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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린 1회용 주사기만도 못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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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린 1회용 주사기만도 못하나요?"

[현장] 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 계약 해지되던 날

"신부님, 병원이 비정규직을 고용할 권리가 있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권리만 주장하지 마시고 의무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참았던 눈물이 끝없이 쏟아졌다. 눈물 때문에 목소리마저 잘 나오지 않았다. 터져 나온 울음 때문에 딸꾹질을 해 가며 소리쳤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던 병원 로비였다. 하지만 신부님은 오시지 않았다. 팔에 링거를 꽂은 환자와 휠체어를 미는 보호자, 그리고 문병을 온 시민만이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하던 28명의 간호조무사들은 30일 '마지막' 근무일을 병원 로비 농성으로 보냈다. 전체 65명의 파견직 가운데 남은 37명도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차례로 이들과 같은 신세가 된다. 간호조무사가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2년이 지나면 직접 고용 의무가 발생하는 파견법을 피하고자 병원이 사람을 바꾸려는 것이다. ⓒ프레시안

그렇게 28명의 간호조무사는 '마지막' 근무일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이 30일로 계약이 종료되는 28명의 파견직 노동자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전체 65명의 파견직 가운데 남은 37명도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차례로 이들과 같은 신세가 된다. (☞관련 기사 : 강남성모병원, '병원계의 이랜드' 되나?)

간호조무사가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은 아니다. 2년이 지나면 직접 고용 의무가 발생하는 파견법을 피하고자 병원이 사람을 바꾸려는 것이다. 가톨릭계 병원인 강남성모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2년 동안 병원에서 시키는 일은 다 했지만 '계약이 끝났으니 너는 나가라'는 말 만큼은 도저히 따를 수가 없다"며 노동자들은 이날 오전 병원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새 사람으로 '갈아 치우지' 말고 계속 하던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1회용 주사기도 유효 기간이 3년인데 우리는 2년이란다"
▲ "파견업체와 병원은 우리를 마치 사고파는 물건처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려 한다"고 절규했다. 참으려 해도 쏟아지는 눈물은 '물건'처럼 취급받고 있는 모멸감 탓일까. ⓒ프레시안

이들은 "억울하다"고 했다. "우리가 뭘 잘못해서 잘리는 것도 아니고 하던 일이 필요 없어진 것도 아닌데 왜 나가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1회용 주사기도 유효 기간이 3년인데 우리는 2년이다."

이영미 씨의 말이었다. "파견업체와 병원은 우리를 마치 사고파는 물건처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려 한다"고 절규했다. 참으려 해도 쏟아지는 눈물은 '물건'처럼 취급받고 있는 모멸감 탓일까.

실제 이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파견업체 메디엔젤은 "원하면 다른 병원으로의 취직을 알선해 주겠다"고 말했다. 인력을 파견하고 있는 다른 병원의 리스트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이들은 또 다른 병원에서도 2년이 지나면 마찬가지 신세가 될지 모른다. 현재 파견법이 2년 후 정규직 전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2년 마다 계약해지'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정든 병원을 내 발로 걸어 나갈 수 없다"며 싸움을 시작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같은 간호보조 업무를 하면서 "떠돌이처럼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다.

노동자 개개인에게는 "당장 아이 분유 값은 어째야 하나"는 생존의 문제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법을 악용해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는 '나쁜 사례'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강남성모병원은 같은 간호보조원을 '정규직→직접 고용 계약직→간접 고용 파견직→2년 후 계약 해지'라는 형태로 써 왔다. 지금도 이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 정규직인 동료들이 100여 명이나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비롯해 101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만든 '지원대책모임'이 이날 기자 회견을 통해 "강남성모병원이 파견 노동자를 말 그대로 '현대판 노예'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한 까닭이다.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사람 귀한 줄 몰라서야…"

2년에 한 번씩 잘릴 때마다 '내가 과연 인간인가'를 의심했다는 이들은 지난 17일부터 병원 건물 밖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해 왔다. 물론 일은 다 하면서다. 일이 끝나면 농성장에서 자고 다시 병원 건물로 일을 하러 출근을 했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 자리를 차지하러 들어 온 새 사람 교육도 시켜줬다"고 말했다.

"월급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복지 혜택을 늘려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고용 안정을 원하는 것입니다."

한 차례 있었던 이들과 병원 측의 면담에서 병원은 "파견 업체의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들이 로비 농성을 시작하자 강남성모병원은 서초경찰서에 철거 요청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환자 여러분, 보호자 여러분, 신부님에게 우리를 자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주세요."
▲ 강남성모병원은 이 같은 지적을 귀담아 들을까? 아니,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법을 악용해 상시 업무에 사람을 바꿔가며 싼 값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고용 형태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프레시안

외래 진료차 병원에 들렀다 이들의 호소를 듣게 된 시민 김기철(63·가명) 씨는 "안쓰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며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이렇게 사람 귀한 줄을 몰라서야 되겠냐"고 덧붙였다.

101개 시민·사회단체도 "가톨릭중앙의료원과 강남성모병원은 '생명 존중의 첨단 의료'라는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서 자행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어두운 착취와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남성모병원은 이 같은 지적을 귀담아 들을까? 아니,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법을 악용해 상시 업무에 사람을 바꿔가며 싼 값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고용 형태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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