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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그게 바로 국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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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그게 바로 국가의 역할"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9>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격세지감이다. 정치권의 복지논쟁 확산으로 이제는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거론된다. 진보진영과 권영길 의원이 처음으로 각종 '무상정책 시리즈'와 '부유세'를 제기한 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사회주의적 좌편향"이라는 비난과 "불가능한 환상"이라는 비아냥을 동시에 감수해야 했던 권영길 의원은 최근의 복지논쟁을 "한국의 정치발전에 바람직한 일"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말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그는 최근 복지를 주요한 정책이슈로 제시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향해 "정말 잘한 일"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정치권 내 '원조 복지국가론자'로서 쌓아올린 내공 혹은 연륜이 아닐까.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아홉 번째 연쇄 인터뷰, 대담은 김윤태 고려대 교수가 진행했다. <편집자>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1> "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2> "작은 차이 때문에 'MB후예'의 재집권을 용인할텐가?"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3>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4> "장래희망이 '기초생활수급권자'라는 아이에게 우리는?"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5> "2012년 민주진보정부, 아! 이건 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6> "'돈부터 내라'면 복지 자체가 안 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7> "지출구조 개혁이 우선, 마지막 기댈 수단이 증세"

☞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8> "부자 증세는 보편적 복지의 최소 조건"

▲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복지정책에 노동분야 도입한 박근혜, 정말 잘했다"

김윤태 : 1997년 이후 3차례 진보진영 후보로 대선에 도전했던 권영길 의원은 요즘 회자되고 있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무상 시리즈'의 원조이기도 하다. 최근의 복지논쟁, 어떻게 보고 있나?

권영길 : 복지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한국의 정치발전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기가 늦어진 측면이 있다. 1997년 대선 이후 진보정당 창당에 들어가면서 3년 동안 주로 복지 이야기를 해 왔다. 교육비, 병원비, 주택비 걱정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이후에 2002년,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좀 더 구체화됐지만 정치권에서는 허황된 이야기, 꿈같은 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봤다. 하지만 지금 구체적인 논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지난 10년 간의 작업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를 자신의 주요한 정치과제로 설정했고, 민주당도 복지논쟁에 불을 붙였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내걸고 있는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재원문제에 너무 소극적이다. 전체적으로 정치권이 복지국가를 내걸고 있는 것은 좋은데,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복지철학의 측면에서 생각이 좀 다르다. 2000년부터 외쳐왔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는 단지 복지정책을 넘어서는 철학의 문제, 국가적 개조의 차원이었다.

김윤태 : 민노당은 '부자에겐 세금을, 서민에겐 복지를'이라는 슬로건도 내건 적이 있다. 선별적 혹은 보편적 복지 논쟁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권영길 : 박근혜 전 대표는 소득보장성 복지를 이야기하더라. 보수언론이나 정치권은 복지를 돈을 얼마 줄 거냐, 무상이냐 아니냐로만 본다. 무상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당연히 교육비 걱정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전제해야 한다. 학벌없는 사회,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실질적으로 사교육이 없어질 뿐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된다. 알FP르기적 반응을 보이는 분도 있을 텐데, 내가 이야기하는 복지국가 건설은 다름 아닌 평등사회 구현이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완전히 황금만능주의 사회로 가고 있다. 이것을 바꿔내는 직접적인 계기가 뭔가, 바로 복지다.

김윤태 : 부유세 논란도 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을 만났더니 "부유세는 권영길 의원이 처음 하신 말씀이라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고 하더라.

권영길 : 정동영 최고위원은 직접 만나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원조 저작권'라고 문자도 보낸다. (웃음) 그렇다고 저작권을 행사할 생각은 없고, 부유세가 잘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정말 박수치고 격려하고 있다.

김윤태 :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부유세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반면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증세없는 복지'를 이야기한다. 부유세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민노당은 최근에는 부유세 이야기를 별로 안 하더라.

권영길 : 부유세는 민노당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걸었던 공약이었고, 변함없는 중심 담론이다. 오늘(15일)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서도 문서로 확인했다. "부유세는 민노당의 당론이며, 변경 혹음 폐기한 적이 없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부유세를 폐기할 수는 없다. 그건 민노당의 생명이다. 증세없이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윤태 :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한가?

권영길 :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은 한면으로는 맞다. 한나라당의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4대강 토목예산을 복지로 돌리자는 것은 맞는 이야기다. 절반은 인정한다. 그 예산만 해도 천문학적인, 어떤 분은 100조 원이 넘는다고 예측하기도 하더라. 여기에다가 증세를 하면 복지국가 건설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증세에 있어 단계적 접근을 하자는 것이다. 부유세만을 될까,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상당 기간 동안 부유세가 정착되어야 하고 공정과세도 이뤄져야 한다. 공정과세 없이 복지국가 재원마련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부유세의 과세 대상을 상위 1%로 보기도 하는데, 나는 5%를 이야기한다. 국민들에게 묻자는 이야기다. 상위 5%에게 세금을 제대로 걷어서 복지국가의 토대를 구축한 다음에, 그 성과가 눈에 보일 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거부반응이 있을까?

김윤태 : 스웨덴에서도 얼마 전 부유세를 폐지했다는 지적도 있다.

권영길 : 보수언론에서는 스웨덴도 부유세를 폐지했다, 유럽이 어떻다고 하는데 스웨덴에서는 2007년 폐지될 때까지 부유세가 30여년 동안 국가의 정책이었다. 완전한 공평과세가 되면 부유세는 없어도 된다. 스웨덴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부유세를 폐지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부유세 대신 목적세인 사회복지세 신설을 주장한다. 최근에 사회연대 복지국가론, 비정규직 포함해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복지국가를 제기했다.

권영길 : 전적으로 동의한다. 바로 우리가 외쳐왔던 부분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가장 잘못한 점이랄까 그게 바로 노동부분이다. 노동자들과 불편한 관계를 맺고 마찰도 빚었다. 물론 건강보험 등 4대보험을 정착시킨 성과 등은 인정한다. 하지만 노동부문을 잘못해서 결과적으로 사회양극화를 가속화시킨 측면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보니까 노동문제를 강조하고 있더라. 환영한다. 박근혜 전 대표 같은 분이 복지개념 속에 노동부문을 도입하는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노동복지를 강조하는 것은 임금부분으로 해석할 수 잇는데, 그게 아니다. 광의의 복지라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현실화, 영세사업장의 사회보험료 감면, 고용유지 지원, 공공서비스 일자리 창출, 전국민 일자리 대책과 청년실업 대책 등이다. 노동문제를 복지 영역으로 확대시키자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 문제는 바로 복지정책으로 해소해야 한다. 다만 진보신당의 사회복지세 신설 주장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한다. 부유세를 처음 내걸었던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쉽게 다가가야 한다. 무슨 최고세율 구간 이야기를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반면 부유세라고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가진 만큼 세금 내라는 것 아닌가.

김윤태 : 단순히 복지예산을 확충하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 사회구조 전체의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권영길 : 그렇다. 바로 그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당 내의 토론을 통해 충분히 정리될 수 있는 문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을 겁내고 포기할 필요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왜 세금을 통한 재원확보에 겁을 내는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할 순 없지만, 그게 바로 국가의 역할 아닌가. 외부에서 강연을 하면 청중들에게 우선 "국가가 뭔가"를 묻는다. 그 다음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냐 아니냐, 국가냐 아니냐, 제대로 된 나라는 뭐냐, 미국은 제대로 된 나라냐"를 묻는다. 제대로 된 나라는 서민들이 교육비, 병원비, 주거비 걱정을 안 하는 나라다. 그게 첫째 요소다.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유세를 제기한다고 해서 부자와 재벌을 증오하는 게 아니다. 다만 비판은 한다. 왜냐, 소득과 자산에 따라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일은 국가를 구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세금을 제대로 내야 한다. 유럽에선 소득과 자산에 따라 벌금도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나? 최근에 핀란드의 노키아 부회장이 과속으로 1억 원의 벌금을 냈다고 하더라. 하물며 세금이라면 안 내는 게 말이 되겠나. 가진 만큼 내라는 이야기다. 소유구조에 대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그것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부유세가 정착되고 "복지국가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인식이 다수의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소유구조 문제도 국민적 합의에 따라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복지가 포퓰리즘이라고? 한국사회 누가 파탄냈나"

▲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김윤태 :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매 정권마다 정치적 상황이 있고, 국민적 요구와 정서가 있다. 일률적, 도식적으로 평가되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앞서 말한 것처럼 4대 보험과 기초생활보장의 제도화는 높이 평가한다. 김대중 정권 때는 경제위기 탈출과 남북관계 쪽에 정치의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정말 획기적으로 바꾸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넓히는 역사적 성과,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사회 양극화문제를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 비정규직 문제, 다르게 이야기하면 IMF의 요구사항을 너무 과도하게 수용했다. 그게 뭔가, 바로 신자유주의적 흐름의 핵심 아닌가. 신자유의가 뭔지 김대중 정권은 정확하게 꿰뚫어보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복지가 중심적 과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지난 10년 정권동안 노동자들과 충돌했건 것이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부터 그것을 비판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실제 정치상황으로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지금 복지예산이 GDP대비 8.8%다. OECD 평균은 20% 정도다. 당연히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 2만 불 시대를 맞은 다른 나라들은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나. 국가의 틀이 아직 취약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무상교육을 주장하지 않는다. 무상교육에 가까운 것을 하자는 이야기다. 대학등록금이 1년에 40~50만 원 정도면 어떻겠느냐고 서민들에게 물어 보라. 그 정도는 학생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60년 전이나 100년 전, 프랑스에선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 한 것을 우리는 왜 못하나.

김윤태 : 프랑스 특파원을 지내서인지 미국보다는 유럽형 복지국가 모델을 선호하는 것 같다.

권영길 : 그렇다. 나는 미국을 선진국으로 보지 않는다. 문화 수준에서도 그렇지만 국가경영 면도 그렇다. 오바마가 100년 만에 의료보험 개혁을 했다지만,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보다 훨씬 못한 수준이 아닌가. 그것을 100년 동안 못 했고, 의료비 지출은 세계에서 제일 높다. 그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 모델이 될 수 있겠나.

김윤태 : 한나라당이나 청와내는 복지재정을 늘리자는 주장은 포퓰리즘이며 국가재정을 파탄낼 수도 있다고 비판한다.

권영길 : 국가재정을 파탄내는 사람이 누군가? 단순히 재정뿐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파탄도 있다. 한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사람사는 사회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이 판을 치고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국가가 권력의 힘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재정 파탄? 가진 만큼 세금을 내지 않아서 사회를 양극화시키는 게 국가 파괴범이다. 포퓰리즘이라고? 국가발전을 위해서라면 뭐가 문제인가. 아르헨티나 등 남미 쪽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유주의 때문에 파탄났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기도 하다.

김윤태 : 복지국가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야권연대다. 민주당도 복지를 통해 연합정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치동맹을 거론하는 인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연대와 연합의 가능성, 높아지고 있다고 봐야 하나?

권영길 : 복지를 위해서 동맹은 해야 한다. 하지만 무슨 정권을 만들기 위한 건 아니라고 본다. 나도 야권연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선(先)진보통합, 후(後)야권연대다. 그게 실제적으로 정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도 그게 맞다. 총선과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필요한건 선진보통합이다.

김윤태 : 진보신당 일각에선 여전히 종북주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 어디까지 와 있나.

권영길 : 한 쪽은 "패권놀음이나 하는 친구들, 종북파들 안 보이니 시원하네"라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선 "지역에서 거의 다 정리되고 있는데 골치아픈 친구들 없이도 총선 잘 치를 수 있다"라고 한다. 이 둘 모두 때문에 통합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통합하지 않으면 죽는다. 안 하면 뭐 할 거냐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통합하지 않으면 소멸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본다. 민주당의 몇몇 분들은 진보정당이 소멸하는 건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 정치발전에 엄청난 손실이다. 목표는 (단일한 진보정당을 통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다.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상하게 되면 지금의 복지논쟁의 차원도 달라진다. 사회양극화와 평등사회,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통일 측면에서 봐도 원내교섭단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른 길이 없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씻을 수 없는 과오다. 어떤 분은 범죄행위라고까지 하더라. 물론 진보대통합에 비관적인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 망할래?"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더라. 길이 하나뿐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

▲ ⓒ프레시안(최형락)

"중요한 건 先진보대통합, 야권 단일정당은 불가능하다"

김윤태 : 민주당과는 정당통합이 아닌 선거연합이라는 이야기인데, 다른 가능성은 없나?

권영길 : (정당통합은) 민주당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역사도 다르고, 뿌리와 역할도 다르다. 요즘 이야기되는 빅텐트론, 야권단일정당….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진보통합 문제에서도 나타나지 않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정책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감정적 응어리가 안 풀리고 있는 것이다. 정책에 차이가 없어도 통합이 쉽지 않다. 이걸 다 넘어서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하나로 합치자?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서로 상처만 입고 국민에게는 정치적 혐오감만 주게 될 것이다. 이게 불가능하다면 빨리 실제적인 야권연대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당이 정말 마음을 비워야 한다.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지 않으면 총선과 대선의 승리는 어렵다.

김윤태 : 국민참여당과의 연대는 어떻게 보는가?

권영길 : 우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는 역사와 뿌리가 다르지만, 민주당과 참여당이 다른가?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하겠나. 그 속에서 야권연대의 길도 찾아질 것이다. 두 당이 통합하라, 후보를 조정하라는 이야기를 감히 하는 게 아니다. 어쨌든 두 당이 먼저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동시에 논의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김윤태 : 단일 진보정당 출범이 이뤄진다면 대선에서는 후보를 따로 내야 한다고 보나? 어쨌든 후보 단일화는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유럽식 연합정부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가.

권영길 : 그 부분은 총선 이후 변화된 지형 속에서 모색될 것이다. 지금 언급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나는 진보진영의 대선 후보로 3차례 출마했다. 그렇다면 변화된 지형을 그려보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 시점의 정치환경이나 국민적 요구, 진보진영의 요구사항은 그때그때 다를 수 있다. 1997년 출마했을 때는 '국민승리21'이었는데 모든 진보조직과 인사들이 다 참여했다. 총진보의 후보로서 출마하면서 물론 당선이 제1의 목표였지만, 내재적 목표는 진보정당 건설이었다. 그래서 창당을 했고, 지금의 목표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이다. 대선후보 문제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김윤태 : 정치구도의 3분립, 보수-중도-진보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소선구제이고, 권력구조도 한 정당이 독식하는 구조다. 양당구조로 통합이 되어야 진보적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영길 : 정치세력 면에서 진보와 보수가 양립해야 한다고 본다. 정당으로 이야기하면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있어야 정치발전, 국가발전, 실질적인 서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 있는가. 합리적 보수정당이 있나. 없다고 본다. 합리적 보수정당 탄생을 위해서도 진보정당의 역할이 있다. 진보정당이 힘을 갖고 합리적 보수정당을 견인해야 한다. 가혹한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의 정당이 과연 정당인가? 강령이 있어야 하고, 강령에 따라 정책이 마련되며,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모여야 한다. 강령이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 몇몇 사람이 하룻밤에 정당과 당명까지 만들면서 우르르 몰려다닌다. 여전히 한국의 정당은 보수정치, 지역정치, 금권정치, 패권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당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합리적 보수정당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갈 것으로 본다.

▲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 과거에 대해 자아비판해야 한다"

김윤태 :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비슷한 보수정당을 보는 듯하다. 합리적 보수정당의 탄생은 한나라당의 소멸을 전제로 한 건가?

권영길 :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정치세력 재편 과정에서 그렇게 될 것이다.

김윤태 : 민주당 내부에선 '혁신'을 위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권영길 : 민주당이 싫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야권연대와 진보정치 세력과의 연대, 하나의 새로운 단일정당 등을 이야기할 때 민주당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몇 가지 측면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 한미 FTA 문제랄지, 비정규직,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이다. 신자유주의를 가속화 혹은 확대해온 측면이 고비마다 있었다. 그것을 평가, 자아비판 혹은 성찰해야 한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김윤태 : 권영길 의원은 오랜 노동운동 경험부터 시작해서 진보정치의 상징적 리더로 손꼽힌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구체적인 역할을 기대해도 되겠나.

권영길 : 지금 자나 깨나 생각하는 것은 하나도, 둘도, 셋도 진보통합이다. 진보통합이 없으면 다른 아무 것도 있을 수가 없다. 진보통합에 모든 것을 던지고 있다.

김윤태 : 긴 시간 열정적인 말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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