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상임이사가 발제자로서 포문을 열었다.
"'민주개혁세력'이라는 용어부터가 패배적인 것 같다. 물론 과거 민주개혁세력이 했던 일은 너무나 엄청나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대단히 큰 역할을 했지만, 많은 국민들은 과거 세력이라고 본다. 대안을 가진 희망세력이라고 자기 재규정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체성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컨텐츠와 비전을 가져야 한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제3의 도시라는 포르투 알레그레 지방정부를 맡아 지방행정을 훌륭히 이끈 덕에 집권을 했고, 재임에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고 있다. 민주당이 과연 다음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비전과 다양한 컨텐츠 전략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민주당이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성공했고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유리한 조건이 형성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국민들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별성이 무엇인지, 확연히 알 수 있는 본질적 차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희망제작소에서는 자치단체장 한 사람의 비전이 지자체를 바꿔낼 수 있다는 생각에 '좋은 시장 학교'를 만들어 정책과 비전에서 확연히 다른 커리큘럼을 준비했지만, 민주당은 한 명도 안 오고 오히려 한나라당, 뉴라이트에서 오고 있다. 과연 민주당은 열심히 공부하고 비전을 준비하고 있는가.
누구나 하는 얘기가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고 한다. 지금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다양한 정치세력이 난립해 있는데 국민들은 이런 정파들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
지난 번 재보궐선거에 대한 평가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민주당은 만세를 부른 것 같은데 과연 성공했나. 안산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만약 안산에서 통합이 이뤄졌으면 민주노동당이 양산에서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다는 논의도 있었다. 통합이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지 않지만 민주당이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민주당은 의석 하나 늘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명분을 갖고 통합하는데 맏형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큰 틀에서 양보함으로써 승리하고, 지면서 이길 수 있었지만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데, 정당은 공천만 관여하고 이후 지방정치는 책임을 하나도 지지 않더라. 책임은커녕 여러 가지 특혜만 누리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국민공천이라는 것을 도입해보면 어떨까 한다. 공천권을 완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비선거처럼 본선거 전에 일종의 '오픈 프라이머리' 식으로 단일 후보 경선을 진행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실험을 하면 한나라당과 차별화된 선거를 만들 수 있지 않겠나. 미국에서는 온라인 선거가 실시되는 시도 있다. 공정성이나 기술적 문제는 해결이 된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과반 이상 승리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겨야 이겼다고 평가될 수 있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이다."
이어진 토론. 천정배 의원이 "120% 공감한다"고 말을 이어갔다.
"지난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민심이 완전히 이명박 정권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할 길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국민들이 민주당 등 야권을 정권을 맡겨도 좋을 든든한 세력이라고 확신 못 하고 있다. 민주당이 민생 문제를 비롯해 뚜렷한 국가비전을 제시 못 하고 있다. 국민들은 비전도, 전략도, 정책도, 인물도 없다고 보고 있다. '혁명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부터는 한나라당과 1대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6개월 남은 지방선거에서 통합이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묻지마 통합이 능사인가 의문도 있다.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안산 실패를 바탕으로 선거에 임박해서 후보 단일화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따라서 당장 연대를 위한 노력을 시행해야 한다.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득권도 일정 포기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 후보로 뛰고 있는 인사들, 당 지도부 등이 기득권의 상당 부분을 당 밖의 세력에게 떼어줄 수 있는 각오를 갖고 약속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이 재창당의 노력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국민들과 일상적으로 살갗을 부딪치면서 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참신한 인사들을 삼고초려해 최대한 당의 인적자원을 풍부하게 하고 다음 선거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 상대는 이명박 정권도 한나라당도 아니다. 민심은 이명박 정권에서 떠났다. 우리 스스로가 국민들에게 비전을 가진 대체세력으로 신뢰를 얻어야 다음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싸움은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다."
▲ ⓒ프레시안 |
이은 토론자인 전병헌 의원은 '민주당 책임론'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기도 하다.
"10월 재보선에서 양산에서는 졌지만 선전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대단히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재보선에서 왜 통합에 실패 했는지 비판을 많이 하는데, 선거는 실질적이고 공학적인 문제다. 실패에 대한 진단과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민주당이 큰형님이니까 통 크게 양보하라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지적이다. 정치집단은 신앙심으로 뭉쳐진 희생과 헌신의 심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정확한 진단이 나와야 해결책을 세울 수 있다.
민주당이 의석이 많다지만 한나라당에는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후보단일화 문제를 정서적으로 '부잣집 양보하라'는 식으로 접근하는데 이러면 영원히 실패한다. 단일화 문제는 절차와 규칙,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룰이 갖춰져야 성공할 수 있다. 안산 단일화 실패에 대해서도 의석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이유만으로 제3의 관전자로부터 일방적으로 매도당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민주당 비난 유인물이 많이 뿌려지는데, 야4당이 함께 연대해 공동 투쟁하는 상황에서 내부에다 대고 손가락질을 하는 유인물이 뿌려진다면 연대하자는 것인지 균열을 내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부족하고 잘못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배려하고 상호존중하면서 나가야지 한나라당에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민주당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지혜롭지도 온당치도 않다. 한나라당에 맞서는 주축 세력의 힘을 빼고 약화시키는 것이고, 그 수혜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볼 것이다.
서로 정체성의 차이는 약간씩 있다. 하지만 연대를 통해 정체성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구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생활정치 문제와 관련해 야당의 연대를 제기했으나, 다른 야당들이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작은 생활정책 연합을 통해 정책연합으로 발전하고 정치연대, 지방선거 선거연합으로 발전돼야 하지 않겠나.
민주당이 기득권을 포기하라는데 당 대표가 여러 번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실천을 위해 혁신과 통합위원회를 만들어 대화하고 있다. 실천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에는 기득권 포기하라면서 자기 기득권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문제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들을 침묵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 것이 실질적인 통합과 연대를 만드는 핵심일 것이다."
전 의원의 비판 릴레이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한나라당에 맞서는 민주당의 책임감은 매우 존중돼야 하고 더 강조되도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띄운 뒤 본격 반박에 나섰다.
"민주노동당에는 평생 대의를 위해 몸을 바쳐온 분들이 많다. 당에 대한 자긍심도 높다. 통합과 연대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런 당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정치부터 시작하자고 하는데, 사실 재보궐선거 때도 보면 민주당과 민노당의 공약이 거의 비슷하다. 오히려 '민주당과 달라야 하는데'라고 고민할 정도다. 하지만 공약이 비슷하다고 당 사이의 신뢰가 높아진다고 보지 않는다.
지난 월요일 본회의 오후 일정이 연기돼서 처리가 안 된 법 중에 피의자의 DNA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는 법률이 상정됐었다. 이 법안을 보고 경악했다. 민노당이 80석이 넘었다면 그 법안이 본회의에 넘어오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던 법안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추진된 적이 있다. 민주당은 그 한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열심히 싸웠다. 굉장히 존경스럽다. 하지만 미디어법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비정규직법 등에 대해 더 치열하게 싸웠었던가. 내가 '큰 형이다. 따라와라'고 할 정도로 책임 있게 했는지는 의문이다. 미디어법도 결국 처리를 미루는 지연 전술을 쓰다가 한나라당에 발목을 잡힌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으로 민주당과 민노당의 차이는 많지 않다고 본다. 지금은 원칙을 지키는 태도와 절실함이 필요할 때다. 정당은 국민을 대신해 타협을 해주는 중재자가 아니다. 중재자이기 이전에 국민의 대변자이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던져야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절실함이 모자란 것 아닌가.
또한 제1야당으로서의 책임감은 이해하지만, '대안이 있는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항상 타협안을 내놓는다. 시행유예와 같은 타협안을 계속 쓴다. 진보정당의 정책을 다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자고 약속한 사안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느냐는 점에서 상당히 불안하다. 어떤 식의 타협이 벌어질까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안산 선거도 그렇다.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 다른 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개혁적 후보를 내세우고 모이자고 해야 한다. 당 내 결정이니 관여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민주당이 개혁적 사람을 내지 못하면 민노당도 당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존중도 필요하다. 선거 때면 민주당 후보는 항상 25~30%로 출발하지만, 민노당 후보는 5~10%로 출발한다. 얼마나 개혁적이고 헌신적인지 인물만 놓고 보면 민노당 후보가 나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자기들이 30%로 출발했으니 5%에게 양보하라고 한다.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 당 기득권 포기하고 누가 한나라당과 맞서 싸울 적합한 후보인지 평가 받아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하면 아마 민주당 후보로 많이 단일화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민주당에 다 몰아줬다고 보면 안 된다. 공동집권이여야 한다. 그래야 그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의제를 뒤바꿀 수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
이어진 토론자는 김창호 시민주권모임 전략기획위원장(전 국정홍보처장)과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김 위원장은 '정당정치의 위기'를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과거에는 정당이 노동운동, 지식인운동, 민주화운동을 조직하고 대중적 참여를 동력화하는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동력이 현격히 부재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대안으로 "중앙정치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지역정치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방선거에서 우리의 영역을 넓힌다는 단순한 사고에서 벗어나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내재화하고 장기적으로 공동정부를 구성해야 2012년에도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은 보수 세력이 악의적으로 선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개혁세력의 통합과 연대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80년대에 비해 존재 자체만으로도 개혁진보세력을 이끌 도덕성을 가진 인물이 사라졌고, 조직적 힘을 가진 대학생 집단이 사라지고 노조도 힘을 못 내고 있다"며 "이 시대는 하나의 기준으로 묶어낼 수 있는 힘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최 위원장은 2008년 촛불시위를 언급하며 "다시 한 번 시민의 힘으로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은 "촛불시위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깃대에 쓰레기봉투를 매단 시민들, 언론악법과 언론장악에 맞서 함께 싸워준 시민들과 같이 열정적인 개인들을 조직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민주당에게는 "현상을 그럭저럭 유지하면서 지방선거까지 분위기를 이어간다고 생각하면 시민들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고 새로운 대안 세력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민주노동당·진보신당에게는 "조금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청중들 사이에서는 이목희 전 의원이 "DJP 연합도 했는데, 지금은 진보적인 사람들과 연대하자는 것 아니냐"며 "민주당이 과감하게 연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마무리 말에서 "현실론을 얘기하지만, 비전과 대안을 갖춘 꿈과 희망을 제시할 때 작은 문제들은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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