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2012년 신년호를 '내가 사랑하는 저자'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열두 명의 필자가 사랑하는 저자와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사랑하는 저자와 만나는 기쁨을 누리길 기대합니다. |
책에 관한 질문 중, 어리석은 것이 정독과 속독 중 어느 편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과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꼽아달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 읽는 방법이야 책의 성격과 수준, 읽는 목적 등에 따라 달라야 하므로 반드시 어느 한 편을 권할 수 없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야 굳이 들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특정한 책 한 권으로 인생의 행로가 바뀐 처지는 아니어서 이것 역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 좋아하는 작가라? 문학으로 치면 셰익스피어나 앙드레 지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전집을 독파했으니 이들을 들 수 있을까. 하지만 이들 전집은 좋아해서 택한 것이 아니고 중학교 시절 부모가 들여 준 것을 멋모르고 읽어낸 것이니 곤란하겠다.
고등학교 시절엔 헤르만 헤세에 심취한 친구가 있어 그의 작품을 따라 읽다가 샘이 나서 '나만의 작가'를 찾겠다고 찾아 읽은 알베르 카뮈를 들까. 그렇게 치면 박완서나 이병주의 전집도 읽고 이문구도 한때 푹 빠졌다. 시인 김광규의 책은 번역 시집까지 거의 갖추었을 정도로 좋아한다.
생각을 바꿨다. 다들 작가를 택할 가능성이 있으니 저자로 외연을 확대하기로. 이렇게 하니 단연 중국 샤먼(廈門) 대학교 교수인 이중톈(易中天)이다. 그의 책은 열 종 열두 권이 번역되어 있는데(한 종은 두 권짜리고, 다른 한 종은 중복 출판되었다) 대부분 읽었거나 훑어봤으니 어지간히 빠진 셈이다.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넬리, 패트리샤 콘웰 등 몇몇 추리 소설 작가를 빼고는 이렇게 쫓아다니며 읽은 작가는 얼른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 <삼국지 강의>(이중톈 지음, 홍순도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
이중톈을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김영사에서 펴낸 <삼국지 강의>(홍순도 옮김, 김영사 펴냄)를 통해서다. 2005년 중국 CCTV의 교양 강좌 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에 출연하면서 600만 부가 팔렸다는, 다소 호들갑스런 소개와 함께였다. (이전에 풀빛 출판사에서 <중국 도시 중국 사람>(유소영 옮김, 풀빛 펴냄)을 냈으나 묻혔다.)
소설 삼국지가 역사와는 아주 다른 허구라는 인식은 이미 가지고 있던 상태였고 실제 김운회의 <삼국지 바로 읽기>(삼인 펴냄)이나 최명의 <삼국지 속의 삼국지>(인간사랑 펴냄) 등을 읽은 터였다. '그렇고 그런 책이려니' 하며 펼쳐 들었는데 금세 빠져들었다.
방송용 원고를 묶은 덕분인지 쉽고 재미있는 것은 둘째였다. <배송지주>나 <후한서>, <자치통감>, <화양국지(華陽國志)> 등 풍부한 사료는 물론 뤼쓰몐(呂思勉), 주웨이정(朱維錚) 등 근현대 사학자의 연구를 취합한 내공도 그렇거니와 해석이 문자 그대로 눈을 새로 뜨게 해주었다. <1587년,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레이 황 지음, 김한식 옮김, 새물결 펴냄)에 이어 역사책의 새 지평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삼국 시대는 군벌끼리의 패권 다툼이었으나 결국 사마의(司馬懿) 일가가 세운 진(晉)나라로 통일된 것은 사대부 세력의 승리라고 본 것도 그렇고(이는 최근 읽은 <삼국지의 세계>(김문경 지음, 사람의무늬 펴냄)에서도 확인했다) 제갈량이 군사 전략가라기보다는 정치가로서 더 유능했다든가 유비의 촉나라가 결코 조조의 위나라를 이길 수 없었던 이유 등 나름의 해석을 더한 대목이 그런 예다. 여느 삼국지 비평서가 사실(史實)과 허구의 차이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한 걸음 더 나아간 분석서로 읽혔다.
거기에 현실과의 끈을 놓지 않는 이중톈만의 서술은 읽는 재미를 더욱 높였다. 도대체 다른 역사서에서 "정치 투쟁은 까놓고 말하자면 인사 이동이며, 권력의 균형이며, 이익의 재분배이고 인간관계의 새로운 조정이다"(<삼국지 강의>, 115쪽) 같은 구절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아쉽게도 본격적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는 중국에서와 같은 인기를 모으지 못했다. 이문열 등 국내에서의 소설 <삼국지>의 인기를 감안하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홈런'은 아닐지언정 '안타' 정도는 기록했는지 그의 책이 속속 출간되었다. <초한지 강의>(강주형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제국의 슬픔>, <품인록>이 에버리치홀딩스 출판사에서 매달 나왔고 <삼국지 강의 2>(송순도 옮김, 김영사 펴냄)도 같은 해 출간됐다.
번역서를 기준으로 이중톈의 책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톈 교수의 중국 남녀 엿보기>(홍광훈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독성기>(심규호·유소영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박경숙 옮김, 은행나무 펴냄)는 에세이 유인데 단아하긴 하지만 그의 솜씨를 한껏 느낄 수는 없다. (차라리 이런 유의 책을 찾는다면 위치우위의 <중국 문화 기행>(유소영·심규호 옮김, 미래인 펴냄)이 훨씬 낫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하나는 <이중톈 미학 강의>(곽수경 옮김, 김영사 펴냄),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심규호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백가쟁명>(심규호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으로 이론적이랄까, 역사서에 비해 딱딱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인물과 사실의 해석에 특장을 발휘하는 그의 솜씨는 역시 <제국의 슬픔>, <품인록> 등 역사 교양서에서 빛이 난다.
조조와 왕안석, 송강, 엄숭 등 역사의 큰 고비를 이룬 인물들을 재평가한 <제국의 슬픔>을 보자. 이중톈은 송나라의 중흥을 꾀한 왕안석의 이른바 '신법(新法)'을 논하고는 그가 오히려 측근 관리에 실패하는 등 오류와 부패를 가속화해 송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좀 더 점진적이고 온건한 개혁을 추구했다면 왕안석은 그렇게 격렬한 반대와 원성 속에서 매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 우리가 오늘날 정치적 편 가르기에만 열중하고, 역사와 역사 인물의 도덕성 문제만 비난한다면, 그러면서 900년 전 개혁의 실패에서 교훈을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을 없을 것"이라고 술회한다.
▲ <품인록>(이중톈 지음, 박주은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에버리치홀딩스 |
옹정제는 인재 등용의 기준인 청렴, 신중, 근면을 새롭게 해석했다고 지은이는 풀이한다. 청렴은 위장된 가난으로 변질되어 명예를 낚는 수단이 되고, 신중은 무사안일주의로 변질되어 과도한 위축을 낳고, 근면은 번다한 절차만 양산하여 득보다 실이 많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대신 옹정제는 무사(無私), 충성, 청렴, 능력이란 기준을 제시하면서 일없이 빈둥거리며 일상만 보존하는 '나무인형' 같은 관리를 내치고 학력, 출신, 사생활에 상관없이 유능한 관리를 등용했다고 설명한다.
이중톈의 글을 평할 때 "역사와 문학의 행복한 만남"이라고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저술에는 문학 작품이 많이 인용되어 읽는 맛도 더하고 품격도 높인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유로운 문학적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 해석을 뒷받침하는 효과가 더 크지 싶다. 이는 그가 원래 역사학보다는 문학, 인류학, 심리학, 미학 등을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배경도 작용했다.
2007년 베이징에서 이중톈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불동이리동(事不同而理同)이란 말이 있다. 일은 다르지만 이치는 같다는 뜻인데 역사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현재의 우리 모습과 다를 수 있으나 도리는 같아 역사를 통해 철학·이치를 깨달으면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역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그가 역사를 파고드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의 책을 택하면 실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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