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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기갑의 폭력", 문제 있다!

[김민웅 칼럼]<30> 강기갑이 사퇴해야 할 이유들

강기갑의 대응, 과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한나라당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 사무처에 난데없이 들어가 고함을 지르고 핏대를 올리면서 결국 하다하다 안 되니까 책상 위에까지 올라가 거칠게 항의했다.

기껏 해 봐야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짓밟게 될 악법철폐의 현수막을 내걸 자유정도를 유린당했다고 해서, 또는 동료 의원들이 국회 경위와 경찰에게 마구잡이로 행패를 당했다고 해서, 그리고 모든 국민들의 관심사인 중대쟁점 사안에 대해 발언하고 협의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회를 부당하게 봉쇄당했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당한 것에 비해 그 대응이 너무 과했다는 인상을 준다.

공당의 대표가, 그것도 민중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진보정치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국민들의 소중한 권리와 자유가 사라진다고 해서, 권력과 대자본의 독점적인 힘이 막강해진다고 해서 이렇게 격하게 화를 내는 정치인이 단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권력을 지원하고 협력하며 봉사해야 하는 의회정치의 앞날에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가 이러다가 폐쇄되면 곤란하다. 그런 정치인의 수가 강기갑 하나가 아니고 더 많았으면 이명박 정권이나 한나라당이 국정운영에 얼마나 위축되었겠는가?

개평 나눠줄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국민들의 책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돈은 엉뚱하게 쏟아 붇고 생태계는 망가지겠지만 경제위기의 때에 절실한 민생을 위한 대운하, 민주언론은 소멸되겠지만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산업기반을 확충할 대자본의 방송경영규제 해제, 표현의 자유는 탄압되겠지만 악플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한 인터넷 여론 규제, 서민들의 부담은 늘어나겠지만 이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했음에도 부당한 희생을 강요당해온 2퍼센트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 이런 것들에 모두 제동이 걸릴 텐데 말이다.

자본이 주도하는 시대가 풍요의 시대가 된다. 그게 소수만을 위한 풍요가 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판돈을 번만큼 개평도 인색하지 않게 알아서 줄 수 있는데 국민들은 너무 조급한 것 같다.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적 양극화는 이 개평을 나눠주는 때를 진보세력의 충동질로 해서 가난한 서민들이 인내하지 못한 결과다.

진정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헌법적 기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그 기본권을 노골적으로 박탈하는 질서라도 질서는 질서대로 존중하고 지키는 일이고, 경찰의 폭력진압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무리 질이 나쁜 공권력 집행이라도 그 공권력에 도전해서 공권력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악법유지를 위한 질서가 무너지고 정치적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 되면 세상은 너무 많이 민주화되어서 평소 입 다물고 있던 무력한 서민들도 입을 열어 여러 가지 비판과 요구를 해서 집권당으로서의 한나라당의 정치적 장래는 상당히 어두워질 텐데, 그런 상대의 곤혹스러운 입장도 깊이 헤아리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뿌리를 망각한 역사는 역사가 아니기에

그게 이 격렬한 충돌의 시대에 요구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덕이 아닌가? 진보세력은 인류의 역사가 이미 교훈으로 남긴 바대로 종국적으로 패망하고 역사의 퇴출이 기다리고 있는 세력의 입장이나 초조감 또는 절박감을 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오죽하면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야 할 교과서도 역사를 변조해서, 일제 식민지 시대의 강탈과 폭력, 그리고 탄압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렇게 역사를 한참 되돌릴 한나라당의 존재가 가능했겠는가라는 소신에 찬 주장을 백주대낮에 저리도 당당하게 하고 싶어졌겠는가? 자신의 뿌리를 망각한 역사는 진정 역사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자신의 뿌리를 이토록 분명하게 밝히는 역사적 소명감을 비난할 일은 전혀 아니다. 자기의 출생근거를 부정하는 이른바 "자학적 역사관"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인데 그만하면 이해할 만하지 않은가? 그동안 은폐되거나 부정되고 신비에 싸여 있던 한나라당의 역사적 정신적 계보가 밝혀지고 있는데 도리어 좋은 일 아닌가?

역사의 변질과 후퇴를 위해서는 헌법에 보장된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권은 포기하는 것이 한나라당이 열망하는 파시즘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시대정신의 적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아무튼 강기갑 대표의 이른바 "폭력사태"로 빚어진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박계동 같은 국회사무처 책임자나 직원 또는 김형오, 홍준표, 공성진. 나경원, 심재철, 진성호, 정병국, 전여옥 등등 한나라당 의원 내지 보좌관들의 손가락이 분질러지거나 민노당 당직자들에 의해 개 끌려가듯 끌려 나가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상한 일은 그래도 여전히 그것이 폭력이라고 불리고 있는 점이다.

어쨌거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민노당 국회의원들과는 달리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수준이나 방향, 그리고 대통령 이명박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국민 전체를 위한 정당한 판단과 결정만 내린다고 한다. 정치적 지체가 출생단계에서부터 존엄한 이런 사람들의 귀중한 손이 다치거나 골절상을 입거나 해서야 되겠는가?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장을 비롯해서 한나라당과 국회사무처를 이끌고 있는 박계동 등이 지시해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단지 의회질서를 위해 여성인 이정희 의원 같은 경우를 포함해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을 마치 개 끌듯 바닥에 내치고 질질 끌어가면서 온 몸을 마구 만지고, 손이 아니라 손가락을 분지르거나 멱살을 잡고 옷을 잡아당겨 벗겨지게 한 일이 고작이었다. 이걸 비난하는 것은 폭력과 야만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폭력과 야만이란 이런 것이다

어떤 피해를 입어도 아무런 항의나 문제제기도 할 수 없는 말하지 못하는 국회 사무처 책상에 올라간 것은 엄연한 폭력이지만, 국회의원 그것도 공당의 대표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신체적 힘이 미력한 여성의원을 완력으로 내팽개친 것은 질서유지상 어쩔 수 없는 공권력 발동이다.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소수의 특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것은 합법이지만 그걸 가로막는 것은 의회정치의 규칙을 어기는 정치적 야만이자 불법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나라당은 말 못하는 책상을 대신해서 강기갑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헌법적 기본권이나 인권 보다는 국회사무처 책상권의 권위를 보다 존중하는 한나라당 정치철학의 소산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도 이제는 인간보다는 사물의 권리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자본의 힘을 존중하는 현실에서 인간보다 사물의 힘이 더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시대적 추세다.

한나라당은 방송 장악의도도 없고 부자들을 위한 세금정책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대운하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과 관계없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삼권분립에 기초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을 뿐인데, 강기갑 대표는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싸잡아 독재요, 파시즘이요, 악법추진이요 하고 공격한다. 이건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겠는가?

강기갑의 죄

이제 강기갑은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파시즘의 시대에 진입하려는 즈음에 그가 이러한 시대적 발전을 가로막고 저지른 죄는 결코 적지 않다.

이명박 정권의 독선과 여당의 정치적 폭력에 대항하여 이리 밟혀도 저리 짓눌려도 그만인 국민의 권리를 무엇보다 앞세운 죄, 민생으로 위장한 악법통과를 누구처럼 입으로만 아니라 온 몸으로 저지하면서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권을 담고 있는 헌법적 기본권을 우선한 죄, 국민의 자유가 유린된다고 해서 아무 죄 없는 책상을 밟고 선 죄, 조용히 가서 "박계동 사무총장"하고 불러도 될 것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우이독경(牛耳讀經),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고 상대를 소나 말로 여겨 그 귀가 꽉 막혀 잘 듣지 못한다고 억양도 센 경상도 사천 사투리도 "박계동"이라는 이름의 발음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게 고함을 지른 죄,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똑같이 그렇게 끌려 나갔으면 어떻게 했을지 사실 감이 잘 안 잡히는 홍준표 원내대표와는 달리 자신이 대표로 있는 정당의 여성동료인 이정희 의원이 의회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에 분노해서 엄청나게 화를 내 홍준표 의원이나 강기갑 대표나 둘 다 똑같은 경상도 사나이들인데 좀 격이 다른 사나이다움을 보여준 죄를 비롯해서, 파시즘의 폭력에 맞선 그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물러날 자와, 우뚝 서야 할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런데, 만일 강기갑이 옳다면 누가 사퇴해야하는 것일까? 그 답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우리가 내린다. 저들은 심판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2009년은 그 답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치열한 시기가 될 것이다. 촛불은 다시 타오르고 진보적 민주진영의 연대와 결속은 새롭게 이루어질 것이며 모든 허위와 기만은 철저하게 폭로되어갈 것이다.

우리는 파시즘의 강적이다. 저들은 민주주의의 철지난 적이다. 파시즘이 민주주의를 이기고 역사에서 군림한 시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 패망은 생각보다 속히 온다. 누가 비극적인 패잔병이 될지 명쾌해진다. 그리하여 역사는 강기갑에게 무죄를, 저들에게 유죄를 선고할 것이다. 물러날 자들과 중심에 우뚝 서는 이들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때가 곧 오고야 만다. "강기갑"은 우리에게 이미 홀로 강력한 기갑사단이다. 우리가 가진 소중한, 두려움 없는 돌파력이다.

낙관의 의지, 그리고 "날개"

역사의 정의에 대한 믿음이 지금처럼 강렬하게 필요한 때가 없다. 현실은 비관적이라도 의지로는 낙관한다. 낙관의 의지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현실과 마주하는 능력이다. 현실은 결국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의지를 이기지 못한다. 대안이 미리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대안을 만들어 갔기에 대안이 생긴다.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지도자였던 윌리암 슬로안 코핀 목사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다. "믿음으로 도약하라. 그리하면 날개가 어느새 돋아날 것이다." 도약의 믿음이 곧 하늘을 나는 법의 시작이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 만 더 날자꾸나. 한번 만 더 날자꾸나." 잘 알듯이 이상의 <날개>의 마지막 대목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박제가 되어가는 천재가 아니라, 박제를 강요당하는 민주주의에 날개가 돋게 하라. 가던 걸음 잠시 멈추고 이렇게 다함께 외치자. "날자, 날자, 날자. 한번 만 더 날자꾸나. 한번 만 더 날자꾸나."

2009년, 이것이 우리의 물러설 수 없는 열망이다. 오늘은 없는 줄 알았던 이 날개, 이제 막 그렇게 생겨날 것이다. 희망과 의지가 말소된 페이지는 더 이상 없다. 육신은 피곤치 않고 우리의 정신은 은화처럼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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