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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원인 제공자인 청와대가 결자해지해야"

[기고]신공항, 설익은 공약+ 무뇌아적 헌신의 결과

2011년 들어 과학비지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둘러싸고 지역 간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충청권, 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 광주전남권 등 수도권 이남 거의 모든 지역의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엮여 있는 이 사안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청와대는 "부처에서 알아서 한다. 우리는 할 말이 없다"고만 되뇌이며 모른 체로 일관하고 있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갈등을 피하기 어렵지 않냐"는 청와대 관계자의 토로가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국정의 컨트롤 타워 청와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소장이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서울대학교에서 행동학 박사 학위를 따고 영국 캐임브리지대학교 행동학 연구원을 지낸 바 있는 박태순 소장은 갈등관리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현 정부에서도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박 소장은 부안 방폐장 사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등 대표적 갈등 현장에서 활동한 바 있다.

박 소장은 <프레시안> 기고글에서 "청와대가 이제라도 명확한 지역 선정 로드맵과 갈등 해결 프로세스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주>


이명박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두고 가덕도 유치를 주장하는 부산과 경남 밀양을 주장하는 경남 대구 경북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주민 수천 명이 참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광역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상대를 몰아세우고 있다.

정부에 의해 입지 결정이 수차례 연기되면서 유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더욱 뜨거워지고, 지역주민의 원초적 욕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인에 의해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입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역간 관계가 악화되어 협력과 화합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청와대와 중앙정부가 유치결정에 대한 원칙과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는 동안, 수도권의 일부 언론은 '인천공항만으로도 충분하여 신공항은 포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논조의 기사가 나갔다. 이로 인하여 신공항 갈등은 수도권과 영남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예산부족과 지역간 갈등을 내세워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접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런 의혹은 '지역 균형 발전을 포기한 서울 및 수도권만을 위한 정부'라는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갈등의 1차적 책임자인 청와대는 3월말까지 국토부의 결정을 지켜보자는 유보적, 관망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세종시 갈등으로 홍역을 앓은 국민들은 국론 분열과 천문학적인 사회 비용을 걱정하면서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상호 협력과 역할 분담이 필요한 이웃 지자체간 관계는 감정적 대치와 상호 비방으로 악화되고, 이런 경험은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되어 지역 사회에 오랫동안 남게 될 것이다.

이번 갈등의 첫 번째이자 근원적 원인은 대선과정에서 후보자의 설익은 공약 남발에 있다. 사업의 필요성, 타당성, 적정성에 대한 검토와 판단 없이 지역주민의 민심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구체적인 대책도 없이 사업 추진을 약속한 것이 갈등의 근원적 이유이다. 이런 까닭에 신공항을 왜 건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적 비전과 목표, 그 의미를 국민에게 제시하기 어렵게 되고, 사업 추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신공항의 비전과 목표, 사업 추진의 원칙과 기준이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업을 힘있게 추진하기는 어렵다. 결국 사업은 지역 여론에 따라, 정치적 풍향계에 따라, 이도 아니면 통치권자의 최종 결정에 따라 추진 여부가 결정될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갈등 증폭에는 공무원의 무소신이 한 역할을 한다. 신공항 유치 결정에는 이런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고 지역주민과 정치권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어차피 결정은 통치권자의 의지(?), 혹은 정치적 흥정에 의해 이루어질 텐데 눈치 없이 괜히 나설 필요 없다', '결정은 저쪽에서 하고, 나는 수행만 한다'는 무소신이 소신이라는 '학습된 관성'이 상황을 어렵게 하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지자체간 갈등이 심화돼도 중앙정부가 갈등 조정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정치적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현명한(?)' 예단 때문이고 이런 예단은 불행히도 지금까지 대부분 적중하였다.

여기에 자신이 속한 지역구민의 요구라면 도지사, 시장, 국회의원 할 것 없이 모든 판단을 중단하고 주민이 피켓을 들면 자신도 들고, 주민이 농성을 하면 자신도 하는 '무뇌아적 헌신'이 합리적 논의와 협상, 합의를 통한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청와대와 중앙정부가 문제해결을 방기하는 동안 지역간 갈등은 심화될 대로 심화되어 이제 지역간 자율적인 노력과 합리적 논의를 통해 입지선정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해당 부처인 국토해양부에서 입지평가위원회를 구성해 다음 달까지 입지평가 절차를 밟는다고는 하고 있지만, 국토부의 평가만으로 갈등이 종결되고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 동안 쌓인 불신과 불만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진 지자체는 평가의 투명성과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수용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청와대와 정부는 평가위원회의 결과에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평가 결과는 하나의 자료일 뿐이다.

이제라도 청와대는 갈등의 원인자로서 결자해지 차원에서 동남권 신공항 갈등으로 국민에게 불안과 불편을 끼친 것을 사과하고, 사업 추진 여부와 추진 일정을 명확히 밝히고, 유치를 위한 로드맵과 갈등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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