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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이순신', '구리 광장', '구리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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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구리 이순신', '구리 광장', '구리 세종대왕'

[손호철 칼럼] 10.26 30주년에 광화문을 생각한다

오늘은 박정희가 '그 때 그 사람'을 즐기다가 측근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무척이나 비극적이며 동시에 희극적인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려하게 부활하여 상종가를 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의 정적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러 온 1997년 경제위기, 그리고 대선 직전 터져 나온 경제위기 덕분에 집권한 그의 '진짜 라이벌', 즉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불러온 유례없는 양극화에 힘입어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최근 여론조사 결과 역사적으로 가장 기여가 큰 대통령이 누구냐는 질문에 국민 네 명 중 세 명이 박정희를 지목했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목한 국민은 각각 12.9%와 4.4%에 불과했다).

어쨌든 우리는 대통령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박정희, 즉 '인간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 마디로, 기회주의자, 아니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생존주의자'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극단적으로 그러하다. 그의 경력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장준하 선생 등 많은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을 할 때, 그는 살아남고 출세를 하기 위해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 장교가 됐다. 그러다가 일본이 망하자 해방정국에서는 남로당의 지하당원, 다시 말해 박정희 지지자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빨갱이'가 됐다. 그리고 발각이 되자 동료들을 불고 목숨을 구했다. 이렇게 목숨을 구한 그는 60년대 이후에는 극우독재자가 됐다.
▲ 박정희 전 대통령 ⓒ프레시안

사실 5.16 쿠데타에서도 박정희는 이 같은 '생존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5.16 쿠데타는 일상적 통념과 달리 상당히 민족주의적인 영관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것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안은 '자립경제 추구형'으로 상당히 민족주의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미국의 반대에 부딪치자 박정희는 민족주의적 세력들을 숙청하고 미국이 요구한 친미적 경제개발계획으로 수정해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 같은 그의 경력 중 친일경력과 관련해 그는 두 명에 대해 강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명은 장준하이다. 자신의 독재에 저항했던 야당 정치인이었던 장준하는 자신이 일본군으로 천황에게 충성을 하고 있을 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준하 선생은 유신 말기 등산을 갔다가 실족사라는 의문사를 하게 된다.

또 다른 한명은 항일과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박정희는 친일에 대한 자신의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씻으려는 듯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으로 만드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광화문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은 광화문 한가운데 거대한 이순신 장군 동상을 건설했다.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난 것이 '70년대 최고의 저항시인' 김지하의 희곡 '구리 이순신'이다. 김 시인의 이해가 되지 않는 최근 행각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한국문학의 불후의 명작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 희곡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프레시안

하도 오래 전에 읽은 것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희곡은 고된 노동과 삶에 지친 엿장수가 술에 취해 독재자의 비호 아래 부자가 된 큰 도둑들을 질타하고, 경제 발전의 미명 아래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민중의 한을 노래하며 광화문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이순신 동상을 보고 청와대를 지켜는 수문장처럼 뒤로 청와대를 등지고 (인자한 모습이 아니라) 무서운 모습으로 민중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순신을 원망한다.

그러자 들려오는 소리. "아 답답하다, 누구 나 좀 꺼내주시오." 엿장수는 놀라서 사방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다. 그 소리는 엿 장수의 푸념소리에 잠이 깬 이순신의 신음소리였던 것이다. 구리 이순신은 그렇게 시작된 둘 간의 대화를 기본 틀로 하고 있다.

놀란 엿장수에게 이순신은 자신이 권력자를 지키며 민중들을 내려다보는 권력의 수문장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한 '민중의 장수'인데 권력자들이 자신을 구리 속에 가두어 권력의 수문장으로 광화문에 세워 놓았다며 자신을 구리 감옥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순신의 간절한 부탁에 엿장수는 이순신의 투구와 갑옷, 그리고 칼을 벗겨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 때 경찰이 나타나고 그는 엿장수가 구리를 훔치는 것으로 생각해, 수갑을 채워 끌고 간다.

결국 구리 이순신은 단순히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선조와 조선왕조를 지키기 위한 '왕의 장수', '왕의 남자'가 아니라 민중을 지키려 했던 '민중의 장수'로 선조로부터 각종 핍박을 받아야 했던 이순신의 정신은 없애버리고 이순신을 화석화시켜 동상으로 만들어 버린 박정희정권을 풍자한 것이다.

그러기에 개인적으로 광화문을 지나가며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볼 때면 언제나 김지하의 구리 이순신을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구리 이순신 바로 옆에 들어선 것이 바로 '오세훈표 구리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구리 광장'이다.

사실 광화문의 광장 조성 계획은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것이다. 그리고 오세훈 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에 주목해 '오세훈표 대선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을 조성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은 개장 첫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개장 1 주일 만에 방문객이 1백만 명을 넘어서는 등 흥행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여러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듯이 그것은 기껏해야 '정원'이지 '광장'이 아니다. 소통이 없는, 대중들의 자유로운 어울림과 의사표현이 없는 광장이 어떻게 광장인가. 광화문 광장을 메운 수많은 아름다운 꽃들은 시각적으로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소통의 정신을 가두기 위한 '구리 갑옷'에 다름 아니다. 아니 자유로운 집회나 행사를 금지시키면서 화사한 꽃으로 위장한 새로운 '명박산성'이자 대중이 모이고 소통하는 것을 막기 위한 '특수부대의 총칼'에 다름 아니다.

한 마디로, 광화문의 상징인 이순신 동상이 '민중의 장수'라는 그 정신은 가둔 '구리 이순신'이듯이 광화문 광장도 그 정신인 소통을 가둔 가짜 광장, '구리 광장'에 불과하다. '구리 이순신'에 '구리 광장'이라, 어울리는 한 쌍이다!

얼마 전 한글의 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들어섰다. 새로운 볼거리가 생긴 것이고 이순신에 세종대왕이 더해졌으니 '문무의 균형'이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광화문 광장이 구리 감옥을 벗고 광장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구리 이순신', '구리 광장'에 '구리 세종대왕'이 더해져 '구리 삼총사'로 변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무장 이순신이 버티고 있던 '박정희의 광화문'에 아름다운 분수와 꽃밭과 광장이 들어섰고 군인이 아닌 성군 세종대왕도 나와 앉았지만 대중을 가두고 소통을 막으려는 '박정희의 정신'은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 나서, 광화문 광장을 '구리 감옥'에서 해방시키자.

사족: 광화문 광장을 해방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광화문 광장 사용을 제한한 시 조례의 변경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의 경우 서울특별시민이 못 돼서 서명자격이 없다니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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