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이후 비상계엄으로 '진돗개 둘' 상태인데 한 단계를 더 올려서 발령하니 서울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이 사령관은 육본에 전화를 대도록 했다.
"전두환의 장난인 것 같아…"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 경기도 소재 3군사령관 공관.
3군사령부는 서울과 근거리에 위치한 야전군으로 청와대 근위부대의 요청이 있으면 병력을 지원하는 특수임무도 띠고 있다. 수도기계화사단, 20사단, 26사단 등 계엄이나 시위진압을 위해 동원되는 '충정부대'들이 대부분 3군 소속이다.
이날 3군사령관 이건영은 공관에서 손재식 경기도지사 등 행정기관장 및 지역유지들과 계엄간담회를 가진 뒤 함께 저녁식사 중이었다.
이건영은 20여 명의 참석자들에게 현 정국의 주도권이 군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기 한달여 전 수경사령관 이취임 축하연이 열렸다. 오른쪽부터 신임 장태완 소장, 정승화 육참총장, 이임 전성각 소장. |
"지금 상황은 5.16 때와는 다릅니다. 군부가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잖습니까? 대통령 살해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고 그래서 군이 계엄업무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행정당국이 일일이 군에 상의하거나 눈치 볼 필요 없이 지금까지 준용해온 법규에 따라 소신껏 일하면 됩니다."
이건영은 행정기관장들에게 지역계엄분소 간판이 붙어 있는 군부대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격려했다. 그때 부관이 서울의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바꿔주었다.
"참모총장님이 납치됐습니다. 범인은 아직 정확히 모르고 총격전도 있었어요. 우선 병력 장악과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해주십시오."
이건영은 서둘러 만찬을 끝낸 뒤 작전참모 한철수 준장(육사 12기, 대장예편, 후에 브라질 대사), 기획참모 민태구 준장(육사 13기, 후에 충북도지사) 등과 함께 상황실로 갔다. 그는 속으로 학생이나 재야세력이 무슨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계엄사령관을 인질로 삼은 것 아닐까 생각했다.
"4.19 직후처럼 또 '가자 북으로'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판문점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나타날지도 모르지."
그는 헌병대장 조명기 대령(육사 13기, 준장 예편)을 불렀다.
"서울에서 휴전선으로 통하는 도로의 검문소에 검색을 강화하도록 지시해야겠어."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육본의 윤 차장과 통화했다.
"정승화 총장을 납치한 사람들은 보안사의 권정달과 우경윤 대령입니다. 지금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아니 뭐라고. 그 친구들 군인 아니오. 무슨 짓들이야. 지금 계엄사령관을 납치하는 놈들을 그냥 놔둘 수 있나요. 병력을 풀어서라도 그 놈들을 다 잡아버려야지."
보안사가 주요 지휘관들의 통화를 도청장치로 녹음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건영은 후에 알았다. 그는 참모들을 모두 소집하는 한편 예하 군단장들을 점검했다. 1군단장 황영시 중장은 오후 3시경 서울에 잠깐 볼일이 있어 갔다 오겠다고 보고했는데 아직 귀대하지 않았다. 1군단사령부와 서울은 근접거리기 때문에 외출·외박은 허가사항이 아니었다.
또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은 준장 진급 심사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에 11일 밤 심사가 끝나는 대로 돌아와 12일에 이 사령관에게 들러 인사 겸 심사내용 등을 보고하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그도 귀대하지 않은 상태였다. 5군단장 최영구 중장(육사 7기), 6군단장 강영식 중장(육사 10기)은 정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주요 참모들이 사령관실에 모여들자 보안부대장 김부연 대령도 평소처럼 동석했다. 그는 상황을 자세히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밤 8시 30분경, 서울의 육군본부 벙커.
육본지휘부를 구성하는 소장급 일반참모들이 속속 벙커로 모여들었다. 하소곤 작전참모부장(갑종 1기), 안종훈 군수참모부장(공병 3기), 황의철 정보참모부장(육사 8기), 천주원 인사참모부장(육사 9기), 신정수 민사군정감(육사 8기) 등이 비상연락을 받고 급히 들어왔다. 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리가 없었다. 잠시 후 김진기 헌병감이 들어서면서 윤 차장에게 보고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자기는 안 나타나기에 정병주, 장태완 장군과 함께 식사를 막 하려다 왔습니다."
"합수부 대령 둘이서 총장님을 납치했소."
그제야 김진기는 사전계략에 의한 유인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윤성민도 사건의 윤곽을 짐작하게 됐다.
"그래, 전두환의 장난인 것 같아."
윤성민은 '보안사의 모반'에 생각이 미치자 이에 대적할 만한 육본지휘부의 옹위세력으로 수경사와 특전사를 떠올렸다. 수경사령관 장태완은 총장공관 현장에 나가고 자리에 없다. 수경사 상황실에서는 총장공관에 합수부 측이 병력까지 동원했다고 알렸다. 윤성민은 이어 특전사 정병주 사령관을 전화로 연결했다.
"합수부 측에서 총장공관에 병력까지 동원해 들어갔다는데 거기 병력에 이상 없나요?"
"우리 부대에 이동병력 없어요."
정병주는 별로 긴장감을 안 보였다. 윤성민은 다시 물었다.
"지휘관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습니까?"
"1공수여단장 박희도와 3공수여단장 최세창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9공수의 윤흥기 준장은 자리에 있는데…."
윤성민은 점점 불안감이 더 커졌다.
"박, 최는 전두환계 아닌가. 전두환이 총장공관에 병력을 보냈고 총격전까지 벌였다면 다음 표적은 육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육본을 지켜줄 직할병력은 없다. 10.26 직후 9공수 소속 1개 대대가 육본 옆에 천막을 치고 배속돼 있었는데, 정국이 안정화로 간다고 판단, 원대 복귀시킨 지 10여 일이 지난 뒤다. 육본 지휘부는 당장 신변 위협이 있다는 데에 의견을 함께했다. 돌발적인 테러나 모반군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줄 실 병력은 수경사밖에 없다.
그때 노재현 국방장관이 벙커 종합상황실에 나타났다. 노 장관은 합참본부장 문홍구 중장(육사 9기)에게 지시했다.
"육본 장성들과 함께 실 병력이 있는 수경사로 가서 대처하시오."
반란군 지휘부 명단 드러나…소장급 이하 전원 하나회
12월 12일 밤 9시. 계엄사령관 겸 육참총장 납치라는 돌발사태가 터지자 군 수뇌부는 두 갈래로 나뉘어 대처에 나섰다.
국방장관 노재현과 합참의장 김종환(육사 4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유병현(육사 7특기) 등은 한미연합사가 함께 있는 미8군으로 갔다. 위기 시에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동태를 즉각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군수뇌부 신변이 불순세력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작전지휘를 원활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모두 갖춘 곳은 미8군밖에 없었다.
그 이하 합참본부장 문홍구와 육군참모차장 윤성민을 비롯한 육본의 참모부장들은 실 병력이 있고 수도권에서 지원시설이 가장 좋은 근위부대 수경사에 지휘부를 차리기로 했다.
이때만 해도 노재현 등 군 수뇌부는 정승화 총장 납치세력을 응징할 생각이었다. 노재현은 박정희가 갑자기 사라진 권력구조에서 이제 군부통제의 최종적 책임이 국방장관인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요식투표를 거쳐 지난 12월 6일 최규하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그가 군부에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는 군부 내 강경파를 정 통제하기 어렵게 되면 이형근, 서종철 예비역 대장 등 군 원로들과 위컴 미8군 사령관의 도움도 받을 생각이었다.
정승화 육참총장의 수석부관 황원탁 대령(육사 18기, 후에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도 수경사로 옮기는 육본 지휘부를 따라 나섰다. 차를 함께 탄 문홍구, 윤성민 두 중장은 손을 마주 잡으며 다짐했다.
"그 전두환이가 무언가 일을 저지를 줄 알았어. 우리가 오늘 힘을 모아 이놈들 버릇을 고쳐놓아야겠어."
이들 일행이 수경사에 도착해 보니 사령관 장태완은 헌병특공조를 신윤희 중령에게 맡겨 총장공관으로 보내놓고 뒤따라 현장으로 나간 뒤였다. 윤성민은 무전을 통해 장 사령관을 급히 불러들였다.
사령부로 돌아온 장태완은 지하상황실로 들어갔다. 그때는 어느 정도 사태의 윤곽이 파악돼 있었다. 참모장 김기택 준장의 상황보고는 놀라운 내용들이었다.
"경복궁 30경비단에 일선부대 고위지휘관들이 모여 있습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거기 함께 있다가 정 총장 연행 재가를 받으러 지금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가서 대통령 각하를 만나고 있답니다."
"그래 30경비단에 들어가 있는 장성들이 누구누구야?"
참모장 김 준장이 메모지를 들여다보았고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 정보참모 박웅 대령, 그리고 상황실장 김진선 중령 등은 장 사령관의 표정 변화만 주시했다.
"1군단장 황영시 중장,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중장,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 9사단장 노태우 소장, 20사단장 박준병 소장, 71방어사단장 백운택 준장, 1공수여단장 박희도 준장, 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 5공수여단장 장기오 준장…."
그리고 30경비단장 장세동 대령, 33경비단장 김진영 대령,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 대령 등도 함께 쿠데타 지휘부에 가담하고 있었다. 정규 육사 11기 이하인 소장급 아래는 조홍만 제외하고 전원이 하나회였다.
장태완은 30경비단장을 전화로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부관이 장세동 대령을 호출해 넘겨준 전화에서는 유학성 중장이 나왔다.
"아니 유 선배님. 지금 남의 부대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어쩌자는 겁니까? 그 부대는 대통령을 모시는 특정지역으로 해가 지면 저도 가지 않습니다. 빨리 총장님을 돌려보내 주시고 그곳에서 나가세요. 이 비상시국에 계엄사령관인 총장님을 납치하면 국가위난을 만드는 꼴 아닙니까?"
"어이 장 장군. 다 사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야. 이리로 와서 얘기하자고. 우리하고 같이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러자 처음에 풀이 죽은 듯했던 장 사령관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반란군 놈의 새끼."
그는 전화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유 중장은 전화를 황영시 중장에게 넘겼다.
"야, 장태완이. 자네 왜 그래. 우리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흥분하지 말고 이리로 와서 얘기를 들어보라고."
"어떤 일이 벌어져도 헌병감 명령에 따르라
경우에 따라서는 전두환을 잡아야 할지도"
장태완은 자신의 휘하부대가 '모의장소'로 드러났고 평소 부하로서 고분고분하던 장세동 과 김진영이 모의 주모자라는 데 크게 배신감을 느껴 거의 이성을 잃고 있었다.
"네놈들 꼼짝 말고 게 있거라. 내 전차와 포를 갖고 가서 네놈들 대갈통을 날려버릴 테다."
장태완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아는 반란군 장성들은 그의 강경발언에 크게 위협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정승화 총장계로 지목된 세 장성들을 술집으로 유인하는 양동작전까지 폈는데 모의계획이 맞아들어 가지 않고 있었다. 장태완이 반란군 지휘부 측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상황실에 연희동 요정에 함께 갔던 육본헌병감 김진기가 내려왔다.
"제게 헌병 1개 소대병력만 주십시오. 삼청동 총리공관에 가겠습니다."
김진기는 수경사로 이동해 오기 전 육본에서 이미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과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두환이 정 총장을 강제연행한 데 대한 사후재가를 대통령에게 채근하고 있다는 것은 수경사에 와서 분명하게 알게 됐다.
김 헌병감은 육본에서 삼청동 총리공관 경비를 위해 파견한 구정길 헌병 중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 중령, 거기 이상 없나?"
"비상이 걸려서 경계근무를 강화시키고 있는데 아까부터 전두환 장군이 들어가 대통령과 얘기 중입니다. 무슨 중요한 결재를 받으러 왔다고 그러는데요."
"뭐, 전 장군이 거기 가 있단 말이지?"
그때는 정 총장을 납치한 범인이 전 장군 휘하의 합수부 대령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김진기는 퍼뜩 전두환의 '모반'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구 중령, 내 말 잘 들어야 한다. 오늘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 명령에 따를 수 있겠나?"
"새삼스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헌병감님 명령을 안 따르고 누구 말을 따르겠습니까?"
김진기는 구정길의 심지를 거듭 확인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 장군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네."
"예에…. 아무튼 저는 헌병감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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