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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언론사' 실명공개와 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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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언론사' 실명공개와 자가당착

[김종배의 it] 이종걸 '장자연 리스트' 공개의 뒷맛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이종걸 의원이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유력언론사와 대표의 실명을 사실상 공개한 데 대해 해당언론사가 내놓은 '보도참고자료'는 저널리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한 문장 한 문장 밑줄 그어가며 정독할 필요가 있다.

▲면책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라 하더라도 대정부 질문에서 전혀 근거없는 내용을 '아니면 말고'식으로 물어, 특정인의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것은 면책특권의 남용에 해당됩니다. 면책특권을 악용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합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오죽했으면 헌법을 고쳐서라도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겠는가. 국회의원의 '아니면 말고'식 폭로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본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실명을 적시, 혹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므로, 관련 법규에 따라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어디 '본건' 뿐이겠는가. 면책특권에 기댄 국회의원의 '아니면 말고'식 폭로를 그대로 받아 적은 언론사가 한둘이 아니고, 신중을 기하지 않은 보도가 한두 건이 아니다.

▲본사는 근거없는 허위사실들이 유포됨으로써 무고한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는 현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관계 당국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진상을 하루 속히 밝혀줄 것을 요청합니다.

→맞다. 면책특권에 기댄 국회의원의 폭로 내용이 정말 '근거없는 허위사실'이라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유감 표명이 아니라 분기탱천을 해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이로써 원리는 충분히 학습했다. 면책특권을 남용한 국회의원의 '아니면 말고'식 폭로는 지탄받아 마땅하며, 그런 폭로를 신중을 기하지 않고 보도하는 언론도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원리를 다시금 확인했다.
▲ 대정부질문하는 이종걸 의원 ⓒ뉴시스

이제 응용하자. 이 원리를 다른 사례에 적용시켜보자.

2008년 10월 20일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검찰청 국정감사 도중 'DJ비자금'을 폭로했다. 2006년 2월 중소기업은행이 발행한 100억원 양도성예금증서(CD) 사본과 은행의 '발행사실 확인서'라는 문건을 제시하면서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 폭로는 허위로 판명났다. 넉 달 뒤인 올해 2월 대검 중수부는 100억짜리 CD와 DJ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추적 결과 그 CD는 모 업체가 2006년 2월 8일 명동 사채업자의 돈을 빌려 발행한 것으로 보험회사가 두 단계를 거쳐 현금화해 회사 운영자금으로 모두 썼다고 밝혔다.

어땠을까?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남용을 준엄하게 꾸짖은 그 언론사는 이 건을 어떻게 보도했을까?

상세히 전했다. DJ측이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는데도 주성영 의원의 폭로내용을 상세히 전하면서 DJ측의 반박은 기사 말미에 곁들였을 뿐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며칠 후 '비자금 사건 뒤엔 왜 늘 CD가' 등장하는지를 자세히 풀어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실상이 이렇다. 원리 따로 응용 따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자신은 '바담풍' 하면서도 남에겐 '바람풍'을 읊조리라고 훈계한다.

거기까지만 하자. '너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그러면 그 언론사 말마따나 '무고한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는다. 그러면 언론플레이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국회의원들의 '한건주의'를 더욱 부추긴다.

이종걸 의원의 경우만 예외로 놓을 수는 없다. 그가 주워들은 얘기만 갖고 폭로한 게 아니라고 해서, '장자연 문건'에 적시된 내용을 언급했다고 해서 모든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 수사가 꼬리 자르기식, 면죄부 주기식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 무성하지만 형식적으로만 놓고 보면 수사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그 누구의 어떤 혐의도 확정되지 않았다. 형식논리에 불과한 걸 알지만, 그래서 무력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할 거라면 늦췄어야 한다. 수사가 종료된 후에, 수사가 종료됐지만 진실논란이 여전할 경우에 질의했어야 한다. 더 이상 사법기관의 정상적인 수사절차에 기대할 수 없으니까, 국회의원이 나서 진실 규명의 불씨를 어떻게라도 살려보려는 충정을 내보이면서 제기했어야 한다. '장자연 문건에 아무개가 나오는데 보고받은 바 있나'라고 물을 게 아니라 '장자연 문건에 버젓이 적시돼 있는데도 왜 무혐의 처리가 됐나'라고 물었어야 한다.

이게 이유다. '그 언론사'의 표리부동과 자가당착을 비판하면서도 이종걸 의원의 공개내용을 받아 적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욕 하면서 닮아가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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