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전문가는 '안철수 현상'이 "이미 종언을 고했어야 할 87년 체제가 지난 10년간 '연장'되면서 정치 지체 현상이 나타났고, 그 결과 대중의 요구를 담지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해 시민사회와 국민이 '반격'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성 정치질서의 '낡음'에 대항한 '새로움'의 욕구가 결국 안철수 현상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안철수 현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정치권이 거듭나야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동안 지식인의 역할이 부재했음도 지적했다. 지식인 역시 낡은 기성 정치권에 '가신적'으로 봉사했을 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고 주도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고성국 박사는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 대해서는 김 교수와 해석을 같이 했지만 '안철수 현상'이 거품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즉, 정치적으로 검증받지 않은 현상이며, 대중이 지나친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고 '퇴장'한 안철수 대신, 정치에 들어온 문재인, 박원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피력했다.
이같은 대담을 통해 두 전문가는 "결국 기성 정치권의 낡음을 청산하고, 안철수, 박원순, 문재인과 같은 새로운 인물들을 포함한 새로운 정당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남겨진 과제"라는데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 기존 정치권이 안철수 현상을 흡수, 체화해내지 못하면 대중은 또 다른 '촛불집회'를 준비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위기, 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한 이번 대담은 지난 15일 장충동 <프레시안>에서 2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다음은 대담 전문. <편집자>
▲ 고성국 박사와 김호기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국민은 21C, 정치권은 20C…정치에 대한 사회의 반격
고성국 : 김 교수는 이번 신드롬을 '안철수 현상'이라고 표현하나?
김호기 : 처음에는 안철수 돌풍, 안철수 신드롬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굳어진 것 같다.
고성국 : 그러면 안철수 현상이라고 하자. 안철수 현상이 뭔가?
김호기 : 안철수 현상이 돌풍이나 신드롬을 넘어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존재한다면,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봤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에 대한 사회의 반격'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권이 가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았다. 특히 국민들의 여의도 정치에 대한 실망, 환멸이 있었다. 이념 경쟁의 피로감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원인 제공을 한 경우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지치게 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이런 것들이 중첩돼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2002년과 2007년 대선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2007년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보면, 정치 영역 내에서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반영돼 있었다고 본다.
고성국 : 이단아, 비주류 출신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김호기 : '구정치'가 만들어낸 '새로움'에 대한 기대다.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가 내걸었던 여러 슬로건 중에서 국민이 공감했던 것은 '낡은 정치의 청산', '상식과 원칙의 정치'라는 부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정치 영역에서의 새로운 리더였다고 볼 수 있다.
고성국 : 2007년은?
김호기 :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시장에서의 리더'를 불러들였다고 본다.
고성국 : 가장 비정치적 영역이 시장이라고 생각했었다?
김호기 : 더 이상 정치 영역의 리더들로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래서 '시장'이 부각된 것 같다.
고성국 : 지난 5년 동안 정치가 아닌, 비정치적 부분에서 성공한 사람을 세워놓았는데,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인가?
김호기 :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 '시민 사회 리더'를 원한다는 것이다.
고성국 : 국가나 정치권, 경제 영역도 아닌, 이제는 시민 사회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뜬 것인가?
▲ "안철수는 시민사회와 시장(기업) 영역이 중첩돼 있는 인물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명박, 노무현과 비교해볼 때 '시장'에 대비되는 '시민사회'의 영역에 대한 기대가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고성국 : 그 부분은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지금 우리 정치 체제가 87년 체제다. 과도기적 체제다. 과도기적 체제로서 87년 체제는 수명이 다 한 것이다. 이미 2002년에 새로운 정치 체제로 갔어야 했다고 본다. 늦어도 2007년에는 갔어야 했다. 그런데 새로운 체제로 가지 못하고 87년 체제가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국민들이 참아주고, 또 참아줬다. 이미 우리 사회는 21세기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데 20세기적 정치체제를 살고 있다.
이미 정치적 지체가 발생했다. 국민은 이런 지체를 지난 10년 동안 겪어왔다. 그래서 (중간에) 노무현으로도 가봤다가 이명박으로 가봤다가, 지금은 안철수나 박원순은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년 총선, 대선, 또는 그 이후에 이어질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까지 어느 세력, 어느 정치집단, 어느 정치 지도자든 이런 국민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21세기적인 새로운 정치 질서, 새로운 정치 철학, 가치, 체계에 근거한 정치 모형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는 관점에서 정치를 분석하고 있다.
김호기 : 정치에 대해 우리 사회에는 두 가지 경향이 공존해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사회의 반격'과 연관해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는 고 박사가 말했던 20세기적 구정치에 대한 환멸에 따른 '탈정치화' 경향이 존재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보자. 여전히 민주화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의 투표율은 높다고 보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 50% 이하가 나오기도 하고, 무당파 층도 50% 가까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국민이 정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본질인 자원 배분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탈정치화와 더불어 정치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현상이 공존하고 있는 셈인데, 나는 이것을 '재정치화' 경향이라고 부르고 싶다. '탈정치'와 '정치에 대한 열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재정치화의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정부 초기의 촛불집회였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현상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탈정치화 한 국민들의 다수가 재정치화 할 수 있는 리더로서 안철수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2008년 촛불집회가 사회운동의 형태로 나타났다면, 내년 두 개의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리더를 선택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고성국 : 김 교수 말대로 자신에 대한 배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정치적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 배분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는 민주적 작동을 쟁취하기 위한 민주화 운동이 나타난다. 폭발적인 정치력이 '거리의 정치'를 실행할 만큼 발휘된다. 이런 거리의 정치가 제도화된 경쟁으로 바뀌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정치적 무관심으로, 즉 탈정치화로 가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런 양상은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보수-진보 양당제가 아니라 보수-보수 양당제로 나타났기 때문에 국민의 정치적 요구가 기존 정치권에서 올바르게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급속한 정치적 무관심은 이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투표율 60% 정도를 임계점으로 본다. 60% 이하로 떨어지면 대표성의 위기가 온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임계점을 넘어 위험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상태로 10년을 버텨온 것이다. 이런 심각한 위기에 대해 계속 경고음이 나왔지만 기존 정치권은 대책을 아무것도 못 내놓았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나서서 기존 정치권에 반격하듯이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고 본다.
소외받은 대중, 목소리를 찾았다
▲ "시민 사회에서 분출되는 힘을 모아서 정치적인 새로운 질서로 구현해낼 수 있는 그런 리더들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가, 이번 안철수 현상을 긍정적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짓게 된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 점에서 안철수, 박원순, 문재인, 박근혜, 손학규, 또는 그 밖의 대권주자들이 과연 국민적 요구를 새로운 질서로 재구조화 해 낼만한 정치력을 갖고 있느냐. 이 여부가 현 국면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안철수, 박원순에게 물어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김호기 : 동의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는 '목소리가 없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안철수 현상이 지금 어느 정도 구조화돼 가고 있다고 본다. 안철수가 우리 사회의 어떤 영역, 또는 새로운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그룹은 40대 화이트칼라일 수도 있고, 20~30대 젊은 세대일 수도 있고, 여성층일 수도 있다.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대변해줄 정치인을 기성 정치권에서 찾지 못했는데, 안철수라는 사람이 대변자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에 산적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화된 질서 또는 조직으로서 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리더가 대중과 직거래하는 대중 민주주의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새로운 리더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리더가 정당적 질서와 어떻게 결합할 것이냐가 매우 중요한 과제다.
더불어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리더로서 국민 다수로부터 인정 내지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그 리더가 제시하는 시대정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 낡은 정치 청산 등 나름의 시대정신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경제 살리기라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그러면 내년 2012년에는 무엇이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가. 나는 내년 선거가 두 개의 체제를 동시에 결산하는 선거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87년 체제'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다. 어떤 형태로든 이 '오래된' 구도는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97년 체제'다. 신자유주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이 두 개의 체제가 중첩돼 있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국민 다수가 원하는 시대정신은 소통, 공공성, 사람중심, 이 세 가지라고 본다. 안철수라는 개인이 가진 삶, 이야기, 기업 활동, 청춘콘서트를 포함한 사회활동 등이 소통, 공공성, 사람 중심이라는 가치에 부합된 것이다. 그래서 (대중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고성국 : 그 맥락에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나는 정치의 재구조화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됐다고 본다. 언제 완결된 형태로 국민 앞에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재구조화의 완성된 형태에 대한 다른 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보수 쪽을 살펴보자. 박근혜의 30% 중반 대의 견고한 지지도는 안철수 돌풍에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이 지지는 박근혜가 보수의 재구조화를 해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김 교수가 말한 식의 시대정신이 박근혜 식으로 보수 층에 어필했을 수 있다. 박근혜가 보수와 소통하는 힘이 없었다면 안철수 돌풍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이 거의 이탈 없이 견고하게 대열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게 박근혜 식의 87년 체제 극복 방식이라면) 97년 체제와 관련해 박근혜는 자신의 생애주기별맞춤형 복지론을, 보편적 복지를 전제하고 내 놓으려 하고 있다. 정책이 논리적으로 맞는 것이냐의 문제는 다른 문제라고 해도, 박근혜의 행보가 신자유주의의 틀이나 낡은 정치 틀에 빠져있다고 비판하기는 어려운 대목들이다. 손학규, 문재인, 유시민 등 야권 지도자들이 박근혜에 큰 차이로 뒤떨어졌던 것은 바로 그 대목에서 진보의 새로운 가치, 진보의 재구조화를 위한 '블루 프린트'를 제시하지 못해 그런 것 아닐까. 그래서 진보를 결집시키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안철수가 하나의 현상을 넘어서 실제로 실체적 정치적 현실로 전환되려면 진보의 재구조화를 위한 블루프린트, 로드맵, 그리고 그것에 새롭게 정리되는 가치를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는 그것을 이미 하고 있는데 안철수나 문재인은 뭘 하고 있나. 그런 차원에서 토론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보수 세력은 자신의 정치적 통로인 한나라당과 정치적 리더인 박근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중도적, 진보적 유권자 다수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프레시안(최형락) |
고성국 : 민노당 진보신당도 대중 정당, 국민 정당으로 전환을 선언했다.
김호기 : (그것을) 국민 다수는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민사회 내 보수와 중도 보수 세력이 정치사회 내 한나라당이라는 단일 정당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해, 시민사회 내 진보와 중도 진보 세력은 정치사회 내 단일 정당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중도 진보까지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진보적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이러한 특징은 진보개혁 정치가 갖는 불안정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단일정당론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도 진보든 정통진보든 그 시민사회적 기반의 불안정성을 지적하고 싶으며, 이러한 불안정성이 안철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의 하나를 제공했다고 보고 싶다.
제3의 정치세력화 가정하자…안철수 거품은 꺼질 것인가?
고성국 :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안철수는 진보인가?
김호기 : 안철수 본인은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말한 적이 있긴 하지만 어떤 정치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의 정체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지그룹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주요 그룹은 중도, 그리고 중도 진보 세력이라고 본다. 물론 중도 보수 세력도 안철수에 호감을 갖고 있지만 그 핵심 계층은 중도와 중도 진보 세력이라 할 수 있다.
고성국 : 내가 봤을 때 안철수 지지 세력의 주류는 무당파층인 것 같다. 그 무당파층의 이념적 성향을 스펙트럼위에서 보자면 김 교수 말대로 중도 좌파를 다수로 해서, 중도 우파 일부를 포함하는 것 같다. 민노당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안철수를 지지하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안철수를 지지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거품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안철수가 실제로 정치를 선언하고 중도 보수까지를 포함해 재구조화를 해서, 결국 한나라당과 반 한나라당 연합 간에 일대일 대립 구도가 만들어지게 될 수는 있다. 대선에서 다자 후보 구도와 달리 양자 대결의 경우는 양 편으로 유권자들을 나누는 강제력이 발동한다. 그러면 안철수 지지표에 일부 섞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도 보수 표가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또 안철수가 시도할 재구조화가 중도를 중심으로 이뤄질 경우, 왼쪽에 치우친 유권자들이 안철수를 자신의 '깃발'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양쪽으로부터 이탈이 있을 수 있다. 안철수가 행동하지 않으면 이탈은 가속될 것이고, 행동하더라도 이탈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 점에서 안철수 지지층에 거품이 있다고 본다.
김호기 : 내 생각은 다소 다르다. 나는 이탈과 충원이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정치 세력화를 하게 되면 빠지는 거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 무응답 층에서 충원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안철수를 지지하고 싶은데 그 사람은 혼자라서 지지하기가 좀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안철수가 세력화 한다면 지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제도화나 세력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독자적인 가치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정말 낡은 것과 과감하게 결별하면 이탈하는 규모만큼 충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안철수 박원순이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새로운 조직 원리에 입각해 정당을 새로 만들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필패라고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
나는 안철수 박원순이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새로운 조직 원리에 입각해 정당을 새로 만들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필패라고 본다. 김 교수 얘기대로 새로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기게끔 만드는 요소, 이것은 안철수와 박원순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파워지, 그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정당이 아니다. 결국 이 얘기는 환원하면 앞으로 안철수가 비정치 영역에서 정치적 행보를 얼마 동안 할 것이냐, 언제 정치판에 들어올 것이냐, 정치판에 들어와서 정치적 행보를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승부는 결정될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인물론에 초점을 맞춰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본다.
김호기 : 단시간 내에 창당하고, 그 정당이 안정화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결국 인물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자. 보수 정당들은 대체적으로 내부 혁신을 통해 정당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해왔다. 진보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보수 세력은 안정을 중시하기에 기존 질서를 크게 변화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진보 세력은 변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보수 세력보다 크다.
고성국 : 변화는 진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불편함을 주지 않지만, 스스로를 중도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변화와 동시에 안정을 추구한다.
김호기 : 영국 같은 경우는 20세기 들어와서 자유당이 몰락하고 노동당이 나타났다. 브라질의 경우 기존 공산당이 있었지만 노동자당이 부상했다. 독일의 경우 최근 진보적 정당에서 녹색당과 사민당의 지지율 순위가 바뀌었다. 녹색당이 기민당에 이어 제2당이 됐다. 진보적 유권자들은 변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정당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을 못한다고 하면 새로운 정당을 선택해버린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현실을 지켜볼 때 진보 개혁적 유권자들은 사실상 새로운 정치 세력을 원한다고 본다. 이것은 이른바 '백만민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빅텐트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야권 대통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정당이 등장해 새로운 위치를 잡아 가는 데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치 일정이 너무 짧다. 그렇다보니 인물에 의존하게 된다. 내년 선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2017년 대선도 있고, 2022년에도 있다.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안철수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길게 보고 시민사회의 구도에 대응하는 제대로 된 정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 떠내려가고 해체 되도 싸다"
고성국 : 안철수 돌풍은 한나라당에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타격은 민주당과 야권이 받았다. 이렇게 본다.
김호기 : 동의한다.
고성국 : 그렇게 된 이유는 한나라당에 박근혜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보수의 '재구조화'를 하고 있는 박근혜가 없었다면 한나라당도 쓰나미에 휩쓸려 갔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안철수 쓰나미에 휩쓸려 가는 것은 야권인데, 이들이 지금 보여주는 태도를 보면 자기들이 어떤 정도의 위기에 처해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본 민주당의 모습을 두 가지 말씀드리겠다.
하나는, (서울시장 후보 영입 관련해) 삼고초려를 한다고 하면서 손학규가 박원순을 민주당 대표실로 불러서 입당을 권유했다. 그리고 거절당했다. 이해가 안된다. 삼고초려라는 것은 몸을 낮추고 찾아가서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니 사람들이 (거만한) 제1야당을 외면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하나, 민주당 쪽에서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니 '야권 후보는 기호 2번이 돼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더라. 기호라는 것은 문맹자들이 많아서 사람 이름도 모를 시절에 만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 3의 인물인 안철수, 박원순 돌풍이 불어닥치고 있는 이 판에 40~50년 전에 나왔던 '기호 2번론'을 내 놓는다. 유권자를 모독하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지지자들은 안철수 후보 번호가 583번이어도 찾아서 찍을 것이다.
민주당은 자기들이 이미 떠내려가고 있는데 고작 하는 행동들이라고는 이 수준이다. 민주당이 떠내려 갈만 하고, 떠내려가도 싸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김대중이 있었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철수든 박원순이든 당연히 영입했을 거다.
김호기 : 김대중은 외부 인사 영입에 매우 적극적이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고성국 : 민주당이 군소 약체 후보처럼 전락했지만 천정배 정동영, 이런 사람들이 바로 10년 전에 안철수였고 박원순이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민주당은 리더십의 위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민주당이 포스트DJ 시대를 감당할 리더십을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만드는데 지난 10년간 실패했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정국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다. 총선, 대선이 연달아 있는 상황에서는 정국 주도권이 유력 후보에게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점에서 나는 민주당이 거의 해체 상태로까지 전락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민주당이 해체상태로 갈 때 새로운 형태의 정당이나 정치 세력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민주당이 그래도 거함이니까 침몰하는데 시간이 있고, 버틸만한 힘도 있어서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채 무너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원순, 안철수 등이 새로운 정당을 하겠다고 하는 순간 (야권은) 분열로 갈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일여-다야 구도로 총선 대선 치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선거에는 진다. (제3신당론의 경우) 이런 가능성도 같이 봐야 할 것 같다.
▲ "잘 짜인 각본에 기반한 20세기적 드라마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 가는 21세기적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프레시안(최형락) |
김호기 : 정당은 변화된 상황에 대응해 주요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정치화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보수 진보를 떠나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는 세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무상급식으로 나타난 복지 문제, 두 번째는 희망버스로 나타난 노동 시장 문제, 세 번째는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재벌 문제다. 국민들은 이런 문제들의 중요성을 잘 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일부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내용, 다시 말해 거시적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리더십도 문제다. 지금은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소통보다 수평적인 소통이 중요해졌다.
나는 이게 안철수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보는데, 안철수 리더십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1박2일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가진 중요한 특징이 있다.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데 일방적인 권위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 다시 말해 과정을 즐기고 중시하는 것에 이 프로그램의 묘미가 있다. 잘 짜인 각본에 기반한 20세기적 드라마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 가는 21세기적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정치인들은 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한다고 얘기하지만 (국민은) 너의 비전을 수직적인 게 아니라 수평적으로, 함께 토론해가면서 만들어보기를 원한다. 낡은, 오래된 방법으로는 국민 다수를 설득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지금 민주당은 새로운 역사적 과제, 새로운 비전의 제시와 새로운 리더십의 발휘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방법과 내용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미래는 험난할 것이다.
"지금은 '퇴장'한 안철수보다 '입장'하는 문재인을 얘기할 때"
고성국 : '1박2일 리더십'도 앞으로 더 세련되게 풀어가야 할 것이다. 좀 전에 얘기한 한진중공업 문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어떤 정치인이 희망버스를 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게 다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다. 과연 안철수는 희망버스를 타야 할까? 지금까지 안철수는 이런 일에 대한 코멘트를 안 해도 됐었다. 그러나 정치권에 들어온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해야 한다. 안철수와 비슷한 환경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 과제들을 풀어야 하는 위치에 처해 있는 인물이 있다. 문재인이다.
문재인은 채 출시되지 않은 상품 상태이기 때문에 (안철수 돌풍에 의한) 타격이 결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또 (안철수라는) 신상품과 문재인, 두 상품이 시너지를 만들어갈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본다. 안철수는 어찌됐든 일단 다시 퇴장을 했다. 문재인은 지금 정치권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문재인에 대한 평가가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고, 문재인에 대한 평가가 현실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호기 : 이렇게 보면 어떨까 싶다. 진보 개혁 유권자들은 작년부터 선거를 앞두고 계속 새로운 인물을 찾아왔던 것 같다. (조국 교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국이 미풍이었다면 문재인은 강풍이고, 안철수는 태풍이라고 본다. 현재 진보 개혁 진영에서 내년 선거를 염두에 두고 유력한 인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세 사람, 안철수, 문재인, 그리고 손학규인데, (야권 후보로) 문재인도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진보개혁 세력이 정당이라고 하는 제도적 틀이 불안정해서 그렇지 사실상 안철수, 문재인, 손학규 등등을 떠올리면 인물의 경우 보수보다 더 풍성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안철수를 진보 개혁 세력의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재 나타난 현상은 그렇다.
▲ "안철수는 어찌됐든 일단 다시 퇴장을 했다. 문재인은 지금 정치권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문재인에 대한 평가가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고, 문재인에 대한 평가가 현실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프레시안(최형락) |
고성국 : 내년 선거는 어떻게 전망하나?
김호기 :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나타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지방선거에서 보수 주도의 구도가 보수 대 진보의 균형 구도로 바뀌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구도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선거 연합이 됐건 정당 통합이 됐건 후보단일화를 이룰 수 있다면 진보개혁 세력의 우위를 점쳐볼 수 있다.
고성국 : 몇 석으로 예상하나?
김호기 : 야권 전체가 과반수를 넘을 것이라고 본다.
고성국 : 제 1당은 어느 정당이 될 것 같나?
김호기 : 그런 것은 정당 재편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고성국 : 재편이 되면 다시 얘기를 해야겠지만 나는 지금 한나라당은 135~140석, 민주당은 125~130석, 그리고 나머지를 자유선진당,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무소속 후보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본다. 야권이 합치면 과반수가 될 것 같다. 그러나 1당은 한나라당이 한다고 전망한다. 김 교수는 어떻게 보나?
김호기 : 후보단일화를 할 경우에는 한나라당이 120~130석 정도 차지할 것으로 보고, 야권 통합 후보를 낸 세력이 150석 내외 정도 차지할 것으로 본다. 나머지는 다른 정당들이 가져갈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볼 수 있듯,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하게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세 그룹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보고 싶은데, 40대 화이트칼라들, 20~30대 젊은 유권자들, 그리고 여성 유권자들이 그들이다. 이 세 그룹이 얼마나 선거에 참여하느냐가 관건인데, 이 그룹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갖는 실망이 상당히 크다고 본다.
고성국 : 그러나 국민의 과반수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정권 교체가 된다고 대답하는 상황이다. 내년 총선에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서 한나라당 공천 물갈이를 주도하고 선거를 박근혜 선거로 만들어 가면 쉽지 않을 것 같다.
김호기 : 그것도 지켜봐야 한다. 내년 총선에는 박근혜에 대한 기대감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동시에 작동할 것으로 본다. 어디에 무게 중심이 놓일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 심판론이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고성국 : 그 총선에 안철수가 개입을 할까? 문재인은 이미 개입하고 있다.
김호기 : 안철수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고성국 : 문재인이 개입한다는 것은 문재인이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고, 안철수의 경우는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것인가?
김호기 : 안철수는 개인적 수준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직접 지원 유세에 나서기는 힘들지 않을까.
고성국 : 그렇다면 총선에 대한 대략적인 전망이 있는 이 상태에서 대선 얘기를 해보자.
"문재인, 안철수 두 카드 쓸 수 있는 야권은 행복한 것"
▲ 야권 전체가 보수 정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경우, 입법의 영역에서 이들이 제대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지 여부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프레시안(최형락) |
이 기회에 야권 전체가 보수 정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경우, 입법의 영역에서 이들이 제대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지 여부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후퇴한 개혁입법이 결코 적지 않다. (야권이) 과반수가 된다고 하면 후퇴된 개혁 입법을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과정에서 야권이 제대로 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게 된다면 한나라당에 유력 후보가 있기는 하지만 야권도 대선에서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본다.
고성국 : 그런 상태에서 문재인은 총선에 직접 뛰어들고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는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놓다. 그 상태로 총선이 끝난다. 야권이 과반수가 되면 정국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고 과반수가 안 되더라도 공격적으로 할 텐데,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의 대통령 후보로서의 활동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치권에 들어왔고, 배지를 달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안철수는 어떨까. 총선까지 다 끝났는데 그때까지 팔짱 끼고 있다가 김 교수 예측대로 야권이 이겼다. 그때 '내가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모양새가 되는데 그게 어떨 것 같나?
김호기 : 총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는 각자 자신이 판단할 정치적 문제인데,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대선 후보 지지율의 구도, 그것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박근혜는 30%, 안철수는 20%, 문재인은 10%, 이런 정도의 수준이 계속 유지될 것 같다. 문재인이 총선에 개입하여 PK(부산경남) 지역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경우 야권에서 안철수와 문재인의 경쟁이 본격화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PK 지역에서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낼 경우 3분의 1 정도의 의석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문재인의 경우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성국 : 대통령의 자리, 대통령 후보의 자리,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까지, 주어진 경우는 없고 다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총선에 뛰고, 안철수는 총선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나는 (지지율은) 역전된다고 본다. 그게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문재인 양강 구도에 안철수 다크호스를 보유한 야권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구도가 야권에게는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때부터다. 여러 검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만약 문재인의 하차가 불가피할 때 누군가 대항마를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야권 입장에서 문재인과 안철수 두 개의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것이다. 콘트롤만 잘 한다면 어느 카드를 내든 늘 준비된 카드를 하나 더 갖고 있기 때문에 전략 운영의 폭이 확 넓어진다. 문제는 이것을 콘트롤 할만한 '판 메이커'가 있느냐 여부다. 야권이 그런 정치력과 권위 같은 것을 갖추고 있느냐, 이 점에서는 사실 부정적이다. 그런 면에서 김 교수의 예측대로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대선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전혀 새로운 게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호기 : 그 두 사람을 묶을 수 있는 세력이나 분위기,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두 사람 본인의 생각이라고 본다. 문재인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안철수 원장과 함께 정치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안철수가 우리 사회를 좋은 사회로 바꾸고 싶다면 내년 총선보다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본인이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주변 그룹과 더불어 중요한 게 대중들의 생각이다. 안철수 현상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긍정적 의미에서의 '팬덤 정치'다. 유권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리더의 부상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회의 진전과 소통의 활성화에 따라 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러한 목소리가 리더의 선택에 과거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성국 : 그런데 팬덤과 관련해 시청자들의 요구대로 드라마 스토리가 막 바뀌지 않나. 그러나 작품성이 높은 드라마로 완성도 있게 마감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나는 정치는 지지하는 대중보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과 결단과 의지적 선택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지도자가) 대중의 요구를 통찰력 있게 꿰뚫으면서 하느냐가 중요하지, 대중의 요구에 어떻게 잘 맞춰가느냐의 여부로 정치 리더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가장 위험한 포퓰리즘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김호기 :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소통과 상호 작용을 강조하는 것이지, 대중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팬덤 정치를 이야기한 것은 그 만큼 우리 시민들, 우리 국민들이 정치적 리더로부터 소외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정치의 단순한 객체로 존재해 왔지 않나. 소외돼 왔기 때문에 팬덤 정치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측면에서 얘기한 것이다. 팬덤 정치는 분명 포퓰리즘의 위험을 갖고 있지만, 소통과 공감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안철수 현상'의 부상으로 본 지식인과 정치의 관계
▲ "그래서 문재인, 안철수를 찾아낸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이나 안철수, 박원순은 발견을 당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발견자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오만에 빠질 수 있다. 발견자가 아니라 발견당한 자라는 정신을 끝까지 견지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든다."ⓒ프레시안(최형락) |
김호기 : 선거는 그 사회가 몇 년 동안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새로운 문제 해결 방향을 모색해보는 자리다. 이점에서 선거에는 그 사회의 거의 모든 그룹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지식사회를 보자면, 선거 국면에서, 특히 대선과 같은 경우에서는 후보와 지식사회 사이에 일종의 특수 관계가 만들어진다. 선거에 관여했던 지식인들은 선거가 끝나고 정부가 구성될 때 주요 직책에 진출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정치 리더'와 '가신적 지식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는 이런 수직적 구도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에 참여하는데 있어서 지식사회도 나름대로 독립성, 자율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보수든 진보든 정책을 개발하는 여러개의 싱크탱크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나 역시 '복지국가와민주주의를위한싱크탱크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이 싱크탱크네트워크는 진보적 시각에서 비전과 정책 대안들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싱크탱크 그룹들이 '누구의 사람'이 아니라 '정치 세력의 싱크탱크'로 자리매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지식사회가 정책 개발에 더 주력해야 하기도 하지만 특정 리더나 특정 정치 권력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본다.
고성국 : 여러 예가 있지만 미국의 부르킹스연구소나 해리티지재단이 그렇지 않나. 그 연구소들도 선거 때는 후보와 결합돼서 하지만.
김호기 : 그것은 후보가 결정된 이후에 하는 것이다.
고성국 : 우리가 정책이라고 하는 영역의 당위적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정책이 인물이나 이미지 홍보보다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우리 정치 현실에서 '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똑같은 비용을 들인다면 정치인들은 그 비용을 정책이 아니라 이미지, 홍보, 조직에 쏟게 돼 있다. 그 현실 속에서 싱크탱크의 정책 역량이 역할을 하기 위해 (진영과 조직적으로) 결합을 한다면 결국은 장식품이 되고, 그 싱크탱크의 정책들도 후보의 취향에 맞게 선택이 된다. 그 현실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는 정책 역량들이 올바르게 역할을 하고 제대로 리더들과 결합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제안을 한 것 같다. 그러나 현실과 목표 사이에 갭이 여전히 크지 않나. 내년 총선 대선에도 이 갭을 메우기에는 힘들지 않나?
김호기 : 그 점에 있어서, 보수적 지식 사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보적 지식 사회는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홍보나 이미지메이킹을 전부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정책 개발이 더 중요해져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야권 통합 정당이든 민주당이든 지식사회와 정당은 조직 대 조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성국 : 김 교수가 맡은 복지싱크네트는 민간 연구 조직인가?
김호기 : 그렇다. 지식사회가 자율성을 가질 필요가 있고, 유기적으로 대안 개발을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싱크탱크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복지국가소사이어티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최근 복지 담론을 부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성국 : 싱크네트는 진보진영의 민간 연구 조직 9개가 모여 있다. 이 싱크탱크에서도 야권의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인데, 현재 수평적 관계인가?
김호기 : 수평적 관계라고 생각한다.
고성국 : 그렇다면 지금 그 조직에서 정치지도자를 불러서 조언도 하고 그러나?
김호기 : 아직은 선거 국면이 아니어서 그렇지는 않고, 현재는 비전과 정책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내가 정치 리더와 지식사회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 것은 기존의 방식, 지식인이 정치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나 역시 특정 리더에게 정치적, 정책적 조언을 해 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차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당, 리더와 지식인, 지식사회 사이의 수평적이고 조직적인 관계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 현상 안에는 우리 사회의 낡음과 새로움이 교차하고 있다. 이제까지 정당이든 지식사회든 국민 다수가 원하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소극적이었을지 모른다. 이점에서 진보적 지식사회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서야 한다. 정당 또는 정치세력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젊은 세대를 포함한 대중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지식인의 일차적인 상대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시민과 대중이라 할 수 있다.
▲ "진보적 지식사회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서야 한다. 정당 또는 정치세력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젊은 세대를 포함한 대중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지식인의 일차적인 상대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시민과 대중이라 할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고성국 : 나도 10대와 통하는 강연 등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 저도 이런 부분에 빈 영역이 많다고 본다. 내가 정치평론가로, 또 정치학자로 본다면 유권자들의 절반이 넘는 20대, 30대, 40대에게 지식인들이 특별히 보여준 게 없는 것 같다. 그들이 자신들을 감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표현해주는 사람들을 찾았다고 본다. 대담 초반에 김 교수가 '정치에 대한 사회의 반격'이라고 하셨는데, 사회가 반격한 것이고, 바로 이 세대들이 반격한 것이다.
김호기 : 사실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고성국 : 그래서 문재인, 안철수를 찾아낸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이나 안철수, 박원순은 발견을 당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발견자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오만에 빠질 수 있다. 발견자가 아니라 발견당한 자라는 정신을 끝까지 견지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든다.
김호기 : 마지막 말씀을 오늘 결론으로 삼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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