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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짜다" 회장님 한마디에 주방장은…

[현장] 부영그룹 10구단 창단 선포한 날, 무주리조트에선…

스키장 개장으로 한창 바쁠 시기인 지난 13일 무주덕유산리조트 소속 노동자 150여 명이 무주군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북-부영 프로야구 10구단 창단 선포식 및 협약식'에 참석한 날이었다.

부영그룹 계열사인 무주덕유산리조트 노조는 단체교섭 이행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11월 3일 경고파업에 들어갔다. 1993년 노조 설립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노동자 200여 명이 일에서 손을 놓은 지 벌써 6주째. 회사는 같은 달 7일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노조는 23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원만했던 노사관계, 부영그룹 인수 이후 어긋나

무주리조트는 2009년 전라북도에서 노사관계 우수 사업장으로 선정될 정도로 노사관계가 좋았다. 원만했던 노사관계는 지난해 4월 부영그룹의 계열사인 부영주택이 대한전선으로부터 리조트를 인수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부영그룹은 무주리조트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지난해 11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고 기존 단체협약 승계에 합의했지만, 지난 4월 관리자급 직원 13명을 권고 사직시켰고 7월까지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5차례 거부했다.

부영그룹은 다른 계열사와 형평성에 맞게 무주리조트 노동자들의 수당 등을 삭감하겠다고 주장했고, 노조는 기존 단체협약이 유효하다고 맞서고 있다. 그 결과 휴가비 등 호봉 미승계, 각종 수당 미지급으로 임금 체불액이 약 3억2000만 원이 쌓였다.

노조는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던 대한전선 시절에는 노사관계에 별 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회장 1인 지배체제로 굴러가는 부영그룹은 노조나 단체협상, 인력에 대한 투자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했다"며 "노조 경험이 전무하고 인사노무 시스템이 전근대적"이라고 말했다. 부영그룹의 16개 계열사 가운데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무주리조트가 유일하다.

부영그룹 "최고의 야구 10구단 창단" 밝혔지만, 노동자들은…

부영그룹은 건설업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편이다. 민간임대아파트 건설로 재계 순위 30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리조트·호텔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금부자'로 알려진 이중근 회장은 최근 전라북도와 손잡고 연 유지비가 200-300억 원에 달하는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선포해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13일 기자들 앞에서 "10구단의 창단과 발전을 적극 지원해 프로야구의 수준을 높이고 운영에서도 내실을 기해 최고의 구단으로 만들 것"이라며 "1, 2군 선수도 포지션별로 최고의 선수를 확보해 프로야구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업에 돌입한 무주리조트 노동자들은 부영그룹이 '사람'에 투자하기를 꺼린다고 느낀다. 서비스팀에서 일하는 한슬기(가명) 씨는 "회사에서는 돈을 아낀다고 하고 직원들을 권고사직하고 사람이 나가면 인건비를 절감한다고 좋아하고, 서비스 질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리조트 장기 이용 손님이 부영이 와서 안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한 씨는 "서비스업계에서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회사의 자산인데, 그런 생각은 못하고 늦게까지 일해도 팀장들이 초과수당을 올리지 말라고 강요한다"며 "회사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전문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객 불만이 접수됐다는 이유로 관리자가 사직서를 요구하면서 회사 분위기는 더 어수선해졌다. 골프장에서 7년째 일하는 최민석(가명) 씨는 "비오는 날 혼자 30팀을 담당하다가 손님으로 온 회장 지인들의 불만을 접수 받고 인사이동 조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권고사직 대상에 오른 최 씨는 "관리자가 추석 전에 사직서를 쓰면 살려주겠다고 압박했고,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관리자가 시키는 대로 경위서와 사직서를 썼다"고 말했다.

서비스파트에서 7년차 일하는 김지영(가명) 씨는 "동료가 사직서를 강요당한 이후 직원들 사이에 '누구 한 명 잘린다'는 불안이 조성됐다"며 "서비스업은 아무리 그 직원이 유능해도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데, 불만 접수를 이유로 그만두라는 것은 너무하다"고 거들었다.

ⓒ무주리조트 노동조합

"무조건 서울 본사에 보고, 손님 불만 접수 늘어"

김 씨는 "회장이 절대권자라는 것을 업무하면서 느낀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을 서울 본사에서 결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 씨는 "일하다 다쳐도 예전엔 바로 쉬었는데, 요즘은 일하다 사고 나면 사진 찍고 사고 재연하고, 경위서 쓰고 회장님 승인이 떨어져야 쉰다"며 "무조건 회장님께 보고해야 하고, 서울 본사로 결재서류를 올려야 해서 고무장갑, 비누 하나 사기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10년째 스포츠팀에서 일하는 김정식(가명) 씨는 "부영이 들어온 다음부터 손님 불만 접수가 역대 최악"이라며 "단가 후려치기, 잘못된 결재 방식 때문에 웬만한 건 결재 올리기 자체를 포기한다"고 말했다.

"여름에는 골프장 잔디에 적정 비료를 썼습니다. 똑같은 성분이라고 더 싼 비료를 사니 잔디가 병에 걸렸어요. 모래도 예전에는 고운 모래를 썼는데, 두꺼운 바닷모래로 바꿨고요. 그러니 단골 고객들의 불만이 접수되고, 그 불만은 다 직원이 받습니다."

이중근 회장이 리조트에 다녀간 뒤 인사이동을 당한 노동자도 있었다. 조리파트 6년차 박규식(가명) 씨는 "회장님이 6월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뒤 '음식이 짜다'고 했다"며 "그 이후로 한식당 주방장이 산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인사 이동됐다"고 증언했다.

김지영 씨는 "회사에 앞날이 안 보이니 하나둘씩 그만 두고, 남은 사람은 업무가 감당이 안 돼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부영그룹이 무주리조트를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정규직 노동자 400여 명 중에 9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영업휴가에 나와서 일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강압적인 영업휴가' 때문이라고 했다. 본사에서 비수기에 전체 직원의 절반이 한 달씩 영업휴가를 가야 한다는 지침이 떨어졌다. 문제는 영업휴가에 간다고 보고하고 노동자들은 실제로 나와서 일했다는 점이다.

노조는 지난 7월 "영업휴가는 회사 방침대로 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정연진 노조 부위원장은 "직원들이 진짜로 쉰 결과 한 달 만에 업무가 마비됐다"며 "남은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결국 노조 지침을 철회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씨는 "영업휴가라고 나와서 초과근로 수당도 못 받고 휴가도 못 쓰고 일하는 게 어디 있느냐"며 "노조 지침대로 안 나갔더니 회사가 도저히 안 굴러가서 관리자한테 나오라는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고 거들었다.

"노조 탈퇴 강요받았다"…"대표이사, 복수노조 기획 시인"

관리자들이 노조 탈퇴를 종용하기도 했다. 복수의 노동자들이 "관리자들이 노조가 밥 먹여주느냐, 노조 탈퇴 안 하면 인사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주변의 거의 모든 직원들이 한 번씩은 노조 탈퇴 건으로 팀장들에게 불려갔다"고 증언했다.

노조는 지난 10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여 투표조합원 98%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그로부터 5일 뒤 팀장급으로 구성된 복수노조가 무주군청에 설립신고를 냈다. 무주군청은 제 2노조 조합원들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관리자라는 이유로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유주원 무주리조트 대표이사는 지난 3일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과의 노사 면담에서 "복수노조 설립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고 노조는 전했다. 복수노조 설립을 사실상 사측이 기획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노조는 기존 단체협상을 승계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이 노조안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교섭은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 12일 재개된 교섭에서 유 대표이사는 "노조가 죽든 회사가 죽든, 둘 다 죽든 누가 죽는 것 아니냐? 끝까지 가보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지난 11월부터 무주리조트 대표 이사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스키장 리프트 멈출까 걱정하는 노동자들

파업에 돌입한 뒤로 스키장에는 아르바이트생과 대체인력이 투입됐다. 김정식 씨는 "대체인력은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다"라며 "스노우모빌도 정비가 제대로 안 돼 불확실한 상태에서 돌리고 있고, 12일에도 스키장 리프트가 30분 동안 멈췄는데 안전요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김 씨는 "대학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직장에 애착이 많아서 10년째 일하는데,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며 "오히려 파업하는 직원들은 리프트라도 멈출까봐 제일 걱정인데, 회사는 직원들 복귀에 신경도 안 쓴다"고 호소했다.

부영그룹 "우리는 무노조"…"회장님이 특정 직원 자르라고 말한 적 없어"

무주리조트 관계자는 "회사가 공식적으로 노조 탈퇴를 시키지는 않았다"며 "구조조정도 계획이 있긴 있었는데, 다른 계열사 전출을 통해 조직을 슬림화하려고 계획한 것이지 억지로 구조조정을 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회장이 다녀간 뒤 인사이동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이중근) 회장님이 직접 특정 직원을 자르라고 얘기한 적은 없다"면서도 "회장님이 작업장을 도시니까, 직원(관리자)들이 (특정 자리에)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인사이동을 했다)"고 답했다.

결재 방식이 복잡해지면서 서비스 질이 떨어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서울 본사에 대표 이사가 계셔서 결재가 서울로 올라간다"며 "결재는 아주 잘 나고 있다"고 반박했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단체협약 미이행에 대해 "직원 복지는 계열사인 무주리조트도 본사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가 휴가를 다 쓰려고 하고 과한 요구를 하는데, 다른 계열사 직원들은 휴가도 못 써서 박탈감을 느낀다"며 "(무주리조트를 뺀) 나머지 계열사는 무노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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