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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재정을 과감하게 지방으로 넘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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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재정을 과감하게 지방으로 넘겨라"

[정치개혁 강좌]<15> 합의제형 헌정체제 디자인: 연방제형 지방분권제

<희망정치연구회>가 진행 중인 정치개혁 특강을 연재합니다. <희망정치연구회>는 정치제도개혁에 관한 정치, 사회, 법률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입니다. <프레시안>은 정치개혁, 제도개혁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전문적인 강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해 게재합니다. 글과 함께 하단에 있는 '강의 듣기' 서비스를 통해 생생한 육성 청취도 가능합니다. 이번 정치개혁 특강을 맡은 선학태 전남대 교수의 강의는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편집자>

87년 헌정체제의 중앙집권제

한국민주주의 발전을 제약하는 '87년 헌정체제'의 여러 문제 중 하나는 권력과 권한 그리고 돈줄을 중앙정부가 거머쥐고 있는 데 있다. 한국의 중앙집권 수준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중앙집권제의 틀 속에서 단지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덜어내기 위해 대통령 4년 중임제냐 아니면 이원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냐 등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그건 매우 위험한 접근일지도 모른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보다 되레 더 큰 정치적 재앙을 불러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중앙집권의 상징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중앙의 정치적 경제적 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반면에 패배한 야당과 정치인들은 정치적 허탈감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이런 까닭에 중앙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직을 장악하는 게 지역정당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지역 주민들도 자신들이 지지한 대통령으로부터 인사와 재정의 배분에서 특혜를 기대하고 '묻지마 투표'를 행사한다. 반면에 그 특혜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된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대통령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한국정치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권한과 돈줄의 쟁취를 향해 소용돌이치는 투쟁 과정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앙정부와 중앙정치가 수행해야 할 업무와 기능의 과부하 현상으로 국가전략 수립과 국가적인 위기관리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대통령을 축으로 한 중앙집권제의 틀이 유지되는 한 한국정치의 양극화, 지역주의 구도를 깨고자 하는 어떤 처방도 약발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87년 헌정체제의 중앙집권제 국가 틀을 바꾸는 프로젝트야말로 시대적 과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21세기 혁신국가로 떠오르기 위해 국가 틀을 대개조하는 정치적 르네상스 드림을 꿔야 한다. 즉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권한 그리고 재정을 지방으로 과감히 넘기는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디자인할 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7월 열린 전국 시도지사회의. ⓒ뉴시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란 무엇인가

합의제형 헌정체제는 국가권력을 정당 간에 나누기도 하지만(제5-6편 참조)동시에 중앙정부-지방정부 간에 수직적으로 나누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중앙집권제를 대체할 수 있는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말한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는 점점 탄력을 잃어 가는 정당이나 의회 중심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기제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틀을 구축하는 경우 두 가지 상반된 힘이 작용한다. 하나는 국가 전체의 통합성을 달성하기 위해 중앙에 권력과 권한을 집중하려는 구심력이며 다른 하나는 지역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에 권력을 분산(자치권)하려는 원심력이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는 이러한 중앙의 구심력과 지방의 원심력, 두 상반된 힘이 끊임없이 조화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중앙정부에 권력과 권한이 집중된다는 건 곧 정책결정권이 중앙에 집중된다는 걸 뜻하는데 이 경우 되레 국정능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인구가 밀집된 다수 지역에게 유리한 정책(국정)으로 인해 지역 간의 격차와 갈등이 야기될 개연성이 커진다. 이게 중앙 권력집중의 패러독스이다.

반면에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국가정책 결정권을 쪼개 나눠 갖고 특히 지방정부에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틀을 특징으로 한다. 이로써 다수 지역과 소수 지역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배려하여 통합과 다양성의 조화를 추구하려는 국가운영을 통해 중앙과 지역 간, 지역과 지역 간 갈등을 조정하는 민주주의 가치가 실현된다. 각 지역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중앙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스스로 책임지게"하는 민주주의 철학에 부합한다.

고대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지역으로 갈라진 경우가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지역정체성과 지역발전 욕구가 너무나도 강렬하다. 이 점에서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는 한국사회 지역정체성과 이해관계를 조정 관리할 수 있는 매력적인 국가 틀이 될 수 있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왜 필요 한가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를 사실상 지배하는 지역주의 정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설계될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 정치는 중앙정부 재정이 지역개발 중심으로 지출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예산을 더 얻어오기 위해 지방정부 간에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재정권을 비롯한 자치권을 지방정부에 과감히 넘김으로써 지역발전 문제를 중앙정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지방정부가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요구된다.

지방분권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또 다른 요인은 글로벌 시장화이다. 글로벌 시장 시대에는 국가 간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지방정부 간에 치열한 경쟁이 전개된다. 중앙정부가 모든 권력과 권한과 돈줄을 움켜쥐고 있는 중앙집권적 국가 틀로서는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따라서 각 지방 하나하나가 정치 행정 경제 단위의 강력한 자치권을 갖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도록 국가 틀을 마련하는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필요하다.

또 지역개발이나 산업클러스터 조성, 신성장 동력 발굴과 육성, 고급인력과 기업 유치 등 과거 중앙정부에서 수행하던 정책, 입법 및 조세 기능을 이제는 지방정부는 또한 지역주민들의 뜻에 따라 자신의 책임으로 실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지역실정과 특성에 맞는 신속한 정책 개발과 조정, 그리고 지역주민의 욕구에 부응하는 밀착형 행정·생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건 다양한 영역의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방정부 차원의 대응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더욱이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는 글로벌화 시대에 국가경쟁력의 근간인 지방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현재 지방은 지역자본 및 지역인재의 역외 유출, 지방대학의 와해 조짐, 지역경제의 침체 등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른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는 지방 주민들에게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고 이는 사회통합을 저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지반을 흔들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정부는 지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 대학, 기업, 시민단체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자생적 내발적인 지역발전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또 지역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 간의 정책경쟁과 조세경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지방정부에게 충분한 자치권, 특히 지방정부의 배타적인 입법영역을 설정하여 자치입법권을 부여하는 틀이 설계될 때 가능해 질 수 있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이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통일을 대비한 국가 틀이 필요하다. 현행 중앙집권제로는 통일의 충격을 흡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전체로서 국가의 통합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역문제에 관한 정치적인 결정을 자기책임 하에 처리할 수 있는 자치권을 주고 그 결과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도록 하는 국가 틀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은 서독의 연방제에 힘입은 바 크다. 즉 독일 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형식이 아니라 서독연방공화국의 연방제에 동독의 주들이 편입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 점에서 통일 이전에 남한만이라도 연방주의적인 헌법모형을 먼저 도입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통일국가 모형을 설계하는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현행 지방자치제의 실상

현행 지방자치제는 외형으로는 지방자치의 틀을 갖추었으나 실제로는 지자체의 자율성과 자치권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중앙집권적 통치의 변형'에 불과하다. 지방정부는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의 핵심적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의 특색 있는 종합적 발전비전과 전략을 추진하는 데에 필요한 자치행정권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 자치입법권을 갖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툭하면 '곶감'놔라 '대추' 놔라 간섭하며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특히 용도가 정해진 국고보조금의 비중이 증대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개입한다. 중앙권력의 입맛에 따라 주무르는 재정배분 과정에서 장관 청와대를 상대로 구걸 읍소해 예산을 많이 따오는 게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의 주요 활동 임무가 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인·허가권 또한 지자체를 통제하는 관료권력의 무기이다. 그래서 인원삭감, 예산감축을 가져올 수 있는 규제 완화에 중앙관료들의 저항이 거세다.

나아가 광역단체장의 업무 중 국가위임사무가 약 50~60%를 차지하는 데 이를 통해 중앙정부는 지자체의 행정 주도권을 장악한다. 단체장은 주민에 의해 직선되는 데도 불구하고 주민의 대표라기보다는 국가사무를 집행하는 대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방의회도 국가의 위임사무에 대해 심의 의결이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지자체는 중앙정부 일의 하청만 떠맡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획일적 통제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통제 속에서 지역 주민들은 지역발전이 되지 않는 건 재원과 결정권을 거의 독과점하고 있는 중앙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또 지역에 기반을 둔 거대 보수-중도 정당들은 막강한 중앙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결사항전에 가까운 정치투쟁을 전개하는 양상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화 로드맵을 제시, 실행했다. 부분적으로 성과가 없지 않았다. 즉 제주특별자치제의 실시, 교육감 직선, 중앙행정권의 부분적 지방이양, 지방정치에의 주민참여제도(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등이 도입됐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지방화 정책은 중앙의 공공기관을 지방에 분산 이전하려는 하드웨어 중심이었고 중앙권력과 권한을 지차체로 분산하려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특히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등과 같은 지방분권화의 핵심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지방분권화는 세계적 추세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은 기존의 광역자치단체를 더 광역화하는 형태로 대외경쟁력을 갖춘 지방분권화를 서두르고 있다. 말하자면 지역사정에 정통한 지방정부가 나서서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경쟁해야 할 상황변화에 대비하여 지방분권과 재원의 지방이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국제적 트렌드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야 정치인들과 중앙정부 관료들은 중앙의 권력과 권한 그리고 재정을 지방정부에 넘겨주는 데 인색하다. 권력 권한 돈줄을 움켜쥐고 있어야만 '떡고물'이라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방자치단체가 국제경쟁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데 경쟁력을 뒷받침할 만한 권력과 권한도 재원도 없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오로지 중앙정부만을 쳐다보고 있는 눈치 보는 형국이다. 이런 조건에서 지방정부가 어떻게 지방경쟁력을 높일 수 있겠는가.

중앙정부-지방정부 간의 권력과 권한 분할

연방제형 지방분권제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권력과 권한 분할이 이뤄지며 지방정부에 충분한 자율성과 자치권을 부여한다. 우리는 이런 권력과 권한 분할을 이미 목도했다. 즉 2006년 7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새로운 출범을 알리는 제주특별자치제법이 발효됐다. 이 법은 외교 국방 사법 등을 제외하는 다양한 업무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자치권, 즉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치인사권, 자치재정권, 자치행정권, 자치경찰제, 교육자치제 등을 부여하여 사실상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도입했고 이를 단계적으로 이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주자치도는 대한민국이 향후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로 나가기 위한 실험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광역자치단체도 제주특별자치제와 동일한 수준의 권력과 권한과 재정을 이양 받음으로써 한국의 국가체제를 연방제형 지방분권국가로 바꿔 나갈 수 있다. 즉 중앙정부는 외교, 국방, 통일을 중심으로 국가통합 업무와 기능, 그리고 통화관리, 거시경제 및 사회정책 수립·집행, 전국 규모의 국토개발, 지역개발불균형 시정 등 조정의 업무와 기능을 수행한다. 지방정부는 행정, 재정, 교육, 경찰, 문화, 노동, 복지, 산업, 주택, 교통, 환경, 지역산업경제정책 등에 관련된 업무와 기능을 독자적으로 수행한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가 지방행정 사무를 자율적으로 추진하는데 필요한 인·허가권 중심의 자치행정권, 지역특성에 맞는 독자적 행정기구(사업소, 출장소 등)를 설치할 수 있는 자치조직권, 지방 인재를 등용하는 자치인사권 등의 행사가 가능하도록 지방자치법을 비롯한 관련 법률개정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의 성패는 무엇보다 지방재정의 확보여부에 달려 있다. 지방정부가 재정권을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한 아무리 인구규모가 크고 여타 자치권이 강화돼도 독자적인 지역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지방정부에 지방세의 특정 세목과 세율 등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과세자주권을 부여해야 한다. 특히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지방세(관광자원세, 환경보전세, 지역개발세 등)를 신설해 주민의 조세부담을 늘리지 않고 자체 재원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예산 점유비가 세출 면에서 7 : 3, 세입 면에서 8 : 2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현재 국세인 직접세, 간접세의 일부에 대한 과세권을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게 타당하다. 예컨대 특정 법인세, 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방세로 전환이 요구된다.

그렇지만 지방정부의 과세자주권과 국세와 지방세의 재조정만으로는 지방재정을 담보할 수 없다. 따라서 중앙정부로 하여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 차등적으로 재정 지원을 하게 함으로써 경제기반이 취약한 지방을 도와 줄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주에 대해 재정 지원을 차등 지원한다. 독일 연방정부의 주정부 간 재정배분 과정에서도 엄격하게 균등주의 원칙이 고수된다. 즉 연방 재정 파이를 모든 주에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배분하는 게 아니라 부유한 자치주와 가난한 자치주 사이에 차등적으로 배분하여 전 지역주민의 생활수준이 균등하게 유지된다는 의미이다. 한국도 이런 원칙을 도입해 소수 지역이라 하더라도 중앙정부 재정 배분에서 일방적으로 소외받는 일이 사라지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연방주의에는 두 유형이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들 간에 협력과 조정에 중점을 두는 협력적 연방주의이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참여와 협력을 중시하고 합의지향적인 전략을 선호한다. 하지만 세계화시대의 지역 간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대안으로서 경쟁적 연방주의가 있다. 지방정부 간 혹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에 조세경쟁, 정책경쟁을 촉진하는 유형이다. 주민들은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품질과 가격을 비교하여 거주하고자 하는 자치주를 선택한다.

우리는 지방정부로 하여금 경쟁구조 속에서 보다 효율적이고 주민에 특화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 간에 정책경쟁과 조세경쟁을 유도해 지역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일정 영역에서 입법권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입법권의 재배분을 위한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중앙정부(연방정부)와 지방정부(주 정부)의 입법권은 배타적인 입법권과 경합적인 입법권으로 구분되는 데 개정헌법은 중앙정부에 입법권(외교 국방 통일 통화 국적 관세 통계 철도 등)이 부여되지 않는 경우 지역 사정을 꿰뚫고 있는 지방정부가 입법권을 갖도록 하는 게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확실하게 담보하는 장치가 된다. 지역의 특수성과 잠재력을 잘 모르는 중앙의 입법권 독점을 시정하기 위해서이다.

개정헌법은 무엇보다 지역 주민이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세에 대하여 납세 의무를 지는 구체적 법적 근거가 조세법률주의가 아니라 조세조례주의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국가법률인 지방세법이 아니라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혹은 자치주 법률)로 하여 지역민의 납세 조례가 사실상 법률적 지위를 갖도록 하는 헌법상의 근거를 마련하는 게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로 가는 길이다.

광역자치단체의 광역화

현행 광역자치단체가 지역발전을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자치 업무 및 기능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에는 적정 규모가 아니다. 현재 서울과 경기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나 광역시는 외국의 광역자치단체에 비하여 규모 측면에서 너무 왜소하다. 국내적으로도 주민 수가 1000만 명이 넘는 서울이나 경기도를 상대로 해서 주민 200만 안팎의 광역시나 도가 경쟁을 하는 건 마치 헤비급과 권투 경기를 하는 라이트급 선수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현행 광역자치단체를 보다 광역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행정구역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인 정체성을 기준으로 하여 지역을 단계적으로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현행 광역자치단체를 우선 인천과 경기도, 대전과 충남, 광주와 전남,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 등 광역시와 도를 통합하고 다음 단계로 도와 도를 통합하는 등 방안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로써 광역자치단체가 경기주, 충청주, 호남주, 대경주, 부경주 등으로 편성될 수 있다. 다만 인구 등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여 서울 강원도와 제주는 특별자치주로 하면 어떨까 싶다.

이 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내놓은 지방행정체제 개편 안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두 당의 개편 안의 공통점은 16개 광역시도를 폐지하고 전국을 70여개의 시군으로 묶어 60~70만 명 수준의 '통합시'로 하자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규모의 통합시를 만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중앙정부의 지방정부 통제를 더욱 용이하게 하여 사실상 지방자치를 무의미하게 할 개연성이 높은 매우 위험한 개편 안이다. 참으로 시대정신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

더욱이 두 당의 개편 안은 기존의 행정구역을 광역화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선진국 추세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영국은 1992년 지방정부법을 개정하여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역사회에 이양하고, 지역을 광역화하였다. 프랑스도 2000년 22개의 광역자치단체를 6개의 초광역자치단체로 통폐합하기로 하고 2003년 개헌으로 지방분권화를 강화하였다. 독일의 경우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고 유럽통합이 가속화되면서부터 경쟁력 있는 지역단위를 만들기 위해 16개주를 9개의 광역주로 재편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도 '지역주권형 도주제'를 추진하면서 현행 47개의 도도부현(都道府縣)대신 9~13개의 도주(道州)로 통합하려는 개편 논의가 일고 있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의 기대효과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로 개편해 갈 때 여러 기대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우선 지역주의 문제가 마치 봄날 눈처럼 녹아내릴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이 줄어들수록 중앙정부를 관할하는 대통령직을 차지하기 위해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 간의 생사를 건 격렬한 대결정치가 완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발전의 책임을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자체 스스로에게 맡길 수 있어 지역균형발전정책을 둘러싸고 더 많은 중앙정부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지역정당 간 혹은 지자체 간의 갈등과 대립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국가재정이 지역개발 못지않게 복지 교육 의료 등 사회개발에도 균형 있게 나눠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지역 간의 경쟁을 강화하여 국가 전체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영역의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방정부는 중앙에 의지하고 통제를 받던 지방경제를, 글로벌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 잠재력과 특성에 기반을 둔 자생적 내발적 경제발전 모델로 변모시켜 해외 여러 나라의 지방과 대도시들과 직접 경쟁하고 경제교류와 협력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지역발전과 경쟁력을 높여 나갈 수 있고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의 공동화 문제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모든 지역이 개별 국가나 다름이 없는 권력과 권한을 갖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제도와 정책을 선택하여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게 할 것이다. 어느 자치주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고 어떤 자치주는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촘촘한 사회안전망 정책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육자치가 실현되면 지방정부는 교육기회의 다양성을 강화하고 교육의 지역적 특성을 살릴 것이다. 이러한 자치교육 속에서 만일 호남 자치주가 교육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중시하는 제도와 정책을 선택하면 고액 사교육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학부모들은 전라도로 이사할지 모른다. 충청주가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한 제도와 정책을 채택하면 이를 좋아하는 주민들은 그 쪽으로 이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각 자치주들이 차별화된 정책과 제도를 실행함으로써 서로 경쟁하면 정책과 제도에 대한 주민들의 자유 선택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넷째,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공공 어젠다에 관해 이해관계자들 간 파트너십과 네트워킹에 기초하는 로컬 거버넌스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로컬 거버넌스는 최근 미국 및 서유럽 사회에서 관찰되는 새로운 방식의 의사결정, 이해갈등 조정 시스템이다. 지방정부가 다양한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지역 사정을 외면한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사정에 밝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의 대화와 소통, 정책협의를 통해 주민의 의사를 그때그때 반영하는 지역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자기의 책임 하에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로컬 거버넌스 시스템은 지역경제발전, 복지, 환경, 주택, 교육, 보건의료, 육아, 양노, 교통 등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실행되고 이를 향후 남북한 통일국가 모형으로 제시한다면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 주도 흡수통일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 주어 통일과정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의 절차는 북한의 지방정부가 통일 연방정부의 구성단위로 편입함으로써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는 수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독의 연방제가 동서독 통일과정을 순탄하게 진행시킨 제도적 인센티브가 되었다는 게 필자의 인식이다. 동독은 서독에 흡수되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서독연방에 편입되는 절차를 밟았다. 동독 주민과 정치인들은 서독 연방제에서 주 자치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통독 이후 연방정부 하에서 지역 차별과 소외를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돼 통일 대세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독일 연방제는 남북한 통일과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 반론에 대한 재반론

우선 왕조문화와 강력한 중앙집권제의 오랜 전통을 가진 한국에서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도입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견해이다. 일리가 있는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과도기적으로 현행 지방자치제에 연방제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점진적으로 지방분권의 강도를 강화해 가는 접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국처럼 중앙집권적 단방제를 채택해 온 스페인 이탈리아는 헌법개정으로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채택했다. 스페인은 프랑코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자행된 극심한 지역차별로 인해 격화된 바스크, 까딸로니아 등의 지역주의 운동에 밀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 헌법을 채택한 바 있다. 이탈리아도 부유한 북부 롬바르디아 산업지대와 빈곤한 남부 소외지역 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채택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제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 헌법개정을 통해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로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사유는 되지 못한다. 이미 준연방적 권력과 권한을 부여한 제주특별자치제가 단계적으로 실시되고 있지 않는가. 다른 광역자치단체도 제주특별자치제와 동일한 수준의 권력과 권한을 이양함으로써 연방제형 지방분권국가가 설계될 수 있다.

또 좁은 국토를 가진 한국에서 연방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등 작은 나라일지라도 연방제를 실시하여 지역분열과 갈등을 완화하고 지역경쟁력에 기반을 둔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나아가 연방제형 지방자치는 원래 인종 언어 민족 등으로 인한 문화적 정체성이 다양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는 사회통합 메커니즘이며, 따라서 단일 언어와 민족, 동질적인 문화를 갖는 한국에서는 단방제가 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런데 독일 연방제는 단일 게르만민족이 강한 동질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갖는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설계된 사례이다. 미국 스위스 캐나다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의 다양성을 통합하려는 수단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일 민족 내에서 지역의 공간적 지배권 행사를 인정하기 위해 정치인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설계된 독일 연방제는 단일민족을 이루고 있는 한국에 유익한 시사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시스템 혁신과 점진적 접근 방법

홍수를 막으려면 샛강 손질 수준이 아니라 큰 강의 물줄기를 바꿔야 한다. 한국민주주의의 역주행을 야기하는 '87년 헌정체제'의 중앙집권제를 연방제형 지방분권국가 틀로 바꾸는 국가시스템의 그랜드 디자인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는 분권과 자율과 책임이라는 민주주의 가치와 원리에 부합한다. 이런 국가시스템 혁신이야말로 시대정신을 투영한 '포스트민주화 헌정체제'를 구축하는 하나의 해법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미합중국에 버금가는 한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Korea)으로 웅비(雄飛)할 수 있으리라.

연방제형 지방분권제의 추진방법은 국민투표에 부쳐 전면적 시행, 단계적 시행, 특정지역을 선정해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워낙 국가적 중대 사안이고 추진과정에서의 마찰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게 타당하다.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추진할 수 있는 사업, 법률 개정으로 추진할 사업, 그리고 헌법 개정으로 추진할 사업들로 구분해 그것도 주민들의 자결에 의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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