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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는 '교과서'를 불쏘시개로 아는가?"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⑯

융통성 없는 행동을 놓고 "교과서대로 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글이란 것, 책이란 것이 쓴 사람의 생각을 담는 것이다. 적당한 정도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필자의 주견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이 글이나 책의 가치를 보장해 주는 기본조건이 된다.

그런데 교과서는 주견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는, 융통성이 없어야 하는 책이다. 교육의 기본 재료인 교과서가 필자의 가치관에 따라 들쑥날쑥하다면 교육의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시장 가치를 추구하는 일반 서적과 달리 교과서는 제도적 가치를 추구하는 책이다.

옛날옛적부터 어떤 교육에나 교재는 있었다. 교과서도 교재의 한 형태다. 다만 그 특징은 제도적 성격이 강하다는 데 있고, 근대적 제도인 국민 교육의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다.

국민 교육의 목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피교육자 개개인의 근대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 주는 기능적 측면이다. 또 하나는 국민을 국가 체제에 순응시키는 이념적 측면이다. 역사 교육은 국민 교육의 이념적 측면을 대표하는 분야로 출발했다.

역사학이 학문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역사관 덕분이다. 역사관 없이 과거사를 살피는 것은 골동의 취미일 뿐이다. 어느 사회에나 나름대로 질서의 원리가 있다. 그 원리는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 하는 인식에 근거를 두는 것이고, 이 철학적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창문이 역사관이다.

관습의 힘이 크게 작용하던 전통 사회에서는 질서의 원리에 대한 이견이 크지 않았다. 변화가 빨라진 근대 사회에서 서로 다른 원리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근대 사회의 주축이 된 국가 사회들이 각자의 원리를 표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민족국가 사이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주의가 그 원리의 핵심이었으나, 19세기 후반 자본주의가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후로는 정치경제 체제 문제가 비중을 키우게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역사 교육과 역사 교과서도 국가 사회의 질서 원리를 재생산하는 제도로 자라났다. 따라서 역사 교과서는 소속한 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키고 키우는 방향으로 편찬되는 것이며, 시류에 너무 민감하지 않은 안정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 나라에도 인류 보편의 가치, 평화를 지향하는 절실한 움직임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1999년에 역사 교과서의 개혁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무조건 정당화하고 아랍과의 갈등을 상대방 책임으로만 떠넘기던 것이 기존 서술 방침이었다. 100년 전 팔레스타인은 비어 있다시피 한 땅이었고 그 땅을 유대인들이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사들이며 주변 아랍인들과 도와가며 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오만한 아랍인들은 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고향을 찾아 온 유대인들을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려고, 유엔의 결정까지 무시하면서 이스라엘을 없애기 위한 전쟁을 걸었다. 이스라엘은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의지 하나로 침략을 물리쳤으며, 팔레스타인 난민은 이스라엘이 쫓아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난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

50년간 이스라엘 역사 교육에 통용되던 이 서술 기조를 벗어난 새 교과서에는 이스라엘의 등장으로 곤경에 빠진 아랍인의 입장도 설명되어 있고, 유대인 측의 잘못된 판단이나 무리한 정책도 지적되어 있다.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적과 영광으로 찬양만 하기보다 훨씬 합리적인 설명을 시도했다.

새로운 '수정주의' 교과서는 1994년 라빈 수상 시절에 착수된 것이었다. 네타냐후의 보수정권 아래서도 그 편찬 작업이 묵묵히 진행된 끝에 다시 평화 정책으로 돌아선 바라크 수상 시대가 되어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권 변화에 관계 없이 교육 현장을 지키며 이스라엘 국민 의식을 바꿔놓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세계의 문제아다. 대영제국의 앞잡이로 태어나 미국의 앞잡이로 자라나며 세계 평화의 암적 존재로 작용해 온 나라다. 그러나 그 나라에도 인류 보편의 가치, 평화를 지향하는 절실한 움직임이 있다. 이 움직임이 쌓이고 쌓이면서 이스라엘의 문제점을 완화시켜 왔고, 궁극적으로 극복을 바라보는 것이다. 1999년의 역사 교과서 개혁은 이 변화를 대변하는 것이다.

우리 학계 일각에서 '국사 해체'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민족주의의 폐해를 반성하는 관점이다. 나는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 국사의 해체 대신 '구조 조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스라엘 역사 교육의 변화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세계 평화와 관련해 이스라엘의 역할에는 아직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역할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희망이다. 국사 교육은 양날의 칼이다.

"사회가 용납하는 역사관의 폭을 넓히는 것은 민주화의 인프라 작업"

우리의 국사 교육도 이스라엘처럼 획기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개선의 길을 걸어 왔다. 가장 반가운 변화는 국정 교과서 체제에서 검정 체제로의 전환이다. 이 전환이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또한 반가운 것이다. 2002년까지 국사 교육에는 국정 교과서만이 쓰여 오던 것을 2003년부터 고1까지는 국정을 쓰되, 2, 3학년의 근·현대사는 선택 과목으로 검정 교과서를 쓰도록 했다. 2011년부터 모든 역사 교과서를 검정으로 할 계획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묶어놓는 데는 국가 이념의 경직성을 초래하는 폐단이 있다. 국가의 이념은 너무 쉽게 흔들려서도 안 되지만, 또한 굳어져 있어서도 안 된다. 사회의 내적 발전과 외부 조건의 변화가 모두 어느 정도 이념의 탄력성을 요구한다. 하나의 시점에 있어서도 사회를 너무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상의 자유를 뒷받침할 만한 신축성이 필요하다. 검정 체제를 통해 사회가 용납하는 역사관의 폭을 넓히는 것은 민주화의 중요한 인프라 작업이다.

지금 뉴라이트 측은 기존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 편향성'을 문제 삼으며 당장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것처럼 요란을 떨고 있다. 이것을 보며 궁금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왜 2002년 검정 과정에서는 그런 문제가 지적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더 좋은 서술 방안이 있다면 왜 당시에 그런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 신청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6일의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때 안병만 장관이 "정권이 바뀌면 역사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예." 하고 대답했다가 나중에 정정하는 촌극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정정했다는 것을 보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분명히 그런 식으로 가고 있다.

현 정부 출범이 지난 2월. 교과서포럼의 자칭 대안 교과서가 나온 것이 3월. 그 후로 기존 교과서에 대한 공격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고 있다. 교과서포럼의 뒤를 좇아 상공회의소, 국방부, 통일부가 줄줄이 나서고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속 보이는 행보에 이어 이제 한나라당이 전면적인 공세에 나섰다. '수정-보완' 정도가 아니라 '개편' 수준으로, 그것도 바로 다음 학기부터 뜯어고치자는 기세다.

검정에 한 번 통과된 교과서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수정-보완'의 경우 금년 상반기 중에 교과부가 수렴된 의견을 출판사와 필자에게 보내면 출판사와 필자가 이를 재량껏 반영해 내년 1학기 교과서를 준비한다. 단편적 '수정-보완'을 넘어서는 '개편' 차원이 되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상식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제2 건국'을 표방할 때 역사 교과서도 졸속 개편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임기 말까지 절차를 다 밟으며 차분히 진행해 2003년부터 새 교과서를 사용하게 되었다. 새 교과서의 '좌편향'이 걱정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의견 제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진행방법이었다. 그렇게 차분히 진행한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다. 그러지 않고 절차상 흠집을 남겼다면 지금 정부는 벌써 '좌편향' 교과서를 '수거-폐기'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역사학계에 맡겨놓고 가만히 좀 있으라는 것"
▲ 10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금성출판사 교과서 저자 김한종 교수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갔다.

정두언 : (또 말을 끊으며) "(북한의) 지침 때문에 쓴 것인가, 아니면 본인 소신인가."

김한종 : "어떤 부분인지(어떤 부분이 북한 책과 똑같은지) 말해 달라."

정두언 :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북한 역사관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김한종 : "…"

정두언 : "교과부의 수정 요구안에 대해서 응하지 않으면 교과서가 폐지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있을 텐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 ⓒ프레시안

교과서포럼 '대안 교과서' 편찬에 역사학자의 참여가 없었다는 것이 그 책을 교과서는커녕 역사서도 되기 힘들게 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뉴라이트는 역사를 '과학'이라고 보는가?) 지금 교과서 개편 책동도 역사학계와 관계 없이 진행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교과부의 의뢰에 따라 수정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을 뿐이다.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이 교과서의 '직권 수정' 가능성을 시사해 파문을 일으킨 것이 신호탄이었던가? 그 후 한승수 총리는 "학자들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각 부처가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취합해 반영하도록 하라."고 저돌성을 보였다. 지난 6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사 제쳐놓고 총공세에 나선 가운데 정두언 의원의 "금성출판사 역사 교과서는 북한 교과서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나왔다.

클라이맥스인가, 안티클라이맥스인가? 엊그제는 드디어 대통령까지 나섰다. "교과서 문제도 잘못된 것은 정상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부동산세가 "잘못된 세금체계"라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뭐든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잘된' 것과 '잘못된' 것을 가리는 이분법 외에는 어떤 가치 기준도 가지지 않은 사람인가?

같은 날 20여 개 역사학 연구단체들이 행동에 나섰다. 공동 기자 회견을 열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내놓았는데, 요점인즉 역사 교과서를 역사학계에 맡겨놓고 가만히 좀 있으라는 것, 그리고 검인정 제도를 지켜 달라는 것이다.

너무나 지당한 요구다. 이것을 뉴라이트는 또 역사학계의 폐쇄성이라고 강변할 것인가? 역사학계에는 수천 명의 연구자가 있고, 한국 근·현대사 분야에만도 수백 명 연구자가 있다. 그 중에는 자기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와 관련해 한 사람의 동조자도 얻지 못한 것은 일을 추진하는 방식에도, '대안 교과서'라고 만든 내용에도 상식 이하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폐쇄성이 문제다.

"싸우지 않고 이기면 전리품을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 보자. 평화를 지향하는 수정주의 역사관은 1980년대 들어 이스라엘 역사학계의 일각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의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매국노, 반역자로 몰렸다. 그러나 학문적 양심과 지성인의 양심에 따라 이 방향 연구가 쌓이고 넓혀진 결과, 1990년경까지 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역사 교육에 수정주의를 적용하는 작업이 1994년 시작되어 1999년 교육 현장에 나타나게 되었다. 20년에 걸친 차분한 전진으로 역사 교육의 새 원리를 안정시킨 것이다.

한국의 '좌편향' 교과서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한국사에 해방 후 시대를 다루는 '현대사'란 장르가 나타난 것은 1987년 이후의 일이었다. 그 전의 반공독재 정권 아래서는 이 시대에 대한 역사학적 고찰이 용납되지 않았다. 따라서 1987년 이후 한국 현대사 연구자에게 정치적 성향에 관계 없이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반공독재 정권이 강요하던 시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출발한 현대사관이 2002년 교과서에 반영되기까지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안정된 관점을 얻어낼 만한 시간이었다.

뉴라이트를 앞세운 수구집단의 문제 제기 방식을 여기에 비교해 보자. 일부 경제사학자들이 간판 마담으로 나섰지만, 그들은 역사학계에서 공론을 일으키지 못했다. 역사학에 소양이 없어 보이는 여러 분야 사람들을 모아 교과서도 못 되고 역사서로 봐주기도 뭣한 '대안 교과서'란 것을 만들어놓고는 정권의 힘으로 역사 교육을 뒤집어놓으려 한다.

역사 교육을 망치려는 '나쁜 짓'이라고 보는 입장을 잠깐 벗어나, 대한민국 국가를 빛내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밀어주려는 뉴라이트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 참 '멍청한 짓'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내놓기 위해서라 하더라도, 교육 제도의 절차를 망가뜨리는 것은 국가를 빛내는 길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밀어주려면, 억지로 교과서 자리를 빼앗기보다 현행 교과서를 공격 대상으로 놓아두고 도전자 입장에서 삿대질을 오랫동안 계속하는 것이 여론의 접촉면도 늘리고 호응도도 늘리는 길이다.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내용을 모르는 사람도 "뭔가 억지를 쓰는가 보군."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억지란 것은 내용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는 게 상식이니까.

승리를 곧 성공으로 보는 뉴라이트 사고방식이 이런 조급한 행태를 불러오는 것 아닐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란 병법 원리는 승리보다 성공의 중요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뉴라이트에게는 통하지 않는 원리다. 싸우지 않고 이기면 전리품을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스스로를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그들은 없는 싸움이라도 만들어 전리품 얻을 기회를 늘려야 한다. 이기적 존재들의 집단에서는 개체의 이익을 위해 집단 전체의 득실이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과서 검인정은 교육 과정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다양한 관점을 용납하는 제도다. 기존 교과서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른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을 신청하면 된다. 기존 교과서를 용납한 제7차 교육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절차에 따라 교육 과정 개편을 추진하면 된다. 지금의 교과서 소동은 역사 교육의 의미를 전혀 생각지 않는, 분란을 위한 분란일 뿐이다. 그 와중에 교과서는 정략적 불장난을 위한 쏘시개 취급을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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