 삶이 왜 날로 어려워질까요?"

2009년 올해 경력 16년차에 들어서는 남편이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져다주는 돈은, 평균 350여 만 원이다. 급여 통장에 급여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자동 인출되는 항목이 시부모님 생활비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지만 부모님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돈이 나간다. 그 다음 시부모님 집과 우리 집 전기료와 같은 공과금이 20여 만 원, 가족들 통신비 10여 만 원이 자동 인출된다. 그 다음에는 소소하게 들어둔 각종 보험료가 20여 만 원. 그 다음 큰아이 학원비가 24만 원, 작은 아이 학원비가 11만 원이 나간다.

학교 급식비까지 제하고 나면 160여 만 원 정도가 남는다. 게다가 요 몇 달처럼 나이 드신 양가 부모님의 병원비며 수술비가 얹혀 지면 실제 생활이 어렵기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몹시 우울해진다. 이것저것 떼고 남는 돈으로 저축도 하고 장도 보고, 아이들 옷도 사 주고, 목욕비도 내고 병원비도 쓰고, 교통비도 쓰고 문화생활비도 써야 한다. 남편과 내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개인 용돈이란, 사치이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철도공사 직원들의 평범한 가계 규모이다.

나는 그래도 이런 생활에 감사한다. 옆집 아저씨는 택배기사로 취직했었다.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다 갈비뼈에 금이 가고 겨우 60여 만 원 받는 봉급을 견디지 못하고 관두었다. 택배회사에 낸 보증금 1000여 만 원만 잃었다. 다른 옆집에서는 사회 초년생일 아가씨가 직장을 잡지 못해서 날마다 엄마와 입씨름을 한다. 골목집 슈퍼는 사람들이 대형 마트에 몰려가니 손님이 없다고 툴툴댄다.

이런 이웃들의 생활을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왜일까? 대한민국을 어떤 구조로 만들겠다는 것인지가 모호한 구조조정 때문에 직장을 잃은 가장들, 열심히 공부해도 취직하지 못하고, 기껏 취직하더라도 88만 원을 넘지 못하는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기 때문 아닌가. 공공성을 추구해야 할 국가 기업이 민영화 되고, 마을의 자영업자들을 소외시키는 거대 유통 자본 때문이 아닌가.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회 혼란을 만들겠다는 뜻"

대한민국 서민들은 풍요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풍요는 일부에게만 돌려지고 나와 같은 서민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이 몰입하고 있는 대국민프로젝트처럼 느껴진다. 허준영 사장의 대국민 호소라는 것이, 국민을 향한 인터뷰라는 것이 풍요에서 모두를 소외시키기 위해서 서로를 이간질하고 미움을 부추기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쟤가 잘못이니까 모두 말려야 한다, 버릇을 다함께 고치자, 법과 원칙의 이름으로'라는 것 아닌가. 법과 원칙의 이름으로 잘못은 허준영 사장이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민주 헌법이 보장한 노조 활동을 불법이라며 거짓말하고 있지 않은가. 성숙한 타협의 결과로 얻어진 노사의 약속, 단체협약을 안 지키겠다고 버티고 있지 않은가.

단체협약을 파기하고 '타협'은 없을 것이라고 허준영 사장의 인터뷰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타협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내는 성숙한 행위이다. 대화나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싸움을 부추기고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 혼란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허준영 사장의 강경한 어조는 올 한 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가장 잔인한 비극 중인 하나인 용산 철거민 시위와 쌍용자동차 노조에 가해진 국가폭력의 장면이 오버랩 된다. 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지 않을까. 왜 허준영 사장은 사업장의 현장 직원들을 이처럼 밖에 대할 수 없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나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자 대한민국 공공 산업의 소중한 일꾼들을 왜 이렇게 대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말하고 싶다. 불안과 미움을 조장하는 허준영 사장을 막아달라고. 한국철도공사 직원의 아내이자 대한민국의 평범한 주부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통령과 정부, 국민에게 호소한다. 더 이상 허준영 사장처럼 말하고 사고하고 행동하지 말자고. 평화를 이끌어내는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대한민국의 경제 주체들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풍요를 향한 노력이 상호 존중과 타협으로 이루어낼 수 있도록 지키자고. 대한민국이 이해와 갈등을 다루는데 더 성숙해지자고. 호소한다. 그 가치는 대한민국을 평화롭게 풍요롭게 하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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