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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하반기 플러스 성장 전환? 낙관하긴 이르다"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하반기 경제전망과 구조조정

한국은행이 10일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밝혔다. 연간 성장률도 -1.6%로 지난 4월(-2.4%)에 비해 0.8%포인트 상향조정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도 지난달 25일 올해 경제성장률을 -1.5%로 0.5%포인트 올렸다.

정부의 기대처럼 하반기 한국경제가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김종인 박사는 올해 상반기 경기가 호전된 것은 정부의 '재정정책 효과'라면서 "4분기가 되면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하는데 막연한 기대"라고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했다. 김 박사는 "금융과 실물이 동시에 가라앉는 경기 하강 추세는 일반적인 경기침체에 비해 회복에 서너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이후 실물경제는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세계 각국의 재정확장정책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으로 금융시장만 활황을 보이는 현상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실물경제가 뒷받침해줄 수 없는 버블은 결국 터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 부동산시장의 과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현안인 쌍용차 사태에 대해 김 박사는 "지금 세계 자동차 시장을 놓고 봤을 때 과연 우리나라가 자동차 제조회사를 5개씩이나 갖고 있을 수 있냐는 문제부터 생각해야 한다"며 "과감하게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회사 존망에 대한 의사결정과 근로자 안위는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는 게 대전제다. 퇴출된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는 한시적인 복지혜택을 마련하는 등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 물리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비정규직법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법 적용을 1년 유예하게 되면 내년에 또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의 유예안에 대해서 비판했다. 그는 "차라리 비정규직법을 폐기하자"고 제안했다. 법으로 규제해야될 문제는 비정규직 사용 기한이 아니라 비정규직 비율이라고 김 박사는 주장했다. 한 기업이 일정 비율 이상의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는 게 비정규직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박사는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하는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일도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지난 6일 김종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김종인 박사와 전성인 교수의 대담이다. 2시간 남짓한 대담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 대담을 나누고 있는 김종인 박사(오른쪽)과 전성인 홍익대 교수(왼쪽) ⓒ프레시안
세계경제, 빠른 회복 불가능

전성인 :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 3월말 인터뷰 이후 한국경제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화두를 꼽자면 실물과 금융시장의 괴리된 움직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노동문제가 요즘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쌍용자동차 문제가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고, 비정규직법안 처리 문제도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재정정책에 대한 평가도 내려야 할 듯하고,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감독 권한 이행 문제도 정부를 둘러싼 중요한 기류입니다. 이런 일련의 문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간단하게나마 그 동안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거시적 흐름을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종인 : 요즘 들어서 일각에서 빠른 회복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금융위기와 실물위기가 동시에 터져가지고, 그 동안 쌓인 버블이 이 두 부문 경기를 동시에 끌어내리고 있잖아요. 일반적인 경기변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회복세를 보일 수가 없다는 거예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기변동 상황을 보면 경기 침체가 길어봐야 1년 2개월 내지 1년 4개월 정도였어요. 그래서 미국 정부가 이번에도 이런 움직임을 기대해 굉장히 많은 재정지출을 감수하고, 통화량을 늘리고 금리는 제로 수준에 맞추고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경기가 금방 살아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미국이 안 살아나면 세계경기도 살아날 수 없어요. 요새 아시아 쪽, 특히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나라들이 비교적 순항하는 것 같다고들 하는데, 이런 나라들은 미국이나 구라파와 달리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고 버블이 터지지도 않았지요. 단순히 세계경제 흐름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줄어들었을 뿐이에요.

우리나라도 얼핏 보면 서구 선진국만큼 엄청난 금융위기를 겪은 건 아니에요. 자체 금융운영에 일시적으로 문제가 왔지 큰 사고가 터진 건 아니었지요.

전성인 :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피해가 작년 금융위기 당시 선진국에 비해서는 덜했지요. 그렇지만 특별히 나은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경제, 올 하반기 플러스 성장은 막연한 기대

▲ 김종인 박사 ⓒ프레시안
김종인
: 한국경제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일단 국내 소비는 크게 늘어날 수가 없어요. 여러 가지 지표를 보면 알겠지만 양극화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고, 소위 가계저축률이 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최하로 떨어졌어요. 중간 이하 계층의 저축 여력이 없다는 거지요.

그 동안 한국경제를 뒷받침해주던 수출 역시 금년에는 마이너스 평균 20%대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설비투자가 증가할 수 없지요. 최근까지 추세를 보면 설비투자가 연평균 20% 정도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지 않나 싶어요.

작년 4분기가 워낙 나빠서 금년 1분기에 경제성장률이 0.1% 정도 오르고, 2분기는 자체적인 재정 집행이 이뤄진데다가 통화 쪽이 팽창하고 금리까지 싸니까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여건이 좋아지는 과정인 것처럼 느껴졌지요. 그러니까 정부가 금방 금년도 성장치도 수정했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3분기에도 지속 될 것이냐는 확신하기 어려워요. 사람들이 4분기가 되면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막연한 기대지,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주요 국제기구들에서 한국경제 전망을 밝게 하는데, 뭐를 기준으로 해야 할지도 사실 명확히 알 수 없어요. 국제통화기금(IMF)이고 OECD고 다 경쟁적으로 자기 기관의 경기예측치 영향력을 넓히려고 하잖아요. 더구나 이 기구들에서 쓰는 데이터도 뻔해요. 한국 정부나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온 데이터를 보고 발표하는 거니까요.

전성인 : 요약하자면 선진국 경제는 금융위기하고 실물위기가 동반돼서 왔기 때문에 골이 깊지만, 아시아권 같은 경우에는 금융위기보다는 세계위축에 따른 총수요 부족으로 성장률이 낮았을 뿐이고 한국도 비슷합니다. 다만 한국이 하반기 빠르게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가계의 여력이 없고 수출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박사님 말씀의 요지인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지요.

요새 중요한 문제가 바로 금융과 실물의 괴리입니다. 일종의 양극화가 되겠네요.

일단 해외 쪽 소식을 보면 각국 중앙은행이 신용위축을 막기 위해 그 동안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유동성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월스트리트가 그 힘으로 살아난다고 하고, 실제 일부 살아남은 투자은행은 고용도 조금씩 늘린다고 합니다. 반면 실물은 여전히 사상 최대치로 나빠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상황 같은데요. 주식시장, 또는 부동산을 포함한 광의의 자산시장은 흥청망청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노동이나 실물 쪽은 아직도 겨울이 완전히 지나가지 않은 듯합니다.

버냉키, 그린스펀과 차이가 없다

김종인 : 미국은 산업구조 자체가 실물 쪽을 일으키기보다 금융 부문을 빨리 회복해야 경제가 호전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제도도 바꾸고 하니 금융이 살아나는 듯 하지요. 다우지수가 제일 떨어졌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한 40% 가까이 올라갔습니다.

문제는 미국이 오늘날 사태를 일으켰던 본질적인 문제를 적당히 덮어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거예요. 일단 기본적인 전제가 90년대 이후에 금융의 글로벌화가 되면서 돈 자체가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상품이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금융시장과 실물이 따로 움직이는 거예요. 최근에도 이런 현상이 보이고 있어요. 겉으로는 금융 쪽이 좋은 모습이 보인다 치더라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간단치 않은 문제라는 말이요.

2000년대 들어와서 차입매수방식(LBO) 투자가 유행했습니다.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타인자본을 동원하는 기법인데, 이런 투자의 상당수 만기가 내년 이후로 돌아오게 돼 있어요. 그런데 누구도 어떤 파급효과가 날지 예측 못해요.

이런 문제까지 있으니까 실물부문에 아무도 투자를 못하는 거라고요. 심장병 환자가 심장마비 일으켜서 병원에 들어오니까 긴급처방만 해놓은 상태이지요. 아직도 세계경제는 입원 중에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투약해서 병원에서 내보낼지, 내보낸 다음에는 건강 유지를 위해서 식이요법도 새로 해야 되고 운동도 어떻게 할지를 다 가르쳐줘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아직 환자가 병원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는데 마치 나가서 잘 될 것 같이 얘기하는 게 지금 세계경제 진단하는 사람들 아닌가 싶어요.

나는 작년 11월 IMF 주장이 맞다고 보는데 '금융과 실물이 동시에 가라앉는 경기 하강추세는 일반적인 경기에 비해 회복하는데 서너배가 더 걸린다'고 했어요. 금년은 물론이고 내년에도 크게 기대할 모습이 없다는 겁니다. 2011년에나 들어가면 어느 정도 경기가 회복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싶은 정도입니다.

▲ 전성인 홍익대 교수 ⓒ프레시안
전성인
: 문제를 적당히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지난달 중순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개혁안을 발표 했는데요. 작년 3월에 나왔던 폴슨(Paulson) 재무장관의 개혁방안과 기본적 취지는 같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좋게 말하면 현실 제약을 고려했고 나쁘게 보자면 사실상 개혁이 후퇴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이 결정적인 개혁을 추진할 기회입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입원해 혈액과 수술 장비 등 수술 가능한 조건이 다 갖춰져 있는데도 정작 칼을 들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종인 : 오바마 대통령이 처한 정치 현실이 그렇다고들 할지 모르지만, 경제를 중장기적으로 건전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면 지금은 과감한 조치가 필요한 때라고 봐요.

최근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자세를 보면 모순점이 있는 것 같아요. 버냉키가 한때는 미국경제의 급격한 하락을 막기 위해 제로금리 감수하고 통화량도 늘려주고 재정도 최대한도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재정을 축소해야 된다고 그러더라구요. 지난 2001년 9.11사태 이후에 그린스펀이 쓰던 정책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때도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고 금리 내리고 통화량 늘리는 식의 처방을 해서 오늘날 주택 투기를 조장했고 큰 문제를 야기시켰잖아요.

전성인 : 그런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이 폴슨 리포트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를 두고 기대를 했지요.

김종인 : 정치적 이해가 걸려 있고 각종 이익 집단이 또 반발하고 하니까 오바마 정부도 엉성하게 하는 것 같아요.

실물과 따로 노는 금융,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전성인 : 이제 한국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해봐야 할 듯 합니다. 요새 부동산이 다시 뜨는 걸 보고 2006년을 다시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큰 장이 다시 한 번 서는가 보다, 그 장이 용산 르네상스가 될지, 대치동에 다시 설지는 모르겠지만요.

실제 지금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고, 더군다나 앞으로 4대강 살리기 등을 위해 재정이 풀어놓은 돈이 지방에서 서울로 역류한다면 서울의 땅값이 과열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렇게들 보시는 것 같습니다. 주식시장 활황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의 금융부문 과열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종인 : 나는 지금 나타나는 현상에 놀랄 게 없다고 봐요. 정부가 경제가 하도 어려우니 의도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서라도 경기를 부양시켜야겠다는 생각을 잠재적으로 깔고 있었잖아요.

다만 여기서 상황이 더 나아가 투기가 본격 조장된다면 아마 정부가 경제정책 전반을 운용하는 데 힘겨울 겁니다. 그러면 결국 또 다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겠지요.

주식시장도 그래요. 최근에 돈이 실물과 따로 논다고들 생각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실물경제가 일어나지 못하는 이상 금융도 도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어요. 결과적으로 지금 과열은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봐요.

전성인 : 문제는 정부가 부동산 관련 대책으로 무엇을 준비 중인지 모르겠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국지적인 대책을 쓸 때도 다양한 대책이 있는데요, 투기과열지구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이 있고, 금융부문에서는 대출을 묶을 수도 있지요. 이도저도 안 되면 유동성 전반을 환수하는, 즉 이자율을 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동성 환수 논의는 한 때 정부에서 나오다가 지금은 들어간 상태입니다. 전반적인 대출규제도 요즘 나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투기가 일어나는 지역에만 한정한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부동산 버블, 더 커지면 경제정책 운용이 불가능

김종인 : 역대 한국 정부 주택정책의 본질을 검증할 필요가 있어요. 주택이 없는 사람이 자기 주택 갖도록 하는게 기본 정책 방향이냐, 그렇지 않으면 주택 양을 늘려 그걸 소유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몇 채든 상관없이 주느냐는 건 완전히 다른 방향이니까요.

우리나라는 만약 아파트 투기가 근본적으로 해소가 돼버리면 아예 아파트가 팔리지 않을 것입니다. 건설사가 신규 아파트를 공급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자꾸만 거래가 되느니 안 되느니만 얘기하면 결국 투기만 조장하는 꼴이 되지요. 이게 한국 정부 경제정책의 고질적인 병이에요.

내가 지난 1990년에 부동산대책을 맡을 때도 이런 얘길 했습니다만, 앞으로 투기성향으로 인한 버블이 더 커지면 한국경제 운용 못해요. 투기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집값이 움직이고, 그러면 전세값도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근로자들이 집세 내기 위해서 임금투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는 모든 문제가 주택에 연관돼 있어요. 어느 하나만 딱 잘라서 대책을 내놓는다고 먹히질 않아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왜 최근에 와서 주택담보대출 늘리느냐 궁금할 수가 있어요. 주택담보 부실 문제가 작년만 해도 문제가 떠들썩하던 건데...이유는 간단해요.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잖아요. 돈 수요가 없다는 거지요. 은행은 들어온 돈을 돌려서 돈을 벌어야 되잖아요. 그러니 주택담보대출이라도 해야죠. 다행인 게 우리나라 대출은 미국 서브프라임 수준의 위험은 없어요. 돈이 있는 사람이 돈 꿔다가 주택에 투자합니다. 지금 금리가 너무 낮아서 부동산 투자하기가 좋아요. 지금 금리 2~3%만 잡으면 부동산 투자해서 6~7%만 남아도 이득을 볼 거 아니요. 주택문제가 가계대출문제, 은행 건전성 문제에 다 연관돼 있다는 얘기입니다. 경제 환경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정부에서는 부분적으로 나타난 현상만 갖고 땜질식 처방을 하는 것은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사람으로서 합리적인 자세가 아니라고 봐요.

이런 문제가 생긴 원인이 결국 지난 70년대 이후로 아파트로 주택공급을 시작할 때부터 어느 정도 투기를 전제로 주택정책을 이어온 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투기지역만 대출규제 하고, 전국적으로 남아도는 미분양아파트 있으니까 그거는 분양이 될 때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해야겠다. 이런 논리는 말도 안 되는 거지요. 이런 걸 정부도 뻔히 알면서 지금 마치 새로운 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에요.

'면피성 정책'은 국민 우롱하는 일

전성인 : 사실 이런 논의는 지난번 박사님과 인터뷰에서 다 나온 얘기들입니다. 그 때 인터뷰에서 결국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황이지 않았습니까? 그대로 됐지요. 문제는 지금 어떤 대책을 세우느냐가 중요할 텐데요, 근본적으로는 서민의 내 집 마련 체계를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도시 평균 임금 소득자가 어느 정도 기간 동안에 집을 갖도록 하느냐는 식이지요. 단기적으로는 당연히 당장 문제가 되는 주택투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중요하고요.
김종인 : 지금은 서민에게 '몇 년 동안 저축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정책을 쓰기에는 이미 늦었어요. 집값은 너무 많이 올랐고, 소득은 늘어나지 않고 있잖아요. 공염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조금 과감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차라리 진짜 시장에 맡겨놔 버리는 게 낫지 않겠나 싶기도 해요. 정부가 정책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끌고 가봤자 소용이 없잖아요.

단기적으로는 그냥 주택부문은 시장에 맡겨놓고 정부는 자기 할 일만 하라는 거예요.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고, 즉 주택관련 제도를 재설계하고 나서 시장에 '너희들 마음대로 해봐라'는 겁니다.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정책 담당자들이 면피하기 위해 '하는 척'하는 식으로는 주택정책이 어떤 효과도 못 내요.

전성인 : 그렇게 쉽게 얘기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담보대출을 한 사람이 파산하면 당장 담보는 어떻게 처리할지, 그리고 이게 심해질 경우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지 등을 다 손질해야 하는 문제니까요.

김종인 : 과거에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자꾸 환자를 치료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진정제만 투입하는 게 지금 상황입니다. 진정제 효과가 끝나면 다시 고통스러워집니다. 우리가 IMF 사태 이후에 그 절호의 기회를, 소위 말하는 마이크로적인 구조조정을 놓친 이유가 그거에요. 수술하라고 해서 배를 열고 보니 엄청나게 큰 환부가 있는데 잘못하다간 피투성이가 될 것 같으니 겁이 나서 다시 봉합하고 진정제 놓고는 '해결됐습니다' 이러고 만 게 99년 IMF 극복 선언이에요.

지금도 똑같아요. 경제정책 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국민의 기대에 맞추다 보니까 자기 본연의 합리성을 잃어버리고 순간적으로 '수치를 좋게 해야겠다'는 식으로 정책대응을 하다보니까 다른 데서 또 꼬여버리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재벌구조가 쌍용차 비극 불렀다

전성인 : 다음으로 노동문제를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이전에 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실업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격렬한 노사갈등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요. 그런데 쌍용차 사태를 보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법안 문제는 여야의 정략적 움직임이 오히려 이슈가 돼 버린 듯 합니다. 참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 ⓒ프레시안
김종인
: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고용이 줄어들고 있다는 거예요. 모든 노동문제는 거기서 생기는 겁니다.

일단 경기가 본질적으로 살아나려면 고용이 늘어나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고용이 축소되는 상황이니까 양극화 현상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데, 이게 결국 가서 정치·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갈지도 몰라요.

전성인 : 노동문제가 이대로 가다가는 노동계만의 문제를 넘어서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요지이신데요. 먼저 쌍용차 문제부터 박사님 말씀을 듣고 싶네요.

김종인 :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문제는 기본적으로 97년 외환위기 이후 98년, 99년을 지나면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근본 원인이에요. 지금 쌍용차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부산물입니다.

지금 세계 자동차 시장을 놓고 봤을 때 과연 우리나라가 자동차 제조회사를 5개씩이나 갖고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부터 생각해봐야 된다고 봐요. 쌍용차가 정상적으로 생산하고 임금을 줄 수 있으면 지금 이런 문제가 안 생기지요. 사실상 경쟁력이 없는 회사라고 봐야 돼요.

우리 사회가 구조조정이 뭔지 알게 된 게 몇 년 안 돼요. IMF 사태 이후에야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어요. 내가 90년에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 하니까 당시 관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어요.

그래서 저는 쌍용차 문제는 과감하게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봐요. 법조인들이 얼마나 경영을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법정관리를 허용하는 식으로 법률적으로만 사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질 않아요.

전성인 : 법원도 반드시 독립된 별개의 기업체로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매각, 청산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종인 : 법원은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없어요. 지식경제부가 산업구조 전체를 생각해서 이 문제를 처리해야 돼요. 근로자 문제는 별도로 생각해야 합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퇴원시킬 때는 앞으로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까지 다 구상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걸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되지요.

나는 쌍용차 문제가 결국은 우리나라 재벌구조의 폐단 중 하나를 보여준 거라고 봐요. 지난 91년, 92년 당시 이미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였는데도 삼성, 쌍용 등이 신규로 들어간 것 자체가 시행착오였습니다. 이제는 이대로 끌고 가도 문제가 또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왕 문제가 노출된 거, 여기서 해결책을 고려하는 게 맞아요.

생사가 달린 문제가 공권력으로 해결될까

전성인 : 회사 전망에 대한 의사결정과 근로자 안위는 분리하자는 말씀이시네요. 제 생각에 그러면 회사는 빠르게 정리되든 매각되든 할 텐데, 결국 남는 문제는 사회복지의 영역이 됐든 노동의 영역이 됐든 근로자 문제가 될 겁니다. 제가 만약 쌍용차 근로자였다면 어떤 입장일까 생각해봤어요. 저 분들이 왜 저리 격렬하게 저항하느냐 하는 걸 보면 결국 회사를 나와서는 먹고 살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거든요.

김종인 : 일단 공권력을 투입해서 해결한다는 발상은 아주 유치해요. 사람 생사가 달린 문제를 어떻게 공권력으로 해결합니까. 정부가 잘 풀어야 할 문제예요.

전성인 : 아주 좁게 보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출된 근로자에 대한 한시적인 복지혜택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처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쌍용차 문제와 함께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가 바로 비정규직법 개정입니다.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문제의 실질이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 정치권에서의 슬로건이 한데 얽혀 있어서 무엇이 과연 이 문제의 본질인지,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비정규직법 차라리 폐기하자

김종인 :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의 유연성 추구로 생겨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가 지난 수년 간 너무 늘어나다보니까 노동계 내부에서도 갈등이 생겼지요. 그래서 노무현 정권에서 이 문제를 해소한다고 내놓은 게 사업주가 2년 동안 비정규직을 쓰도록 하고, 계속 고용할 거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거죠.

그러다보니 결국 법 시행 2년이 지난 현재 문제가 발생했어요. 지금 여당은 100만 해고대란 등 대량 해고를 우려하고 있는데요, 실질적으로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을 한꺼번에 내보내면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결단을 사업주가 못 내려요. 당연히 비정규직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대량해고가 발생한다는 건 거짓말이지요.

반면 야당에서 얘기하는 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다 전환시키라는 주장은 실현하기 어려워요. 기업이 노동비용이 비싸지니까 이걸 할 리가 없잖아요.

1년 유예만 하자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되지요. 내년에 같은 현상이 또 생겨날 것이니까. 더구나 내년 되면 지자체 선거가 있어서 정치적으로 지금보다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지금 정치권의 이런 논의들이 다 국회 정상화를 두고 원내대표들끼리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것에 불과해요. 나는 차라리 비정규직법을 폐기해버리는 게 맞다고 봐요.

전성인 : 2년 전으로 돌아가자.

김종인 : 맞아요. 결국 노동 계약관계가 개별 노동자와 기업주 사이의 관계입니다. 노조가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해줄 것도 아니에요. 시장원리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고, 계약관계도 성립하는 거란 말이요. 그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인위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돼요.

전성인 : 김 박사님의 말씀도 한 가지 방법이 되겠네요. 일부에서는 정규직 전환에 나서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자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옛날에 영양사를 고용하거나 장애인을 고용하는 곳에 지원금을 주자는 논의와 같은 얘기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김종인 : 나는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법으로 제도를 마련했으면 그걸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해야지, 왜 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돈을 줍니까.

이 비정규직 문제가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4대 보험 적용을 못 받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그걸 안 받아도 되냐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의료보험 비용을 딴 데서 부담해야 합니다.

또 기업의 양식에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기업이 임금이 싸다고 무조건 비정규직만 많이 쓰려는 사고방식은 사회적으로 볼 때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나는 어차피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차라리 '비정규직은 몇 명 이상 쓰지 못 한다' 이렇게 못을 딱 박아버리면 좋겠어요.

▲ ⓒ프레시안
전성인
: 대학교가 그렇죠. 전임교원수 확보율을 지켜야 하고, 시간강사는 몇 명 이상 쓰지 못 하도록 규제하고 있지요.

김종인 :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대법원 판례도 나왔듯이 동일 노동에는 동일임금 줘야 된다고 봐요. 비정규직이건 정규직이건 차별 없이. 그런데 비정규직한테는 임금도 반 밖에 안 주고 말이지, 이런 거는 법으로 규제해야 돼요.

전성인 : 결국 기업이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가 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 부수적 비용이야 당연히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월급은 똑같이 지급해야만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반대할 수 있는 논리는 시장논리에도 없습니다.

김종인 : 맞아요. 지금 기업의 저런 요구가 자꾸 중요한 것처럼 부각되는 이유가 뭐냐면… 일반적으로 기업은 항상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 목소리만 너무 경청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이 안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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