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주도에서 영리병원에 이어 이번에는 '영리학교'가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월 31일 정부는 제주도가 요청한 관광·교육·의료 관련법안 400여 건을 입법예고했는데, 이중에는 영어교육도시에 영리법인학교 설립을 허용하고 외국교육기관의 과실송금을 허용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또 국제학교에 내국인 입학을 허용하고, 학력도 인정한다는 방안도 있다.
제주도 교사들은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가 지난 달 도내 평교사 7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영리학교 설립에 대해 반대 520명(69.3%), 찬성 94명(12.5%), 잘모르겠다 136명(18.1%)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의 김규중 부지부장이 "이제 제주도의 영리학교 설립 추진을 막아야 한다"며 <프레시안>에 영리학교 설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이명박 정부와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제주영어교육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영어교육도시는 사업 성격이 국책사업에서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 학교 설립 주체가 국립 중심에서 공립 중심으로, 다시 사립 중심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사립학교 설립 법인의 성격을 비영리법인에서 영리법인으로까지 바꾸려 하고 있다. 영어교육도시의 추진이 용두사미로 변해 점점 볼품이 없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라도 최선을 다한다고 김태환 제주도정은 영리법인 국제학교를 유치하기 위해 땅과 학교 시설 제공을 유인책으로 내세우면서 백방으로 다니고 있다. 그러나 영리법인 국제학교의 경제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판단은 제쳐두더라도, 제주도정의 노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무척 걱정스럽다.
이명박 정부의 '주식회사 학교' 설립 추진
2006년 12월 영어교육도시 추진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다른 지역의 적자투성이인 영어마을이 떠올랐다. 또 영어 교육에 이런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 때문에 영어교육도시 추진 계획에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중앙 정부가 제주도에 정주 인구 2만 명 규모의 시설 투자를 한다니 제주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또 서민층 자녀에 대해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도 한다고 하니 호감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중앙 정부는 추진 주체에서 손을 떼고 추진 지원자 역할로 남더니, 급기야 지난 7월 31일에는 제주도에 영리법인이 국제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입법예고를 해 놓은 상태다. 영리법인의 목적은 잉여금을 창출하는 데에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영리학교 법인은 잉여금 창출을 위해 학비를 가능한 한 높여 받으려 하고, 많은 잉여금을 법인의 다른 회계로 전출하려 하는 '교육 회사'인 것이다. 이런 학교를 유치한다고 제주에 대체 어떤 혜택이 돌아올까.
제주도정은 중앙정부에서 국책 사업 성격을 포기할 때 국책이 아니라면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어야 했다. 중앙 정부가 추진 주체가 되지 않는 영어교육도시는 제주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금이라도 이런 전략은 늦지 않았다.
제주발 영리학교 전국화는 시간문제
사실 지금까지의 사업 추진 과정을 살펴보면 중앙정부의 최종 목적은 자본 친화적인 영리국제학교 설립에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영어교육도시에 국책사업으로 국립학교를 설립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제주도정에 내민 미끼였는지 모른다.
영리법인 국제학교 설립의 타당성은 그 근거가 매우 허약하다. 외국인의 제주도 투자 환경을 갖추기 위해 국제학교가 필요하다면 현행 법률의 범위 안에서 제주도민의 여론을 수렴하여 비영리법인의 국제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면 될 것이지 현행의 학교 체계까지 흔들면서 영리국제학교를 유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도민 다수가 이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은 지난 번 영리병원 추진 철회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영리병원을 제주도민이 반대한 것은, 외국인의 병원 진료 시스템이 현행의 의료체계를 흔들지 않으면서 현재의 비영리의료법인에서 외국인이 쉽게 치료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 앞서 영리국제학교를 선점해서 외부에서 투자가 이루어져야 지역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면 이것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많다.
더군다나 제주도 영리국제학교 설립 입법안이 올 해 안에 통과되면 이것은 송도 등 6개의 다른 경제자유구역에 영향을 끼쳐 내년에는 그 곳에도 영리학교 설립이 가능한 법적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영리국제학교 설립이 전국화된다면 제주도에 남을 이점은 없다. 즉 제주도정은 교육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영리국제학교의 전국 확산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악역만 맡게 될 가능성이 많다.
영리법인 국제학교의 경제성은 얼마나 많은 학생이 입학할 지의 여부와 제주도민의 삶의 질 향상에 어떤 역할을 할 지의 여부로 판단해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다른 자유경제구역까지 학교 설립이 확대되면 제주도가 먼저 추진한다는 차별성은 사라지고 적극적인 수요층에 해당되는 학생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의 학교를 선택하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가능하다.
수업료 3000만 원,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
뿐만 아니라 영리법인 국제학교의 연간 수업료가 3000만 원 정도 되리라고 추정된다. 과연 제주도민의 자녀 가운데 몇 명이 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겠는가. 결국 국제학교는 제주도민은 갈 수 없는 귀족학교가 되어 제주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소외감을 더 심어줄 우려가 있다.
제주도정이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한다면, 경제성도 별로 없고 귀족학교만 양산할 영리법인 국제학교 입법 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또 영리법인 국제학교 유치에 소요될 재정을 제주의 학생을 위한 학생문화센터나 외국어학습센터 증설에 쓰는 것이 타당하다. 제주 학생들이 문화적 소양을 함양하고 외국어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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