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반론] '쪽수 대연합론자'의 자기도취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반론] '쪽수 대연합론자'의 자기도취

자유주의 10년 정권의 오류를 진보진영이 분담하라고?

필자는 노회찬 대표가 이끌고 있는 진보신당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2008년 2월의 분당 사태 이후 진보신당의 모습은 분당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몇몇 스타 정치인(노 대표 자신을 포함해서)을 내세운 미디어정치에 치우쳐 정작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여야 할 풀뿌리 정치는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세지고 있는 '진보대연합'에 대한 논의는, 그렇지 않아도 제도정치와 미디어 정치에 익숙해지고 있는 진보신당의 주류적 흐름에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들 사이의 진부한 노선투쟁이 재연되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과의 선거연합이 정치의 모든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자신의 노선을 실현할 사회적 토대를 가지지 못한 진보정당들 사이의 노선투쟁은 차이만을 확인하는 지루한 공방일 수밖에 없으며, 민주당/국민참여당과의 선거연합 논의는 반(反)이명박 전선이라는 '근시안적' 상황인식을 넘어서지 못하게 할 것이다.

진보신당이 이렇듯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원칙을 확인하기 위해 <프레시안)(12월 20일)에 실린 정상호 교수의 "노회찬 대표의 정세 인식에 대한 비판"(☞기사보기)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의 주장은 진보신당으로 하여금 최악의 길을 가기를 요구하고 있는 바, 그의 입장을 거꾸로 읽으면 역설적으로 진보신당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정 교수의 논지는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1987년 이후 지겹도록 들어 온 '비판적 지지론'의 변형된 판본이기 때문이다.

▲ 지난 8월15일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왼쪽부터) ⓒ뉴시스

정 교수는 진보신당이 연합정치의 원칙을 저버렸다고 주장한다. '연합'은 모든 것을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합의에 근거한 느슨한 연대이어야 하는데, 진보신당의 주장은 "비타협 노선의 선명한 진보를 주장하는 독자 노선의 천명"이라는 것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 교수의 주장은 연합의 형식은 지적했지만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연합의 내용에 있음에도 말이다. 우선 정 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일단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은 놔두기로 하겠다. 이 문제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문제이며 정 교수의 입장에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당 사이에는 정 교수가 걱정해 주지 않아도 '최소한'을 넘어서는 합의의 토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관심은 두 당의 통합에 있지도 않다.

문제는 진보신당(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자유주의자들과 가질 수 있는 합의 지점이 무엇인가이다. 진보정당에게 대연합을 제의하면서 원칙 고수를 꾸짖으려면 최소한의 '진보'를 내보여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진보란 무엇인가? 고작해야 '반이명박'과 '반한나라당'을 넘어서지 못한다. '4대강 정비사업'과 '언론법 개악'에 반대하는 것을 '진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근거에 있다. 이 점에서 최소한 원칙상 진보신당의 입장은 분명하다.

진보신당 '당헌 전문'은 "진보신당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남성 지배 체제와 생태 파괴 문명을 극복하고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새 세상을 열고자 한다. 진보신당은 이제까지의 진보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시대에 어긋난 낡은 유산들은 과감히 쇄신할 것이다. 진보신당은 한국 사회의 근본 변화를 위해 새로운 진보의 길을 열어가는 정당이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10년간의 자유주의 정권은 진보신당이 제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정권들이었다는 데 있다. 새만금과 방폐장 건설에게 드러났듯이 반생태적이었으며, 시장만능주의를 사회 곳곳에 유포함으로써 불평등과 빈곤을 양산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축소했으며 국제관계를 핑계 삼아 부도덕한 전쟁에 파병했다. 당헌에 명시되어 있는 진보신당의 입장에 비추어 보면 자유주의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차이만큼이나 공통점도 많이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의지를 몰라주는 국민을 탓하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오만한 태도도 닮은꼴이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반이명박'과 '반한나라당' 투쟁은 진보와는 거리가 먼 정권을 둘러싼 정치투쟁을 벗어나지 않는다.

쪽수로 자신의 옳음을 강변하나?

백번 양보해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적 퇴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반이명박 투쟁이 어느 정도의 진보성을 띤다고 해도 정 교수의 태도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다. 연합의 기준은 연합에 참여하는 세력이 무언가 이득을 얻을 때 가능한 것인데, 현 정세에서 반이명박 투쟁에 참여함으로서 진보세력이 얻을 수 있는 '득'이 무엇인지가 불명확하다.

현재 자유주의 세력이 보여주는 정도는 기껏해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의 예산 편성을 저지하거나, 야당 정치인에 대한 비리수사를 표적 수사로 반비판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어떤 비전과 원칙 아래서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지가 불명확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명박과 결탁된 지역 토호와 개발자본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민주당은 온 나라를 탐욕스럽고 자기 파괴적인 경쟁으로 몰아넣은 시장만능주의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인가? 민주당은 국민에게 스스로의 주장을 개진하게 하는 참여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지 못한 정치세력이 대연합을 주장하는 것은 진보의 원칙이 아닌 쪽수로 자신의 옳음을 강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민들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실력으로 4대강 정비사업을 저지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안세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진보정당은 사안에 따라 그들을 지지하면 된다. 너무나 다른 원칙과 전망을 가지지만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한 반대에는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보정당에 대해 이렇게까지 '친절한 배려'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정 교수는 원칙도 내용도 없이 민주당을 따라오라는 오만한 다수파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자유주의 정권들과 이명박 정권의 유사성에 대해 말했다. 약간의 과장을 허용한다면 자유주의의 정권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의 초석을 닦아 놓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나는 정 교수의 논리가 참으로 궁색하다.

그는 정치적·사회적 양극화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에게 있다고 말한 후 다음과 같이 얼버무린다. "우리가 그 문제를 보다 솔직하게 구조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진보개혁세력의 총체적 역량과 지혜의 부족에 본질적 원인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진보정당과 진보지식인,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상대방에게 일방적 사죄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성찰하는 자세로 국민들에게 임해야 한다."

분명 진보세력은 자기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반성을 촉구하는 주체가 잘못되어 있다. 10년 동안의 자유주의 정부 시절 진보세력은 자유주의 정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비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보수파와 진보적 의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그리고 시장맹신주의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던 자신들의 오류를 비판세력에게 분담하자는 것이 아닌가?

분명 정 교수는 "연합정치의 기본 정신과 원칙은 우리만이 옳았다는 과거의 정당성이 아니라 그래도 척박한 현실보다 조금은 나아질 미래의 희망에 대한 공유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 교수를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은 과거의 오류를 덮어둠으로써 자신들만이 옳다는, 자신들을 중심으로 대연합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기도취'를 반복한다.

또한 진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미래의 희망을 공유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희망이 무엇인지가 불명확하다. 대북관계와 몇몇 절차적 민주주의의 퇴행을 제외한다면 그들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희망'은 이명박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한다. 아니 없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0년간의 배반의 역사는 그들의 진보의 희망은 결코 우리의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진보정당은 그 어떤 정치세력보다 앞장서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명박 개인의 통치스타일과 그를 둘러싼 정치집단을 대상으로 한 비판과 투쟁이 아니라 그들을 집권하게 했고 이 정도까지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통치할 수 있게 만든 한국의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며 투쟁이어야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정권을 교체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진보정당은 사회구조에 대한 총체적 비판을 원칙으로 사회 곳곳에서 생겨나는 민중의 불만과 저항이 스스로 조직화되어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투표장의 민주주의, 국회의사당과 지방의회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급진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진보신당은 이러한 입장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 원칙에 동의하는 정치세력과 연합을 마다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이것을 '연합정치의 원칙과 정신을 훼손한 정파적 분열정치의 소산'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진보는 내용이 텅 비어 있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는 '진보'임을 증명해 줄 뿐이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났다고 사라지는 그런 정당이 아니라 지역에 뿌리 내리고 있는 사회운동과 공동체운동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뿌리 내리기 작업에 함께 해야 한다. 이 길은 정상호 교수가 요청한 정치집단 간의 이합집산, 즉 좁은 의미의 연합정치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는 넓은 의미에서의 연합정치일 것이다.

이것이 진보진영의 원칙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이제 정상호 교수가 주장하는 "독점과 배제"가 아닌 "소통과 협상"의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남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원칙을 확인하고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준엄한 자기비판이 결여된 대연합의 제기는 소통과 협상의 출발점인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