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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에게 홍석현 대사는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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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에게 홍석현 대사는 무엇을 남겼나

<기자의 눈>홍석현, 처음부터 잘못된 실패한 카드?

홍석현 주미대사가 26일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와 연관된 'X 파일' 파문으로 물러났다. 지난해 12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회심의 카드로 주미대사로 내정된 지 7개월 만이다. 미국 정부로부터 아그레망(대사 파견 상대국의 동의)을 받아 공식 임명된 시점으로 따지면 5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노 대통령은 지지세력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홍 대사의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 지난 4월 위장전입 파동 등 물의를 일으켰지만 청와대는 홍 대사를 끝까지 감쌌다.

이런 노 대통령에게 홍 대사는 어떤 존재였나? 차기 유엔 사무총장까지 꿈꾸던 홍 대사가 조기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이번 사태가 홍 대사 사퇴로 봉합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홍석현 카드',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

홍석현 주미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 16일 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송년 오임에서 "주미대사로 깜짝 놀랄만한 빅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부터 시작됐다. 김 실장의 이날 발언으로 출입기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모두 기자실로 달려 가고 정작 폭탄 발언을 한 김 실장은 어리둥절해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다음날 새벽 문제의 '빅 카드'가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임이 밝혀지면서 정말 모두가 다 깜짝 놀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는 당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으로 국제적 감각, 미국 지식인층과의 두터운 교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지지해 온 합리적인 성품 등을 발탁 배경으로 밝혔다.

홍 대사의 임명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음은 당시 한나라당의 전여옥 대변인과 임태희 대변인이 서로 다른 논조의 논평을 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전 대변인은 "깜짝 놀랄 빅 카드가 '권언유착인가? '정경유착'인가?"라며 비판적 논평을 낸 반면, 임 대변인은 "코드인사 대신할 실용인사를 환영한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홍 대사 임명에 어리둥절한 것은 보수 세력만이 아니었다. 그가 '조중동'이라는 표현이 관용어로 정착될 만큼 보수적 색깔이 뚜렷한 신문들 중 하나인 중앙일보의 사주라는 점에서 진보 성향의 노 대통령 지지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반대 논평을 통해 "도대체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했었다. '홍석현 카드'는 '조.중.동'에서 중앙일보를 떼어내는 보수언론 분리정책으로 여겨졌다. 또 홍 대사의 임명은 그 뒤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등 '실용주의' 인사 정책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특히 홍 대사 임명은 삼성그룹과 관계도 고려한 것으로 여겨졌다. 홍 대사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사돈 관계이며, 중앙일보에 아직도 삼성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노조는 성명서에서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삼성공화국이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홍 대사가 지난 1999년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점도 노 대통령 지지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투명성, 공정성, 도덕적 자질 등을 우선적 가치로 두고 있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홍 대사는 1999년 세무조사에서 1000여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700억원에 이르는 소득을 탈루하고 262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다음해 대법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 4년 및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곧 사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홍석현 카드'를 강행했다. 노 대통령의 선택은 지지자들을 대거 등 돌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불안한 것이었다.

***홍석현 취임 일성 "유엔 사무총장 출마", 취임 후 파문 끊이지 않아**

아그레망을 받는 데에 상당한 시일이 걸려 구구한 억측이 일기도 했던 걸려 홍석현 대사는 2월 15일 공식 임명된 직후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엔 "적당한 시점에 정부가 도와준다면 꿈을 갖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취임 일성으로 "차기 유엔 사무총장 출마" 의사를 밝혀 논란이 일었다.

북한의 '2.10 핵 보유 선언'으로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막중한 책임을 진 주미대사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과연 다른 자리에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야 했느냐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취임 두달 만에 홍 대사는 730억 재산 증식 과정에서 위장전입을 하는 등 불법을 자행한 사실이 알려져 또 한번 큰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인사 검증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파악했으나 투기 목적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주미대사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결격사유나 부적격 요인으로 보지 않았다"며 홍 대사를 적극 감쌌다. 조기숙 홍보수석도 "전통적인 대미(對美) 라인을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들이 해 왔기 때문에 사실 참 인재풀이 제한돼 있다"며 '홍석현 구하기'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앞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강동석 전 건교부 장관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일이었다.

청와대의 적극적인 비호로 가까스로 부동산 투기 의혹 파문에서 빠져나온 홍 대사는 최근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차기 유엔 사무총장 도전 의사를 거듭 밝혀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도 지난 18일 "한미관계, 북핵 6자회담 등 산적한 현안이 있어 홍 대사 본인이나 정부나 현안에 집중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번 'X파일' 사건이 터졌고, 지난 4월 위장전입 의혹 등 자신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적극적인 자세로 해명하던 홍 대사는 이번엔 언론과 접촉을 꺼렸다. 급기야 25일엔 '몸살이 심하다'는 이유로 아예 대사관으로 출근을 하지 않았고, 예정돼 있던 공식 행사를 취소하더니 곧 사퇴 의사를 밝히기에 이른 것이다.

전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공개되지 않은 다른 범죄행위와의 형평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홍 대사의 거취 문제에 대해 끝까지 '고심'하던 노 대통령은 26일 홍 대사의 사의를 수용할 것이란 뜻을 전했다. 단 사표 수리 시기는 "주미대사로서 현안 처리에 필요한 기간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며 현재 북경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핵 6자회담 등을 고려할 것임을 시사했다.

***'홍석현 카드', 득보단 실이 커**

결국 '홍석현 카드'는 '실용주의'를 표방한 인사였지만 실제로 득보단 실이 더 컸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5개월이란 재임기간은 홍 대사가 자신의 인맥을 통해 미국 내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급작스럽게 주미대사가 물러나는 일이 발생한 것은 한미간 신뢰 형성에 그다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 향후 정국 운영에도 홍 대사의 존재는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X파일' 사건에 홍 대사가 연루되면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홍 대사'라는 연결 고리를 잘라냈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여당이나 청와대의 발언에 힘이 실릴 리는 만무하다.

노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제안한 연정(연립정부) 추진에도 홍 대사가 연루된 'X파일' 사건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연정 자체가 이슈로 주목받지 못할 뿐 아니라 'X파일' 내용에서 지난 97년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더욱 정당성을 잃어 버렸다. 노 대통령은 지난 24일 서한을 발표해 연정 이슈를 재점화시키려 했으나 'X파일' 정국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연기하기로 지난 22일 '12인 회의'에서 결정했다.

무엇보다 현 정부는 홍 대사 임명부터 자신들이 표방해 오던 원칙을 무시했고, 홍 대사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들의 원칙과 명분을 깨고 국민 여론을 무시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신뢰는 조금씩 무너져 갔다. 이는 이미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주미대사의 불미스런 퇴진이라는 비극적 결말의 원인은 결국 무리한 인사를 강행한 7개월 전으로 돌아가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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