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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 850억불 공적자금 투입해 AIG 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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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준, 850억불 공적자금 투입해 AIG 구제

예상 깨고 금리 동결…"직접 유동성 공급 결정"

급격히 무너져가는 금융 시장을 살리기 위해 결국 미국 정부가 나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RB)는 16일(현지시간) 그 동안 부정적 입장을 뒤집고 세계 최대 보험사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에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또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당초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는 연준이 결국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연준이 지방은행 등 실물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부문을 대상으로 추가 유동성 제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연준, AIG에 공적자금 투입으로 급한 불끄기

당초 연준은 AIG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데 부정적 모습을 보였다. 이미 페니매와 프레디맥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제공해 부실 경영의 책임을 납세자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을 일각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상황이 다시 연준의 결단을 이끌었다. AIG는 덩치도 덩치인데다 보험산업의 특성상 실물경제와 직접 연결돼 있어 도산할 경우 리먼브러더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장을 미국 경제에 몰고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AIG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던 모리스 행크 그린버그가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에 출연해 "AIG의 생존은 국민적 관심사다. AIG와 거래하는 고객이 계약을 해지하려 몰려든다면 대규모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걱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사실상 AIG가 시장에서 해결책을 찾기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주가는 이미 폭락을 거듭해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AIG 주가는 전날 하루에만 60.79%가 하락했다. 게다가 신용부도스와프(CDS) 스프레드는 415bp(4.15%포인트)까지 확산됐다. CDS 스프레드는 채권 발행 주체의 부도(디폴트) 가능성을 상징한다.

여기에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AIG의 장기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세 등급이나 한꺼번에 낮췄다. 사실상 AIG가 발행하는 채권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추락한 셈이다. 주주 끌어모으기와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모두 막힌 상황에서 AIG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의 자금 지원 밖에 없었다.

결국 연준은 사태의 심각성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85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브리지론 제공을 결정했다. 그 동안 고심을 거듭해온 핸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해리 리드 의원(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폴 버냉키 연준의장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긴급 회동을 열고 이 문제를 성사시켰다. 당초 거론되던 규모(700억 달러)보다 150억 달러나 더 투입한 이유는 AIG 신용등급이 낮아져 추가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 남성이 AIG 뉴욕 본사 건물을 나서고 있다. AIG의 부실은 다른 어떤 사태보다 더 심각하게 연준을 압박했다. ⓒ로이터=뉴시스

금리는 동결…직접 유동성 공급으로 방향 정한 듯

한편 연준은 시장의 예상을 뒤집고 현행 2%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진데다 유가 안정으로 물가 인상 부담이 낮다는 점에서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은 금리 인하 조치를 내릴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성명서에서 연준은 경기둔화 우려와 인플레이션 전망의 불확실함을 함께 경계했다. 당분간은 기준금리 변경을 늦춰 중립적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AIG처럼 긴급 수혈이 필요한 기업에는 직접 유동성 공급으로 방향을 결정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월가(街)가 처한 상황이 금리인하만으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준은 지난해 9월 이후 7차례에 걸쳐 무려 3.25%포인트에 달하는 기준금리 인하조치를 내렸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모기지 금리와 대출금리는 지속적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실제 연준은 금융시장의 동요를 막기 위한 추가조처로 지난 15일 이미 500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환매조건부채권(PR) 형태로 시장에 풀었다. 연준은 "필요하다면 추가 조처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아울러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번 연준의 조치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평가한다. 자산운용사 페이든 앤 라이겔의 톰 히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동결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대출 담보를 확대하고 금융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현 신용위기 타개에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연준의 다음 조처에 온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조처는 시장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당장 주가가 화답했다. ⓒ로이터=뉴시스

여전히 지진은 멈추지 않았다

연준의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음에도 이번 금융혼란이 끝났다고 평가하는 이는 없다. 근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터진 문제가 파생금융상품이라는 '혈맥'을 타고 전세계 금융권으로 번진 상황이라 곳곳이 지뢰밭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당장 상대적으로 자산건전성이 취약한 지방은행이 부실화 위험에 처해 있다. 파산기업을 인수해 거부(巨富)를 쌓아올린 '파산의 왕' 월버 로스 WL로스 회장은 <CNBC>와 인터뷰에서 "몇 달 안에 1000개 정도의 은행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여기서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AIG까지 공적자금으로 살려놓은 마당에 다른 부실 기업도 정부에 손을 벌릴 가능성이 생겼다. 당장 심각한 실적부진과 빚더미에 허덕이는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GM이나 미국 최대 저축은행조합 워싱턴뮤추얼은 '다음 희생자'로 꼽힐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이제 단 둘만 남은 투자은행(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도 여전히 실적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앞으로 연준의 행보는 '선택적 유동성 공급'과 '추가 금리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AIG의 경우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 공적자금으로 살려놔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모든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연준이 직접 나서지 못하는 부분은 시장에 인수합병(M&A)을 유도해 가닥을 잡아나갈 수도 있다.

김승현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AIG처럼 큰 파고는 당분간 일어나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문제는 계속되리라고 본다. 소규모 은행을 타깃으로 연준이 재차 나설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음 FOMC에서는 동결 내지 인하 쪽에 무게감이 쏠린다. 물가상승 압력도 유가 인하로 많이 낮아진 상황인데다 지금이 기업의 방만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라며 "유동성 공급을 위해 연준이 추가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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