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돌아가기는 멋쩍어서 바보 노무현의 마음 한 조각씩을 품거나 달고 돌아간다. 경향닷컴(☞ "노무현이 남긴 꿈")을 보니, "우리사회의 소통 노력과 파당정치의 혁신"(전원책), "권력기관 중립화 등 제도적 법률적 개혁"(도정일), "신자유주의 흐름 종식"(강내희) 등이 거론된다. 나는 "지역주의 타파"라는 가짜문제에 집착한 것이 노무현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지게 된 핵심 원인 중 하나라고 보는데, 손호철 교수는 지역주의 극복이야말로 그의 정신을 계승할 중요한 통로라고 본다. 손석춘은(☞ 좌담/추모열기 의미와 남은 과제) "이성계에 비해 최영에게" 애정을 더 주듯 한국 민중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보는 반면에, 조기숙은(☞ 책임추궁에 앞서 릴레이 반성문 쓰자) 2008년 촛불 시위대의 73.5%에게 이미 노무현은 성공한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한다.
포괄적 뇌물죄라는 썩은 새끼줄을 던져놓고는 멀쩡한 사람에게 썩은 냄새가 난다고 토끼몰이식으로 가학성 집단따돌림 증후군에 광분한 인종들에게 포괄적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승수는 "국민의 많은 눈물이 먼 길 떠나시는 그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나 않을까" 저어했고, 중앙일보는 5월 30일 1면 제목을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로 뽑았으며, 이만섭은(☞ 盧서거, 정치적 이용 안 돼) "노대통령의 메시지는 용서, 화해, 통합"이라고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았다. 가히 백가쟁명이며, 적어도 우리 앞에 던져진 숙제의 성격이 어떤지가 잘 나타난다.
▲ ⓒ프레시안 |
2. 노무현이 단순히 절망감에 생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나도 생각한다. "골고다의 십자가"라든지 "소신공양" 따위의 과장된 비유에는 딴죽을 걸어줘야 마땅하다고 보면서도, 어쨌든 분명히 그의 죽음이 자체로 모종의 메시지를 담은 하나의 적극적인 행위라는 데까지는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사항들 가운데 어떤 것이 그가 의도한 메시지였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 편이 온당하다고 본다. 그 문제는 우선 자체로 대답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의 "의도"를 캐서 해결될 수 있는 종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고인의 성격을 통해 미루어 짐작한다면, 만약 그분이 그 답을 알았다면 떠나기 전에 당연히 먼저 알려주고자 했으리라는 점까지는 장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쟁점들에 관해 그분의 메시지를 기어이 유추하자면 "나도 잘 모르겠으니 당신들이 앞으로 잘 찾아내시오"가 지금 나로서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한편, 수백만 명의 조문객, 그리고 적어도 수십만 명이 모였다는 장례식의 인파를 염두에 두면, 두 가지는 내 눈에 아주 분명해 보인다. 언론과 사법의 문제이다. 이것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의도한 메시지였는지는 나는 모른다. 오히려 나는 노무현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을 말하고자 할 때, 그의 "의도"에만 국한하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본다. 수백만 명이 슬퍼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한번 보자. 이것이 그의 "의도" 안에 들어있었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에서 이 사실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틀림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5월 23일 이전에 그분의 눈에 무엇이 분명했는지를 추측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 내 눈에 무엇이 분명한지, 특히 "노무현 이후"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말하는 수많은 논객들이라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다고 내 눈에 비치는 바를 한번 적어본다.
3. 언론의 악질적으로 무자비한 보도가 인격살인 수준이었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공감하는 듯하다.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는 지면들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도덕적 잘못과 사법적 범죄의 차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둘째, 검찰이 다른 사건에 비해 과잉-편파수사였을 뿐만 아니라, 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하는 중계방송에 앞장섰다. 더군다나 기소에 관한 결정을 두달 이상 늦춤으로써 언론의 인격살인과 군중심리의 집단따돌림에 한 개인의 인권을 무방비상태로 방치해버렸다. 이 근처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까지는 명백하다. 단,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 같다. 내 의견은 이렇다.
나는 OO일보와 그 뒤를 대체로 무력하게 따라가는 신문사들에게는 악의가 없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문제는 결코 악의를 비난하는 차원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번의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에 아랑곳하지 않은 것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신문이라고 해서 전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기숙이나 김근태처럼 고인의 곤경을 변호한다는 사람들조차 "기껏해야 생계형 범죄"라는 둥, "정치보복성 편파수사"에 방점을 찍었지, "도덕적 잘못은 인정하지만 사법적 범죄는 아니"라고 한 본인의 해명에 힘을 보태주지는 못했다. (사실 나는 조기숙이나 김근태가 실제로 말한 내용 전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인용된 문구에 방점을 찍은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발언을 보도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언론이다. 그러나 언론의 그런 방점에 조기숙이나 김근태가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말도 못 들었다. 내가 지금 잘못 알고 말하고 있다면 고쳐주기 바란다.)
여기에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일부 신문사나 일부 논객의 차원을 지나 우리사회 공론장에 만연한 어법이 관계되는 것 같다. 특히 자칭 타칭으로 진보 쪽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 격문이나 성명서에 알맞은 구호성 간결체 문장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나는 그것이 우리사회 공론의 성급한 경향을 크게 조장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바로 위 문단에 괄호를 쳐서 덧붙인 바와 같은 유보조건을 보고 지루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칼럼을 쓴다는 자가 확인해서 쓰면 될 걸 게으르게 확인 안 해놓고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비난하기 전에,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 단 그 경우 확인 안 된 것을 안 되었다고 밝혀야 할 필요는 공인하는 풍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자들이 모든 궁금증을 다 확인하고 쓴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인된 사항과 함께 확인하지 못한 사항은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밝히면서 쓸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확실한 것처럼 써야하는 풍토가 우리사회에 분명히 있고, 그런 풍토가 이번 일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많은 집단따돌림 현상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OO일보와 그 주변에서 부화뇌동하는 신문 둘 또는 셋을 쓰레기라고 여긴다. 그런 회사에서 돈 받고 글 쓰는 사람들 중에는 비교적 고상한 영혼의 소유자가 없지 않다고 보지만, 지면에 실리는 정치경제사회 기사 중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수록 악의에 이끌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그 신문들 전체를 쓰레기로 여긴다.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 둘러보기는 하는데, 아직은 쓰레기로 여기는 내 평가를 수정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 신문사들이 악랄하기를 그만 두고 사실과 선동의 구분을 기사 안에서 좀더 명료하게 드러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정치권력이든지 아니면 민중의 힘으로든지 어떤 직접적인 타격을 통해 그들의 버릇을 고친다는 발상에는 아주 완강하게 반대한다. 그들이 사악하고 저질이라는 내 평가가 공론에서 다수에게 공감을 얻는다면, 그때 그들은 삼류 포르노 장사로 업종을 변경하든지 아니면 좀더 건전한 정치기사를 싣도록 저절로 노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저런 신문들에서 역겨움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건전한 공론의 모범을 보여줄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나는 이 책임은 일차적으로 진보를 자임하는 언론기관 및 필진들에게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복잡한 일들을 간단하게 요약하려고만 들지 말고, 복잡하다고 얼버무리지 말고 섬세하게 분별할 것들을 짚어내는 글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격문이나 성명서 형식의 글쓰기를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론장의 체질 향상을 위해서 다른 길은 내 상상력 안에 없다.
4. 검찰과 관련해서 "제도적 법률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예컨대, 도정일)에 동의한다. 그러나 "권력기관 중립화"라는 상투어는 문제의 뿌리를 찾지 못하도록 관심을 완벽하게 오도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칼럼과 별도로 연재하는 [박동천의 집중탐구(42): 중립성이라는 전횡]에서 논의했듯이, 한국 검찰의 문제는 중립적이지 못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중립성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데에 있기 때문이다.
중립성이란 오직 어떤 특정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나 가치가 정합적인 방식으로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굳건한 토대를 이루고 있는 바탕 위에서, 그런 목표나 가치가 재가해 주는 한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기존 문화적 전통에서 어떤 가치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고 전파하려는 노력은 사회의 발전과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사항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에 금기로 간주되던 일들을 깨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인제라도 인정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검찰의 중립화를 제안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앞으로도 주류의 금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금기를 깨려고 노력했다"는 인정을 받으려고만 해도 극단적인 충격파를 던져야 할 것이다.
이념과 가치가 서로 다른 정치세력 사이에 중립이 있을 수 없듯이, 전직 대통령의 비리 혐의를 캐 들어가는 데에도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포괄적 뇌물"에 포괄되는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절대로 중립적일 수 없는 문제다. 이 사건에서 검찰이 결정을 못 내리고 미적거린 까닭은 중립적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중립"의 경계를 어디서 그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노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쓰던 일상 구어체로 말하면, 조지기는 조져야 할 것 같은데 얼마나 조져야 "중립적"이었다는 면피가 통할지를 궁리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다.
검찰에게 중립을 요구한다는 것은 곧 검찰더러 자신의 생존을 위한 방패로 "중립"이라는 핑계를 멋대로 활용하라고 백지수표를 위임하는 셈과 같다. 나는 그러므로 오히려 검찰이 중립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정치적 가치와 이념 사이에서 단지 한쪽 편을 대변할 뿐임을 스스로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공동체도 공공연히 명심하기를 바란다. 예컨대 살인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검찰은 "우리는 이 사건을 살인으로 보고, 살인은 처벌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고, "이 사건을 살인이 아니라고 보든지, 아니면 살인이지만 처벌을 가볍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번 법정에서 덤벼봐라"고 도전을 초청함으로써, 시민 개개인에게 가치에 관한 주체적 선택의 임무를 수시로 기억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번과 같은 수사는 처음부터 법정에서 판사가 절차적으로 심판을 보는 가운데 이뤄졌어야 했다. 수색, 소환, 심문 등의 절차뿐만 아니라 어떤 내용을 언론에 공개할 것인지도 판사 앞에서 검찰의 입장과 변호인 측의 입장이 맞서는 가운데 결정되었어야 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어떤 언론도 혐의사실을 보도하려면 검찰의 입장과 변호인측의 반론을 함께 다루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더라도 나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발본적인 혁파가 절박하게 필요한 영역은 사법부라고 본다. 일부 유력한 또는 무력한 신문사들 때문에 왜곡되는 공론의 질서도 개선이 절실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그 대목은 제도개선을 꾀하더라도 간접적인 환경정비 이상을 추구하다가는 자가당착이 되기 쉽다. 반면에 사법개혁은 정부권력을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는 문제이기 때문에 제도개선을 통해 상당히 직접적인 효과를 기할 수가 있다. 위에 적시했듯이, 수사절차에서부터 법원의 심판 역할을 대폭 확대한다면 검찰 수사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나아가 용산 참사 재판에서 보듯 법원의 명령을 검찰이 정면으로 묵살해도 오히려 법원이 한 발 물러서는 어이없는 "법치"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덧붙이자면, 형사재판의 공정성은 오직 절차적 공정성에 있다는 점이 우리사회의 공론에 널리 깊게 각인되어, 형사소송법의 전면적인 수정보완과 아울러 검찰이 소송절차를 위반할 때 공소가 유지될 수 없도록, 다시 말해 모든 피의자는 물론이고 설사 확정판결을 받은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5. 사법개혁에 대해서는 이 밖에도 할 말이 무척 많다. 일례로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이 벌어진 날, 이건희-이재용 부자 사이의 편법증여와 경영권승계를 대법원은 무죄로 판결했다. 그리고 전여옥에게 폭행한 혐의로 재판받은 피고인은 10개월 징역형을 받았는데, 단지 "고령을 참작해서" 형의 집행만은 2년간 유예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 불만이 크다. 그리고 이 두 사례는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아무 징계도 내리지 못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아울러 행정수도법을 위헌으로 판시하기 위해서는 "경국대전"을 끌어들이고도 사실상의 집회허가제를 합헌으로 판시하기 위해서는 헌법의 명문규정을 무시하는 등,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헌법재판관들의 과도한 재량권과도 연관된다. 하지만 이미 이 글이 길어져버렸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사법부를 민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만을 남기고 넘어간다. 지금까지 중장기적인 고려에 집중하느라 미뤄둔 당장의 전망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6. 애도정국에서 정당지지율이 춤을 춘 모양이다. 윈지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盧서거 후폭풍), 민주당이 27.3%로 한나라당 20.8%을 앞섰다고 한다.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고 벼르는 민주당에게 이런 조사 결과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김경한 법무장관이나 임채진 검찰총장의 거취문제로 모든 문제가 집약되는 결과는 경계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간해서 사과하지 않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쉽게 저 사람들을 경질하지도 않을 것이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때 그랬듯이, 설사 버릴 카드라고 하더라도 한국적으로 성급한 여론이 지칠 때까지 버티다가 버림으로써 효율성극대화를 꾀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법개혁이라는 주제는 일부 고위인사들의 거취보다 훨씬 깊고 구조적인 차원임을 공론화하는 방향에 과녁을 설정해야 한다. 일시적인 분풀이에 집착하다가, 몇 사람의 거취 또는 대통령의 "사과" 따위는 그런 제도적인 변혁을 위해 단지 작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묻어버리는 데에 협조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국민이 61.6% 대 33.5%로 대북정책의 기조변화를 원하는 여론조사 결과에도 이명박 정부가 따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 다수가 경찰력에 직접 맞서면서 확실하고 단호하게 물러나라고 강요하기 전까지 33.5%의 지지층에 의지해서 버틸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 또 한번의 정변이 발생하기를 원치 않고, 우리 국민 대다수도 아직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현재로서 유일한 길은 우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절박한 위기감을 알려주는 데서 찾아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 중에서 30명만 움직이면 이명박 정부는 버틸 수 없다. 한나라당에서 30명이 움직이는 판에 친박연대나 자유선진당이 이명박 거수기 편으로 이동할 리는 전무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차적인 분수령은 결국 내년의 지방선거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다면 적어도 수도권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노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와중에서도 절제를 보인다면, 작은 노선의 차이를 반MB연대와 사법제도 개혁이라고 하는 큰 천막 안에서 서로 참아줄 수 있다면, 홍준표에게조차 때로 "좌빨"이라고 색칠을 한번이라도 당한 적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애석한 분개를 쉽게 잊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굳게 심어주기만 한다면, 내년의 선거를 실제로 맞이하기 훨씬 전에 한나라당에서 30명이 자기 이익을 직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존의 쟁점법안에서 그렇게 할지, 아니면 어떤 새로운 의제를 국회에 상정해서 한나라당 안에 "항명" 분위기를 조성할지는 민주당 내 전략가의 몫이다. 이 시점에서 민중혁명은 고인이 원한 바가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에게 미안해 한 최소 수백만 명 국민도 조문기간 동안 놀라운 자제력을 보임으로써 혁명을 원치는 않는다는 의지를 입술을 깨물며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물론 인내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의사도 분명히 표명했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서 민주당은 성미 급한 국민 일부를 경찰에게 맞서라고 내몰지 말고, 먼저 한나라당 30명을 흔들리도록 해서 이명박의 노선 수정을 유도해야 한다. 기한은 내년 지방선거다. 사법부와 공론장의 체질 개선이라고 하는 중장기적인 목표를 위해서도 지금은 초점이 거기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처음에 언급한 어려운 숙제는 그 담에 풀어도 늦지 않고, 어차피 그 전에 풀 수 있는 방법도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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