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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마음 독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어요"

[희망광장 릴레이 인터뷰·①] 김미화 "99%와 같이 잘 사는 길 찾아야"

지난 2011년 우리 사회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희망버스' 운동으로 뜨거웠다. 희망버스 운동은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국회 청문회로 불러들이는 성과를 거뒀고, 정리 해고를 '사실상' 철회한다는 내용의 노사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로 갈등을 빚는 투쟁사업장들은 많다.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재능교육, 콜트-콜텍이 대표적이다. 특히 재능교육과 콜트-콜텍은 농성 5년째를 맞는 장기 투쟁 사업장이다. 그밖에 언론에서 잊혀지는 코오롱, 파카한일유압, 유성기업의 싸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리해고 반대와 비정규직 투쟁에 다시금 불씨를 지펴보자는 문제 의식에서 이번에는 '희망광장'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시청 광장에 텐트 둥지를 튼 '희망광장 기획단'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아 릴레이 인터뷰를 보내왔다. 첫 인터뷰 대상자는 방송인 김미화 씨다. <편집자>

▲ 김미화 씨. ⓒ희망광장 기획단

봄인데도 날이 안 풀렸다. 겨울 잠바를 며칠 더 입으면 된다고 하지만, 이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시청광장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비롯한 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였다. 텐트를 몇 개 세워두었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한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추운 날 밖에서 자는 제정신 아닌 행동을 할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유 없이 잘렸다. 임원진은 외국에 가고 주식배당을 챙기는데 노동자들은 경영이 어렵다는 핑계로 잘렸다. 불법 파견직으로 고용해온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는 법원 판결이 있는데도 회사는 입을 다물고 모른 척 한다. 회사에 출근하고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을 붙이더니, 회사는 이들을 개인 사업자라고 한다. 노동자는 절대 아니라고 한다.

이상했다. 왜 이렇게 세상이 이상한 걸까?

그들은 "이상하다, 잘못됐다"고 외친다. 요상함에 항의하기 위해 시청광장에 텐트를 치고, 희망광장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그들의 외침에 목소리를 더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방송인을 넘어 폴리테이너의 대명사가 된 김미화 씨도 할 말이 있다.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20명의 사망자를 낸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 씨가 그녀의 말을 들었다. 김미화 씨가 그에게, 그리고 희망광장에 전하는 이야기를 옮겨본다.

"비정규직 문제, 기업이 생각을 바꿔야"

"사람값이 비싸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는 사람이 너무 값이 싸요."

그녀는 '사람 값'을 따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값싼 사람으로 치자면 비정규직을 빼놓을 수가 없다.

"유종일 교수의 책을 보니 이게 대안이다 싶었던 것이 있어요. 비정규직의 급여가 오히려 정규직보다 비싸야 한다는 거죠. 비정규직에게는 기업에서 주는 복지 혜택이 없으니 기업 입장에서도 오히려 비정규직을 훨씬 더 부담 없이 비싼 가격으로 쓸 수 있다는 거죠. 외국에서는 그런다고 하거든요. 물론 기업이 생각을 바꿔서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될 수 있으면 너무 좋겠지만, 비정규직들은 적어도 정정당당하게 일하는 값을 받고 싶다는 거잖아요. 회사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일하는 값 주고 쓰면 될 것 같은데,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으니까."

비정규직 이야기가 나오면, 재작년 파격적이기까지 했던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정과 그에 비해 어떤 미동도 없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창근 : 생산 공장을 보면 정규직이 1만 명이라면 비정규직은 2만 명 수준이거든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였던 최병승 씨가 지난달 23일 대법원에서 "사내하청도 파견에 해당하므로 2년 이상 일한 경우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변한 것은 없죠.

김미화 : 그 분을 저도 인터뷰했는데, 너무 답답한 것이…. 법이 무슨 권고사항도 아닌데 당연히 판결을 이행하도록 (현대차 사측에) 강제해야죠. 서로 안 풀려서 사람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문제가 오랫동안 안 풀리고 왔다면 어려운 사람들이 법에다 기대는 이유는 뭐겠어요. 법에 해결해달라는 건데, 법으로 이겨도 회사에서 가타부타 말이 없어버리니까.

이창근 : 법이 재벌권력을 견제해야 하는데, 법을 안 지키는 것도 재벌이고 법을 이용하는 것도 재벌이고.

김미화 : 경제를 잡고 흔드는 사람들에게 권력이 넘어갔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맞춰주는 거잖아요. 저 사람들 아니면 경제가 죽는 게 아닌데. 그게 1%들에게 다 가버리는 건데. 99%와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은 언제쯤이나 모색하려는지. 만약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간다고 해도, 그들도 소수 경제기업이 권력을 좌지우지 하는 시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재벌에) 맞춰간다면 과연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을지….

"쌍용은 오래된 상처…상처의 딱지가 떨어지면 아문다"

"희망광장에 사람이 없다"

화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 씨의 고민으로 전환되었다. 99%가 같이 잘 사는 세상, 희망광장도 그리로 가기 위한 한 걸음이다. 그는 현재 희망광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아쉬움, 아니 절박함을 토했다. 희망버스에서 희망텐트, 희망광장으로 이어지는 희망의 흐름들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가 그의 고민이다.

김미화 : 사람들이 쌍용차에 대해서 생각을 놓고 있는 게 아니에요.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생각만 하는 거지. 또 사안이 너무 많아요. 한미 FTA 문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등.

이창근 : 사안이 사안을 덮는다고 하죠. 그만큼 벌어지는 일들이 많아요. 실은 그 하나하나가 정권을 내려오게 할 정도로 심각한 것들인데.

김미화 : 사람들이 "이제 정권 말기인데 정권도 기가 좀 꺾이지 않겠느냐"라고 물었어요. 저는 "아니다, 더 극악해질 거다"라고 대답했어요. 지금도 보이잖아요. 마음가짐을 더 독하게 가지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어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에요. 소중한 시민이고 인권과 주권이 있는 사람들인데 왜 우리가 손해를 봐요? '건드리려면 건드려라, 삐뚤어질 테다' 이렇게 나가야 해요.

견뎌내야 하는 거예요. 다 아프죠. 쌍용자동차는 너무 오래 아팠고, 오래된 상처가 남았죠. 하지만 그것만 보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딱지가 앉았으니까, 이게 떨어지면 아무는 거다. 딱지가 떼어질 때까지 해보자. 가슴 열고. 멀지 않았어요. 그동안 지치지 말아 달라는 게 저의 부탁이죠. 대단하신 거예요. 거기서 승리했을 때 맛보는 희열이 반드시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다 다른 데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마음 속으로는 '나도 같은 비정규직인데…', '나는 정규직인데 저 사람들에게 미안한 것이 있는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선한 기운이 있잖아요. "그것만 보고 가자. 인간은 처음부터 선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말이 따뜻했다. 기운내자고 몇 번이나 반복하는 말 속에 그녀의 애정이 보였다. 쌍용자동차만을 향한 애정은 아니다. 이 추운 시기 자신의 값어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우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일 것이다.

그녀와의 대화가 끝나고 희망광장에 들렸다. 시청 앞 바람은 여전했다. 그녀의 말대로 지치지 않기 위해, 견뎌내기 위해, 계속 피를 흘리지 않고 딱지가 생기도록 하기 위해, 희망광장에는 몸을 웅크린 채 바람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은 소식을 전하면 이날 사람들은 그 바람을 맞으며 3시간 동안 희망광장 왁자지껄 토론회를 했다. 춥다고 인상 쓰는 사람 하나 없고, 마지막에는 율동으로 몸까지 풀었으니, 그들의 상처에 아주 작은 딱지 하나가 더 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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