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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빨갱이 대 수구꼴통'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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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빨갱이 대 수구꼴통'은 이제 그만!

[의제27 '시선']<1> 퇴행적 이념논쟁 접고 미래를 바라보자

<프레시안>은 4월부터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의제27, 공동대표 :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 소속 소장 학자들의 칼럼을 매주 연재합니다. '의제27'은 우리사회에 정책 중심의 건강한 논쟁을 도모하기 위해 중도진보 진영의 학자들이 지난 2007년 의기투합해 만든 연구모임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젊은 학자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보려 합니다.

다섯 분을 필자로 모셨습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정치학), 이태수 현도꽃동네사회복지대 교수(경제학),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교수(정치학)입니다(글 쓰는 순). <편집자>

냉전의 시대가 사라지면서 이념의 대결도 사라졌다. 하지만 뜨거운 군사적 대치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이념의 대결이 뜨겁다. 한국정치에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논쟁은 언제나 민감한 문제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에 이념논쟁은 언제나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는 태풍의 눈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이후에도 과거사 논쟁, 교과서 논쟁, 대북정책 논쟁 등 이념논쟁이 격화돼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념논쟁이 반드시 소모적인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가 경쟁하는 것은 다양한 사회세력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이념논쟁을 통해 서로 다른 사회세력을 인정하고 타협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를 둘러싼 이념논쟁은 매우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념논쟁이 정책경쟁으로 발전하고 실천을 통해 검증하는 대신 편협한 정파주의에 매몰된 채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매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좌파와 우파는 사라졌는가?

1994년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전통적 좌파가 보수화되고 신우파가 급진화되는 서구 정치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좌파는 복지국가를 수호하는 보수세력이 된 반면에 우파는 시장주의 개혁을 추진하는 급진세력으로 변했다. 그래서 기든스는 국가와 시장의 이분법을 초월하는 '급진적 중도'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정치적 포지셔닝은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같은 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노베르토 보비오는 <좌파와 우파>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현대 정치에서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구분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좌파는 평등을 강조하는 데 비해 우파는 자유를 강조하는 경향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무시하는 노력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든스와 보비오의 주장은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누구의 주장이 더 맞는지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두 주장 모두 서로 다른 면의 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든스가 말한 대로 유럽 정치에서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다. 좌파가 우파의 정책을 채택하고 우파가 좌파의 정책을 채택하기도 한다.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이념을 뛰어넘는다. 환경문제를 놓고 보면 특히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에서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보비오가 강조한 대로 평등과 자유는 각 정치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간주되고 있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합의

좌파와 우파를 가장 먼저 구분했던 프랑스는 아직도 이러한 정치적 용어를 사용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국회 의사당의 좌측에 급진적 개혁을 주장한 자코뱅이 앉았고, 우측에 온건한 개혁을 주장한 지롱드가 앉았다. 여기에서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좌파는 사회주의 세력이 대체했고, 우파는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이에 따라 좌파와 우파 사이의 이념적 대립이 시작되었고, 서로 다른 사회경제모델을 내세우며 경쟁했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극좌(공산주의)와 극우(파시즘)가 제거되고 온건한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협력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각각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로 부상하여 경쟁했지만 서로 상대방의 이론을 모방하기도 했다. 독일의 사회민주당은 폭력혁명을 포기하고 의회주의를 인정했고, 기독교민주당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복지국가를 확대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좌우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19세기 공산주의 이론가 칼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타협할 수 없는 적대적 계급이라고 보았지만, 20세기의 현실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한편 미국에서는 사회주의 정당이 거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좌파는 민주당의 몫이 되었다. 민주당은 자유주의를 지지했지만, 사실상 정부의 개입과 복지국가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유사했다. 민주당원들은 스스로 '리버럴'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하지만, 때로는 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클린턴 대통령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뛰어넘는 '제3의 길'을 주장한 이래 민주당의 이념은 중도로 이동했다. 이러한 노선은 오바마 행정부로 계승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극단주의 정치도 이제 막을 내렸다. 이제 미국 정치에서 좌파와 우파는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용어라기보다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세력과 보수와 안정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구분하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점은 좌파와 우파가 곧 '좌익빨갱이'와 '수구꼴통'을 가리키는 한국적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란 무엇인가?

지난 3월 26일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좋은정책포럼이 공동주최한 '한국의 이념논쟁'이라는 제목의 학술행사가 열렸다. 토론을 마친 후 한 모임에서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 대신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좌파와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우파의 이념적 지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정치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과연 그런가?

▲ 26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보수진영의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진보진영의 좋은정책포럼이 공동주최한 '한국의 진보를 말한다' 심포지움에서 참석자들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이념지형은 진보, 중도, 보수의 3개로 구분되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세 가지 이념을 구분하는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2002년 이후 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점점 증가하는 데 비해 보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엄밀한 가치 분석이 아니라 막연하게 느끼는 이미지가 큰 영향을 준다. 진보는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과거보다 더 나은 상태를 가리키는 데 비해, 보수는 퇴행적이고, 전통을 고수하고, 과거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보와 보수의 정책을 비교하면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진보를 선택한 유권자들도 세부적인 정책을 선택할 때는 보수적 정책을 지지하기도 한다. 다만 대북정책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결하는 양상을 보인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서구와 같이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적 구분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적 경험이 남긴 깊은 상처 때문이다.

해방 이후 좌우대립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좌파와 우파가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정파적이고 적대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특히 좌파는 '용공'과 '친북'이라는 이미지와 강하게 연결되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은 항상 '용공친북'이라는 낙인을 찍히지 않기 위해서 이념적 순결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이에 비해 보수세력은 좌파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활용해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10년을 '친북좌파의 시대'로 규정한다. 이는 민주화세력이 지난 군사정부의 시기를 '수구꼴통의 시대'라고 규정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념논쟁은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고 사회적으로 분열적이고 지성적으로도 무가치하며 경제적으로도 소모적이다.

이념대결의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

한국에서 아직도 이념대결의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념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만이 아니라 보수 내부의 논쟁으로 불거져 나오기도 한다. 200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정통보수'를 자처하면서 이명박 후보를 '위장보수'라고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후 친이와 친박의 갈등은 결국 보수파를 장악하기 위한 이념의 선명성 경쟁으로 치달았다.

민주당에서도 이념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은 '실용주의'를 표방했지만 2008년 대통합신당의 손학규 대표는 '새로운 진보'를 내세웠다. 그 후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새로운 비전 선언을 발표하기 위해 '새로운 진보'를 내세우려고 했지만 새천년민주당의 '중도개혁주의'를 주장하는 세력과 대립하고 있다. 정치권에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이념은 권력투쟁에서 자원을 동원하는 상징조작으로 이용된다. 이념만큼 지지층을 확실하게 동원하는 수단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정치의 이념대결은 매우 후진적이다. '친북좌파'와 '수구꼴통'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시대에 이념논쟁은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의 이념논쟁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는 대신 독단의 끊임없는 충돌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흑과 백, 선과 악으로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다양한 종류의 중간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진보와 개혁을 추구하는 정치세력과 안정과 개혁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이 일정한 견제와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만약 진보와 보수가 서로 배제한 채 일방적 주장만 내세운다면 민주사회의 통합과 균형이 파괴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진보와 보수는 극단주의와 거리를 두고 좀 더 현실적이고 온건한 정치적 지형으로 이동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정책논쟁을 시작해야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유한 사람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보의 기준은 고정불변의 내용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진보가 될 수도 있고 보수가 될 수 있다. 18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산업화는 진보적 가치를 대변했지만 지금은 지나친 경제성장이 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세기 이후 노동자의 참정권 운동은 가장 진보적인 정치운동이었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노동운동은 경제적 이익 또는 높은 연금급여를 유지하기 위해 낡은 제도를 계속 고수하기도 했다.

변화하는 시대의 조건에 따라 과거의 보수적 가치가 진보적 가치가 되기도 하고, 과거의 진보적 세력이 보수적 세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뛰어넘어 현재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할 새로운 정치적 가치와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이제 이념논쟁의 주제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심각한 사회문제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 세계빈곤, 기후변화 등)가 왜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어떻게 이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지 치열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경제위기 해결과 사회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논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혁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날카로운 분석과 담대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논쟁은 이념논쟁이라고 부르기에도 초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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