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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통과되면 뜯어고쳐야 할 법들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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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통과되면 뜯어고쳐야 할 법들 수두룩

범국본 "국회가 한미FTA 내용 모르고 비준동의하려는 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내용이 통상절차법과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가운데, 이 협정문 조문의 적잖은 부분이 국내 법률과 상충된다는 지적이 추가로 나왔다.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정책자문위원회는 3일 크게 13가지 조문이 국내 법률과 정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현 한미FTA 협정문을 국회가 그대로 비준 동의할 경우 국내법을 크게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치국가 운영 원리에 맞게 국회는 한미FTA와 관련된 각종 법률을 만들거나 개정안 작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면 한미FTA 발효 후 다시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주권국가의 운영 원리인 법률이 국민의 뜻을 반영한 국회의 토론과 연구가 아니라 외국과의 비준안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변경되는 셈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국회가 한미FTA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발효시킨 한미FTA 조항으로 인해 관련법의 근거를 만들어야 하는 셈"이라며 "입법권 침해이자 법치국가 정신을 훼손시키는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범국본 정책자문위가 지적한 내용들을 보면, 공공보건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 '허가-특허연계조항'을 비롯해 '투자자-국가제소제(ISD)', 금융관련 규정, 지적재산권 관련 규정 등이 현행 국내법과 충돌한다. 범국본 정책자문위가 제시한 충돌규정들을 요약 정리했다.

▲한미FTA 비준안 상정을 두고 여야의 신경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남경필 외통위위원장이 회의실로 들어가려다 조승수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입법권 침해하는 허가-특허연계조항

대한약사회 등이 반대하는 '허가-특허연계 조항'은 한미FTA에 포함된 대표적 독소조항이다. 허가-특허연계제란 복제약 제조 허가를 신청하는 회사가 있으면 그 신청 여부를 식약청이 특허권을 가진 제약사에 통보하도록 하고, 특허권자에게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제도다.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해당 국가의 정부는 복제약 허가절차를 중지하게 돼, 그만큼 특허 보호기간이 늘어나는 효과를 지닌다.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식약청이 특허권자를 보호하는 데다, 이로 인한 약값 상승 효과가 예상돼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 제도에 따라 특허권을 보유한 외국계 대형 제약사들이 특허소송을 남발하는 것 또한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허가-특허연계제의 근거는 한미FTA 조문 18.9조 5항이다. 특히 5항의 '나' 호는 복제약의 시판을 금지하고 특허권자가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법치국가 원리에 맞춰, 국회는 한미FTA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관련 법률인 약사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 법은 현재 대한약사회 등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런데 약사법은 '나' 호에 대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한미FTA가 발효되더라도 약사법에 근거를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관련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 훼손 근거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무력화 근거'로 의약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의약품 및 의료기기위원회 검토기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한미FTA 조약에 대한 근거도 우리 법에는 없다.

한미FTA 5.7조는 신약 가격을 설정하는 기구가 한국과 미국의 중앙정부 산하 보건의료 당국에서 독립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간기구가 신약 가격을 결정토록 하라는 것인데, 이 경우 현재 약가협상 기구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대체하는, 사실상 다국적 제약업계의 이해를 반영하는 민간기구가 높은 약값을 설정할 것이라는 게 범국본 정책자문위의 지적이다.

따라서 한미FTA 조항과 약가협상의 근거를 담은 국민건강보험법도 상충한다.

입법예고 예외조항 없어진다

표준, 기술규정과 적합성 평가절차 개발시 상대국 관계자의 참여를 규정한 기술장벽 투명성에 대한 협정문 9.6조는 행정절차법과 충돌한다.

행정절차법 41조와 46조는 '입법내용이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경우', '입법이 긴급을 요하는 경우', '예고가 공익에 현저히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에 한해 입법예고의 예외를 두고 있는 반면 한미FTA는 예외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미FTA 비준 이전에 행정절차법 개정도 필요하다.

ⓒ프레시안

애매한 외국인 투자 제한

외국인 투자 촉진법은 외국인도 국내에서 투자업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지만 '국가의 안전과 공공질서의 유지에 지장을 주는 경우', '대한민국의 법령을 위반하는 경우'는 투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한미FTA 부속서II에서 한국의 유보목록으로 규정한 내용은 '그 투자가 사회의 근본적 이익에 대하여 진정하고 충분히 심각한 위협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유보를 가능토록 한정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이에 대해 "법률은 기본적으로 언어 자체로 해석해야 하는데, 우리 법은 넓게 해석할 여지가 많은 반면 한미FTA는 해석의 여지가 좁다"며 "투자제한 사유가 불일치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무시하는 ISD

한미FTA 비준을 놓고 막판 최대 이슈로 떠오른 ISD는 한국의 사법체계와 맞물린다는 의견이 나왔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을 유일한 최고법원으로 인정하는 반면, 한미FTA 11.16조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중재신청자가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범국본 정책자문위는 "대법원의 최고법원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차별하는 법안?

한미FTA 11.3조는 미국인 투자자가 한국에서 국내 투자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문은 "자국 영역 내 투자의 설립, 인수, 확장, 경영, 영업, 운영과 매각 또는 그 밖의 처분에 대하여 동종의 상황에서 자국투자자에게 부여하는 것보다 불리하지 아니한 대우를 다른 쪽 당사국의 투자자에게 부여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조세특례제한법 2조는 "소득세법에 따른 거주자 및 법인세법에 따른 내국법인"만을 내국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5조와 7조, 12조, 33조, 104조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내국인'에 한해 특정한 상황에서 소득세, 법인세 등을 공제해주도록 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 차별을 이유로 ISD 적용이 가능한 사안이다.

금융분야에서도 외국인의 자격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과 보험업법 시행령,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은 모두 이들 금융기관의 대주주를 내국인, 내국법인, 외국법인까지만 인정한다. 외국인은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한미FTA 협정문은 내국민대우에 따라 외국인도 내국인과 같이 금융사의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상충한다.

보험계리사 시험 사라지나

우리나라 보험업법은 보험계리사나 손해사정사의 자격을 금융감독원장이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한 후 일정 기간 실무수습을 마치고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사람으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서비스에 관한 내용을 담은 한미FTA 13.5조는 자유로운 금융서비스 허용 항목으로 "보험 관련 서비스, 그리고 모든 은행 및 그 밖의 금융서비스"를 포함하고 있고 특히 "상담, 계리, 위험평가 및 손해사정 서비스와 같은 보험 부수 서비스"도 금융서비스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보험계리사, 손해사정사가 한국의 엄격한 자격 제한에 구애받지 않고 한국에서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게 가능하다. 한국법과 한미FTA 조항이 명백히 상충하는 대목이다.

지적재산권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나

지적재산권에 관한 내용인 한미FTA 18.10조는 17항에서 "각 당사국은 일방적 잠정조치의 신청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응한다"고 규정해두었다. 일방적 잠정조치란 양자간 분쟁에서 한쪽 일방의 의견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두 기업 간 특허 소송이 일어났을 때 일방적 잠정조치가 인정되는 나라는 법원이 소송 당사자의 주장만으로 피소자에게 판매금지 가처분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민사집행법 304조는 가처분 재판의 경우 "변론기일 또는 채무자가 참석할 수 있는 심문기일을 열어야 한다"고 규정해, 당사자 청문절차를 인정하고 있다. 당사자의 참석 없이는 제3자의 일방적 잠정조치를 금지한 것이다. 한국의 법률과 한미FTA 협정문이 명백히 부딪히는 부분이다.

범국본 정책자문위는 "일방적 잠정조치로 인해 제3자의 영업 등 권리 침해가 증가할 것"이라며 "한미FTA는 당사자 청문절차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많은 약업 분야에서도 지적재산권 부분이 상충된다.

한미FTA는 18.9조에서 신약품 품목허가시 제출된 자료의 독점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약사법 시행규칙 30조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매 4년~6년 사이에 재심사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때 제약사는 관련 첨부자료까지 모두 제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현행 한미FTA 도입을 반대하는 단체는 "(우리나라 제약사의 다수인) 복제약 제약사가 안전성, 유효성에 관한 자료를 신약 제약사가 제출한 것과 동등한 범위로 제출하게 함으로써 안전성, 유효성 자료에 대한 독점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관련 규정이 약사법이 아닌 법률 하위의 '시행규칙'에 근거하고 있어, 모법(약사법)에는 관련 시행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국회가 한미FTA 비준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현재 계류 중인 약사법 개정안부터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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